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 몸 신학 교리] 욕망의 다양한 얼굴

이승훈
입력일 2025-07-09 09:50:32 수정일 2025-07-09 09:50:32 발행일 2025-07-13 제 345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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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따라 욕망의 방향 달라져
최종 목적 바라보며 정화 거쳐야

인간은 자신 앞에 나타난 다른 성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오직 순수한 사랑으로만 발전시킬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존재는 아니다. 성 자체가 매우 유동적(Liquid)이면서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내적 변화가 시선으로 드러나기에 먼저 자신 안에 움직이는 그 변화의 원인, 즉 욕망을 보아야 한다.

성(性)은 처음부터 방향성을 지녔지만 나의 자유와 지향에 의해 신호등처럼 바뀔 수 있다. 자신도 타자도 인격으로 바라봐야 하나 유혹에 의해 단지 성애적 필요를 만족하는 기능적인 역할로 격하시킬 수 있다. 달라지는 양방향의 변화는 바라보는 시선, 즉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마음을 비추는 이유다. 이러한 맥락을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체험과 구원 과업의 맥락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38과 2항)라고 한다.

사랑은 단순히 관능적 욕구가 아니라 인격에 대한 갈망으로 발전되고 경험되어 완성에 이르는 질서를 지녔으나, 욕망은 그 질서를 바꾼다. 부정적 얼굴은 인간이 욕망을 느끼는 대로 실행하여 하강으로 빠지는 상태이고, 긍정적 얼굴은 성 충동에 자신을 버려두지 않고 자신의 최종 목적에 비추어 충동을 조절하여 긍정적 힘으로 드러내는 모습이다.

욕망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마음에서 선택하게 되는 지향성이다. 감정은 파도처럼 우리를 높이 올라가게도 내려가게도 하지만, 지향성에 의해 움직인다면 감정의 강도에 자신을 버려두지 않고, 욕망이 최종 목적을 바라보고 정화를 거쳐 새로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오늘날 현대인은 삶에서 윤리가 크게 두 가지로 흔들리는 체험을 한다. 신앙과 행위를 분리시키고, 진리와 자유를 분리시켜 왜곡되게 한다. 마태오 복음 5장 27절과 28절은 바로 이 부분을 다시 보게 한다. 인간의 마음과 행위라는 윤리적인 부분을 각 상황마다 규칙을 적용하는 결의론적 방법에서 탈피해, 윤리 주체로서의 그리스도인을 양성해야 한다. 윤리의 기초적 문제를 해석하는 인식 체계를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계명을 다 지키고도 슬퍼하며 떠나간 ‘부자 청년’이 지니고 있던 마음의 진실이 여기에 있다.(마태 19,16-22) 예수께 어떤 사람이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하고 질문한다. 그의 질문에서 그가 최종 목적을 알고 있음이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17절)라며 ‘선한 일’로 물었는데, ‘선하신 분’ 즉 존재로 응답한다. 행위와 존재가 분리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젊은이가 지킨 율법 조항들은 외적인 것이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21절 참조) 주는 것으로 대변되는 사랑과 별개로 행하는 계명 준수는 ‘슬픔’을 가져온다. 예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이 슬픔은 ‘참행복 선언’에서 말하는 슬픔(“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과는 분명 달라 보인다.

회칙 「진리의 광채」는 무한을 향해 열려 있는 근본적 의지의 존재를 언급했던 프랑스의 철학자 블롱델(Blondel, Maurice Édouard, 1861~1949)과 동일한 관점에서 이 젊은이의 질문을 해석한다. 그것은 “삶의 충만한 의미”에 관한 것으로, “모든 결정과 행위의 핵심에 자리잡은 열망이요, 자유를 움직이는 은밀한 추구이며 내적 충동”의 발로이다.

“우리를 끌어당기며 부르는 절대선을 향한 간구”인 동시에, “인간 생명의 원천이자 목적인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의 반향”이다.(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64항은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소원을, 곧 우리 삶을 활기차게 하는 우리의 내적 지향을 새롭게 해 주신다”고 말한다.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 사랑’ 교리는 ‘몸에 관한’ 신학일 뿐 아니라 인간학과 신학의 새로운 체계를 호소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학적 방법론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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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김혜숙 막시마(그리스도의 왕직 재속 선교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