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군중이 그 군중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였다고 한다. 아름답고 총명한 그녀를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가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그를 거절했으나 아폴로는 그녀에게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예언의 능력을 주며 그녀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 예언의 능력을 받고도,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신은 불멸이고 늙지 않는데, 자신은 인간이고 늙고 죽으니 그 결과는 비참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젊은 그녀가 이 당연한 것을 알고 있다니 놀랍다. 대개 젊은 아가씨일 경우, 얼굴이나 성격이 맘에 안 들어 사랑을 거절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가 아닌가. 그러니 어쩌면 그녀가 아폴로에게 능력을 받기 전에 이미 예언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아, 어쩌면 예언이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 아무튼 이 신의 아들은 화가 났으나, 한번 부여해 준 예언의 능력은 철회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카산드라의 입에 침을 뱉으며 자신이 사랑하며 축복하던 그 입으로 저주를 내린다. “그래 너는 올바른 예언을 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도 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카산드라는 아름다워서 사랑을 받았다가 총명했기에 신의 사랑을 거부하자 바로 그 이유로,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형벌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고독과 고통의 터널로 영원히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나라와 함께 멸망하여 목숨을 잃는다. 일전에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라는 책에도 썼지만, 몇 년 전 예루살렘 광장에 섰을 때 나도 카산드라를 떠올렸었다. 내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거기서 군중에게 돌에 맞아 죽은 스테파노 성인을 생각했고, 이곳에서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벌이던 젊은 예수를 떠올렸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구세주를 환영하던 그 군중들이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했던 그 군중으로 변해버렸던 것을. 하지만 또 생각해 본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것도 분명 저주이지만 어떤 사람이 거짓만 말해도 열광하는 군중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저주라는 것을 말이다. 이미 인류의 역사는 우리 모두를 비극으로 이끌어 가던 이런 종류의 열광을 수도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만일 두 기로에 서 있다면 어떨까. 만일 둘 중에 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묻는다면 말이다. 스테파노 성인 혹은 이 땅과 온 세상의 순교자들을 생각할 때 그들이 겪은 육체적 고난보다 더 고통스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들의 외로움이었다. 언제나 그것이 나를 더 많이 울렸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어둡고 절망적인 책이 아니다. 요나가 있고 니느웨의 군중들도 있다. 그곳의 군중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했고 절제하기 시작했기에 멸망의 예언을 거슬러 구원받았다. 니느웨의 백성들은 말하자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치다가, 예언자의 말을 듣고 깨달아 “호산나”라고 외친 것이다. 어떤 순서를 밟을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예수에게 외쳤던 내 지난날은 변화할 수 있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 하고. 그러나 나에게 그것은 반드시 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거짓을 말해도 열광 받으며 이 지상의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힘겹지만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결심,“이의 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는 용기. 그리하여 홀로 있는 시간에 “주님 저는 많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당신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라는 결심을 말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독자마당] 해미순교자국제성지를 가다

당진본당 늘푸른 성서대학은 5월 15일 해미순교자국제성지를 순례했다. 성지에 도착한 어르신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우리 곁을 떠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조각상을 마주한 후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성전에서 성지소개 영상 관람이 있고 난 뒤 11시에 여러 본당의 많은 순례객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가 시작되었다. 성지 전담 한광석(마리아 요셉) 신부는 강론 중에 “해미순교자국제성지는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의 국제성지로 교황님의 이름으로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지로는 드물게 생매장 순교터와 묘가 함께 있는 곳으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다”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박해의 칼날 앞에서도 기쁘게 죽음을 받아들인 힘과 용기를 이번 순례를 통하여 얻길 희망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의 저서 「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라는 책을 소개하며 책 첫머리에서 “나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라는 니체의 말을 좋아하며 인간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순교자의 무덤을 형상화한 원형 모양의 성지기념관에는 순교 당시 모습을 담은 조각과 판화, 성지에서 발굴된 순교자 유해가 안치돼 있었다. 오른편으로는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진둠벙’이 있었다. 생매장마저 번거롭다고 포졸들은 개울 한가운데에 신자들을 둠벙(웅덩이)에 빠뜨려 죽인 것이다. 오후에는 조선 박해시기 내포지역의 수많은 신자가 잡혀 와 고통받은 해미읍성을 찾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1000여 명의 믿는 이가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읍성 남문을 들어서니 성안은 평온하다. 저 멀리 다른 나무보다 훨씬 큰 회화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충청도 사투리로는 ‘호야나무’라고 한다. 300년 넘은 거목에는 ‘옥사에 수감된 신자들을 끌어내 동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했으며 지금도 철사가 박힌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회화나무 팻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있다. “8월에 연황색 꽃이 새 가지 끝에 달리며 열매는 9~10월에 노랗게 익는다.” 거룩한 영혼들은 모두 부활해 떠났고 지금은 고요한 평화가 깃든 해미읍성에는 순교터와 증거터가 여러 곳에 있어 교육 효과가 큰 곳이며 넓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노약자나 어린이도 어렵지 않게 도보로 순례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었다.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 글 _ 김윤구 미카엘(대전교구 당진본당)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2면

삶을 건넨 집

누군가 집 한 채를 내놓았다는 이야기는 자칫 단순한 기부 미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집이 단지 부동산이 아니라, 한 사람, 한 가족의 시간과 추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공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단순한 재산 이전이 아니라, 삶의 일부를 건네는 일이다. 소유의 이전을 넘어선, 존재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20여 년을 살아온 아파트를 자립 준비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김춘미 씨의 선택은 물질적 나눔을 넘어선 상징적 행위로 다가왔다. 그것은 가진 것을 비우는 결단이자, 청년 세대의 내일을 믿고 지지하는 어른의 마음이었다. 뿌리내릴 흙 한 줌 없이 사회에 내던져지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살 수 있는 공간’은 단순한 주거가 아니라 ‘살아갈 가능성’이다. 재산을 불리거나 자녀에게 물려주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김 씨의 결단은 청년들이 절망 대신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다. 기성 세대가 청년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꼭 크고 거창할 필요가 없다. 때로는 묵묵히 믿어주는 시선,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응원이면 충분하다는 마음이다. 김 씨가 봉헌한 ‘함께 살 수 있는 집 한 채’는 그 모든 응원이 ‘공간’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사례였다. 그 집은 청년들이 자립의 뿌리를 내리고, 훗날 또 다른 이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씨앗이 되었다. 매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현관문을 나서는 청년들의 발걸음이 그려진다. 그들에게 세상은 이제 조금 더 믿을 만한 곳,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미는 손길로 이어질 것 같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3면

세상에 나쁜 독서는 없다

필사적으로 필사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게 독서는 두 번 읽는 것이었다. 눈으로 한번 읽고 손으로 쓰면서 한 번 더 읽었다. 좋아하는 구절을 노트로 옮기기도 하고 김승옥의 「무진기행」 같은 단편은 아예 전체를 다 필사했다. 문장은 내게 스며들었고 필사는 습관이 되었다. 새해가 되면 두꺼운 노트를 준비하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고 무술을 연마하는 듯 필사를 시작했다. 연말이 되면 빛나는 문장들이 빼곡히 적힌 노트가 뿌듯하게 남았다. 필사를 하려고 독서를 하는 날도 많았다. 그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방송 원고를 보내고 맥주 한 잔을 옆에 두고 천천히 써 내려가는 필사였다. 원고를 쓰느라 쌓인 피로를 다른 글을 쓰며 풀었다. 좋아하는 책이 있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고 애정하는 색이 담긴 만년필이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매일 읽고 매일 쓰면서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라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은 내 삶의 표어였다. 필사의 독서는 환희였고 보람이었으며 나의 성실한 습관이었다. 소리 내어 독서를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필사 이전의 독서 방식이었는데 말 그대로 낭독을 했다. 눈으로 읽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으면 그 맛이 달랐다. 어떤 글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 작가가 얼마나 리듬감 있게 쓴 글인지 느낄 수 있다. 시나 에세이를 읽을 때 특히 좋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정끝별 시인의 ‘은는이가’ 같은 시를 읽을 때면 가슴이 설레도록 좋았다. 내가 쓴 시도 아닌데,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나무 아래서도 읽고 창가에 앉아서도 읽었다. 시인이 쓴 시는 내 목소리를 통해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날아갔다. 그럴 때 나는 읽는 게 아니라 노래한다. 그렇게 노래한 글들은 마음에 오래 남아서 세상을 살아갈 때 가슴을 쭉 펼 수 있게 해 주었다. 낭독의 독서는 위로였고 기쁨이었으며 나의 비밀스런 독창이었다. 세 번째 방법은 함께 읽는 ‘동아리’ 독서다. 다양한 독서토론 모임을 통해 벗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도서관 독서동아리, 동네 책방 책모임, 녹색평론 읽기 모임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모여 책을 읽고 밥을 먹는 모임까지. 15년 가까이 지속되는 모임도 있다. 함께 읽는 독서는 풍성해서 참 좋다. 혼자 읽을 때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책들만 읽게 된다. 어려운 책,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은 읽을 기회조차 없다. 그러나 동아리에서는 책을 고를 때부터 다양성을 갖추게 된다. 모임의 구성원들이 다양한 만큼 추천하는 책들은 전 분야에 걸쳐 무궁무진하다. 그뿐 아니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해보면 하나의 책에서 탄생하는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들을 만나게 된다. 혼자 읽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세상을 알게 되고 발견하지 못했을 문장들을 찾아낸다. 지루하고 힘든 ‘벽돌책’ 독서도 동지가 있어 밀고 끌어주어 완독을 가능하게 해 준다. 혼자 읽기도 좋지만 함께 읽기는 더 좋다. 책은 참 묘하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바뀌어도 참 한결같다. 책 속에는 분명 길이 있다. 하여 읽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길을 찾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길을 찾는 사람은 분명 자신만의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신인’이 될 것이다. 이것은 독서의 축복이다. 필사를 하며 읽거나, 소리 내어 읽거나 함께 읽거나 어떤 방법도 좋다. 세상에 나쁜 독서는 없다. 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2면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을 수호하는 정부가 되어야

대한민국을 이끌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 이해와 관용을 통한 사회 통합일 것이다. 그동안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극단적 대립의 양상을 보여왔다. 여기에는 자신의 정치적 이권을 위해서 사람들을 갈라 세우려 했던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에게 드리는 축하와 당부’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정의와 참된 평화의 길을 걸어갈 믿음직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는 새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벽이 아닌 다리를 세우는 지도자’로서 공동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희망했다. 이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원칙을 잃어버리지 않고 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헌신해 달라는 요청이다. 세대와 성별, 지역에 따라 국민들을 가르며 혐오와 배제를 정치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던 구태를 이제는 단호하게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국가 권력이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살피고 보호하는 것을 가장 첫 번째 의무로 여기기를 바란다. 모든 나라와 사회에서 정치와 문화의 성숙도를 드러내는 것은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의 수준이다.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경제의 발전에 따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생계조차 유지가 어려운 절대적 빈곤의 정도는 완화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존재하며, 이른바 가진 이와 못 가진 이의 격차는 갈수록 극심하게 벌어져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고착되고 있다.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고 빈부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가난한 이들과 동행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새 정부가 주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는 남북 간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모습을 봐야 했다. 남북 관계는 남한과 북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그간 정부는 남북 관계의 회복보다는 대립과 강경 대응만을 추구해 왔다. 증오와 적개심이 아니라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아울러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생태환경의 보호 정책이다. 무분별한 국토개발과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 등은 기후위기 시대에 공동의 집 지구를 보호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의무에 반대되는 국가 정책 방향이다. 개발과 성장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구 환경의 파괴에 대한 우려마저 외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절실하다.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과 그릇된 권력욕과 집단적 이기주의 등이 결합될 때 민주적 헌정 질서와 법치, 사회 정의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음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 대통령과 정부가 이러한 국민의 우려와 기대를 잊지 않고 오로지 공동선과 국민의 권리와 행복을 지켜주는 데 헌신해 주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3면

‘인생은 음미체!’

쉰 살을 막 넘겼을 때 마음에 새긴 내 삶의 모토는 ‘인생은 음미체!’였다. 음악, 미술, 체육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벗이자 동반자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40대 때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다. 집안과 직장과 사회에서 내게 주어지는 일들과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도 몸도 몹시 힘들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아서라는 걸 깨닫고 삶의 태도를 바꿨다. 일을 줄이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늘렸다. 그렇게 친구가 되어 준 ‘음미체’가 나를 지켜 주었다. 돌아보면 어렸을 적부터 ‘음미체’와 함께 살아왔다. 주일 아침은 아버지께서 틀어 주신 가곡이나 영화 음악을 들으며 잠에서 깼고, 덕분에 음악과 친해졌다. 중학생 때 형이 치는 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운 덕에 지금도 아들과 함께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른다. 동네 만화가게에서 살다시피 한 덕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중학교 땐 미술부 활동도 했다.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고, 축구와 탁구, 테니스까지 ‘운동권’으로 살았다. 우연한 기회로 배우기 시작한 트럼펫 덕분에 교무처장 보직을 맡았던 2년을 잘 건너왔다. 출근 전 한 시간 트럼펫 연습 시간이 숨 쉴 공간이 되어 주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제자와 후배들에게도 음미체를 권한다. 출근 전 한 시간쯤 음미체에 몰입한 뒤 일과를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전 직장 후배는 내 권유로 아침 수영을 시작한 뒤 검도까지 이어져 지금은 건강한 60대를 산다며 고마워한다.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 쉬고 또 즐기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음미체로 함축되는 ‘문화, 예술, 체육’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 새 정부의 할 일이 많겠지만 ‘음미체의 생활화, 문화 예술의 일상화’도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아 주길 바란다. 선진국이지만 국민은 정작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더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에도 음미체가 단단히 한몫할 것이다. 교무처장으로서 꿈꾼 일 중 하나는 신입생 교양 교육을 인문학과 음미체로 바꾸는 것이었다. 긴 세월 입시 지옥을 건너 대학에 온 새내기들이 1년 만이라도 다른 공부는 다 내려놓고 인문학과 음악, 미술, 체육을 배우며 산다면 문화 예술로 샤워를 한 것처럼 상큼하고 개운한 젊은이로 거듭날 것이다. 악기를 배우고 협주와 합창을 해 본다면, 그림을 그리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면, 몸을 움직여 춤추고 달리고 날아오르게 한다면 그만큼 좋은 교양 교육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이 못내 아쉽다. 음미체의 생활화는 어디서든 가능하다. 재작년에 우리 대학 성악 동호회에 가입해 귀한 선물을 받았다. 음악 전공 지도 교수와 대학원생들 덕분에 성악에 낯선 교직원들이 매주 성악 공부를 하고 학기 말에는 공연도 한다.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게 떨리는 일이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감사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좀 더 갈고닦아 졸업생과 신입생들 앞에서 공연도 하고, 학교를 위해 궂은일로 애쓰시는 분들을 위한 뜻깊은 공연도 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이다.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1989년 8월에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620킬로미터 인간 띠를 이었고 한목소리로 ‘일어나라 발트야’ 노래를 불러 2년 뒤 독립을 쟁취했다. 4~5년마다 온 국민이 참여하는 ‘노래와 춤 축제’도 열리는데 수만 명이 함께하는 군무와 합창은 2008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더욱 빛이 난다. 학교, 직장, 교회, 마을에 그리고 도시와 지역과 온 나라에 음미체가 일상이 되고 생활이 되면 좋겠다. 경쟁하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함께 어울려 배우고 익혀 풍요롭게 나누는 음미체로 ‘문화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자. 인생은 음미체! 국가도 음미체! 행복에 이르는 길, 음미체!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3면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를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배달하 필립보 신부님을 내 젊은 날 주말마다 가던 시골집의 본당 신부님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행운이었다. 당시 고3이던 딸이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주일 미사에 참례했다가, 신부님의 강론에 감동하여 고3인데도 바로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해서 세례를 받은 것도 그분의 훌륭하고 좋은 강론 때문이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좋은 강론 중에서 기도에 대한 것은 아직도 내게 선명히 남아 있다. 탈출기 17장 1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싸우는 동안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려놓으면 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모세는 지치기 시작했고 자꾸 손이 내려가자, 사람들이 그를 앉히고 양쪽에서 그의 손을 억지로 받쳐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나는 이 구절이 무슨 소린지 몰랐다. 특히 구약에 보면 ‘이런 걸 왜 성경에 썼을까’ 싶은 구절이 많이 나오는데, 신부님이 이 구절을 가지고 강론하신 것이었다. “무엇이든지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인간의 이치입니다”라는 말로 강론은 시작되었다. “스포츠도 등산도 요리도, 하다못해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매 맞는 행위라도 소위 이골이라는 게 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기도는 해도 해도 힘들어요. 이 모세의 행위는 기도에 대한 말입니다. 기도는 자발적으로 이렇게 해도 좋지만 정말 힘들면 억지로 남에게 끌려서라도 하라는 말이에요. 이 구절은 그런 뜻입니다. “ 좋은 말씀을 들었을 때 언제나 그렇듯, 가슴이 작게 콩콩 뛰었다. 기도에 어려움을 겪던 나에게, ‘왜 나는 묵주기도를 하는 동안 잡념의 잔치를 벌이는 것일까?’ 죄스럽던 나에게 하신 말씀인 것 같아서였다. 이 강론은 후에 아빌라의 데레사의 거둠기도라는 것에서 더 뚜렷하게 들려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말이 아니라 기도하려는 의지를 보신다. 기도하는 시간이 힘겹고 아무 감동이 없어도 우리가 그 자리에 머무르려는 ‘사랑의 선택’ 자체를 받으신다." 운전할 때나 여행할 때 늘 묵주기도를 하곤 하는데, 가끔은 ‘내가 어디까지 했지’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의식적으로 했던 묵상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곤 하는데, 한번은 어떤 나눔에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묵주기도는 묵상이야. 그렇게 양으로 많이 한다고 해서 묵주기도가 제대로 되는 거야?”하고 누군가 묻기도 했다. - 대체 이 바리사이 자매들은 어디에나 있고, 꼭 제때 나타난다! - 가끔은 그런 말들에 기운이 빠져 ‘내가 지금 제대로 하는 게 맞나?’ 싶지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은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의지를 보시는 거’라는 말씀에 힘을 내곤 한다. 가끔 누군가가 묻는다. ‘기도하면 믿어지나요? 믿어져야 기도하나요?’ 나는 대답한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은 그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기도합니다.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제가 늘 당신을 마음속에 그리고 매 순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혹시나 – 그럴 리가 없지만 - “'예수님이 내게 오셔서 무엇을 주랴. 하나만 말해보라' 한다면 저는 대답할 거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요즈음 하느님은 내 기도를 하나도 들어주시지 않는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마음이 그리 상하지 않는 것은 그 지루한 양의 기도를 통해 나의 믿음이 아주 작게 자랐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분은 언제나 내 바람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그렇다. 그래서 가끔은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깨닫게 되었기에 말이다.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2면

“너희가 바르게 살면, 세상도 바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대다”

작년 12월 이후 우리 사회는 매우 추한 사실 하나를 극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설마 이 정도까지 상식이 무너진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만큼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지난 반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벌어졌습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현실에서 겪으며, 우리 사회는 ‘정의’와 ‘진리’가 ‘이익의 추구’ 속에서 얼마나 희석되고 상대화되고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고대 철학자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는 “정의란 곧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의와 진리’를 외치고, 그 개인들이 다수를 이루게 될 때, 정의는 결국 ‘강자의 이익’으로서 구현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진리에 기반하지 않은 정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서 진영을 나누고, 대립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봅니다. 어쩌면, ‘진리’ 자체가 상대적인 관점에서 왜곡되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진리와 정의의 방향이 다수의 힘, 즉 누가 강자의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 쉽게 좌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집단 지성은 올바른 진리를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을 파악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경제적인 측면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통 방식과 진리, 정의에 대한 이해입니다. 최근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치 바벨탑과 같은 혼란스러운 언어 구조 속에 빠져 있음을 지적합니다. 즉, 이념적이고 편향되며 사랑이 결여된 언어 속에서 우리가 소통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소통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형성”합니다.(언론인들과의 만남, 2025년 5월 12일) 이는 우리 사회의 언론들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어떤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이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소통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교황은 또한 가정의 중요성과 함께, 태어나지 않은 생명(배아와 태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병자, 실업자, 시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에서 연약하고 취약한 이들의 존엄을 보장하는 노력에서 누구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외교사절단과의 만남, 2025년 5월 16일)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점점 약자와 취약한 이들을 이념적이고 편향된 언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다수가 될 때, 사회는 결국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만 인권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제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조차 점점 더 상대화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또한,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진리 없이는 참된 평화를 이룰 수 없으며, 특히 말의 의미가 모호하거나 이중적으로 사용되어 현실을 왜곡할 때, 참된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진리가 사랑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마도 교황이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씀(「설교」 80, 8)을 인용했듯, 나부터 가장 연약한 존재인 배아에서 모든 인간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3면

사진의 의미

나에게는 만나보지 못한 외할아버지가 있다. 해방 이후 가치와 이념의 대혼란을 겪던 1949년, 그는 젊은 아내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북으로 떠났다. 가는 이도 보내는 이도 머지않아 다시 만날 줄 알았기에 작별의 인사는 짧았다. 하지만 곧이어 닥친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북으로 간 아버지’가 있는 남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채 십 년도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잃었다. 남매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았다. 오빠인 외삼촌이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어서야 남매는 그동안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버지와 헤어질 당시 세 살과 여덟 살이던 남매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눈을 비벼봐도 아버지의 모습은 희미하기만 했다. 사진, 어딘가에 사진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북으로 간 가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얼굴이 드러나는 사진은 이미 태워지고 버려진 지 오래였다. 얼마나 찾았을까? 처분의 운명을 피한 단 한 장의 사진이 남매의 손에 들어왔다. 고향 집 앞에 나란히 선 두 명의 청년. 하지만 남매는 그 두 사람 중 누가 아버지인지 가려낼 수가 없다. 어떤 날은 동그란 얼굴의 왼쪽 청년이, 어떤 날은 안경을 쓴 오른쪽 청년이 아버지일 것 같다. 결국 남매는 두 청년을 모두 아버지라 여기기로 했다. 때로 쓸쓸하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남매에게 사진은 아버지가 있었다는 유일한 징표였다. 엄마를 모시고 강릉으로 2박3일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사위도 며느리도 손자 손녀도 다 두고 오로지 엄마가 낳은 4남매만 동행했다. 우리는 모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엄마 앞에서 어리광을 부렸고 깔깔거리며 바닷가를 거닐고 오죽헌을 둘러보고 향기로운 커피도 마셨다. 그러다가 마지막 여정은 사진관이었다. 우리는 여러 포즈로 가족사진을 찍었고 다음은 엄마의 독사진 차례였다. 엄마는 준비한 새 옷을 입고 더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지게 사진을 찍었다. 특별히 뇌경색으로 표정이 사라진 왼쪽 얼굴이 덜 보이도록 신경을 써서 포즈를 취했다. 훗날 인화된 사진을 보고 엄마는 무척 마음에 든다 하셨다. 그리고 당부하듯 덧붙이셨다. 이 사진으로 엄마를 기억하면 좋겠다고. 엄마에게 사진은 세상에 남겨질 또다른 자신이었다. 핸드폰 속 사진 보관함을 열어봤다. 거기엔 ‘34359’라는 엄청난 숫자가 찍혀 있었다. 그동안 부지런히 찍은 사진의 숫자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보기 전에, 찍는다. 우리는 찍음으로써 기억하고 찍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회적으로 존재한다. 단 한 장의 아버지 사진이 절실했던 어머니와 달리, 지금 우리에게 사진은 ‘삶을 구성하고 연출하며, 공유하는 방식’ 그 자체가 되었다. 그렇다면 사진의 숫자만큼 우리의 기억은 단단해지고 추억은 풍성해지고 있는 것일까? ‘34359’. 디지털 시대에 넘쳐나는 사진들 속에서도 나는 잊지 않고 싶다. 어떤 사진은 여전히 삶을 증명하고, 누군가에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사람을 꺼내어 보여주는 창이다. 사진은 그런 것이어야 한다. 글 _ 양희 아녜스(다큐멘터리 작가·감독)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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