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살리자

[가정을 살리자] 어느 ‘기러기 아빠’의 죽음

얼마 전 딸과 아내를 캐나다로 보내고 혼자 지내온 40대 가장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았던 그는 한 달에 400여 만원씩 들어가는 자녀 교육비에 큰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자식교육이 얼마나 중요했길래 목숨까지 잃었을까? 「기러기 아빠」의 죽음은 사회의 급속한 변화물결에서 다양한 가정문제로 골머리를 썩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기러기 아빠의 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다양한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 사교육비의 부담은 가정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고 부부의 오랜 별거는 가정 해체의 위기를 조장한다. 사회생활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는 가정과 가정 내 교육이 조기유학 바람으로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조기유학 열풍의 어두운 그림자를 짚어본다. 은행 중견간부인 이형국(바오로.43)씨. 그는 1년 전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짜리 아들을 캐나다 밴쿠버로 보냈다. 이씨 자신이 아이들의 유학을 강력히 권유했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퇴근을 해도 딱히 할 일이 없어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고, 건강도 안 좋아졌다. 경제문제도 걱정이다. 6000만원대의 연봉은 대부분 캐나다로 송금하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용돈을 해결하고 있다.아이들과는 이메일로 대화하는 게 전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과연 아빠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할 지 이씨는 못내 걱정된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이씨는 가끔 외도의 유혹까지 느낀다고 말한다.정확히 정의된 바는 없지만 흔히 자녀를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남자 층을 「기러기 아빠」라고 부른다. 새끼들을 키우는 데 헌신적인 것으로 유명한 기러기에 비유한 것이다.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유학생 수는 17만 4천명이고 이중 10%인 1만 7천명은 고교생 이하의 어린 학생들로 주로 엄마와 함께 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2만 여명에 가까운 기러기 아빠가 이미 존재하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직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자녀들도 가정의 어엿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시기. 이들은 왜 기러기 아빠가 되기를 자청했을까?『누가 이 나이에 홀아비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앞 뒤 꽉꽉 막힌 듯한 한국교육에 질식해 버리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한정엽 이냐시오.42.서울 대치동본당)기러기 아빠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갈수록 확산되는 해외유학 붐과 한국의 공교육에 대한 실망, 그리고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외 경제개방으로 영어가 중요한 직업능력이 됐기 때문이다.하지만 더 나은 교육과 미래를 위해 택한 선택이 오히려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단절. 인터넷 무료전화나 이메일이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 유일한 통로이다 보니 가족간 진솔한 대화는 꿈도 꿀 수 없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며 사고방식이 바뀌고 외국문화를 흡수한 자녀들과 고국의 전통에 배인 가장의 문화차이의 골은 갈수록 깊어진다.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 7월 아내와 자녀를 캐나다로 유학 보낸 36세 남자는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 것을 알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이들 용돈이라도 벌고자 현지에서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여자는 그곳에서 만난 현지 거주 한인과 만나 한국의 남편과 이혼에까지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기러기 아빠에 이어 아내와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가장을 지칭하는 「펭귄 아빠」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다. 자녀들을 위한 무리한 투자가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손실로 되돌아온 것이다. 자녀들이 이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회색인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중학교 때 캐나다로 가 대학까지 졸업한 K씨는 한국에 돌아왔지만 영어 하나 잘 하는 것으로 취업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캐나다로 돌아갔지만 유색인종이 그곳 주류사회에 편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미국 LA로 간 그는 한인타운에서 식당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10여년 가까이 유학비용을 지원해 주며 자식의 성공을 바랐던 부모와는 연락을 끊은 지 오래다.그럼에도 한국교육이 정상화되고 영어에 대한 획기적인 교육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기러기 아빠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기러기 아빠, 가족이라는 선택은 순전히 그 가정의 문제이고 자녀에 대한 애착이 유별난 한국문화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를 문제화해서 물리적으로 막을 방법을 찾는 것은 어쩌면 모순일 수 있다.하지만 지나친 자식사랑과 학업중심의 교육을 생각하기에 앞서 가정공동체와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산 교육」의 소중함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가정사목 관계자들의 전언이다.교회 내 상담기관의 한 상담사는 『아이들의 교육에는 지식교육이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법과 나누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며 『특히 기러기 아빠가 되는 시점이 자식들에게는 가장의 존재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사춘기라는 점에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가정공동체를 이루고 그 공동체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고, 사회 속에서 적절히 융화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교회 문헌에서도 가정공동체의 구성과 가족관계의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정공동체」 43항은 「가정 공동체의 성원들 사이의 관계는 각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가치의 유일한 기반으로서 존중하고 육성할 뿐 아니라, 진심으로 받아들임, 만남과 대화, 이해를 따지지 않는 협조 자세, 관대한 봉사, 깊은 유대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곧 가정 내 성원들간의 진정하고 성숙한 일치를 육성하며 좀더 넓은 공동체관계를 위해서도 본보기와 자극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한편, 기러기 아빠들의 증가가 교회 사목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별거가족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사목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제기된다.부모 자녀간 갈등관리 워크숍, 부부 친밀감 향상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별거로 인한 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 또 홀로 남아있는 배우자를 위한 프로그램 등을 통해 가족이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가족애를 유지시킬 수 있는 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러기 아빠의 양산이 보다 근본적인 한국 내 교육제도의 개혁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면 그 현상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한국 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함께 나서서 고치려 노력하지 않고, 자신은 능력이 되니 그 시스템을 빠져 나와 개별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이기심에서 기러기 아빠 현상이 비롯된다」「가족끼리 떨어져 있는 불행과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기러기 가족들의 가족애를 왜 짓밟는가」자녀사랑을 위한 부모의 희생인지 아니면 이기심에서 나온 일종의 도피인지, 「기러기 아빠의 죽음」을 놓고 갑론을박의 논쟁이 네티즌 사이에서 한창이다. 하지만 그 희생과 투자가 가정 자체를 잃어버리는 더 큰 희생을 불러오지는 않을지 보다 근본적인 것부터 생각해 볼 때다.

발행일 2003-11-16 제2373호 16면

[가정을 살리자] 동거가 좋아?, 싱글이 좋아?

얼마 전 혼전동거와 속칭 싱글족들의 생활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혼전 동거 붐이 일고 있다. 동거를 알선해 주는 사이트 수가 늘어나고 동거를 희망하거나 계약동거자를 찾으려는 사람들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과거 독신자 하면 떠오르던 것은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이혼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속칭 싱글족들은 자신의 의지로 독신을 선택한다. 「네오 싱글족」이라는 신조어(新造語)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독신자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을 타깃으로 한 쇼핑몰과 원룸형 주택도 인기다.혼전동거나 독신 생활자의 증가, 이로 인한 가정공동체 해체의 우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분별한 혼전동거의 폐해 등은 오래 전부터 지적된 바 있다. 하지만 법적, 사회적, 윤리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사회 극소수의 문화로 여겨지던 혼전동거나 독신이 대중매체의 희화화로 사회 전면에 떠오른 것은 가정해체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그에 대해 고민하는 교회와 사회에 또 다른 걱정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좋아서 동거를 하는데….「결혼에 앞서 상대방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과정이며,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greatbush) 「남녀가 좋아 동거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현실에 충실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nubira00) 모 일간지 혼전동거에 관한 「온&오프 토론방」에서 혼전 동거에 찬성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발췌한 것이다. 대부분은 동거가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 전에 미리 살아보면서 적합한 배우자감인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인 주거수단이라고 말한다. 또 서로를 의무관계로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 당 수 천 만원에 이르는 결혼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현재 인터넷 상에서 동거정보를 제공하고 상대를 알선해 주는 동거 전문 사이트는 대략 10여개. 수 천여명의 회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거주위치와 조건, 결혼 전제 여부 등을 밝힌 뒤 소위 자신을 「찜」한 이성과의 만남을 거쳐 동거에 들어간다. 화려한 싱글이 더 좋아?올해 33세인 영화작가 I씨. 남자친구가 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 I씨는 결혼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남자친구와 말 그대로 「쿨」한 생활을 하는 게 일이나 자기 자신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일도 하고 남편 뒷바라지도 하고, 거기다 애까지 생기면…저는 또 다시 어머니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겠어요』속칭 싱글족들은 「결혼은 어떤 나이가 되면 반드시 해야한다」, 「남자는 경제력이, 여자는 외모가 뛰어나야 한다」, 「결혼은 부모의 뜻에 따라 해야한다」는 등의 편견에 도전한다. 최근 한 일간지와 여성포털 사이트가 20∼30대 여성 3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연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굳이 결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8.8%인 것으로 조사됐다.30대 미혼자 수 110만 명. 독신자를 대상으로 한 속칭 싱글산업의 규모가 연간 6조원이라는 것은 독신이 소수만의 생활패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하지만 혼전동거나 독신의 급속한 확산은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을 일으킬 우려가 많다. 사회적 책임 배제한 행위동거계약서에는 「계약동거 기간 동안 만남의 과정에서 서로가 맞지 않을 경우 합의하에 헤어질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동거가 양자간 합의와 양해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 해도 동거 주선 사이트에 게시된 「동거계약서」는 언제든 철회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혼인을 통해 부부의 하나됨과 사랑을 깨닫고 그 속에서 헌신하는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계약서에 쓰인 조항을 통해 설정되는 것이다.혼인은 사회적인 책임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부부는 그 문제를 풀어 가는 과정이나 방법상 다른 점 또는 좋은 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동거는 다르다.6개월간 애인과 동거하다 헤어진 L씨는 『책임감 없이 단순 합의에 의한 관계였기 때문에 만약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였지만 결국 이 문제로 헤어지게 됐다고 밝혔다.비뚤어진 성 의식으로 인해 생명 경시풍조가 만연될 우려도 있다. 실제로 모 동거사이트의 회원 가입란 「동거 사유」 선택 조항에는 「성 관계 파트너」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성 개방 풍조 속에서 동거는 성욕을 해소하는 분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독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통적인 결혼관과 부부의 가치관 자체를 배제한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성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독신자들에게 피임은 자신의 독신 생활을 온전히 지켜주는 하나의 도구다.많은 동거 예찬자들은 동거가 이혼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동거는 결코 이혼을 막을 수 있는 예방법이 아니다. 동거와 독신문화가 만연한 선진국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영국에서는 첫 동거의 평균 지속기간이 2년에 불과하다. 동거 커플 중 결혼하는 사람은 열 명 중 여섯, 이들 중 35%는 10년 안에 헤어진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이혼율 오히려 높아결혼은 「단순한 의례」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이 확산돼 사회문제로까지 번진 프랑스에서는 1972∼2000년까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택하는 이들의 수가 10배로 폭증했다. 반면 결혼식을 올리는 비율은 20% 줄었고, 이혼자의 숫자는 50% 늘었다.동거문화에 대한 공론화가 자칫 동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동거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허구일 뿐이지만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이미 동거 자체를 사회제도화 시켜놓았다는 것도 지적되고 있다. 혼인은 거룩한 하느님의 일이러한 동거와 독신 문화가 사회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대다수의 문화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 등 뉴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될 뿐 아니라 이러한 문화를 주도하는 계층 대다수가 젊은 층이라는 점, 그리고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교회는 「혼인의 성사성의 덕분으로, 부부는 결코 풀릴 수 없는 정도로 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호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자체에 대한 성사적 징표이고 진정한 표현입니다」(가정공동체 13항)라고 밝힌다. 혼인은 이 제도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의 분위기나 개인주의적 사고에 의해 결정되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더 이상 「인간의 일」이 아닌 「하느님의 일」 「거룩한 일」이라는 것이다.교회는 또 『혼인과 가정 안에서 복잡한 인간관계가 수립되며 그 관계를 통해서 각 사람은 「인간 가족」과 교회인 「하느님의 가족」안으로 들어온다』(가정공동체 15항)며 혼인과 그에 따른 가정공동체 형성이 교회공동체 건설에 중요함을 강조한다. 혼인제도를 부정하는 동거나 독신 등은 혼인제도를 부정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의 소명과 거룩한 성사를 거스르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동거는 누가 권유하거나 권장할 사항도 아니고 또 법으로 막을 사항도 아니다. 또 동거나 독신문화의 확산은 대중매체가 개입해 만들어 낸 한 순간의 거품일 수도 있다. 사실 사회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주류현상이라고 보기에는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전통적 결혼관이나 부부관이 여전히 확고하다. 하지만 동거와 독신의 삶에 익숙해진 현재의 동거?독신 문화 옹호 1세대의 입지가 점차 넓어지고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대중문화로 자리한다면 그 이후 우리교회가 겪어야 할 가정해체의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혼인생활을 잘 준비한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성공할 것입니다…교회는 많은 젊은이들이 당하는 어려움을 가능한 한 제거하기 위하여, 나아가서 성공적 혼인의 시작과 성숙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더욱 적합하고 더욱 집중적인 혼인 준비 과정을 촉진해야 합니다」(가정공동체 66항).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도적 권고로 펴낸 「가정공동체」는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교회의 사목적 노력이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함을 22년째 호소하고 있다.이혼율의 급증과 출산율의 감소 등 가정이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동거와 독신이 문화화되는 상황에서 가정을 형성하는 혼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가르치고 가정생활의 전(前)단계부터 점진적으로 함께 하는 교회의 사목적 노력이 절실하다.

발행일 2003-08-17 제2361호 16면

[가정을 살리자] (8) 고령화 사회 현실과 대안

서울 상계동에서 홀로 살고 있는 ㅈ할머니는 오늘도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새벽 4시께 눈을 떴다. 번화가가 있는 곳까지는 예순을 훌쩍 넘긴 할머니 걸음으로 3, 4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데다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로 번거로울 뿐 아니라 근래 들어 재활용품을 주우러 나오는 이들이 적잖이 늘었기 때문이다.그나마 요즘은 해가 일찍 뜨는 데다 날씨가 춥지 않아 다행이다. 겨울이면 1시간만 돌아다니다 와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기 때문이다.조그만 손수레로 모아온 재활용품은 한 달 단위로 고물상에 넘기게 된다. 그래봐야 좀체 20만원을 넘기기 힘든 수입이다.『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데 사는 날까지는 어떻게라도 살아야지요』이렇게 말하는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회한 가득한 표정이 스친다. 할머니도 가족이 없는 건 아니다. 외롭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족 생각이 나지 않는 게 아니지만 자신을 짐으로 여기는 자식들 앞에서 초라해지기 싫어 혼자 지낸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노인 현실과 문제점ㅈ할머니처럼 가족이 있어도 찾아갈 수 없고 힘든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지난 2000년에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7%를 넘어 유엔이 규정한 「고령화사회」에 돌입한 후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향해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상으로도 잘 나타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노인 단독세대 비율이 1978년에는 19.8% 수준이었으나 지난 1998년에는 53%로 두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의 조사결과에서도 자녀가 있으나 같이 살지 않는 노인이 53.1%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7월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이면 노인인구가 14.4%로 고령사회가 되고 2026년이면 20%로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선진국이 고령화사회 진입에서 고령사회가 되기까지 길게는 100여년, 짧아야 20여년 걸린 것에 비해 한국은 19년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초고령사회가 되는데는 7년밖에 안 걸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사회가 고령화되는데 비해 사회적 관심과 대비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직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노인복지예산이 전체예산의 0.35%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는 노인에 대한 우리나라 공적 부양체계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오늘날 일반화되고 있는 핵가족화 및 가족해체 문제와 결합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력을 비롯해 사회적 위치를 지니지 못한 노인들로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힘든 게 또 다른 현실이다. 이로 인해 노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문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현상도 노인문제의 다른 면이다. 노년에 배우자와 결별하고 새로운 연인을 찾는 「황혼 이혼」이 급증하는 것도 이런 문제 가운데 하나다. 영국의 경우 20년 이상의 결혼생활을 청산한 뒤 재혼하는 사례가 급증해 10년 전 18%에 불과했던 노인들의 재혼율이 현재 28%에 이르고 있다. 또 미국 연방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이혼한 노인의 수가 33%이상 늘어나는 등 비슷한 추세를 보여 황혼 이혼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와 함께 노인학대의 급증도 노인문제의 아픈 단면을 보여준다. 까리따스 노인학대상담센터가 전국 11개 노인상담전화를 통해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전화를 분석한 결과,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접수된 노인학대 신고는 모두 680건(중복 신고자 포함)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8건에 비해 200% 이상 증가했다. 신체적 학대의 경우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구타당하는 사례도 많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노인문제 전문가들은 고령화사회에 따라 노인문제가 가족문제 뿐 아니라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날 것에 대비해 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이들은 노인문제에 대한 효율적 접근을 위해 가정-지역사회-국가가 연계된 종합적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사회적 기반은 열악하다. 2001년 현재 135개 시설에 수용가능한 노인수는 약 1만명으로 전체노인인구의 0.35%에 불과한 실정이 이같은 현실을 대변해준다. 이는 4∼7%에 이르는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10∼20분의1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 국가 차원의 노인복지 수준은 교통수당 지급, 무료경로식당 운영, 경로당 난방비 지원 등 생계보호와 모이는 장소 제공 등 단순한 하드웨어적인 것에 머물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국가의 시각이 이렇다 보니 사회참여 기회 제공이나 여가선용 프로그램 확충 등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여가프로그램을 비롯해 사회복지?보건?의료 등에 대한 투자는 거의 종교계를 비롯한 민간에 맡겨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교회의 사목적 대안 독거노인의 증가와 이웃간 대화 단절의 심화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교회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필요성을 더해갈 것이다. 이런 현실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노인을 위한 각종 정책을 노인들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립하는 게 시급하다. 이와 함께 고령화 진행 속도에 맞춰 노인들의 사회적 측면은 물론 정신적 측면에 관심을 갖고 사목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인사목의 한 지표라 할 노인대학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대교구의 경우 100여개 본당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 독거노인 생활비 지원, 도시락 배달, 말벗되어주기 등 과거에 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인사목에 나서고 있으나 사회적 변화 속도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당을 비롯한 노인 주간보호센터, 양로원 등 시설 중심의 서비스 제공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재가노인 등 다양한 노인층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 다각도의 사목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아울러 노인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더 이상 노인문제를 개인이나 가족 차원의 문제로만 남겨 두지 말고 사회 전체가 책임지는 「공적 부양체계」가 다져질 수 있도록 대사회적인 역할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예방차원의 서비스를 위해 교회의 역할이 더 증대되고 있다. 준비 없이 노년을 맞은 노인세대의 고독감과 역할 상실에서 오는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힘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인들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지닐 수 있도록 노인들에 대한 정신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최성균 신부는 『노인사목의 핵심은 이들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관심』이라고 강조하고 『본당이나 지구에서 노인문제에 얼마만큼 관심과 의지를 갖느냐에 따라 노인문제 해결의 성패가 좌우된다』며 교회가 고령화사회에 대한 준비에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한다.따라서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사목에서 탈피해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지역 여건에 맞는 차별화된 노인사목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시대 교회에 주어진 또 하나의 시대적 소명이다. ■ 서울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최성균 신부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 최성균 신부『노인문제에 제대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노인대학이나 복지시설을 통한 복지측면의 접근에서 한발 더 나아가 교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종합적인 사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처음으로 지난 2001년부터 노인사목을 전담해오고 있는 서울대교구 노인사목 담당 최성균 신부는 노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노인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역설한다. 최신부는 독거노인 비율 등 노인을 중심으로 한 각종 통계가 예상외의 빠른 증가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문제를 등한시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노인문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모두가 맞을 문제라는 생각에서다.『노인문제에 투자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핵가족화와 가정해체 등의 사회문제와 얽히면서 노인문제가 갈수록 복잡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최신부는 전교회적 차원은 물론 각 본당에서도 현실에 맞는 노인사목 방안을 차근차근 마련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넓혀지는 사목의 영역은 그만큼 신앙의 열매를 거둬들일 하느님의 영토도 넓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현실을 일궈 나가는데 밑거름이 될 때입니다』최신부는 지난해 4월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자신이 맡고 있는 종로성당을 노인들에게 개방해 가정문제 상담을 비롯 이.미용 서비스, 무료 건강검진, 취미활동 공간 마련 등 10여가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교회가 지역 노인들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노인주간보호시설」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몸소 실천에 옮기며 노인사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노인문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입니다』노인 단독세대 비율이 급속도로 높아져 50%를 넘어선 현실, 최신부는 노인사목에 대한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발행일 2003-07-20 제2357호 13면

[가정을 살리자] (7) ‘고아 아닌 고아’ 버려지는 아이들

7살 윤수와 4살 윤정(가명)이 남매는 두달 전 서울 강북구의 한 보육시설에 맡겨졌다. 미싱일로 생계를 꾸려가던 엄마는 1년이 넘게 빚독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돈 벌면 데리러 올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아이들을 뒤로 했다. 신용대출을 받아 사업을 했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어머니와도 이혼하고 매일 술로 지내는 통에 아이들 양육은 관심 밖이다.결혼 후 다툼이 잦았던 최모(남.35) 여모(여.33)씨 부부는 여씨와 시부모 사이에 갈등까지 겹치자 합의이혼을 결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 두 사람은 서로 아이를 맡지 않겠다고 주장해 결국 법정까지 갔다. 「교육상 엄마가 맡는 것이 좋다」는 최씨의 의견과 「경제적 여건이 안된다」는 여씨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법원은 최씨를 양육자로 결정했지만 최씨는 수시로 아이를 여씨 집앞에 두고 가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부부간에 갈등이 생겨도 「아이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은 옛말이다. 이젠 가정의 해체를 막는 마지막 보루는 더이상 자녀가 아니다. 위의 사례는 아주 일반적일 정도로 심지어 법원의 양육자 결정을 무시한 채 아이를 보육원에 버리는 비정한 부모도 종종 발견된다.부모의 이혼, 경제적인 어려움, 가정폭력, 미혼모의 출산 등으로 버려지는 아이들. 「고아 아닌 고아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버려지는 아이들 즉 「요보호 아동 수」가 2002년말 집계 1만2000여명으로 IMF 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수양부모협회 및 각종 보육시설에는 매일같이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특히 한해에 10여만쌍이 이혼하는 현실에서 해마다 적어도 10여만명의 이혼가정 자녀들이 상처를 받고 또 그 일부는 버려진다. 하지만 실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정해체와 학대 등으로 버려져 가정위탁 등 보호를 필요로 하는 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다. 아이들이 버려졌다는 것은 결국 가정해체의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자녀를 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이혼. 또한 빈곤, 실직, 아동학대 등을 들 수 있다.서울시의 경우 43곳의 아동복지시설에 3500여명의 아동이 생활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80%이상이 부모나 친척 등 연고자가 있으면서도 버려진 아이들이다.2002년 한국아동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서울아동복지센터 이정희 소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동복지센터에 맡겨진 아동 중 부모가 사망한 경우는 전체의 3.2%에 불과하고 이혼과 부모가출 등의 사유는 70.6%를 차지했다. 시설보호 아동의 2/3 이상이 부모가 책임지지 않아 떠맡겨진 경우라는 것이다.또 최근 신용불량자 300만 시대라는 수치가 보여주듯이 카드빚에 쫓겨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이혼, 가출해 버려진 아동들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서울 시립아동복지센터 상담실장 이규동씨는 『카드빚 때문에 버림받고 시설배치를 기다리는 아동들이 센터 전체 보호 아동의 30%에 달한다』고 말한다.아이들이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사회의 편견에 시달리며 겪는 고통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피해 어린이들은 50% 이상이 우울증 등 정서장애, 학습장애 등에 시달리며 사회 적응을 못한다고 한다.실제 일시보호시설에 맡겨진 아동들의 70% 이상이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비롯해 설사 구토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와 헤어질 때의 충격으로 부모 자신의 이름 나이 등을 잊어버리는 사례도 발견된다. 더구나 보호아동의 90%가 초등학생 이하로 조사돼 인성이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받은 정서적 충격으로 인해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는데 어려움이 있다.고통받고 상처받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줄 것인가. 이 아이들이 신앙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특히 비뚤어진 인성 및 심성을 갖게 된 이들의 2세도 올바르게 자라날 수 없어 사회적 악순환은 지속된다.전문가들은 양육 포기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혼 시 가정법원에 자녀부양에 대한 협의사항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법적 장치도 보완돼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프랑스 호주 등지에서는 이혼 부담금 제도를 실시, 일정액의 부담금을 내고 이를 재원으로 국가가 위탁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도록 중재하고 있다.특히 가정위탁제도와 그룹홈 같은 대안가정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버려진 아동들이 일시보호소를 거쳐 어느 정도 안정되면 이후 가정위탁이나 그룹홈을 통해 최대한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도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가정위탁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친가정으로의 복귀다. 부모로부터 일탈된 아동들이 시설에 방치되거나 소년소녀가장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친부모에게 돌아갈 때까지 일정기간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그룹홈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가정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공동생활가정이다. 우리나라에 아동그룹홈은 전국 200여개가 있으나 18곳만이 인가받은 시설이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청소년 그룹홈의 경우 기존에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만이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일반 시민이나 사회단체가 나서기 어렵다. 따라서 다수의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교회가 적극 나설 수 있는 부분이다.또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학대받는 이들의 회복을 위한 쉼터 마련에도 투자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보호시설은 물론, 전문 상담기관 등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혼 후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상담 및 법률 의료 직업 등 다방면의 가족지원서비스를 비롯해 부모교육 자녀집단상담 치료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교회 내 신자들을 중심으로 소그룹 및 가족간의 자매결연, 양부모와 의남매 맺어주기 등도 권할 만한 사항이다.지난 2000년 성목요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계 성직자?신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는다. 어린이에 대한 배려, 즉 수태된 첫 순간부터 유아기와 아동기를 통해서 어린이들의 사정을 배려하는 일은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를 저울질할 수 있는 초보적이고 근본되는 시금석이 된다』며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했다.가정의 해체는 결국 「양육 사각지대의 아이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갈 곳은 많지 않다.무엇보다 가정해체를 막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교회 내에서는 가정이 건강하게 형성.유지되도록 혼인교리 및 부모교육 등에 적극적인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현실 여건상 교회 자체의 시설 등의 마련보다 정부시책과 연계해 지원을 추진하는 방향이 적극 고려돼야 한다. ■ 서울 동부아동상담소장 김보애 수녀 “결혼 전후 교육강화로 역할 책임의식 키워야” 김보애 수녀『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기본이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서울 동부아동상담소 소장 김보애 수녀(샬트르 성바오로회)는 『한번 해체된 가정은 다시 복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버려진 아이들이 치료 등을 받은 후에도 돌아갈 곳이 없어 심성 인성이 비뚤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결혼 전 젊은이들 대상 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기혼자들도 부모역할훈련 등을 자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김수녀는 『물질 중심 사고를 비롯해 실리주의 이기주의로 인해 모성과 부성을 넘어서 아이들을 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가정이 해체되고 결국 자녀들을 버리기까지 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그 저변에 경제적인 원인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경제권을동부아동상담소에 위탁된 아동들의 거의 100%가 어머니의 가출로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15년이 넘게 아동복지 실무를 담당해온 김수녀에 따르면 대부분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 등을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부갈등과 학대가 생겨나고 그 결과 이혼 별거 혹은 어머니의 가출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예전과 달리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오는 것이 아니라 가정해체로 인해 수용되는 아이들이 더욱 늘고 있다』고 말하는 김수녀는 『일차적으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사회 인프라 구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어머니의 가출을 예방하려면 경제문제를 우선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를 위해 김수녀는 정부의 지원금도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에게 직접 지급되도록 하는 등 「엄마 살리기 운동, 가출막기 운동」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권한다. 아울러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보호될 수 있는 모자 쉼터의 활성화 등으로 자녀를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정위탁 그룹홈 활성또한 김보애 수녀는 『버려진 아이들을 위해서는 가정위탁과 그룹홈 등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교회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신자들이 가정위탁이나 그룹홈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상처받은 아이들도 누구나 잘 크려는 의지를 보이며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이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을 해준다면 건강하고 성숙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발행일 2003-06-29 제2354호 11면

[가정을 살리자] (6) 급증하는 이혼

TV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현실에서 부부 사이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여주고 화해 조정하는 클리닉 과정을 통해 부부재발견 및 건강한 가정을 위한 공존의 잣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해마다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이혼한다. 혼인율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에서도 2위의 이혼율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50세 이상의 황혼 이혼율이 크게 늘고 있다. 4년차에서 14년차 이하의 부부 이혼율은 평균적으로 낮아진 반면 결혼 15~19년차 부부의 이혼율은 10년 전에 비해 7배나 상승했다. 이혼은 이제 내 가족, 이웃 등의 생활 깊숙이 번져 있다. 이제는 이혼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란보다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이혼을 잘 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게 옳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정도로 이혼은 흔한 일이 돼 버렸다. 예전과 달리 이혼한 사람은 가족과 사회에 「죄인」으로 치부돼 이혼사실을 감추며 고개숙이고 사는 경향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이혼에 대한 신자들의 생각조차도 관대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교구 2002년 신앙생활실태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5.8%가 사정에 따라 이혼이 가능하다고 응답, 이혼은 절대 안된다는 응답자 42.5%를 훨씬 넘어섰다.이혼율이 급증한 원인으로 우선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성과 자의식, 법적 평등성의 향상을 들 수 있다. 또한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가부장제 인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과 양성평등의 사회흐름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여성 사이에는 틈이 더욱 커지고 있다. 급증하는 황혼 이혼의 경우에는 경제적 문제가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이혼의 원인으로 성격차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이어 가족간 불화, 경제문제, 배우자 부정 등의 순이다. 하지만 그 성격차의 근원에는 무엇보다 부부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는 현실이 존재한다. 교회 내 상담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우리가 단순히 성격차로 치부하는 일들이 사실은 인식의 차이와 의견의 대립이 조정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실제 부부들은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수용하고 대화 등을 통해 의견을 조정하기 위한 노력, 이에 대한 실천방법을 거의 교육받지 못하고 있다. 한 가족심리치료 전문기관에서 수합한 이혼 사례로 서울에 거주하는 맞벌이 28세 동갑부부는 신혼여행을 다녀온지 정확히 10일만에 합의이혼을 했다. 신혼여행후 가족들의 선물을 사면서 의견이 맞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아내는 이렇게 사소한 금전지출까지 간섭하는 남자와는 평생 같이 살 수 없다고 주장했고, 남편도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여자와 살 수 없다고 대응했다. 도장 한번 「꾹」 찍으면 흔한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 금세 「남」이 되어버린다. 혼인이 무엇인지, 왜 가정을 이루는 지, 혼인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과 이해가 필요한지 크게 간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이혼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개신교회에서 운영하는 한 가정상담기관이 지난해 상담자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71%가 「이혼한 것을 후회한다」고 답했으며, 「이혼 후 행복합니까」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혼이라는 극단 앞에서는 이혼하는 당사자들과 자녀, 주변가족, 그들이 속한 공동체 모두가 안정을 잃고 상처를 입는다. 특히 자녀들에 관한 한 잘못없는 이혼은 없다. 그리스도인은 부부간 사랑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자녀출산과 교육을 위해 혼인한다.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일치만이 아니라 둘이 온전히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혼인은 영속적이며 인간의 힘으로 부부를 갈라놓을 수 없다. 독일이나 여타 선진국에서는 의무적인 혼인교육을 받아야 혼인신고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인」이라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교육을 지원하는 곳으로 가톨릭교회가 유일하다. 결혼 전에 「가나강좌」 혹은 「약혼자 주말」을 참여해야만 본당 사목자들은 혼인성사 집전을 허락한다. 기혼자들의 관계 향상을 위해서는 각 교구 및 기관단체별로 실시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자신과 상대방을 내적·외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대화하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MBTI(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 에니어그램, 부부대화법 등의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또한 결혼한 부부들의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돕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ME(Marriage Encounter)와 다양한 부부피정 등이 있다.그러나 혼인 전과 이혼과정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일고 있다. 교구별로 미혼젊은이들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돕는 「선택」(Choice)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있지만 혼인에 관한 직접적인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으로는 부족하다. 결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직접적인 프로그램으로는 ME의 전 단계인 약혼자 주말 정도가 있으며 이것도 서울대교구 외에는 간헐적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주일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결혼 전까지 교회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또 이혼 과정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도 교구나 각 기관단체에서 운영하는 상담 정도만이 지원되고 있다. 사제 및 수도자의 혼인생활에 관한 적극적인 의식부족과 재량의 차이로 적극 다가서는 배려가 골고루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교회 내에서 혼인 전?후 교육과 상담 등을 전담할 전문인력 양성에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김동춘 신부는 『본당 차원에서 이혼 전 예방교육과 후속프로그램, 상담 등이 적극 실시되는 것은 현 여건상 힘들다』고 지적하며 『일차적으로 예방 차원에서 기존 가정관련 사도직단체나 본당 사도직 안에서 실시하고 있는 가정성화 관련 프로그램들을 적극 활용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신자들의 의식전환과 구체적 노력도 시급히 요구된다. 우리는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수년 혹은 수십년의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가정과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한 노력과 투자는 너무 인색하다. 바쁘고 힘들지만 결단이 필요하다. 결혼했다고 해서 행복이 그냥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 ‘성격차 아니라 의견차’ 인식관계 개선한 강수길-오미호씨 부부 “사랑에도 노력 필요” 7년여 불화, ME 수료후 더욱 신뢰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은 강수길-오미호씨 부부.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은 강수길(그레고리오?60?서울 송파동본당)-오미호(엘리사벳?55)씨는 소문난 잉꼬부부다. 주변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남편이 부르는 아내 이름이 「사랑해」일 정도라고. 그러나 이들에게도 치열히 싸우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은 다른 가정에 비해 경제적 여유도 있었고, 고부갈등이나 종교적 대립도 없었다. 남편은 좋은 학벌에 언제나 성실, 친절한 소위 일등 신랑감이었고, 아내 또한 소위 말하는 학벌과 외모 집안 좋은 성격을 고루 갖췄다. 그러나 이들은 결혼 3개월부터 근 7년이 넘도록 부딪히면 싸웠다. 민주적인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란 오씨는 강씨와 생각이 틀릴 때면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했는데 강씨는 그럴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안에서 무조건 순종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강씨는 「아내는 무조건 남편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씨가 말할 때마다 『또 덤빈다』라는 말을 일관했으며, 「그따위로 할꺼야」 「돼먹지 않았어」 하는 말들로 고함을 질렀다. 오씨는 매일 이혼을 생각했지만 남들 보기에 창피하고 또 친정부모님께 죄송스러워 힘든 티를 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강씨는 아내의 직장생활도 막았으며, 혼자 외출도 못하게 하는 의처증 증세도 보였다. 그래도 강씨는 강씨대로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귀하기 때문에 자신이 희생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행동이 최고인 줄로만 알았다. 부부는 7년을 맹렬히 싸운 끝에 이혼서류를 꾸며 도장을 찍었다. 파경에 이른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계기는 ME(Ma rriage Encounter)주말 참가.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부부일치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인 ME를 다녀온 부부는 그곳에서 『아 저 사람이 성격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와 의견차이가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의견을 조정하고 인식을 포용하는 대화를 시작했다. 한가지 한가지 행동의 오해가 풀리고 신뢰가 싹텄다. 그 신뢰의 구심점이 신앙이 되자 더욱 탄탄해졌다. 강수길-오미호씨 부부는 ME주말 봉사자로 20여년간 봉사해오고 있다. 또 오씨는 순교자현양위원회 사무총장과 본당 총회장을 맡아 성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봉사에 나서는 남편의 가장 큰 후원자다. 부부는 지금도 두사람의 성격이 변하거나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한다. 단지 의견차와 인식의 차를 나누고 함께 가치판단을 하며 결정을 한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몸에 완전히 배었다고. 강씨가 어제 퇴근해보니 오씨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보였다. 피곤한 하루일과를 보내고 돌아왔지만 반기지 않는 아내를 보니 순간 화가 나려했지만 그는 『당신 왜 화내는 거야』라고 소리치는 대신 『엘리사벳, 오늘 안좋은 일이 있어나봐요』라고 부드럽게 위로하며 다가섰다.

발행일 2003-05-25 제2349호 13면

[가정을 살리자] (5) 가정붕괴 큰 원인 ‘가정폭력’

『또 시작했다. 오늘은 골프채를 휘두르며 고함을 지른다. 무조건 도망쳤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긴 죽기보다 싫었지만 아이들 걱정이 더 크다』『아들은 날마다 「빨리 죽지 않고 사람 고생시킨다」고 화를 냅니다. 며느리는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손주들도 못 안게 하고, 거실에도 나오지 못하게 해요』『내 아이 내가 직접 교육시키는데 왜 참견입니까? 애들은 맞으며 커요』기가 막힌다. 아내를 패고, 자식을 패고, 부모를 패고. 구박, 단순 폭력을 넘어서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가정 내 폭력에 있어서 신자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신자라는 이유로 폭력의 경우를 더욱 쉬쉬하고 악순환을 반복시키는 경우가 다수다. 가해자를 고발하면 그 피해자는 더 큰 죄인이 되는 사회 분위기다. 신자이기 때문에 교회를 통해 더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십자가」가 되는 것이 가정 내 폭력 피해다. 「가정을 살리자」 그 다섯 번째 순서로 가정폭력의 실태와 개선방안 등에 관해 짚어본다. 늘어만 가는 가정폭력가정폭력으로 인한 한가정의 붕괴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그 정도와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발표에 따르면 가정폭력사범 검거건수가 한해 1만5000여건을 넘어섰다. 상담소 등을 통해 표면화된 가정폭력 경우만도 한해 수만건에 이른다. 가정폭력의 85%이상은 아내폭력이며 나머지는 남편학대, 노인학대, 아동학대 순으로 집계되고 있다. 여성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며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노인학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3명 중 1명꼴로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학대 행위도 결손가정 뿐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공적 차원의 보호기능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의식전환 급선무폭력의 원인으로는 가정불화, 음주, 외도, 경제적 빈곤 등 다양한 외면적 이유가 나타난다. 그러나 외면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폭력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집은 다른 집 만큼은 심하지 않다』 『가족이니까…』 『자식들 때문에…』 『화가 나면 때릴 수도 있다』 『이혼하면 성당엔 나갈 수 없다』 등의 사고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심각하지 않다고 받아들이며 법적 처벌이나 정신적 치료를 받지 않으면 쉽게 고치지 못한다. 매맞는 여성들도 낮은 자존감, 두려움, 무기력, 종교적인 이유, 막연한 기대 등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힘없는 노인들과 아이들은 그저 당하고 참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분위기가 폭력 근절의 큰 걸림돌이다. 『맞을 짓을 했겠지』 『남의 부부 일인데…』 『아이들 교육은 부모 권한이니까…』라며 관심갖기를 거부한다. 경찰조차 신고를 해도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교회 안에서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자라는 이유로 폭력을 숨긴다. 성직?수도자, 혹은 평신도 지도층에 고민을 털어놓아도 인내와 희생을 우선시함으로써 교회가 가정폭력을 방임하고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경우까지 있다는 지적이다. 매맞는 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이라도 할라치면 교회의 시선은 그 원인과 당위성에 상관없이 냉담하다. 매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의 한 상담원은 『전화 문의를 하면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시설인지를 묻고 교회가 운영하는 곳이라면 찾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가톨릭여성의 전화 상담소 소장 이영자 수녀는 『당장 죽을 듯이 매맞는 아내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만 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남편이 술을 적게 먹거나, 분노를 다스리도록 조절하게 하거나 가족과 대화하는 등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가정 내 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외적 조건을 다스리는 올바른 가치관과 심성이 중요하다. 실제 가해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분노를 다스리는 등 행동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60% 이상이 폭력을 근절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법원의 지시로 대전가톨릭폭력상담소에서 상담위탁처분을 받은 J씨는 5개월간에 걸친 상담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상습적인 폭력, 폭언, 낭비벽 등으로 시달린 아내는 남편이 아무리 반성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J씨는 이와 별개로 꾸준한 상담과 교육을 받았다. 상담 종료 후에도 아내의 묵은 감정은 쉽게 씻겨지지 않아 별거는 계속되었지만 꾸준히 변화된 모습에 몇달 후 아내의 용서로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등은 강제성을 띠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려워 적극적인 법적 개입이 필수다. 따라서 먼저 폭력이 발발하지 않도록 조치돼야 하는 것은 두말 할 필요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인구 1000명 미만인 마을에 상담원이 8명, 매맞는 여성 및 아동을 위한 쉼터도 한개소 설치돼 있다. 특히 이웃끼리의 전화신고체제가 확실해 사건 발생 즉시 신고가 들어오고 상담원은 국가권한으로 적극 가정문제에 개입해 사태가 심각해지거나 되풀이되기 전에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 교회의 역할교회 내에서는 무엇보다 본당 사목자들의 적극적인 의식개선과 신자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복음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삶 만을 강조하는 것은 냉담을 가중시키는 큰 이유다. 특강이나 피정 등을 통해 가정문제 전문가를 초빙, 폭력의 부당함과 개선방안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교회 내 인력개발, 자원봉사자 양성, 전문심리상담소 등과 연계하는 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 교회 산하 한 보호시설은 전화 상담을 비롯해 평균 40여명의 상주 보호자를 돕는 인력이 단 한 명의 상담원으로 운영되는 등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다. 자원봉사에 관한 인식도 낮아 일반 신자들은 교육 후에도 상담 등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교구 단위로 상담 및 봉사자 교육을 실시하고 상담소와 쉼터를 지원, 전문 심리상담소 등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일반적인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유용할 것이다.현재 국내에는 성폭력 관련 기관을 제외하고 가정폭력 상담소 158개소, 가정폭력 피해자보호시설이 31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교회는 이중 30% 이상을 직접 운영하거나 위탁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여성폭력 위주이고, 노인과 아동을 위한 전문기관은 수도회가 운영하는 1개소 뿐이다. 대구대교구 가정사목담당 김용민 신부는 『가정의 중심인 부부의 의식화가 특히 중요하다』며 『희망과 이상만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지 않도록 현실적인 가정생활을 고려할 수 있는 가나강좌 내용을 비롯해 예비부부 프로그램, 부부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역 소공동체별로 실시, 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인 인식과 행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거짓 화목과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가려진 가정폭력문제는 곪아드는 빛 좋은 개살구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창원 여성의 집 조현순 관장 “인내와 희생만으론 폭력문제 근절 안돼” 조현순 관『피해자들이 성직자 등과 상담을 하면 대다수 더 참고 희생하고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옵니다. 그러는 사이에 피해자들은 서서히 죽어갑니다』10여년째 매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를 이끌고 있는 창원 여성의 집 조현순 관장은 폭력을 숨기고 인내와 희생을 내세우는 현실이 가정 내 폭력의 근절을 막는 큰 장애라고 지적했다. 특히 혼인무효사유가 충분하고 가해자의 계도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이를 고발하거나 이혼한 피해자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은 교회 안에서 더 강하다고. 조관장은 또 일반 신자들도 남에게는 가해자를 고발하고 피해자는 자립해야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떠들면서 정작 자신의 경우에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폭력을 숨기고 사는 모순된 경우가 허다하다고 밝혔다. 『잘못된 사고로 인해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 매맞는 이들의 근본적인 의식 개선을 위해 사목자의 의식화와 평신도 전문가 양성이 중요합니다』몇몇 성직.수도자의 힘으로는 여력이 부족, 평신도 상담 전문가와 자원봉사자의 수를 늘여야 신자생활에 더욱 근접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설 등에서 활동할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자원봉사나 물질적 후원에 관한 인식도 낮다고. 조관장은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교회 내 시설확충이나 신자교육과 아울러 교회 밖 전문시설과의 연계하는 포괄적인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조관장은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1366」 상담 전화의 경우도 무조건 이혼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상담부터 가해자처벌 및 교육, 자녀문제, 취업알선 등 다각적인 정보와 지원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도대체 매맞을 짓을 했다는 것을 누가 판단합니까? 왜 이웃이 매 맞는 것을 보고만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먼저 나서 폭력을 거부할 힘을 키우고 그 대안을 만들어가는데 힘을 모아야합니다』가정폭력 근절을 위해 앞장서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사람들은 우리 개개인임을 조관장은 강조했다.

발행일 2003-04-27 제2345호 10면

[가정을 살리자] (4) 남아선호, 그 부끄러운 자화상

「세 번 죽어야 사는 여자」.영화나 연극의 제목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현실을 이보다 잘 표현해주는 말이 있을까.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남아선호의 가치관은 현실에서 여성을 세 번 이상 죽이고 있는 셈이다.가장 먼저 여성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온갖 수단이 동원되는 과정에서 「작은 교회이며 성소(聖所)」라는 가정에서부터 살해위협을 당한다.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선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낙태라는 이름으로 지워지기 일쑤다. 근근히 두 번의 살해 위기를 넘기고 태어나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각종 불평등과 차별 속에서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수없이 세 번째 죽음으로 내몰린다.이렇듯 남아선호는 단순히 선택 가능한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이런 「남아선호」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관습을 바로잡기 위해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그러나 이런 관련 제도를 운영하는 주축이 남성이라는 점은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곧 성차별 문제가 단지 제도 하나를 만들었다고 쉽게 고쳐질 일이 아님을 대변해주고 있다.가정에서부터 비롯된 살해 위협에서 간신히 벗어난 여성들 앞에는 거의 예외없이 「사회적 살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타고난 미(美)에 의해 모든 것을 평가받아야 하고 어렵게 직장을 갖게 되더라도 입사하는 순간부터 정리해고 1순위로 자리매김하기 십상인 것이다.한 가정의 주인을 알리는 호주의 승계순서를 규정하고 있는 호주제도는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거나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낳고 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한국과 같은 호주제를 가진 나라는 없다. 한국에 호주제를 도입했던 일본마저도 지난 1947년 가족법 개혁으로 호주제를 폐지했다.여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상화(테오도라)씨는 『남아선호는 일제가 조선인들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채택한 호주제에서 비롯됐다』고 밝히고 『이미 도덕적이지 않다고 판결을 받은 호주제의 폐지문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을 낳는 사회적 구조는 비단 호주제뿐만이 아니다. 끝순, 말자, 후남, 말숙, 말순, 종말, 필남 등 주변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여성들의 이름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 있는 남아선호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아 출생 13.3% 많아여성계는 한해 평균 전체 여자 태아의 9%에 해당하는 3만명이 뱃속에서 죽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남아선호」로 인해 벌어지는 이런 집단살인으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만도 연간 320여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이미 지난 10년간(86∼95년) 남자아이들은 여자보다 평균 13.3% 많이 태어났다. 자연상태에서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출생성비가 106인데 비해 이 시기에 나타난 출생성비가 113에 이르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별다른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이런 출생성비의 불균형은 기가 세다고 알려진 해가 되면 더욱 파행적으로 치닫는다. 호랑이띠, 용띠, 말띠 해였던 86년, 88년, 90년 출생성비는 각각 111.7, 113.8, 116.6으로 평균 출생성비를 크게 넘어서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실을 개인의 선택이나 가족 문제로 치부해 보다 적극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지 않고 있는 정부나 교회의 인식에 있다.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사회구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자연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쉴 새없이 등장하고 있는 선별임신기술은 한국 사회에서 여자아이를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원천적 살해의 가능성마저 내포하고 있다.아들딸을 선택해서 낳을 수 있다는 한 임신요법의 한국 보급대행회사에 가입한 1300여명의 90%가 아들을 원했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남아선호 사상이 얼마나 뿌리 깊은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현재 추세대로 계속 성비가 파괴된다면 지금껏 상상치 못했던 심각한 사회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성범죄의 빈발은 물론이고 남자들간의 동성애와 조혼이나 만혼이 유행할 것이라는 게 사회학자들의 전망이다. 이로 인해 이혼율 또한 급속도로 증가해 가정이 파괴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변화를 위한 교회 노력지난 2001년 6월 발족한 호주제폐지천주교연대는 여성계의 최대 과제인 호주제 폐지운동에 교회가 본격적으로 나선 모습으로 기억될 만하다. 교회 내 여성단체를 비롯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천주교 사회운동네트워크 등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교육과 홍보를 통해 신자들 사이에서부터 남성중심 제도의 반생명성을 알리고 사회단체와 연대를 통해 사이버 호주제폐지운동, 민법개정청원 운동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이 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상담전화(02-747-2086)에 호주제로 인한 피해나 불만을 호소하는 신자들의 목소리가 적잖게 접수되고 있는 현실은 남아선호 사상이 교회 안에도 뿌리가 깊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단체 공동대표 하유설 신부(정의구현전국사제단 여성분과)는 『교회제도 안에도 차별적 요소가 적지 않음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모든 이들의 평등과 해방을 말씀하신 예수님의 정신을 올바로 펼치고자 한다면 교회 내부부터 돌아볼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 양성평등 실천 권오광씨 가족 남편이 빨래 청소 대화로 역할 분담 양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권오광-양은희씨 부부는 무엇보다 부부간의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무엇보다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양성평등을 실천하는 모범적인 가정으로 소문난 권오광(모이세.46.부천 삼정동본당)-양은희(마리아.43)씨 부부가 이름난 비결을 묻는 물음에 근근히 찾아낸 답변이다. 하느님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말에서 창조적 삶의 실마리를 찾아낸다는 게 이들 부부의 지론이다.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권씨와 서울 영등포에서 구립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양씨 부부는 가정에서뿐 아니라 각자의 일터에서도 양성평등을 실천하고 있는 터라, 더구나 그런 삶이 뿌리내린 지 오래라 특별한 노하우를 묻는 물음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겨우 찾아낸 별난 점이라야 결혼 초부터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나눠왔다는 것 등이다. 맞벌이 부부라 대화가 부족할 것이라는 염려는 이들 부부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출퇴근길은 둘만의 좋은 대화 공간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을 땐 첫째 지담(세실리아.14)이와 막내 민혁(이냐시오.7)이가 잠든 후 밤이 늦도록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모든 생활의 출발이 가정, 특히 부부간의 대화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빨래와 설거지부터 청소, 민혁이를 놀이방에 맡기고 데려오는 일은 아빠 권씨의 몫이다. 섬세한 여자의 손길이 굳이 필요치 않아 자신이 자청하고 나선 일이다. 물론 이들도 결혼 초기에 육아와 가사문제를 두고 「긴장관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나면 긴장이란 있을 수 없죠』이런 관계를 만드는데는 매리지 엔카운터(ME)나 「선택」 등 교회의 가정관련 프로그램도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 생활이 메마르다고 느낄 때 이런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귀뜸이다.「각자 계획=지담 : 하루 30분씩 공부하기. 엄마 : 운동 열심히 하기. 아빠 : 민혁이 맡기기…」냉장고에 붙어있는 「가족회의」 일지는 권씨 가족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한다. 「각자 계획」 「우리 가족의 계획」 「이번 달의 계획」 「서로의 바람」 순서로 기록된 일지는 권씨 가족의 내면까지 읽게 한다.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열린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다.이런 가족이기에 성에 따라 역할이 나눠지거나 누구를 더 선호한다거나 하는 분위기는 애초부터 읽히지 않는다.『올바른 공동체는 평등 개념을 깔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누구를 부리기 쉽도록 하는 지배조직에 불과합니다』이런 생각에서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삶을 일터에까지 확산시켜 평등부부 모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교회 안에도 남성선호의 사고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 깨닫고 함께 고쳐 나갈 때 더욱 아름다운 공동체로 거듭 날 것입니다』

발행일 2003-04-06 제2342호 12면

[새해특집 - 가정을 살리자] (3) 낙태 천국, 한국

『저기요,낙태하는데 얼마정도 들까요. 제발 답변해 주세요. 참고로 저는 10대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됐어요. 아직 2주정도 인데 학생이어서 아기를 낳지 못해요. 부모님께 말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요』 『벌써 딸이 둘입니다. 임신을 다시 했는데 또 딸인 것 같다고 하네요. 고민입니다』.한 낙태반대 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사연들에서는 아이를 키울 여건이 안돼서, 혼전 임신이어서, 남자아이를 낳으려고, 터울을 조절하느라 등등 10대부터 30~4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낙태에 관해 문의하려는 여성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었다. 매년 평균 150여만건으로 낙태 건수 세계 제1?2위를 다투며 낙태 발생국, 낙태 공화국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 사회 낙태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세계적으로 낙태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 태아 수는 연간 약 5500만명에서 7000만명으로 추정. 여기서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은 하루 평균 5600여명 , 시간당 230여명 태아가 뱃속에서 살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해 출생 인구 수 60여만 건의 1.5배 이상에 해당되는 수이다. 낙태는 피임도구?2001년 가족보건 복지협의회 조사에서 드러난 우리나라 기혼여성의 낙태 경험률은 약 39%. 세명중 한명이 낙태로 인한 아픔을 겪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전체 낙태 시술 30%를 차지하는 미혼 여성 사례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상상이상으로 불어난다.더욱 심각한 현실은 전체 낙태 당사자들 중에서 60% 정도가 10~20대 초반 청소년들이라는 것이다. 지난 94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해 150만건 임신 중절 중 30%에 해당하는 50만건이 10대 임신부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호서대 김혜원 교수가 남녀 고교생 2000여명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여학생 4명중 3명이 「임신 해결방안을 중절 수술」이라고 응답한 사례에서는 임신중절을 피임방법으로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교회내 신자들의 낙태에 대한 인식과 시술 경험도 크게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가 교구내 70개 본당 신자 1772명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10명중 4명이 낙태를 경험했으며 2번 이상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 60% 이상이었다. 입교전과 입교후 낙태 비율도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참고로 91년 수원교구에서 23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영세후 낙태한 신자가 41.9%에 달했다.또 92년의 한국 리서치 사회조사연구소 발표에 의하면 무작위 추출 조사 대상자(500명)중 낙태 경험자는 49%였는데 이중 가톨릭 신자가 60%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이같은 「낙태 불감증」의 원인은 도대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현대 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을 꼽는다. 가톨릭대 이동익 신부는 『현대 사회가 다원화, 산업화 되는 과정에서 기존 가치 질서는 무너지고 인간 역시 물질화 도구화되는 가운데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다분히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밝힌다.『사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변질돼 버렸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의식을 실종해 가고 있다』고 덧붙인 이신부는 『그 과정에서 인간의 성 역시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쾌락의 도구로 전락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했다.이외에 「낙태 행위에 대한 무지함」「남아선호사상」「모자보건법」「의료정책」등도 낙태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직감으로는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낙태가 어떤 성격의 행위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불법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 산부인과에서 성별을 알려주고 있는 상황에서 여아로 판명될 경우 낙태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73년 공표된 모자보건법 14, 15조에 드러난 낙태허용기준이 낙태를 일부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전면적으로 방임할 수 있는 독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내 관계자들은 「산모의 건강이 위태로운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는 규정이 모호해 의사들이 낙태를 남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의견을 덧붙이고 있는데 이 법안의 시행으로 비록 형법에는 낙태죄를 명시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낙태가 허용됐다. 산부인과의 낮은 의료수가도 문제점으로 제시되고 있다. 많은 병원들이 낙태 시술을 하지 않고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낙태를 조장하는 결과로 나타났다.한국천주교회에서 태아생명보호 인식을 사회에 주지시키기 위해 보급한 「태아의 발」배지.합병증 등 폐해 심각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2000 전국 출산력 조사」 결과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낙태에 대해 무심한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조사에서는 낙태 경험자의 59.4%가 「원하지 않는 임신」때문에 수술대에 올랐다고 답했는데 이는 낙태가 하나의 피임 도구로 이용되었음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사례다.또 첫 번째 임신일 때 낙태한 가장 큰 이유는 「혼전 임신」(42.3%) 그리고 「경제적 이유」(12.7%) 였고 두 번째 임신은 「터울 조절」(42.3%), 세 번째 임신 경우는 「자녀를 더 이상 원치 않았기 때문」(70.6%)에 낙태했다고 답했다.특히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10대들의 낙태 증가는 청소년층들의 성에 대한 인식은 급속히 개방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 할만한 교육이 뒤따르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피임 출산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무분별하게 임신을 하게 되고 낙태는 이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청소년 전문가들은 『10대 임신의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주위에 알릴 수 없고 피임에 무지해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보내다 임신말기에야 수술을 받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걱정했다. 이렇게 임신 말기에 낙태를 하게되면 임신 초기 낙태 보다 산모 건강에 미치는 충격이 커져서 불임이나 다른 산부인과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최근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인공 임신중절이 여성 건강에 미치는 영향」주제 발표를 한 한양대 박문일 교수는 『특히 결혼 전 낙태한 경우 결혼 후 까지 영향을 미쳐서 임신을 하더라도 습관성 자연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합병증도 생기는 등 여성 건강에 미치는 폐해가 크다』고 지적한바 있다.미혼 여성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 수술을 경험한 이들이 겪는 부작용과 후유증은 「자궁경부 무력증」「자궁 천공」「골반 염증성 질환」등이며 이외에 「자궁외 임신」 확률을 높이고 또한 적지 않은 「정서적 후유증」을 남긴다.자궁 경부 무력증은 무리하게 자궁 문을 열게 됨으로써 중간적 자궁 경부에 열상 출혈이 오고 그로 인해 자궁 경부가 무력해져 결국 다음 임신 때는 조산, 유산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자궁 천공은 낙태 시술 시 사용하는 자궁 소식자가 너무 깊게 삽입되거나, 태아의 산물을 긁어낼 때 쓰는 큐렛으로 자궁이 뚫어지는 것이다. 낙태한 여성의 10.9%가 겪고 있다는 골반 염증성 질환은 재발 가능성이 25%나 된다. 이는 낙태 때문에 자궁 나팔관 염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불임 혹은 자궁외 임신을 초래한다. 낙태한 여성들은 무엇보다 정서적 상처가 크다. 일부 여성들은 상실감을 느끼며 슬픔, 공허감, 가장된 행복감을 체험하며 성적 장애 혹은 관계 장애 분노감 등의 정서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임신에 대한 두려움 등 가족관계 면에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한 낙태반대 캠페인에 부모를 따라 참가한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이채롭다.혐오되는 죄악교회법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낙태를 하면 일반 살인죄와는 달리 자동적으로 파문 처벌을 받는다(교회법 제1398조). 낙태는 더욱 혐오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파문 처벌은 그 사면이 사도좌에 유보돼 있지 않다. 그런 이유로 고해사제는 고해 성사중 낙태죄와 그에 따른 파문 처벌을 함께 사면해 줄 수 있다. 사목자들은 이 경우 『다만 낙태죄로 인한 잠벌까지 용서받기 위해서는 상응한 보속과 선행의 보속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낙태 예방은 무엇보다 생명의 존엄성을 확고하게 일깨우는 교육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생명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방책으로서의 법개정도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초중고등학생들의 각 단계에 맞는 넓은 의미의 성교육 강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성윤리 확립 주체는 신자한국정신문화 연구원의 한 교수는 『임신 출산등 생식 보건 과정에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을 밝히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어린시절에 남성의 책임과 역할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낙태 예방과 생명문화 건설에 있어 특히 생명의 종교인 가톨릭의 역할은 더욱 중대하다 할 것이다. 신자들이 성윤리를 확립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함이 어느 때 보다 요청되고 있다.『낙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편이었고 이미 낙태한 신자들의 양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적지 않다』고 사목자들의 역할을 지적한 한 교구장은 『사목자가 이 문제에 침묵한다면 생명 경시 풍조는 더욱 더 신자들의 양심을 점령해 나갈것』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사목자들은 낙태 예방과 이미 낙태한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발행일 2003-02-09 제2334호 15면

[새해특집 - 가정을 살리자] (2) 제왕절개 선진국, 한국

「산모 세명중 한 명 꼴인 39.6%의 세계 최고 수준 제왕절개 분만율」최근 국민 건강보험 공단이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 실태다. 99년 43%까지 수치가 치솟았다가 2001년 38.6%로 내려가더니 다시 1%가 상승했다.세계 보건기구가 권고하는 5~15%를 훨씬 상회한 이같은 제왕절개 불만율은 이제 흡연율 교통사고율 고아수출 등과 함께 한국사회가 청산해야할 부끄러운 세계 1위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수술, 출산 천국이라는 미국도 한때 24%를 넘었으나 지금은 20%대로 낮춰진 상황이고 일본과 영국도 각각 15% 16%의 범주를 넘지 않고 있음을 볼 때 40%에 가까운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무언가 잘못돼 있는 것임을 생각케 한다.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체 분만건수의 15% 정도에 불과하던 제왕절개 분만율이 이렇게 치솟게 된 이유는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교회도 가나강좌 및 생명교육 등을 통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 바람직한 출산문화 정립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사진은 시가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1977년 7월1일 의료보험 시작, 1989년부터 본격적인 전국민 의료보험시대가 열리면서 의료사고 발생시 의사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이때부터 많은 산부인과들이 분만실을 폐쇄하고 외래 진찰과 산전관리만 해주는 병원으로 탈바꿈하는 사례도 늘었다. 의사들의 개인적 투자나 의학적 지식 기술 서비스 수준과 관계없이 같은 진료비를 받게 된 것 등이 그 원인이라고 꼽을 수 있다. 정상분만 보다 의료수가를 더 받을 수 있는 제왕절개 분만이 점점 늘어난 것도 이때부터라고 한 중견 산부인과 의사는 들려주고 있다.그러나 의료계 전문가들은 제왕절개 분만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특히 의사 입장에서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현 의료 제도」가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진료수익 문제를 떠나서 의사의 개인적인 숙련과 기술을 요하는 자연분만이 제왕절개 분만에 비해 여러 요건이 열악한 환경이고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시 의사의 책임이 높아질 수 있는 상황인 면에서 방어진료를 택하는 경우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조인 산부인과 최안나(안나?한강 본당) 원장은 『분만 과정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는데, 자연 분만을 시도하다 문제가 생기면 제왕 절개술을 하지 않은 것을 최선의 치료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며 분만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사회 분위기와 법원 판례가 의사들의 의학적 판단을 위축시키고 방어 진료를 하게 만든다』면서 『자연 분만 중에 의료 사고가 생기면 엄청난 배상을 의사 개인이나 병원이 해야 하는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수술을 결정해 버리는 풍조를 탓할 수만은 없다』 고 밝히고 있다산모들의 달라진 분만 사고도 제왕절개율을 높이는데 한몫하고 있다. 늦둥이 출산과 고령산모의 증가, 그리고 자녀수를 적게 두는 풍조가 자리잡으면서 분만 고통을 빨리 끝내고자 하는 욕심과 분만후 요실금이나 회음부가 잘못될 것을 염려하는 측면에서도 제왕절개 분만이 선호되고 있다는 것.제왕절개로 낳은 아기는 머리가 좋다거나 몸매가 망가지지 않는다는 미용적 가치를 내세운 편견, 또 사주날짜의 택일 등도 자연 분만을 기피하는 원인들이다. 필요한 경우는 10%불과제왕절개 분만이 필요한 경우는 전체 임산부 중 10% 정도에 해당된다. 태아의 위치가 바르지 않거나 전치 태반인 경우가 대표적인데 태아의 머리가 임산부 골반보다 큰 거대아일 경우 또는 태아가 진통 과정에서 가사 상태에 빠지는 상황이 그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태가 아닐 때 산모 건강상 자연분만은 제왕절개 분만에 비해 훨씬 이롭다. 그만큼 제왕절개 분만이 안고 있는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제왕절개의 경우 자연 분만 보다 평균 출혈양이 2배 이상 되고 창상 감염 및 복강 내 유착 등이 증가 하며 흡인성 폐렴, 기관지 경련, 저혈압 등 마취로 인한 합병증으로 산모를 위험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산모가 오랜 기간 입원을 하면서 항생제를 투여해야 하는 등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 하고 자연 분만보다 회복이 느려 모유 수유와 육아,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훨씬 더 어렵고 오래 걸린다. 분만 진료비도 두 배를 넘어서는 등 경제적 부담도 커진다. 제왕절개 분만은 아기에게도 여러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아기에 비해 소아천식에 걸릴 확률이 현저히 높다는 것과 함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나는 아이들이 성장 후 공격성을 가질 경우가 많다는 것. 또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가지게 되고 친근감도 정상 분만 때 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밝힌다. 그것은 엄마 배에 칼이 대어질 때 뱃속 아기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출산 외상 등이 더해진 결과로 연구되고 있다. 불필요한 제왕절개의 남발은 건강보험 재정을 고갈시키는 이유도 되고 있다. 2001년에만 2100억원이 제왕절개 분만비로 쓰였다는 통계가 나왔다. 잘못된 인식 없어져야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제왕 절개율을 낮추고 자연분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분만에 대한 가치가 새롭게 확립되고 제왕 절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없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안나 원장은 『분만에서 산모와 아기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지만 수술은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면서 『진통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거나 미용적인 가치가 대신할 수 없는 고귀한 일』이라고 말했다.덧붙여 최원장은 『분만 과정을 통해 양수에 있었던 아기는 좁은 산도를 나오면서 폐순환과 호흡 기능을 준비하며 세상에 나올 채비를 하는 만큼 엄마도 인내로써 아기와 함께 최선을 다해 분만을 시도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의사들을 방어진료로 몰고 가는 의료 제도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급선무다. 이를위해서는 의료분쟁 조정법의 조속한 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 의견이다. 행정적인 대책 외에 의료 인력에 대한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의료계나 병원계의 노력도 요청되고 있다. 편의주의적 발상에 기인교회 안에서도 가나강좌 및 생명교육등을 통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가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지속적인 캠페인 등 바람직한 출산문화 정립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제안되고 있다.한 윤리신학자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님에도 산고를 피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은 편의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면서 『아기가 태어나자 마자 엄마와의 접촉이 생략된 채 신생아실로 떠나며 겪는 부모와의 애착 결핍증 등은 어떻게 만회할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 제왕절개에 대한 오해들 -제왕절개는 아프지 않다제왕절개도 마취를 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분만 통증은 없지만 문제는 수술이 끝난후 진통제를 맞아야 하고 마취가 풀리고 의식이 돌아오면 분만 고통에 버금가는 아픔을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모유 수유도 쉽지 않다. -부부 관계에 좋다자연 분만을 하면 질이 넓어져 부부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요실금등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제왕절개를 한 경우도 만삭 임신 자체가 어느 정도의 골반 근육 이완을 초래하며, 자연 분만을 했어도 산후에 골반 강화 운동 등 적절한 치료를 통해 회음 손상을 회복 할 수 있다. -산후 회복이 빠르다 국민건강 보험공단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분만후 입원하는 기간은 자연 분만이 2.9일, 제왕절개 분만이 7.4일이다. 자연 분만을 한 산모는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기 때문에 골반이 빠르게 수축될 뿐 아니라 자기 치유 능력도 우수하다. 반면 제왕절개 분만을 한 산모는 마취와 진통제 복용으로 자기 치유능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치료기간이 길어질 수 밖 에 없다. -한번 하면 계속해야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제왕 절개 분만한 산모가 다시 아이를 낳을 때 90% 이상이 다시 제왕절개 분만을 하지만 미국에서는 25~50%가 자연 분만을 한다. 제왕절개 분만을 했던 산모가 자연 분만을 하면 위험하다고 하는 근거는 수술자리가 파열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게 될 확률은 0.5~1.8%에 불과하다 -가장 안전한 분만법이다태반이 아이의 머리보다 자궁 입구에 가까이 있는 경우거나 태아의 머리가 위쪽에 있는 둔위 임신인 경우 임산부와 태아 건강을 위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닌 건강한 임산부가 제왕절개를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올 수 있다.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출혈이나 장협착 자궁내막염 요로감염 등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고 제왕절개 한 산모는 자연 분만한 산모 보다 이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두 배나 높다고 보고돼 있다.

발행일 2003-01-12 제2331호 15면

[새해특집 - 가정을 살리자] (1) 선진국 추월한 저출산율

가정은 사회의 모체이며 인간의 기본 제도로 삶의 중심이다. 가정은 또한 인간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해 주는 근거이며 희망을 갖게 하는 원천이다. 교회도 「가정은 작은 교회이며 성소(聖所)」라고 가르친다. 건전한 사회발전의 근간인 가정의 중요성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 본지는 생명존엄과도 직결되는 가정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위해 심층 기획 「가정을 살리자」를 마련한다. 이 기획은 「출산문화」 「결혼문화」 「가정과 교육」 등 큰 주제로 범위를 나눠 각 분야별로 세부적인 진단을 시도할 예정이다. 첫번째로 「출산문화」중 저출산 문제를 다뤘다. 급속히 떨어지는 출산율, 낙태 만연, 이혼율 급증,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가치관 변화…. 물질만능,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결혼과 출산, 가정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을 가늠케 하는 징표들이다. 특히 선진국을 추월한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 야기를 비롯해 교회의 가르침에도 위배되고 있어 변변한 가정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던 정부와 적절한 사목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교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난 8월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출산율(여자 1인당 출생아 수)은 2000년 현재 1.42명으로 세계 평균 1.53명보다 낮은, 지속적인 저출산율 국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1963)」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1)」 「둘도 많다(1982)」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1987)」 「사랑 모아 하나 낳고 정성 모아 잘 키우자(1989)」 등의 표어를 내세우며 펼쳐왔던 정부의 지속적인 가족계획 덕택에 출산율이 60년에 6명에서 70년대에 4명, 지금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이같은 저출산 현상은 정부의 산아제한이나 출산장려정책과는 별도로 변화된 결혼관이나 자녀관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 후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91년 73.7%에서 2000년 58.1%로 급감했다. 반대로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의견은 97년 9.4%, 2000년 10%로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변화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응답한 여성들은 15~29세의 젊은 연령층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출산장려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예견해준다. 저출산의 요인들신세대들은 자녀를 노후를 위한 「보험」이나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지 않으며, 대를 이어야한다는 의식 역시 많이 엷어진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출산은 더 이상 부부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결혼과 출산을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이같은 가치관의 기저에는 사회병리현상처럼 퍼져있는 육아와 교육에 따른 끝없는 부담과 경쟁에 대한 두려움도 짙게 깔려있다. 무엇보다 양육과 출산에 대해 아무런 사회적 뒷받침 없이 여자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체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따라서 저출산의 원인을 요약하자면 ▲결혼을 장려하지 않는 분위기 ▲여성의 평균 초산 연령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 ▲가정생활과 직업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운 사회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예견되는 사회문제들일각에서는 저출산에 따른 출산장려정책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지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데 있다. 출산율이 2.1에서 1.4수준이 되는데 일본은 30년, 네덜란드는 29년 걸린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40년에는 일할 수 있는 인구(15∼64세)가 2800여만 명으로 현재보다 600만 명 가량 줄어든다. 그러나 65세 이상의 노인은 지금의 네 배로 늘어 둘이 일해서 노인 한 명을 먹여 살려야하고 전체 인구도 2022년을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저출산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는 경제활동 인구 감소, 노령화로 인한 노동생산성의 저하와 국력쇠퇴로까지 이어진다. 또 노동인구 보다 부양인구가 더 많아지고 국민연금에서도 납부자는 감소하는 반면 수령인구는 늘어나 연금 자체가 고갈될 위험까지 초래하고 있다. 교회, 보조성원리 강조교회는 부부가 인공피임, 불임수술, 더구나 태아를 죽이는 낙태에 의존하여 출산능력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 계획에 위배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 역시 오늘날 출산을 꺼리는 사회의 경향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자녀출산이 곧 가정과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교회는 가정정책과 관련하여 늘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하여왔다. 교황청은 지난 83년 발표한 「가정권리헌장」에서 『공권력은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가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공권력은 그릇된 방법으로 생명 전달에 통제를 가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생명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존중받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야한다. 국가가 자원을 보존하고 보호하듯이 인간출산을 더더욱 장려하고 보호하여야한다』(3조)고 밝혔다. 외국의 사례저출산을 막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제도를 마련, 자녀를 편안하게 키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이른바 「1.57」쇼크(출산율이 1.57로 떨어진것)라고 지칭되는 출산율 저하현상과 인구의 고령화에 직면하여 94년부터 여성근로자에 대한 출산 및 육아휴직을 유급화하는 등 모성보호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 바 있다. 또 독일의 경우는 부모의 정확한 수입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보육료를 부담케 하는 차등 보육료제, 보육교사의 교육을 일원화하는 방안, 보육위원회를 설립자와 운영자, 부모, 상담전문가, 학자로 구성하여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및 제도를 구상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6세 될 때까지 양육 수당을 지급하며 프랑스는 둘째 아이부터 육아비를 지급한다. 스웨덴은 아예 저출산대책위원회를 조직, 앞으로 닥칠 고령화 사회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오늘날 일부 북유럽 국가에서 마을 전체가 어린이를 돌보는 제도가 정착, 이혼율이 저하하면서 출산율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는 현상은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전국의 보육시설이 2만여개에 이르고 있지만 정작 각 가정의 상황에 맞는 서비스는 부족한 상황이다. 2세 미만의 영아나 장애아를 위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일하는 부모의 근무시간과 어린이집 운영시간이 맞지 않아 애를 먹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사목적 대안 시급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자치 시구마다 일정 수의 영아전담시설을 둘 것 ▲교사대 아동비율을 영아의 경우 1:3이나 1:2의 비율로 조정할 것 ▲장애보육시설 확대, 무상으로 지원할 것 ▲방과후 교육 전담시설 확충할 것 ▲직장 보육시설의 설치 의무조항을 폐지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실효성을 높일 것 ▲보육인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무엇보다 국가는 자녀의 수를 제한하거나 거꾸로 많이 낳으라는 식으로 출산을 강요하기보다는 맞벌이 부부와 저소득층을 위해 육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출산정책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신세대부부들은 일방적인 가족계획보다 한 아이라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제도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조직적인 대처방안 마련과 아울러 교회의 사목 대안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수원교구와 대전교구가 출산장려방안의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장학금과 생활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송영오 신부는 『셋째 자녀는 교회가 키워야한다』면서 『장학금을 비롯해 셋째 자녀 무상 교육 등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부터 실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지속적인 기도운동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저출산 현상은 생명경시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 「죽음의 문화」에서 비롯됐으며 죽음의 문화는 『아기를 원치 않는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며, 강제적 인구제한이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광범위하게 발달해왔다. 때문에 가정주일, 가족피정, 가정성화 세미나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교회는 보조적 역할을 다하는데 힘써야 한다. 생명문화 정착을 위한 실천적인 생명운동도 교회의 몫이다. 선진국에서 다양한 사회복지 서비스로 자녀를 편히 키울 수 있는 사회여건을 만들어주면서 국민이 자연스럽게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한국 내 출산장려문화 정착을 위해 교회가 앞서 선험적으로 유아원 탁아소를 운영하고, 다출산 가정에 대한 지원도 격려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을 고려해야 한다. 가정사목 관계자는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노령화에 대비, 가정중심의 사목 전환과 가정과 생명에 대한 종교·사회적 협력 증대, 반생명법 개정 및 폐지, 출산장려정책 등을 다각적으로 전개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발행일 2003-01-01 제2329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