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몬토리오의 산 피에트로 템피에토

이형준
입력일 2025-06-04 09:28:38 수정일 2025-06-04 09:28:38 발행일 2025-06-08 제 344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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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원형 신전 영감받은 성 베드로 사도 순교 기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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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토리오의 산 피에트로 성당 안뜰 한가운데 위치한 '브라만테의 템피에토'.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시대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출처 위키미디어

로마의 자니콜로(Gianicolo) 언덕 남쪽 자락에서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Trastevere)에 못미처, ‘몬토리오의 산 피에트로 성당’(Chiesa di San Pietro in Montorio)이 있습니다. ‘몬토리오’는 자니콜로 언덕의 옛 이름으로 ‘몬테 아우레오’(Monte Aureo)에서 줄여진 말입니다. 이는 ‘황금 언덕’이란 뜻인데 이곳의 흙이 태양 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빛이 났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성당의 안뜰 한가운데에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브라만테의 템피에토’(Tempietto del Bramante)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템피에토(작은 신전)는 스페인의 가톨릭 왕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2세가 브라만테에게 의뢰한 건물입니다. 자니콜로 언덕은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 장소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브라만테는 이 성당을 순교를 기념하는 신전의 형태로 설계했습니다.

성당의 평면 계획은 크게 선형 평면(라틴 크로스)과 중앙집중형 평면(그릭 크로스)으로 구분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회는 처음 성당을 지을 때 당시의 종교 건축물이었던 신전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로마 제국의 공공건물인 바실리카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이는 종교의 자유화 이후로 신자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로서의 성당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대 교회 이후로 중세의 로마네스크 성당과 고딕 성당에서 주를 이루는 평면 형태는 바실리카양식의 선형 공간(라틴 크로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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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테의 템피에토의 기하학적 비율. 출처 위키미디어

이러한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 브루넬레스키에 의해서 계승되었습니다. 하지만 브루넬레스키는 초기 작품에서 이미 바실리카양식의 선형 공간에 중앙집중형 공간을 더하는 배치를 시도하였고, 후기에 와서는 중앙집중형 공간이 선형 공간을 압도하는 구성을 완성하였습니다. 이후로 알베르티를 거쳐 전성기에 이르면서 르네상스 건축의 형태는 선형 평면이 점점 줄어들고 중앙집중형 평면이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성당 건축이 고대 교회 당시의 바실리카 형태인 선형 평면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자유가 없었던 초기 교회 시기에 교회가 신앙의 모범으로 공경한 대상은 순교자들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심한 박해로 드러내놓고 많은 신자가 모일 수 없었으므로 성당의 규모는 작았고 무덤 주위에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중앙집중형 평면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기 전, 그리스도교 성당 건축의 시작은 많은 회중을 위한 바실리카 평면의 성당이 아니라 순교자를 기념하는 중앙집중형 성당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스페인의 왕들이 성 베드로가 십자가형을 받은 장소에 그의 순교를 기념하는 작은 성당을 원했을 때, 브라만테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평면의 형태는 중앙집중형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브라만테의 이 선택은 고대 로마의 고전을 로마 가톨릭교회 건축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템피에토는 중앙집중형 평면 형태인데, 일반적인 형태인 정사각형이 아닌 원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원형 평면의 구성 요소들은 동심원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중심에는 원형의 셀라(cella, 신전의 중앙에 있는 방으로 신상이 안치됨)가 있고 밖에는 16개의 페리스타일(peristyle, 셀라를 둘러싼 외부의 기둥 열) 원기둥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템피에토가 있는 안뜰의 윤곽은 원형이 아닌 정사각형이고 네 모퉁이에 삼엽형의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템피에토의 평면 크기는 입면의 크기와 기하학적인 비례를 이룹니다. 먼저 페리스타일의 원지름은 셀라의 높이와 같습니다. 곧 템피에토의 너비는 돔을 제외한 본체의 높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돔을 포함한 건물 전체의 높이는 페리스타일이 받치고 있는 엔태블러처(처마처럼 기둥을 받치는 수평 부재로 아키트레이브, 프리즈, 코니스로 구성)에서 정확히 이등분됩니다. 그리고 돔의 높이는 그것의 절반으로 건물 전체 높이의 4분의 1이 되고, 셀라의 높이는 건물 전체 높이의 4분의 3이 됩니다.

브라만테는 템피에토를 설계하면서 티볼리의 시빌 신전(Tempio della Sibilla)과 로마의 헤라클레스 빅터 신전(Tempio di Ercole Vincitore) 등 고대 로마의 신전과 비트루비우스의 원형 신전의 설명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르면 신전은 해당 신을 모시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신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른데, 티볼리의 시빌 신전처럼 여신을 모시는 신전은 코린트식 오더를 사용하고 로마의 헤라클레스 신전처럼 영웅적 남성 신을 모실 때는 도리스식 오더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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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테의 템피에토 설계에 영향을 준 로마의 헤라클레스 빅터 신전. 출처 위키미디어

따라서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의 순교를 기념하는 템피에토를 설계하면서 로마의 도리스식 오더에 해당하는 토스카나식 오더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만든 고대 로마의 토스카나식 원기둥에 대리석 기단과 주두를 추가하였습니다. 또한 도리스식 프리즈(엔태블러처에서 장식 문양이 들어간 부분)에서는 보통 제의 도구들이 장식으로 새겨지는데, 그는 템피에토의 프리즈에 그리스도교의 전례 도구를 새겨넣었습니다.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 토스카나식 오더를 사용하였고, 그럼으로써 템피에토는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품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브라만테는 고대 로마의 건축을 본보기로 르네상스 건축을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브라만테의 템피에토는 규모 면에서는 보잘것없는 건축물로 보이지만 그가 성 베드로 대성당 개축을 시작하였을 때 템피에토는 대성당 설계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1475~1554)와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는 브라만테의 템피에토가 고대 로마의 건축물들과 나란히 견줄만한 가치가 있다고 호평했고, 이후의 르네상스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라파엘로가 ‘성모 마리아의 결혼’(1504년)을 작업할 때 그 배경에 브라만테의 템피에토와 거의 유사한 성당을 그린 것은 전성기 르네상스에서 이 성당이 차지하는 위치를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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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