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르네상스 성당 스케치] 줄리아노 다 상갈로

이형준
입력일 2025-07-09 09:50:03 수정일 2025-07-09 09:50:03 발행일 2025-07-13 제 345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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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르네상스 건축의 정통성을 입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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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의 외관. 성당의 외관은 알베르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처음 맡은 도나토 브라만테(1444~1514)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피렌체 사람으로, 알베르티 이후 정체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전성기로 끌어올린 건축가가 있습니다. 피렌체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의 훌륭한 계승자로 알려진 그는 줄리아노 다 상갈로(Giuliano da Sangallo, 1445~1516)입니다. 상갈로 가문은 여러 건축가를 배출했는데, 줄리아노는 그중 가장 연장자입니다.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베키오(Antonio da Sangallo il Vecchio)가 그의 동생이고,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조바네(Antonio da Sangallo il Giovane)는 그의 조카입니다. 그리고 조각가인 프란체스코 다 상갈로(Francesco da Sangallo)는 그의 아들입니다.

줄리아노는 20대 초반에 5년간 로마에 머물면서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연구하고 그림으로 남겼는데, 이 자료들은 훗날 그의 건축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대 중반에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목조 조각가로 일하다가 요새(要塞) 공사를 시작으로 건축가로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메디치가의 전속 건축가가 되었으며, 로렌초의 의뢰로 프라토의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e Carceri a Prato, 1486~1495)을 설계하였고, 피렌체의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포조 임페리알레 요새(Fortezza di Poggio Imperiale, 1488~1511)의 설계도 맡았습니다. 이 시기에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머물렀는데, 이때 줄리아노는 라파엘로와 교류하며 건축 분야에서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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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의 외부 돔(왼쪽)과 파사드. 출처 위키미디어

1492년 로렌초의 사망과 함께 줄리아노는 밀라노에 가서 브라만테와 레오나르도를 만났고, 1495년에는 줄리아노 델라 로베레 추기경(훗날 율리오 2세 교황)의 건축물을 지으며 그의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1503년 율리오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어 그는 로마 교황청에서 일하였고, 그때 성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기획을 제안하였습니다. 그의 계획안은 브라만테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나중에 브라만테에게 뒤처지면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브라만테 사후 라파엘로와 함께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의 건축가로 활동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피렌체로 돌아와 151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줄리아노의 작품 중에 브루넬레스키의 마지막 작품인 산토 스피리토 성당의 성구보관실(제의실)이 있습니다. 1489년 건축이 시작된 이 성구보관실은 평면이 팔각형인 점에서 피렌체 대성당의 세례당을 닮았습니다. 내부는 피에트라 세레나(회색 사암으로 토스카나 지방의 석재료)로 된 12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있고, 드럼(돔을 받치는 수직 구조물)에는 삼각형의 페디먼트와 직사각형 창문이 있으며, 돔 하부의 반원 아치 부분에는 둥근 창이 있습니다. 줄리아노는 당대의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 그리고 브라만테로 이어지는 르네상스의 특징들 특히 중앙집중형 평면과 오더 양식을 종합하여 그의 작품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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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디 코시모 <줄리아노 다 상갈로의 초상>. 출처 위키미디어

줄리아노의 대표작은 프라토의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1484년 어떤 병든 아이가 프라토의 한 감옥(카르체리) 벽에 그려진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그림이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었고 곧 아이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 기적에 대한 대중 신심이 커지면서, 1485년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곳에 성당을 짓기로 결정하고 줄리아노에게 설계를 맡겼습니다.

성당의 평면은 르네상스 성당의 대표적인 형태인 그릭 크로스의 평면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줄리아노는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을 설계하면서 특히 알베르티가 만토바에 건축한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단 알베르티의 산 세바스티아노 성당은 출입구가 한 곳이고 세 팔에 앱스가 있는 반면에, 줄리아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은 제단이 있는 한 곳에만 앱스가 설계되어 있고 나머지 세 방향에 모두 출입구가 있으며, 크로싱을 중심으로 네 방향의 팔 길이가 짧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단독 출입구에서 생기는 선형성을 약화하고, 중앙 크로싱까지의 거리를 줄여서 중앙집중성을 높였습니다.

내부는 특히 브루넬레스키의 파치 경당과 산 로렌초 성당의 구 성구보관실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건물의 높이가 3층으로 확장된 것을 제외하면 두 건물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특히 3층 부에 펜던티브(돔 하부의 곡면 삼각형 부분)가 있고 그 위에 반구형 돔이 얹혀 있는 형태가 두 성당과 매우 흡사합니다. 출입구가 있는 세 면은 외부처럼 페디먼트가 있는 신전 파사드이고 제단이 있는 앱스 쪽은 반원 아치로 되어 있습니다.

외부는 알베르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처럼 토스카나의 로마네스크 형태에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장식을 취했습니다. 사각형은 흰색 대리석 둘레로 검은색 대리석의 띠가 둘러쳐 있는 형태인데, 이러한 대비는 추상적인 외관을 만들어냅니다. 

외관 본체의 구성은 1층과 2층이 같은 크기로 올라가면서 육면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지붕은 페디먼트로 마감되었습니다. 그 위로 12개의 오쿨루스가 있는 원통형 드럼과 돔이 있는데 브루넬레스키의 돔 지붕 형태입니다. 본체의 모서리 부분은 쌍기둥 형태의 벽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토스카나식이고 2층은 이오니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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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의 내부 돔. 출처 위키미디어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은 훗날 줄리아노가 로마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을 계획할 때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줄리아노의 성 베드로 대성당 계획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브라만테의 설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 평면이 미켈란젤로에 의해서 다시 취해진 것은 줄리아노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의 중심이 브라만테 이후로 피렌체에서 로마로 옮겨졌다고 하지만, 그런 흐름 안에서도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르네상스의 뿌리가 여전히 피렌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고, 산타 마리아 델레 카르체리 성당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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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