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하소서

12년, 우리 모두에게 당신을 알렸던 그때로부터 한 해 한 해를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오셨던 교종께서 하느님 집으로 돌아가셨다. 많은 이에게 참된 제자 됨의 삶을 보여주셨던, 그렇기에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었을 12년이었다. 참 많이도 닮았다. 3년 공생활을 하신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길과 만난 사람들은, 12년 종들의 종으로 살아오신 교종의 그것과 참으로 많이 닮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고 자신도 포기했던 병자들, 세상의 탐욕과 권력에 지배당해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던 이른바 마귀 들린 사람들,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이방인들, 집도 일자리도 빼앗겨 갈 곳 없는 버림받은 사람들, 더럽고 천하다고 홀대받는 사람들….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빼앗긴 사람들, 그래서 더 많이 돌보아주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내민 예수님의 손은 다시금 그들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기에 충분한 지지이며 연대였다. 작은 쪽배에 몸을 맡겨 지중해 바다를 건넌 사람들, 견뎌내지 못해 끝내 숨져간 동료와 자식들을 채 묻지도 못하고 앞길이 막막했던 이들을 즉위하자마자 찾아간 교종이었다. ‘이기는 편이 내 편’이라며 힘의 논리로 일관하는 강대국들의 얍삽한 처신에, ‘사람의 생명과 피조물의 안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앞세웠던 수많은 메시지였다. 그렇게 프란치스코 교종은 어떤 이들에게는 밉상이었다. ‘거리에서 노숙자가 죽어가는 것을 외면하는 언론이 주가의 변동에는 그처럼 예민한 뉴스로 다룬다’는 일침에, 배제하는 사회에 대한 비난에,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가난한 나라에 대한 책임이 그들을 침탈했던 강대국에 있다’는 선언에 얼마나 많은 정치인과 경제인이 흠칫했는지 모른다.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 거리로 나가야 한다’는 말씀에, ‘당신이 앉아 있는 교종의 자리부터 시작하여 교회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는 고언에,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지 말고,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이야기에 또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 곤혹스러웠는지 모른다. 끊임없이 편을 가르는 와중에, ‘고통받는 이들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엄중한 가르침은 길 위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이에게 이정표였다. 그러니 분위기 파악하지 못하는 밉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 등 당대의 지배층에 밉상이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밉상스러웠던 그 말과 행위가, 어떤 이들 특히 삶의 나날이 고통으로 이어진 이들에게는 젖과 같은 고소함이요, 꿀과 같은 달콤함이었다. 그로써 고통스러운 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그 위로로 꺾인 무릎을 펼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순례자들에게는 내비게이션이었고, 젊은이들에게는 빼앗겼던 희망이었으며, 이주민들에게는 안식처가 될 수 있었다.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신 분께 ‘시대의 성인’, ‘가난한 이의 성자’ 등 수많은 찬양과 숭배에 가까운 서술이 부여된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이분을 크게 현양하고 영웅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저 옆집에 사는 맘 좋은 아저씨로 남기고 싶다. 우리와는 다른 부류의 존재라고 여기며 격벽을 세울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가 그와 같이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로 삼을 것 같아서 오히려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두 가지 말씀,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하소서”와 “옆집의 성인이 되어주십시오”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제 각 세대의 언어로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시는 분께 인사드리고 싶다. 안녕, 호르헤 할아버지! 평안하세요, 프란치스코 아저씨! 잘 가시게! 곧 봄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우리 모두의 친구! 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

올인(all in)과 해노비듣

좀 과분한 비유지만, 사도 바오로의 회심과 비슷한 인생전환은 내게도 있었다. 1980년대 한국수묵운동의 일원으로 서울 인사동을 누비고 다니던 먹 냄새 절은 화공이 지금은 한가한 산골에서 세상의 흐름과 비껴나 있으니, 그 먼 간극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일종의 해명은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이리라. 그게 지금의 내 좌표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삼십 대 중반, NGO 단체의 국제회의가 있어서 한 달 정도 유럽에 갔다. 여정 중, 독일의 ‘비스 순례 성당’(바이에른 지방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모셔졌던 눈물 흘리는 목각 예수성상과의 대면은 나를 단숨에 교회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때 마주한 예수님의 눈물이 내 감각증폭기에 윤활유가 되었고, 현재도 멎지 않는 눈물에서 알지 못할 주님의 고통이 내 마음으로 전해져 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신비로운 천장화와 조각품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형상이 된 건축의 유려한 선들을 보며, 내게 주신 미술적 탈렌트로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그 일방적 약속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내 안의 예수를 따라나섰던 그 사건은 글자 그대로 올인(all in)이었다. 처자식이 있는 몸이면서도 성경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고민은 무시한 채, 교회라는 광야(?)로 나섰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데, 잘 근무하던 교사직에도 사표를 썼다. 그와 동시에 뛰어든 성당신축 공사장에서 전례미술과 관련된 미술장식을 힘닿는 데까지 작업했다. 하느님이 나를 끝까지 책임져 주시겠지,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볼 수야 없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성체조배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나 켜켜이 얽힌 인간관계와 그에 맞선 나의 열정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었고, 나를 좌절의 벼랑으로 몰았다. 혼자의 외로움은 참으로 깊었고, 주님과의 동행은 날마다 서러웠다. 마음도 몸도 병들었고 살림살이도 거덜 났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 풀잎에 매달렸던 한 방울의 이슬이 구르고 굴러 바다에 이르듯이, 나는 길을 거슬러 산촌에다 터를 잡았다. 선행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고, 고독한 자기정화마저도 단죄하려고 덤비는 세상을 살다 보니, 모났던 고집도 조약돌만큼 닳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산마을에서는 누군가가 허세를 부리면 당장 들통이 난다. ‘생태계는 확장 없는 생존이 지속되는 곳’이라고 했던 백남준 화백의 말처럼, 원형적 생존본능들이 매 순간 올인하며 서로의 높낮이를 조율하는 곳이다. 이사를 오던 날, 울타리에는 새들이 수시로 다녀갔고, 소나기가 내리자, 제비들이 전깃줄에 어깨를 붙이고 모였다. 속 깃털이 젖지 않게 목을 움츠려 교회의 첨탑 모양처럼 주둥이를 하늘로 향하고 눈을 감는다.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새들을 보라’는 성경의 비유가 바로 연상되었다. 그 자체로 그림이고 노래였다.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해가 뜨면 노래하고 비가 오면 듣기를 하는구나! 그래서 작업장의 당호를 ‘해노비듣’으로 지었다. 하루를 닫으며, 애비의 고민을 아는 자식처럼, 하느님의 고민을 넘겨 짚는 아들이고 싶어 그 현판을 올려다본다. 글 _ 하삼두 스테파노(명상그림 작가)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2면

화무십일홍

예전에 살던 시골집 주차장에 전 주인이 심어놓은 아름다운 배롱나무가 있었다. 거의 30년은 더 넘을 수령을 자랑하는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릴 만큼 꽃이 오래가는 나무이다. 배롱나무는 꽃들이 몸살을 하는 장마 기간에 꽃을 피우는 몇 안 되는 귀한 나무였다. 이층 창에서 바라보면 흰 레이스 커튼 사이로 어리는 창밖의 진분홍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꽃들이 모두 잠시 쉬어가는 장마철 무렵 배롱나무는 꽃을 피웠다. 그리고 정말 거의 거짓말 보태서 백 일 동안 피어 있었다. 처음에는 고맙고 기뻤다. 그런데 해가 가고 날이 갈수록 나는 그 진홍빛 꽃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래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진하디진한 진홍빛도 내 싫증에 한몫을 더했다. 연하고 하얀 꽃이었다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꽃을 좋아하는 내가 종국에는 차 보닛 위로 떨어져 내린 꽃잎들을 쓸어내리며 ‘오래오래 피는 꽃이라는 게 과연 좋은 것일까’ 회의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곳에 집을 짓고, 정원을 마련하고, 나는 백 가지 꽃을 심었다. 아름다웠다. 아침마다 정원에 나가 물을 주며 살펴보노라면 하느님에 대한 찬미가 절로 나왔다. 이 빛깔은 어디서 왔을까, 이 연하디연한 고운 꽃잎은 어떻게 저 죽음 같은 딱딱함을 이기고 여기로 나왔을까 싶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 집에 온갖 꽃들이 다 있는데 남쪽 지방의 명물인 배롱나무가 없네. 현관 옆에 배롱나무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하고. 나는 손을 내젓는다. 의아한 사람들에게 나는 말한다. “겪어보세요! 꽃이 백일이나 빨갛게 피어 있는 것을요.” 올해는 우리 집 정원에 30그루나 있는 키가 큰 동백들이 다른 어떤 해보다 꽃을 잘 피워 나는 아직도 눈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역시 꽃은 꽃이라, 한 나무의 꽃이 열흘이 가지 않는다. 정원을 가꾼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나로서 말하자면, 꽃이야말로 딱 열흘이 적당한 수명이다. 그러므로 내가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세간의 사람들이 영화의 허무함을 일컫는 데 쓰이는 것과는 달리 하느님의 멋진 설계를 일컫는 단어이다.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안부를 주고받다가 나는 말하곤 했다. “우리 집에 동백 피었어. 우리 집에 수선화 피었어. 우리 집에 사과꽃 피었어. 우리 집에 금목서 꽃 피었어. 보러와.” 그들은 대답한다. “아 보고 싶다. 가고 싶다.” 그러나 실제로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바쁘기 때문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벚꽃잎이 일제히 떨어져 꽃비가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찬란한 봄날도 일 년의 딱 하루, 길면 이틀이다. 꽃보다 고운 낙엽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며 아름다운 한해의 마감을 알리는 멋진 가을날도 일 년 중 하루, 길어야 이틀이다. 해마다 꽃이 질 때면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 꽃들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하고. 당신은 일생에 몇 번이나 일제히 지는 꽃잎들과 일제히 지는 낙엽 비를 보았나? 진저리가 날 정도로 씽씽하고 반들거리고 흠 하나 없는 것들은 다 가짜이다. 진짜들은 가끔 시들고, 가끔 흠 있고, 그리고 허망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선종 소식 앞에 눈물을 흘리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멀리서나마 흠모한 교황님이셨는데, 한 번은 꼭 뵙고 싶었는데, 너무 빠르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러나 나는 이 허망함을 찬양한다. 가고 있는 이 봄날을. 그리하여 내 영혼에 말해본다. 이 허망함을 누리자. 있을 때 보고 사랑하자, 카르페 디엠!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2면

천사의 발자취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뭐하는 사람이야?” 4월 23일, 프란치스코 교황 분향소가 마련됐던 수원교구 주교좌정자동성당 앞에는 조문을 기다리는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엄마 손을 잡고 온 한 아이는 긴 줄을 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마가 “세상을 지키려고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 같은 분”이라고 설명하자 아이는 “천사가 하늘나라로 돌아갔으면 이제 세상은 누가 지켜?”라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은 그야말로 천사 같았다. 가난과 평화를 상징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라 정한 교황. 그의 삶은 늘 소박했고 그의 옆에는 집을 잃은 이주민과 노숙자,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함께했다. 또한 교황은 복음적 가치를 선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2016년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제정했고, 이주민과 난민의 권리 옹호를 위해 노력했으며, 2015년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종교계를 넘어 전 세계가 생태위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2014년 방한 때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곳은 고통받는 이들이었다. 당시 교황은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유가족과 한국의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감쌌고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언장의 끝에 “제 삶의 마지막에 맞이하는 고통을 온 누리의 평화와 만민의 형제애를 위하여 주님께 봉헌한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까지 세상의 평화와 형제애를 위해 기도했던 프란치스코 교황. 천사는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지만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고자 발자취를 남겼다.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3면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를 바치자

가난한 이들을 그렇게 사랑했던, 그래서 우리가 모두 참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의 소박한 모습 그대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평생 오직 주님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를 슬픔으로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생전에 보여준 삶의 모범과 고귀한 뜻을 이어가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이제 곧 추기경단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뒤를 이어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끌 새 교황을 선출한다. 새 교황의 선출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해 다수결로 지도자를 뽑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의 손으로 뽑지만 성령의 이끄심과 하느님의 섭리가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한다. 그래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나보낸 슬픔을 갈무리하면서 이제 보편교회와 인류 전체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선종하신 교황을 기리고 그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동시에 가톨릭교회를 이끌어갈 착한 목자를 주님께서 보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수많은 주님의 사업을 후임 교황이 다시금 훌륭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기도의 연대로 지지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 교회를 넘어 모든 인류와 세상을 위한 희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책임 있는 이에게 그 무게대로 책임을 묻는 일과 새 지도자를 뽑는 일은 모두 중요하다. 기도의 힘을 믿고 교회와 세상, 나라와 국민을 위한 열렬한 기도를 바치자.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3면

제28회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작을 기리며

올해로 28회를 맞는 한국가톨릭문학상 수상작이 결정됐다. ‘산문’ 부문에는 소설가 윤흥길의 소설 「문신」이, ‘운문’ 부문에는 시인 김윤희(이레네)의 시집 「핵에는 책으로」가 선정됐다. 선정된 작품과 작가에게 축하 인사를 전한다. 소설 「문신」은 심사위원단으로부터 ‘한국 소설사는 어쩌면 윤흥길의 「문신」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다. 더 이상 「문신」 같은 소설이 나오기는 어려울 터이기 때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또한 시집 「핵에는 책으로」는 ‘원로시인 김윤희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힘찬 결기와 열정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하고 우리은행이 후원하는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작가를 대상으로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와 진리를 담아낸 작품을 발굴하고 있다. 인간 존엄성과 구원, 사랑과 평화 등의 복음적 가치를 담은 작품 모두가 수상 후보들이다. 문학 작품이 담고 있는 불변의 가치들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가톨릭문학상의 가치는 단순히 우수한 문학 작품을 뽑아 상을 준다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 삶의 소중한 가치들과 하느님의 구원 섭리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 그 의미를 두고 있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은 앞으로도 이러한 소명 의식을 바탕으로 문학 작품을 통해 복음의 가치를 알리는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이 그 이상과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를 요청한다.

발행일 2025-05-04 제3440호 23면

또 하나의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앞에서

예수님의 활동은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엾은 마음’과 특정 대상에게 내미는 손의 촉감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되어 간다. 차갑고, 딱딱하고, 마음 없는 기계와 접촉하며 살아야 하는 현대인과 미래 세대에게, 타인에게 공감하는 연민과 손길이 닿는 접촉의 힘이 과연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산업혁명 이후 200년, 이제는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삶의 여러 부분이 큰 변혁의 문턱을 넘었다.(교황청 AI 연구 그룹 저 「인공지능과 만남」 참조) 인간의 성장은 한계를 모른다. 이 과정은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연상케 한다.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창세 11,3) 과연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잠시 멈춰 단지 외적 발전이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인지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고귀하고 탁월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위대한 목표와 가치’에 대한 인본주의적 이해가 간과된다면(「찬미 받으소서」 181항 참조) 아무리 훌륭한 혁명이라도 실패할 수 있다. 대학에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영역을 탐구하는 인문 사회학 부문의 학과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질적인 안정과 풍요, 그리고 육체적인 아름다움이나 안녕을 추구하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으니, 물결처럼 밀려와 우리 앞에 우뚝 선 4차 산업혁명, 인간처럼 작동하는 AI 로봇을 과연 어떤 철학적 가치 아래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인공지능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 조절이 어려운 단계로 진입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에 가변성(Variability)과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두 가지 쟁점은 직시해야 할 부분이다. 벌써 몇 년 전에 학생들과 TED talk(학술 강연 비디오) 시간을 통해 만난 인간형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 UN에서 자신을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인공신경망을 통해 복잡한 학습 과정을 거쳐 예술 분야도 학습해 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 경악한 적이 있다. 인공지능들 사이에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그들을 생산한 인간의 상상을 넘어 다른 존재로 변신할 우려 또한 짐작해야 할 것이다. 무한하신 하느님의 창조에 기반을 둔 우주의 작은 행성 지구에서는 늘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사태」는 18세기 중반에서부터 19세기 초반에 기술의 혁신과 새로운 제조 공정으로 전환되어 일어난 사회·경제 등의 큰 변화를 겪으며 레오 13세 교황(1810~1903)이 1891년 발표한 가톨릭교회 최초의 사회회칙이자 노동헌장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던 시대에서 욕망의 부추김으로 자연을 착취하여 성장을 추구하며 이루어지는 산업화는 우리에게 늘 인간존재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한다.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의 소유 자체가 ‘권력’에 중요한 접근 경로가 되는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의 사회구조에서는 지식과 기술을 소유한 자가 사회를 관리하거나 운영·조작할 수 있다.(기획재정부 「시사경제용어사전」 참조) 이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조한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Technocratic Paradigm)의 해악을 기억하게 한다. 식별 없이 이윤을 목적으로 기술을 받아들이는 경제 논리와 정치는 자연과 인간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찬미 받으소서」 109항 참조) 과학기술이 삶의 질을 드높여 사람의 가치를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의 골을 더 깊어지게 한다면 여기서 잠시 멈추고 삶의 본질적 의미를 되물어야 한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따라 내면 깊은 곳으로 내려가 고독하게 걷는 회심의 여정을 과연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글 _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이은주(마리헬렌) 수녀

발행일 2025-04-27 제343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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