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19) 중국문화와 복음화(하)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는 아시아복음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아시아 지역의 문화와 대화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문화는 그 지역의 전통 가치관과 사회질서 그리고 삶의 양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유지돼 왔다.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중국인들의 근간에 있는 유교문화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호에 이어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이자 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인 이근덕 신부의 기고를 통해 중국 유교문화의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어떻게 복음화 활동에 반영해야 할지 유추해 본다. ■ 유교문화의 인격수양 유교는 개인의 인격을 수양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인격수양이란 한 개인의 전체적 소질을 어떻게 양성해 내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유교는 교육 특히 가정교육을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교육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두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교육이다. 유교는 이에 더하여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도덕적 자각에 주목한다. 인격수양은 일종의 자각적이고도 자율적인 과정이다. 공자에 의하면 이는 극기복례의 과정이기도 하다. 만일 여기에서의 ‘예’를 과거 봉건사회의 예의질서 체계에 국한하지 않고 그 의미를 모든 사회의 일반적인 도덕규범으로 확대한다면 공자의 이 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현시대를 살면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들과 인간관계의 원칙들을 자각적으로 준수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가는 곳마다 벽에 부딪힐 것이요 자유스럽지 못할 것이다. 사실 도덕규범에 대한 자율적 강제는 우리를 도덕의 노예로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도덕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곧 물질의 노예가 아닌 물질의 주인이 될 것이요, 도덕의 노예가 아닌 도덕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유방식의 변화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이다. 올바로 깨달아 안다면 필연적으로 자유로울 것이요, 만일 가는 곳마다 부딪혀 투쟁한다면 영원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마치 운전을 하면서 교통법규를 준수하는 것과 같다. 만일 교통법규 준수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수많은 위반통지서가 날아들 것이고 심지어는 구속될 수도 있다. 그 안에 무슨 자유가 있겠는가? 유교에서 자신을 수양하는 목적은 ‘안신입명’에 있다. 안신입명이란 사회 안에서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자재로 생활하며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종국에 가서는 공자가 말한 “마음 가는 대로 살아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성인의 경지에 다다르는 것이다. 중국 칭하이성 시닝의 한 성당에서 한 남성이 세례를 받고 있다. CNS 자료사진 ■ 유교문화의 인생관 유교의 인생관은 낙관적이다. 이는 인생을 고해로 보는 불교와 상반된다. 하지만 결국 추구하는 목적인 성인의 경지에 다다르고자 하는 데는 서로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사실 유교 안에서도 맹자는 성선설을 말하고 순자는 성악설을 말한다. 얼핏 볼 때 이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하지만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선한 본성을 더욱 확장함으로써 최고의 경지에 다다르려 하는 것이고,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의 악한 본성을 고침으로써 최고의 경지에 다다르려 하는 것이니 결국 최후에 다다르고자 하는 목적은 같다고 하겠다. 게다가 그 방법 역시 나란히 교육과 수양을 통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니 관점이 다를 뿐이다.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자연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부단한 교육과 인격수양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해서 이를 인정하고 가만히 둔다면 이 사회에 생존해 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드시 교육과 인격수양을 통해서 이를 고쳐나가야 비로소 최종의 목적에 다다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와 순자의 출발점이 비록 다르다고 하여도 결국 이상적인 인격을 추구하는 귀착점은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유교의 낙관적인 인생관은 자연히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는 곧 쓰러질 것 같은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 있지 않는다고 하였다. 곧 넘어질 것을 명백하게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그 담장 아래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용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다. 유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을 중시하고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힘써 노력하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라는 것이다. 유교는 인간의 노력을 아주 중시한다. 그래서 공자는 인간의 노력을 다 기울인 연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저 소극적으로 앉아서 하늘이 준 기회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적극적으로 노력을 하여 기회를 만들고 그 기회가 무르익으면 이를 실현하라는 것이다. ■ 유교문화의 가치관 유교의 가치관은 다음의 세 가지로 종합할 수 있다. 바로 ▲의로움을 보면 용감히 행해야 한다(견의용위(見義勇爲)) ▲이익 앞에서는 정당함을 생각해야 한다(견리사의(見利思義)) ▲올바름을 위해서는 목숨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사생취의(舍生取義))다. 「논어」에서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아야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답하였다. “이익 앞에서는 정당한 것인지를 생각하고, 위험한 순간에 마주해서는 과감히 나아가 맞서며, 아무리 오래된 약속이라 하여도 이미 승낙한 일은 반드시 실천한다면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교문화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관이라 하겠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복음의 정신을 유교문화에 젖어 있는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일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유교문화는 인간관계의 질서를 중시하고, 도의를 중시하며, 현실을 중시한다. 만일 이를 무시하고 인간의 질서와 하느님의 질서, 도의와 하느님의 뜻, 현세와 내세 등의 개념을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은 당연히 유교문화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질서 안에 인간의 질서가 담겨 있고, 하느님의 뜻과 도의가 다르지 않으며,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할 때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유교문화 안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발행일 2020-03-29 제3188호 19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18) 중국문화와 복음화(상)

선교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는 그 지역의 전통 가치관과 사회질서 그리고 삶의 양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오랜 역사 안에서 중국문화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받아 왔다. 그러므로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는 동아시아 지역 복음화의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이자 수원교구 사목연구소 소장인 이근덕 신부의 기고를 통해 중국문화 안에서도 주류를 차지하는 유교 문화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중국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2017년 12월 16일 중국 상하이의 성 이냐시오 대성당에서 신자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CNS자료사진 ■ 유교 문화의 이상사회 유교 문화의 이상사회는 당연히 대동사회다. 대동사회는 곧 ‘사회의 공공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말한다. 이 말은 「예기」의 ‘예운’편에서 유래한다. “큰 도가 행해지면 곧 사회의 공공질서가 유지된다. 어질고 능력 있는 인재를 선발해 사용하며, 신용을 중시하고 화목하게 지내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만을 위하는 집단이기주의를 고집하지 않는다. 나이든 노인을 공경하며 젊은이들을 등용하고 어린이들이 잘 자라게 배려한다. 홀로 외로운 이들을 돌보고 병든 이들을 부양한다. 남자들은 본분에 걸맞은 직업이 있고, 여자들은 분수에 걸맞은 배우자가 있다. 재화가 남아돌아 쌓아두지 않으며, 능력이 남아돌아 이기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니 사회에 도적이 들끓지 않는다. 그러므로 외출을 하여도 문을 잠글 필요가 없으니 이를 일컬어 대동사회라고 한다.” 유교의 이러한 대동사회의 이상은 후대 사람들의 공통된 정치적 이상이 되었다. 근현대 시기의 강유위가 무술변법을 제창했을 때에도 바로 이 대동세계를 이상으로 삼았다. 손중산이 민족혁명을 일으켰을 때도 바로 이 대동세계를 목표로 추구하였다. 이 대동세계는 국가와 민족과 계급의 구분이 없는 세계이며,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존중받고 밤에 문을 잠그지 않아도 되는 사회이다. 한편 유교는 ‘소강’의 사회도 말한다. ‘소강’의 사회는 군신, 부자 등의 등급 구별이 있는 사회다. 대동사회의 이상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실현 불가능하다. 좀 더 실현 가능한 이상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을 고려한 ‘소강’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선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등급이 있어야 한다. 만일 등급이 없다면 그 사회는 곧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서로 간의 구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그 무리를 안정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더 나아가 모든 상하 관계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일치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이 민심에 부합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책들이 민심에 부합할 때 비로소 상하 관계가 일치를 이룰 것이요 그 사회가 화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듯 ‘소강’사회는 각각의 집단이 서로 화합을 이루며 공존하는 사회이다. 거기에는 등급과 차별이 분명히 존재한다. ■ 유교 문화의 인간관계 인간관계에 있어서 유교는 장유(長幼)의 서열을 매우 중요시한다. 특별히 오륜으로 대표하는 기본적 인간관계 안에서의 윤리 질서 확립을 강조한다. 「예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국가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네 가지 방면을 잘 고려해야 한다. 기본 정서(人情), 본분 의식(人義), 백성의 이익(利), 환난(患).” 이 중에서 본분 의식에 관하여 「예기」는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부모는 자애롭고 자녀는 효성스러우며, 형은 선량하여 모범이 되고 동생은 존경하여 따르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순종하며, 노인은 은혜롭고 어린이는 유순하며, 임금은 어질고 신하는 충성스럽다. 이 열 가지를 일러 인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상호성을 지닌다. 만일 임금이 어질지 않다면 어찌하는가? 유교의 윤리체계에 의하면 신하는 이에 불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맹자에게 물었다.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모두 이전 왕조의 신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신의 임금인 은나라의 주왕을 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일찍이 신하가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무뢰배 하나를 주살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맹자에게 있어서 포악한 정치를 일삼은 은나라의 주왕은 이미 왕이 아니라 백성의 적이요 한갓 무뢰배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러한 왕에게 충성을 바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순자에 이르러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순자는 도를 따라야지 군주를 따를 필요는 없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곧 도리에 근거해서 행동해야지 그저 맹목적으로 군주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탕왕이 하왕조를 뒤집었고, 무왕이 은왕조를 전복시킨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상의 ‘탕무혁명’이었다. 당연히 역사상 우국충정을 지킨 충신들과 삼강오륜의 법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삼강오륜의 법도 그 자체가 지닌 본연의 사상을 놓고 볼 때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윗사람의 뜻을 무조건 순종하여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 안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임금에게 간언하는 신하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황제가 잘못을 하였을 경우 목숨을 내걸고 간언을 하여 잘못을 시정하려 하였다. 바로 여기에 “도리를 따라야지 군주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사내대장부’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맹자는 대장부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로 부귀하더라도 음란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빈천하더라도 여기저기 빌붙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위세와 무력 앞에서 비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대장부의 품격이며 유교가 제창하는 사내대장부의 기본준칙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유교의 인간관계는 상하 등급의 질서와 구별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그 질서와 구별 안에는 반드시 권리와 의무가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오직 도리만을 따라야 한다”는 기본정신이 전체 질서를 유지하는 중심축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행일 2020-03-15 제3186호 9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17) 4차 산업혁명 시대, 「장자」의 통찰력으로 보는 복음화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중개인이 사라진다. 교사와 학생의 경계도 없다. 더군다나 21세기 세계화로 인해 국가 간의 경계도 사라진 터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자리 잡아 오던 유교적 전통이나 위계질서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 21세기는 기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두 개의 트랙이 공존하고 있다. 과도기적 사회현상은 질풍노도를 동반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너희는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마르 16,15)고 하는 가톨릭 정신은 4차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에만 몰입하는 이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전파시켜 나가야 하며,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자유와 고유한 문화유산과 모든 종교의 좋은 점을 절대로 손상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호에는 김송희(마리아)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의 기고를 통해 춘추전국시대 「장자」의 통찰력과 연결시켜 이 시대 복음화 방법을 생각해 본다. 2017년 7월 중국 베이징 천안문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CNS 자료사진 ■ 4차 산업과 복음화 4차 산업혁명의 첫 번째 키워드는 통찰력이고 융합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변화와 혁신을 의미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란 없다. 즉 기존의 아이디어가 결합되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시대이고,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사고가 요구되는 시대다. 인간과 기계, 자원이 직접 소통해야 하는 시대임을 말한다. 「장자」의 ‘천하’(天下)편을 살펴보자. 천하의 학자들은 대개 도(道)의 한부분만을 보고 스스로 옳다고 했다. 각기 편벽된 것만을 강조하고 다른 학문의 중요성을 알지도 깨닫지도 배우려고도 하지 않음에 대해 「장자」는 냉혹하게 비판했다. 편견과 오류는 각기 학문의 한쪽 측면에서만 바라보게 될 때 발생된다. 민생이 힘들었던 시대의 이슈이기도 하지만,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이 시대의 이슈이기도 하다. 둘째, 4차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는 수많은 혁신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시대이다. 장자는 혁신과 발전의 선행되어야 할 조건으로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장자가 말하는 ‘변화’의 ‘화’(化)는 단순히 기술적인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승화의 의미가 있다. 인간의 무한한 자유로움을 위해서 엄청난 변신을 시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외적인 변화는 철저한 자기 부정과 통절한 고통, 인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할 일이다. 장자는 이 변화를 통해서 정형화된 틀에서 탈피하여 정신적 해방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마르 8,34) 이 성경 구절에서는 자기 고집을 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동기여부에 따라 통절한 고통도 따른다. 곧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한 자기 몸부림이며, 이때의 변화 역시 승화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셋째, 4차 산업혁명은 기존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면이 분명 있다. 이 때 교회 안에서의 순명, 교회 안의 질서에 대해서 배타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자」는 어떠했을까? 「장자」는 유교적인 복종에 대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군주가 군주답고, 지아비가 지아비답게 행동할 때 순종하는 것이 유가학설이라면, 군주가 군주답지 않아도 지아비가 지아비답지 않아도 복종해야 하는 것이 유교이다. 황제의 지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 한대(漢代) 이후 종교화시킨 것을 말한다. 「장자」는 유교적 오류, 맹목적 복종을 부정하긴 했지만, 유가학설과 순종 자체를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베네딕도 규칙서」에서 말하는 ‘순명’은 교회 전체에서 강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상들에게 바치는 순명이 곧 하느님께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깊은 성찰이 필요할 일이다. 「장자」는 지위에 따른 권위는 분명 인정하지만, 무조건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그 본질은 잊고 자기 사리사욕만 밝히는 통치자의 관점에 저항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사람들의 입술을 통해 권위자다운 태도를 드러내고 자신의 의사표시를 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넷째, 올바른 식별과 분별이 매우 중요하다. 함부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결정을 내렸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반성(反省)할 수 있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다양한 이슈, 복잡 미묘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토론을 거쳐야 한다.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장자」의 ‘제물론’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자네가 내게 이기고 내가 자네에게 진다면, 과연 자네는 옳고, 나는 그른 것이 될까? 또… 나는 옳고 자네는 그른 것이 되는가?” 지나치게 시시비비를 따지고 드는 것은 결국 자기 고집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논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자기 논리에 대한 모순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는 과정은 필요할 일이며, 성찰에 의한 논쟁은 결코 감정을 자극한다거나 시끄러울 수 없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자」는 허정(虛靜)의 정신경계를 강조하여 반드시 평안과 고요에 머물면서 대자연과 일치를 이루는 시간을 권한다. ‘인간세’(人間世)에서는 “재계(齋戒)란,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며, 또한 마음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기(氣)로써 듣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 뜻은 마음을 한 곳에 전념한다는 것이며, 자기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나서야 비로소 천지의 경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식별과 분별은 그리스도인이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는 기도시간 안에서만 가능할 일이다. ■ 연민과 사랑을 통한 복음화 필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연민과 사랑이다. ‘호접몽’(胡蝶夢)의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장자의 정신경계는 자신과 타인의 온전한 일체감이고 연민을 말한다. 여기서의 연민이란 결코 심정적인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말한다. 이것은 타인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화합을 의미하며, 이런 화합의 단계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짐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의 경계와 차별을 드러내지 않는 완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는 예수님이 말하는 실천적 사랑의 좋은 사례다. 살펴보자. 강도를 만난 사람이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사마리아인은 그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마음을 다해 돌보아주었다. 금전적 부담까지도 끌어안았다. 완전한 사랑의 메시지다. 이 때 언어적 장난도 없고, 믿음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사회적 시각이 어떤 지와 같은 외적 판단은 개입되지 않는다. 실천적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은 융합과 통합에 의한 사회혁명이기도 하다. 「장자」의 통찰력은 시대이슈를 통절히 절감한데에서 출발한다. 그의 철학이 변화를 위한 몸부림, 분별과 식별,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신경계를 중시하는 관건은 실천에 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모습이고, 이 변혁의 시대에 더 절실한 인간형상이기도 하다.

발행일 2020-03-01 제3184호 11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16) 중국 문화 바탕에 깔린 종교성 (하)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와 문화 안에 녹아 있는 중국인들의 종교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본지는 지난 두 회에 걸쳐 중국의 종교성과 신관을 알아봤다. 중국인의 영생관과 복음 사이의 접점을 찾고, 유가의 선유사상과 ‘참 행복’의 비교를 통해 중국 문화와 대화할 가능성을 열었다. 이번 호에서는 ‘중국 문화 바탕에 깔린 종교성’ 마지막 회로,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이자 홍보실장인 최경식(스테파노) 박사를 통해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대동세계를 통해 복음화 가능성을 살펴 본다. ■ 인륜과 현세를 중시하고 대동세계(大同世界)를 지향하는 중국문화 「예기·예운」(禮運) 편에 공자는 대동세계, 즉 이상사회(理想社會)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도지행야, 천하위공(大道之行也,天下爲公:대도가 시행되니 천하는 모든 이의 소유가 된다). 선현여능, 강신수목(選賢與能, 講信修睦:재덕을 겸비한 사람을 선발하여 천하를 다스리니, 사람 사이에 믿음이 생기고 화목하게 지낸다). 고인불독친여친,불독자기자,사노유소종,장유소용,유유소장,긍과고독폐질자,계유소양(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육친만 육친으로 삼지 않고, 자신의 자녀만 자녀로 삼지 않으며, 늙은이는 행복한 만년이 있고, 장년의 재능은 충분히 발휘되며,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과부·홀아비·고아·자식 없는 사람·불구자는 보살핌을 받는다). 남유분, 여유귀(男有分, 女有歸:남자는 직분이 있고, 여자는 돌아갈 곳이 있다). 화오기기어지야, 불필장어기(貨惡其棄於地也, 不必藏於己:재물을 함부로 낭비하거나 버리는 걸 싫어하며, 자신의 곳간에 쌓지 않는다); 역오기불출어신야, 불필위기(力惡其不出於身也, 不必爲己:공공의 일에 힘을 다하지 못함을 혐오하는데, 이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고모폐이불여, 도절란적이불작, 고외호이불폐(是故謀閉而不興, 盜竊亂賊而不作, 故外戶而不閉:고로 음모와 궤계가 일어나지 않고, 재물을 훔치거나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 대문은 닫을 필요가 없다). 시위대동(是謂大同:이런 사회가 바로 대동세계다).” ‘대도지행, 천하위공(大道之行, 天下为公)’, 이것이 바로 복음이 전하는 ‘천국’과 통한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어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3-34)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6-27)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 4, 30-32) 이런 대동세계 지향은 중국인에게 복음 가운데 ‘천국’을 더 명확히 하고 천국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관념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천국은 단지 내세의 것만이 아니며, 그것은 현세에 시작되어 내세에 완성된다. 공자·맹자·묵자 등이 건설하려던 대동세계와 도덕지국은 바로 천국을 받아들이는 제일보다. 2018년 3월 25일 중국 여우퉁의 한 성당에서 신자들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긍정과 가능성에 무게를 둔 중국 복음화 노력 필요 중국과 중국사회, 중국인과 복음을 연결 짓는 키워드는 ‘영생관’과 ‘신앙관’, ‘윤리관’ 그리고 ‘대동세계’다. 중국인은 오래전부터 영생의 관념을 가지고 신을 믿어왔으며, 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풍부한 윤리관 그리고 대동세계라는 이상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요소는 바로 중국인이 복음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 중국문화는 많은 진선미 요소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렬한 대자연 회귀 경향과 대자연과 친교하는 습속이 있다. 이것은 중국인의 심령을 높이고, 진선미의 조물주께 나아가고 접근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진선미는 하느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진선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느님을 찾게 된다. 풍부한 문화유산은 실로 하느님을 알게 되는 주요 노정이다. 중국문화는 심령을 높이고, 기질을 변화시키며, 은연중에 동화되는 기능을 가진다. 중국문화와 대화하려면, 중국문화의 정수를 연구하고 접촉해서 중국문화에 녹아들어야 한다. 우리는 일찍이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서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중국문화의 진수, 그중에서 선유사상(先儒思想)을 깊이 이해하면서 유학자들과 속 깊은 교류를 통해 복음을 전파했던 ‘마태오 리치 적응주의’를 다시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중국공산당장정」(中國共産黨章程) 총강(總綱)에 “당의 최고 이상과 최종목표는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 정하고 있는데 이것도 주목해볼 만한 대목이다. 현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은 ‘중국몽(中國夢)’ 실현에 초점을 두고 중국공산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소강사회(小康社會, Well-off Society)’ 달성, 중국화인민공화국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소강(小康)’이라는 말은 역시 「예기·예운」(禮運)에 나오며, “천하를 집으로 삼고, 예의가 구현된 사회”를 뜻한다. 유가에서는 ‘소강’(小康)을 통상 ‘대동’(大同)으로 가는 전 단계로 여기는 바, 현 집정자들이 밖으로 ‘공산주의 실현’을 내세우고 안으로 ‘대동세계’를 지향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 시진핑의 전제화 경향은 언론 사상통제로 나타나고 그 여파가 신앙과 종교의 억압으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중국사회와 중국인들에게 녹아있는 문화유산은 시대의 변천에도 절대불변임을 주목하고 ‘겨자씨’ 같은 가능성만 있어도 “문화와 대화”하고 복음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중국 문화와의 대화! 구호만으로 절대 실현될 수 없다.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발행일 2020-02-16 제3182호 8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⑮ 중국 문화 바탕에 깔린 종교성 (중)

중국인들은 오랜 세월을 신(神)과 함께 살아왔다. 이들은 기원전 5000년부터 자연에 대한 제사를 지내왔으며, 이러한 유구한 신에 대한 중국인의 관념은 특유의 종교성으로 발전해 왔다. 이번 호에서는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이자 홍보실장인 최경식(스테파노) 박사를 통해 오랫동안 신을 믿어온 중국인의 종교성과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한 중국인의 윤리관에 대해 알아본다. ■ 중국인의 종교성 중국인은 본래부터 신(神)을 믿어왔다. 중국에는 대략 앙소문화(仰韶文化·기원전 5000년~기원전 3000년) 시대부터 만물유령에 대한 관념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자연에 대한 제사가 성행했다. 각종 자연현상이 여러 자연신에게 나뉘어 지배된다고 믿었던 원시 중국인들은 복을 희구하고 재앙을 면하기 위해 자연신과의 관계를 좋게 해야 했다. 여기서 수많은 제사를 통해 신과 인간이 교류했다. 「좌전·성공」에 “국지대사 재사여융”(國之大事 在祀與戎·국가의 대사는 제사와 전쟁에 있다)이라는 말이 있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나아가 동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발전하는데,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남방만민종충 북방적종견 동방학종채 서방강종양”(南方蠻閩從蟲 北方狄從犬 東方貉從豸 西方羌從羊·남방의 만민은 벌레, 북방의 적은 개, 동방의 학은 돼지, 서방의 강은 양에서 나왔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원시 씨족사회의 토테미즘의 일례로 설명된다. 용산문화(龍山文化·기원전 2500년~기원전 2000년) 시대로 들어서면 토테미즘은 쇠퇴하고 조상숭배가 성행한다. 조상숭배는 씨족사회의 산물이며, 혈연친족 관계는 조상숭배의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기초가 되고, 동시에 귀혼숭배로 발전한다. 최초의 조상숭배는 씨족단체의 공동조상이었고, 이 공동조상을 우선으로 숭배한 후에야 비로소 부족단체의 공동조상이 숭배되었으며, 그 후 가정이 생기면서 가정의 조상숭배가 나타났다. 또 기원전 2000년부터 ‘지고무상의 신’에 대한 관념이 있었다. 이름하여 건(乾), 천제(天帝), 상제(上帝) 등이 그것인데, 여기서 ‘건’은 본래 팔괘의 하나로 하늘을 대표하고 또 남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곤’과 합해져 건곤(乾坤)은 천지 또는 음양을 표현한다. 천제는 상(商)·주(周)이래 각 왕조의 ‘정통 제사의 최고신’, ‘국조(國祚)를 장악하는 신’, ‘신권지상’이 되었다. 공자가 편집한 「시경」 대아(大雅)에 “상제께서 네게 임하시니, 이는 네가 한마음 한뜻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하늘이 온 백성을 낳으시니, 각자의 규칙과 규율이 있다”, “하늘은 백성들이 보는 것에서 보고, 백성들이 듣는 것에서 듣는다”는 구절이 있다. 또 「논어」 가운데 “하늘에 죄를 지으면, 어떤 기도도 소용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이 모두가 위격을 갖춘 신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이로 미루어 복음 전파 이전에 중국인은 이미 ‘지상신’에 대한 구체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천주’가 중국인의 가슴속에 낯설지 않게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 지난해 2월 4일 ‘땅의 신’을 기리는 중국 베이징의 지단공원(地壇公園)에서 음력 설인 춘절을 기념하는 행진이 열리고 있다. CNS 자료사진 ■ 중국인의 윤리관 중국문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가 유가사상이고, 유가사상에서 핵심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신충효제(信忠孝悌), 절서용양(節恕勇讓)이다. 이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복음 가운데 산상설교나 사도 바오로의 처세 도리 등에 대해서 전혀 생소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서로 어우러져 승화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 선유(先儒)의 이 윤리관은 공자에서 시작되어 맹자와 순자의 양파로 발전된다. 이것이 「중용」과 「대학」에서 각파의 의견을 종합한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되고, 윤리 도덕으로 치국평천하의 주요 수단으로 삼는다. 그 특징은 아래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도덕의 근본 탐구 중시다. 공자는 ‘천명’이 도덕의 근본이라고 강조하는 한편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사람은 선천적으로 순진한 본성을 가지고 있어 서로 가까워지려 하나, 후천적으로 오랜 습성 때문에 서로 멀어진다)라면서 후천적 습성이 개인의 도덕적 자질 형성에 중요함을 인정했다. 「중용」에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谓性 率性之谓道 修道之谓教·사람의 천성을 성(性), 본성에 따라 행하는 것을 도(道), 도를 닦아 대도(大道)로 가는 것이 교(敎))라 했다. 그러면 덕(德)이란? 바로 도를 따르는 것이 덕이며, 도와 덕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다. 도를 떠나서는 덕이 없으며, 덕을 떠나서는 도를 볼 수 없다. 둘째, 의(義)를 중히 여기고 이(利)를 가볍게 여긴다. 유가는 대대로 이(利)를 개인의 사리(私利)로 보고 의(義)와 대립 된다고 여기며, 도덕 원칙과 규범을 인간 행위에 대한 지도적 역할로 강조했다. 유가는 ‘견리사의(見利思義), 견득사의(見得思義)’라 했으며, ‘살신성인(殺身成仁), 사생취의(捨生取義)’를 강조했다. 따라서 인(仁)을 핵심으로 하는 도덕규범의 체계를 확립하였고, 거기에 효제충서신의(孝悌忠恕信義)가 포함되었다. 셋째, 도덕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공자는 “도지이덕 제지이례”(道之以德 齊之以禮·도덕으로 백성을 인도하고, 예절 제도로 그들을 동화)해야 비로소 사람이 수치를 알고 스스로 사회질서와 도덕규범을 준수한다고 말했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속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충만하면 능히 ‘인정’(仁政)을 펼 수 있다고 보았다. 도덕은 바로 정치와 법률의 근본이며 기초다. 넷째, 도덕 교육과 도덕 수양을 중시했다. 공자가 학생을 가르치는 내용은 문행충신(文行忠信)이며, 그 중심은 도덕 교육이었다. 유가의 대표적 인물 대다수가 교육자다. 그들은 오랜 교육 활동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도덕 교육의 이론을 형성했다. 나아가 유가는 개인의 도덕 자질의 수양을 중시하면서 이것으로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는 준거로 삼았으니, 그것이 바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다. 그들의 교육목적은 모두 ‘성현’(聖賢)을 배양하는 데 있었다. 위의 선유사상(先儒思想)은 복음 가운데 산상설교와 대비해 볼 만하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마태 5,3-12)이 무엇인가를 정의하셨고,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 5,13-16) 그리고 ‘화해와 극기, 정직, 폭력 포기’(마태 5,21-30, 33-42)를 말씀하시면서 특히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3-48)고 하셨다. 이렇게 볼 때, 선유사상의 핵심은 바로 산상설교와 상통하지 않는가?

발행일 2020-02-02 제3180호 11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⑭ 중국 문화 바탕에 깔린 종교성 (상)

아시아복음화를 이야기하면서 중국을 논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시아복음화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교황청은 지난 2018년 주교 임명에 관해 중국과 ‘잠정협약’을 맺을 정도로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에 본지는 향후 6회에 걸쳐 중국과의 대화를 위해 중국문화와 중국의 종교성을 알아보는 자리를 갖는다. 먼저,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연구위원이자 홍보실장인 최경식(스테파노) 박사에게서 중국 국민들의 종교성에 대해 알아본다. 중국 민족은 5000년 동안 ‘신’을 믿었고,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순종하면서, ‘신’과 함께 생활해왔다. 100년 전 오사운동부터 공산주의 사조가 중국에 들어오고, 70년 전 공산당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중국 민중은 지배층에 의해 ‘신’을 죄악시하고 부정하는 풍조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공산당정권은 비록 헌법에 ‘신앙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은 종교의 전파를 통제하고 종교의 국가화를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5000년을 이어온 민중의 뿌리 깊은 신앙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중국에 전해지기 전 중국문화의 토양, 그 가운데서 ‘신’과 관련된 토양은 어떠했는지 알아야 이를 토대로 희망을 품고 어떤 방향으로 중국문화와 대화하고, 어떤 방법으로 선교를 해야 할지 대강(大綱)을 정할 수 있지 않을까? 2019년 2월 3일 광저우의 시민들이 음력설인 중국의 춘절을 기념하고 있다. CNS ■ 중국인의 영생관(永生觀) 소동파(蘇東坡)는 한유(韓愈, 唐 시인)의 묘당을 증축하면서 지은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서 ‘영생’(永生)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필부라도 백 대에 걸쳐 모범이 될 수 있고, 한마디 말로라도 천하의 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그 품격이 천지 만물 양육과 견줄 만하며, 천지의 성쇠와도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탄생은 내력이 있고, 그들의 죽음 역시 가치가 있다. 그것들은 반드시 기대지 않았는데도 이루어졌고, 얽매이지 않고 행동했으며, 출생을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존재했고, 죽음을 따르지 않았는데도 사라졌다.” 그의 ‘영생관’은 유가 교육의 결과가 안에서 바깥으로 우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통 유학자 외에 일반 중국인의 영생관념은 유교와 도교, 불교의 영향을 받아 생활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유가와 도교, 불교가 영생에 미친 주요 영향은 다음과 같다. 유가는 효(孝)의 관점에서 영생문제를 풀이하고 있다. 「좌전 소공칠년」(昭公七年)에 의하면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의지와 정서, 지력(智力)을 주관하는 혼(魂)과 신체의 생명력을 구성하는 백(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과 백을 잘 관리하면 지력과 신체 모두가 건강하며, 사람이 죽게 되면 혼과 백은 분산하는데, 백은 자연으로 돌아가 만물 가운데 사라진다. 만약 사람이 살아생전에 혼을 잘 관리하면, 죽어서도 혼은 흩어지지 않는다. 혼은 백의 받침 없이는 물리 세계에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기에 영(靈), 즉 신명(神明)으로 변한다.” 가정은 중국인 조상의 영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 가족 역사에 유명인물이 많을수록 조상은 더욱 신명해진다. 따라서 조상숭배의 관점이 중국의 종족 관념과 종족 유대를 더욱 강화해 나가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불교는 모든 사람이 생명의 영원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주목해서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담론하고 있다. 이른바 ‘영혼의 윤회설’, 즉 ‘육도윤회’(六道輪回 : 천(天)·인(人)·아수라(阿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영혼이 있으며, 만약 불생불멸의 열반에 들지 못하면, 영원히 육도에서 생과 사를 지속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현세에서 쌓은 덕행에 따라 내세의 등급이 달라지며, 그 다음 내세에도 덕행을 쌓게 되면 종국에는 ‘극락서방세계’(極樂西方世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이런 견해는 일반 서민에게 큰 흡인력으로 작용했다. 중국인의 영생관념은 또 도교의 ‘장생불사’ 관념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중국의 도교(노장의 도가(道家)와 구별된다)는 갈홍(葛洪)이 제창한 신선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신선 역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갈홍의 신선론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날 때부터 음양(陰陽)의 이기(二氣)를 가지고 태어나며, 이 기(氣)를 잘 보양하고, 운기를 조화롭게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운용해서 기를 상실하지 않도록 하면 갈수록 수명이 더해지고 마침내는 불사(不死)의 경지에 이른다.” 즉 사물을 대하는 것, 먹고 머무르는 것, 수신양성 등등에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잘 관리하면 영원히 보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생관은 사람이 현재 가지고 있는 일체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일인득도, 계견승천’(一人得道, 鷄犬昇天)의 개념이다. 중국인의 영생관은 이들 세 종류의 관점을 종합한 것으로 귀결된다. 유가의 견해는 개인의 노력으로 입덕입공입언(立德立功立言)하면, 조종(祖宗)의 신명을 널리 알리고 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현실을 중시한 정신의 영원한 존재’다. 불교의 견해는 윤회 가운데서 모든 사람이 현세에서 공덕을 쌓음으로써 내세의 윤회에서 한층 높은 단계로 올라가 성불의 단계로 이르는 ‘영혼의 영생’이다. 도교가 추구하는 장생불사는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해서 영원토록 하는 신체불후(身體不朽)다. 유가와 불교의 영생은 일종의 사후 생존을 말하나 도교의 영생은 이생에서부터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한다. ■ 복음과 중국 영생관의 접점을 찾아서 예수님께서 영생문제에 관해 많은 말씀을 남기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7)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로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즉 예수님께서는 믿는 것과 다시 태어나는 것 그리고 영원히 사는 것은 본래 동시에 존재한다는 영생관을 제시하셨다. 따라서 중국 전통의 영생과 복음의 영생에는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 그 접합점을 통해서 중국인의 심령세계로 뚫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발행일 2020-01-12 제3178호 20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특별기고 - 아시아의 흙 속에서 움트는 복음의 씨앗

2020년 새해를 맞아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에 관한 신학적 전망을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의 글을 통해 알아본다. 박 신부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 이하 FABC) 전문신학위원이며,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제9대(2014-2020)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지난 2019년 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FABC 특별회의에서 신앙교리성 장관 루이스 라다리아 추기경(맨 앞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과 아시아 주교 및 신학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준양 신부 제공 국제신학위원회(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ission)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실로서 1969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설립되었다. 필자는 2019년 11월 26-29일에 개최된 국제신학위원회 총회 및 설립 5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이번 전체회의는 제9대 위원회 활동의 정점이기도 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그 직전에 태국 및 일본 방문을 막 마치고 오신 교황님께서는 여독과 시차 속에서도 활력 있는 모습과 환한 미소로 국제신학위원들을 맞아주셨다. 교황님께서는 제9대 국제신학위원들이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문헌을 작성해 출간한 것에 대해 특히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사실, ‘공동합의성’(Synodalitas)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어느덧 현대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필자는 신앙교리위원회 동료들과 함께 번역한 그 한글판 문헌을 교황님 개별 알현 시에 선물로 드렸다. 한마디로, ‘공동합의성’이란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느님 백성이 친교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가리키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 기회를 통해서 ‘공동합의성’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왔는데, 보편교회의 순례 여정 안에서 지역교회들의 고유성이 보다 잘 드러나야만 한다는 것도 그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교황은 최근에 특히 아시아교회의 중요성과 잠재력에 대해 강조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지난 12월 8일 필리핀의 마닐라대교구장이며 국제 카리타스 의장인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에 임명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필자는 FABC 전문신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국제신학위원으로 임명되었기에, 국제신학위원회 회의에서 무엇보다도 아시아교회의 목소리와 신학적 전망을 전달해 반영시키는 데에 가장 큰 역점을 두었다. 동시에, 국제신학위원회의 작업을 FABC 신학위원회에 소개해 연결하고자 또한 노력하였다. 사실, 국제신학위원회와 FABC 신학위원회의 작업에는 방법론적으로 차이가 있다. 국제신학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전통적 신학 방법론에 입각해 작업을 진행해나가는 데에 비해서, FABC 신학위원회는 아시아의 현실과 맥락에 대한 복음적 성찰에서부터 출발한다. 타글레 추기경은 그동안 FABC 신학위원회를 위원장으로서 이끌며 아시아교회의 신학적 전망 형성과 방향 정립에 크게 기여해왔다. 지난 2018년 5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FABC 신학위원회 회의 중 박준양 신부(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을 비롯한 위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준양 신부 제공 타글레 추기경은 아시아의 복음화가 복음적 대화로부터 시작됨을 늘 강조한다. 아시아의 지역교회들은 FABC 차원의 협력과 활동으로 축적된 경험과 논의를 통해, 아시아 복음화의 가장 효과적인 길은 ‘대화’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아시아 대륙은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역사와 사회 상황에서 빈곤, 전쟁, 식민 지배의 경험 등과 같은 공통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다양성과 공통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많은 대화로써 이해하며 깊은 ‘연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삼중 대화’ 개념이다. 특히 1990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제5차 FABC 총회를 통해 이 원칙이 분명하게 천명되었다. 즉, 아시아의 복음화는 단지 신자 수의 증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대화 및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와의 대화,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세계종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삼중 대화는 방법론적 수단을 넘어 아시아에서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과의 깊은 연대이고, 토착화된 아시아 지역교회의 아름다운 열매이며 또한 그 존재 양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시아 신학은 종교-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가난과 고통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아시아 민족들의 삶을 대화로써 공감하고 복음의 빛에 입각해 해석하는 시각과 전망들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타글레 추기경은 논리적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서구 철학적 전개보다는, 스토리텔링과 내러티브가 아시아에서 더 효과적인 신학적 담화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이야기(스토리)는 한마디로 ‘참 하느님이 참 인간이 되신 이야기’이다. 이에 대한 증언은 교회의 가시적 경계를 넘어서 모든 보편적 인류에게 감동을 주는 구원적 서사(내러티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아시아 신학은 변화하는 아시아 대륙의 맥락에 따라 새로운 성찰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는 여전히 지속되지만, 과거와 달리 난민과 이주(migration)의 문제가 새로운 성찰 요소로서 통합되어야 한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하듯이, 최근 아시아의 가난하고 어려운 지역에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집중됨으로써 발생하는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특히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아시아 문화와의 대화에서도 새로운 성찰 요소들이 등장한다. 아시아의 전통문화 가치가 점차 간과되거나 상실되는 상황 속에서 급격하게 서구화, 산업화, 정보화, 상대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적 흐름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종교와의 대화 역시 긍정적인 상황만은 아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종교적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교계 신흥종파들이 급격히 부상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삼중 대화에서 이처럼 새로운 요소들에 대한 성찰과 대응이 요구되는 것이다. FABC 신학위원회 문헌들을 모은 책이 「아시아의 토양에서 움트는 신학의 씨앗」(Sprouts of Theology from the Asian Soil, Bangalore, 2007)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겸손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험블’(humble)은 어원적으로 ‘흙’을 가리키는 라틴어 ‘후무스’(humus)에서 유래한다. 즉, 아시아의 토양(humus)에서 비참한 인간 본성을 취해 육화하신 겸손한(humble) 모습이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창조주 그리스도께서 뿌리신 말씀의 씨앗들이 아시아의 토양에서 움터나고 있다. 마치 아기 예수님이 구원의 신비를 향해 성장해나가듯이, 그 말씀의 씨앗들도 점차 자라나게 될 것이다. 이제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의 씨앗들을 찾아내고 꽃피우게 도우며 아시아의 땅에서 역동적으로 복음을 증언하게 될 것이다.

발행일 2020-01-05 제3177호 8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⑬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일본의 그리스도인들

일본은 천황과 신도를 중심으로 한 다신교 사회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일본의 천황은 상징적인 존재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일본 사회의 정신체제에는 천황제를 주축으로 하는 선민의식과 신도가 중심에 흐르고 있다. 지난 12회 기획에 이어서 이러한 일본 사회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소수인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조치대 신학교수 구정모 신부의 글을 통해 알아본다. ■ 사회정의를 위한 작은 외침 지난 4월 30일, 일본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이하 정평협)와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NCC), 일본침례교연맹의 관계자들이 모여 ‘천황 교체식의 위헌적 행위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사임하고 나루히토(徳仁)가 새 천황으로의 실질적 임무를 시작하는 5월 1일의 전날에 이루어진 기자회견이었다. 이 기자회견장에서 정평협 간사인 미쓰노부 이치로 신부는 일본 천황 교체식에 대한 일본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표명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키히토 천황의 즉위식 때에 특정 종교 예식이 혼합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행사라는 명목으로 국비를 지출한 것은 정교 분리의 입장을 천명하는 일본 헌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위였다. 이번 새 천황의 즉위식에서도 특정 종교의 예식이 혼합되어 있고 이를 국비로 충당하려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가톨릭교회는 계속해서 정교 분리의 원칙과 신앙의 자유를 지킬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바이다.” 미쓰노부 신부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메이지 천황 이래 일본은 국가 신도 체제 하에 전체주의를 자행하여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천황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강요했었다. 이렇게 한 인간을 신격화하고, 또한 인간이 만든 제도를 절대화하려는 시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서 볼 때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다. 일본은 과거 이렇게 한 인간과 인간들이 만든 제도를 절대화하는 황국사관 안에서 국가와 종교와 무력을 일체화 시키고 전쟁을 통해 아시아의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현 일본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정교 분리, 주권 재민, 전쟁 포기의 원칙을 정부가 지킬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지난 12회 기획에서 소개해드린 대로 일본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신앙 여정은 천황제 안에 숨겨있는 인간의 신격화 경향이 초래하는 위험성이라는 긴장 속에서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의 정평협의 메시지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현대를 사는 교회가 이렇게 천황제에 대해서 분명하게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것은 일본 사회에 복음의 빛을 비춰주는 희망의 표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천황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는 역사적으로 그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일본 대부분의 그리스도교는 직·간접적으로 천황제나 이로 인해 야기된 전쟁을 성전으로 정당화하려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므로 현대 일본 가톨릭교회의 입장 표명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뼈저린 반성에서 나온 성찰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일본의 다양한 그리스도교 종단이 2015년 8월 5일 히로시마에서 원폭 투하 70주년을 맞아 세계 평화를 위한 행진을 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 조치대학 야스쿠니 신사 참배 거부 사건 1932년에 있었던 조치대학(上智大学) 야스쿠니 신사 참배 거부 사건은 가톨릭교회가 천황제적 가치관에 완전히 종속되는 실마리를 제공한 사건이다. 조치대학은 1913년에 예수회가 설립한 학교로 1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일본 사회 안에서 명문으로 자리 잡은 대학이다. 조치대학 학생에 의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거부 사건은 조치대학이 일개의 사립대학으로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하던 1932년 5월 5일에 발생했다. 당시 군국주의 노선을 걷던 일본 정부는 국민의 애국심 함양이라는 슬로건 아래 신사 참배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그날 조치대학의 군사 교관을 하고 있던 기타하라 히토미 대위가 학생 60명을 인솔해서 야스쿠니 신사로 참배하러 가려했다. 그런데 출발 직전에 가톨릭 신자 학생 몇 명이 호프만 학장 신부에게 찾아가서 경위를 설명했고 호프만 학장은 신앙의 양심에 따라 참배하러 가지 않아도 좋다고 격려했다. 학장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참배에 불참했고, 이 사건은 결국은 학교가 폐교될 위기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됐다. 대중 언론에서도 조치대학의 태도를 비애국적인 것으로 비난했고 이 비난의 물결은 걷잡을 수 없게 불어났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학교 폐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일본 사회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 대해서 얼마나 비애국적인 종교인가 하는 인상을 일반 일본 사람들에게 강하게 심어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예수회 신부들과 일본 주교들은 긴급히 교황청과 연락을 했고, 교황청으로부터 신사 참배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고 애국적 행위임을 확인 받았다. 이를 근거로 하여 도쿄대교구의 샹봉 대주교는 각지의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내 가톨릭 학생들이 신사에서 예를 행하는 것은 조국에 대한 신자들의 존경의 행위로 인정된다고 통보했다. 이리하여 가톨릭교회는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일본의 가톨릭교회는 일본 사회의 볼모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번 매국노들의 종교라고 낙인 찍혀 버린 교회는 이후 일본 사회의 신임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야 했고, 결국은 일본이 일으킨 끔찍한 전쟁을 교회의 이름으로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필요한 물적 인적 재원을 조달하면서 일본 사회에 대한 충성을 보이려고 눈물 나는 노력을 전쟁 내내 계속 하였던 것이다. ■ 자기반성에 기초한 일본교회 복음화 활동 이 글의 처음에 소개해 드린 정평협의 천왕 즉위식에 대한 메시지는 이러한 역사적 굴곡 속에서 뼈저리게 자기반성을 한 교회에서 나온 목소리라는 면에서 깊은 의미가 있다. 현재의 일본교회가 이렇게 보다 복음적인 성찰이 가능한 것은,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사회 정의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도 연관된다. 특히 1965년 12월에 공표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은 교회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징표 속에서 세상의 기쁨과 희망, 고뇌와 불안을 함께 나눈다는 연대 의식을 강하게 천명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교회는 1970년에 주교단 산하에 정평협을 설립해 전쟁의 책임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성찰했고, 정의와 관계된 사회의 이슈들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예언자적인 메시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와 관련해서는 1973년에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본 정평협은 김대중 구출을 위해 그 어느 단체보다도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밖에도 재일 교포들의 지문 철폐 운동, 베트남 보트 피플을 위한 운동, 부락민 차별 폐지를 위한 운동 등도 적극적으로 펼쳐 왔고, 현재에 와서는 평화 헌법 수호 운동, 난민과 이민자들을 위한 인권운동 등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일본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교회보다 규모도 적고 또 사회에 대한 영향도 미약하다. 그러나 각 지역 교회의 복음적 사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숫자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깊게 주님의 복음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 안에서 재해석해 내고 또 그 내용을 살아가려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교회는 주님의 성령의 불이 계속 타오르고 있는 교회임에 분명하다.

발행일 2020-01-01 제3176호 20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일본 도쿄 성 이냐시오본당의 ‘다문화와의 대화’

삼중대화는 아시아라는 특수성 안에서 가난한 이들, 다양한 문화, 종교 전통이라는 세 가지 방면으로 대화를 지속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방법론이다. 아시아 내의 각 교회들은 어떻게 이 삼중대화를 구현해나가고 있을까? 이주민의 유입이 많은 나라 일본, 그 수도인 도쿄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도쿄대교구 성 이냐시오본당(고지마치본당(麹町教会), 주임 하나후사 료이치로 신부)을 찾아 다문화와의 대화를 실천하는 모습을 만났다. 11월 24일 도쿄대교구 성 이냐시오본당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마치고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 수 천 명의 이주민이 어우러지는 본당 성당 마당에서는 미국 출신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가는 신자들을 위해 커피를 나눴다. 식당 앞에서는 필리핀 출신 신자들이 성당을 찾은 이들을 위해 고향 전통 음식을 판매했고, 성당의 한쪽 공터에서는 베트남 출신 신자들이 베트남 음악을 틀어놓고 율동 연습에 한창이었다. 성당 교육관에 들어가니 일본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권의 청년들이 영어로 워크숍을 진행했고, 본당 신자 대표들이 모여 일본어로 본당평의회를 열고 있었다. 언뜻 어떤 국제행사의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매주일 본당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본당에서는 7개 언어권의 미사가 봉헌된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스페인어 미사는 매주 봉헌되고, 베트남어 미사는 월 2회, 인도네시아어와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미사는 각각 월 1회 봉헌된다. 도쿄는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노동자들도 많을 뿐 아니라 결혼이주민도 다수 거주하고 있는 도시다. 또한 성당이 위치 상 조치대학교와 붙어있어, 본당의 미사에는 외국인 유학생과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다. 그러다보니 매주 주일미사 참례자 50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비일본어권 미사 참례자일 정도다. 그만큼 이주민이 많은 본당이자, 이주민들이 성당에서 기쁨을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가나에서 온 레이몬드 가수(51)씨는 “본당 공동체가 있어 신앙에 굉장히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라 출신의 신자들이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이주사목이 뭔가요?” 이렇게 수많은 이주민들이 함께하는 본당에서 이주사목을 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본당 사목자, 본당평의회 평의원을 역임한 신자들에게 본당에서 어떻게 이주사목이 이뤄지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주민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주사목’이라는 말 자체를 낯설어 했다. 그제야 질문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이곳 본당 신자들에게는 ‘필리핀 사람’, ‘페루 사람’, ‘가나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모두가 ‘우리 본당신자’였다. 물론 본당은 소통의 편의상 언어권별로 공동체를 이뤄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당의 전체적인 사목에 있어서는 인종이나 언어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 본당은 본당사목을 자문하고, 주요 사목정책을 추진하는 본당사목평의회를 12명의 평의원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평의회에는 비일본어권 출신 신자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미국 출신으로 본당 평의회장도 역임한 바 있는 스미스 무쓰코(데레사·59)씨는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어권에 관계없이 신자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면서 “가족과도 같은 코이노니아(친교) 안에서, 예수님께서 늘 이웃을 위해 일하신 것처럼 공동체가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원주민과 이주민의 경계가 없는 사목이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어권 신자들과 비일본어권 신자들의 교류는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있었다. 그러나 본당 차원에서 언어권에 관계없이 전 신자가 함께하는 행사를 꾸준히 열어오면서 신자들의 인식이 변해왔다. 특히 연 2회 열리는 ‘7개 국어로 바치는 묵주기도’나 본당축제, 바자 등은 본당 모든 구성원이 기쁘게 참가하는 소중한 행사다. 본당 평의회장 쿠라 히로코(마리아·70)씨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함께하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점차 가까워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신자들이 더욱 하나 되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원주민인 일본 출신 신자들도 이런 본당에서 나누는 이주민들과의 친교에서 신앙을 체득해나가고 있다. 영어권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사쿠라 이즈미(58·마리아데레사)씨는 “이주민들과 많은 다름이 있지만,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임을 배우면서 이 친교에 가치를 느낀다”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함께하는 모습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당 보좌로 사목하고 있는 이상원 신부(예수회)는 “얼마 전 럭비 국제대회 중 일본 출신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여러 외국 출신의 선수들이 함께 일본 대표로 출전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교회도 이렇게 럭비처럼 어느 나라 출신이냐가 아니라 하느님나라 대표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성가연습을 하고 있는 성 이냐시오본당 베트남공동체 성가대. ■ 이주민을 위한 사목적 배려 본당은 원주민과 이주민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주민들이 본당 공동체에 더욱 잘 녹아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목을 펼치고 있다. 특히 본당 사무실 외에도 영어권, 스페인어권 신자를 위해 각각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각 사무실은 세례·견진·혼인성사 등의 업무를 비롯해, 각 언어권 공동체의 프로그램, 연중행사 등을 조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스페인어권 신자 사목에 함께하고 있는 이베트 산체스 수녀(성체 선교 클라라 수녀회)는 “본당이 언어권별로 사무실을 마련해 준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면서 “사무실은 성사에 관한 사무업무뿐 아니라 영어권이나 스페인어권 신자들이 언제든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민을 위한 공간의 나눔은 신자들을 위한 사무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본당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본당 교육관에서 ‘일본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일본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을 공감해서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 전문강사들을 섭외에 진행하는 ‘일본어 교실’에는 신자뿐 아니라 많은 비신자들도 참가하고 있다. 또한 본당은 예수회 일본관구와 함께 이주민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수회 일본관구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학교 ‘크리스토레이’는 가난한 이주민·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직장에 파견돼 일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학교다. ‘크리스토레이’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성일 신부(예수회, 조치학원 중등교육 이사)는 “일본어를 교육하는 곳은 많지만, 일본어교육만으로는 이주민 2세들의 교육에 부족함이 많다”면서 “아직 설립을 위한 준비단계지만 성 이냐시오본당과도 함께 설립 작업을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행일 2019-12-08 제3173호 13면

[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가톨릭신문‐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공동기획 ⑫ 일본사회와 그리스도교

일본의 가톨릭 신자수는 인구의 0.5%도 미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의 전래 역사에 비해 복음화가 더딘 상황이다. 이번 호에서는 예수회 일본관구 소속으로 조치대 신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구정모 신부의 기고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일본사회에서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10월 22일 일본에서는 새 국왕인 나루히토(德仁)의 즉위식이 있었다. 즉위식을 뉴스에서 보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천황은 일본의 전통 복장을 입고 신전 같은 곳에서 의식을 거행했다. 그런데 이 의식은 일본 고유 종교인 신토(神道)에서 대사제관의 임명식과 관계가 있다. 마치 가톨릭교회에서 새 신부나 새 주교가 서품을 받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왜 국왕의 즉위식에 사제서품식 같은 종교 예식이 혼합되어 있는지 의아해 하시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질문에는 지금까지의 일본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힌트가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이후 일본 문화가 어떻게 지금까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수용해 왔는지를 해석하는 열쇠가 일본의 천황제 그리고 그 제도의 종교적 문화적 기반이 되어온 신토와 깊게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천황 중심의 다신교 사회 일본 예수회 선교사들은 1560년 당시 일본의 수도인 교토에 진출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접한 당시의 천황 오오기마치(正親町)는 다이우스하라히라는 이름으로 윤지를 내리고 그리스도교를 추방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당시 천황은 정치적인 힘이 약했기 때문에 예수회를 추방할 수는 없었고 신부들은 쇼군(將軍) 오다 노부나가의 묵인 하에 교토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황이 내린 윤지문의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현대의 천황제까지 이어지는 일본 종교 사상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에는 아마테라스오오카미(天照大神)를 정점으로 하는 다신교의 신앙체계가 있다. 그 윤지문에는 천황은 최고신인 아마테라스오오카미의 대사제이며 동시에 신인(神人)이라는 이해가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신앙 체계는 자연히 일본의 그러한 신앙관에서 보면 이설일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교에서 믿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일본의 다신교 체계 하에 있는 신들에게는 적이 되는 셈이다.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박해를 받게 된다. 그런데 도요토미가 1587년에 발포한 바테렌 추방령에는 그리스도교 혹은 그 선교사들의 박해나 추방의 본질적 이유는 일본의 근본이 되는 신토적 종교 체계와는 맞지 않는다는 저항감이 깔려있었다. ■ 천황 중심의 선민의식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보다 더 철저하게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다. 1614년에 발포된 그의 추방령도 도요토미의 추방령과 같이 그리스도교는 일본의 종교 체계와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근본적으로 융화될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제공하는 것이 소위 일본식 신국사상이다. 신국사상은 시대에 따라 그 강조점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본이 타민족에 비해 우월하다는 사상으로 연결된다. 마치 이스라엘의 선민사상같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신앙 시스템과 다른 점은 인간으로서의 천황이 최고신인 아마테라스오오카미의 현현이라는 점과, 이로 인해 파생될 수밖에 없는 타자, 타민족,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과 우월성이다. 1868년 메이지(明治) 천황과 함께 시작된 메이지 시대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국가 체계가 가장 극명히 들어난 시대였다. 이 당시의 일본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 ‘대일본제국 헌법’인데 이 헌법에는 분명하게 천황이 신국인 일본을 통치하는 신인(神人)임이 표명되고 있다. 이 헌법을 기반으로 당시의 일본은 그리스도교 등 외세의 종교를 배타하는 한편,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무시무시한 전체주의적 시대가 시작된다. 2017년 10월 11일 성 베드로광장에서 열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반알현에 참가한 일본교회 신자들.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타종교에 배타적인 천황 중심의 신토문화를 이해하고 이러한 문화에 대면해 대화해야 한다. CNS 자료사진 ■ 마지못해 허용한 종교자유 많은 이들이 일본은 메이지 시대와 함께 외래 종교에도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일본이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1946년 11월에 새 헌법이 발포되기 전까지는 외래 종교의 신앙을 공식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 한 구체적 예가 무라카미 욘방쿠즈레(浦上四番崩れ) 사건이다. 욘방쿠즈레 사건의 전말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에도 말기에 일본은 서양의 열강들로부터 문호 개방의 압력을 받고 일본의 다섯 개 항구를 외국인들에게 개방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교 선교사들도 속속 일본에 입국하게 됐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나가사키와 요코하마 등에 진출했고, 1865년에는 나가사키의 우라카미에 천주당(천주교회)을 세웠다. 물론 이는 일본인들 위해서가 아니라 외국인들을 위한 성당이었다. 그런데 그 건물을 본 일본 사람들 중에는 그때까지 약 250년간 숨에서 신앙을 간직하여 왔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프치장 신부에게 다가가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했다. 1865년부터 1867년까지, 수천 명에 이르는 신자들이 나타났다. 이에 당황한 메이지 정부는 이들을 체포해서 고문이나 유형(流刑)을 보내는 등 신앙 포기를 강요했는데 많은 이들이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자들 중 약 3300명이 유형을 당하였는데 그 중 양 660명은 유형지에서 순교를 하게 된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탄압 조치에 대해 서방 각국의 대표들이 강력하게 항의했고 결국 메이지 정부는 1873년에 그리스도교 금지를 명하는 고찰(高札)을 철거했다. 이리하여 일본 사람들은 1614년부터 시작된 금령을 벗어나서 그리스도교를 공공연히 믿는 것이 묵인되게 됐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허용된 것이 아니라 묵인되었다는 것이다. 즉 일본 정부는 신토의 종교 체계와는 근본적으로 조화될 수 없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허용할 수는 없었고 외국 열강의 압력에 못 이겨서 마지못해 묵인했던 것이다. ■ 일본 복음화를 위한 과제 필자가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선교사로 살면서 자주 받는 질문은 “한국에는 그리스도교가 그렇게 발전했는데 일본에서는 왜 그리스도교가 발전하지 않는가”이다. 이 질문은 좀 더 면밀한 분석이나 해석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일본은 신토에 바탕을 둔 종교 시스템이 천황제도라고 하는 눈에 보이는 정치 시스템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일본은 과학 기술이 첨단으로 발전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일본의 정신세계는 고대나 중세의 제정일치(祭政一致) 사상이 아직도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일본의 천황제는 상징 천황제로 바뀌었지만 그 형태가 바뀌었을 뿐, 천황제를 주축으로 하는 일본사회의 정신 체제 혹은 그것을 근본에서 지탱하는 종교성은 일본인들의 내면에 아직도 깊게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적 복음화 과제는 천황제를 통해 유지되어 온 일본의 종교 문화 체제와 어떻게 그리스도교가 대면하고 대화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하겠다.

발행일 2019-11-24 제317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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