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늦은 밤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22시 28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윤 대통령에 의해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 명의로 23시를 기해서 “국회와 정당 등 정치 활동 금지”를 비롯해 6개 조항으로 구성된 계엄사 1호 포고령이 내려졌다. 헌법은 계엄에 관해서 규정하는 제77조 4항에서 “계엄을 선포할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고 의무 조항을 설정해 놓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한국 국민과 사회의 안녕과 사회적 존엄을 손상시키는 것일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같은 조 5항에서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헌법은 비상계엄 상태에서도 국민의 대표 기관인 입법부의 역할은 명백하게 법으로 보장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엄사 포고령 1호에 의하면, 그 첫 조항에서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면서 이것을 어기면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를 근거로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적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회로 투입된 계엄군에게 내려진 명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였다. 국회의원들 가운데 190명은 경찰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담을 넘어가면서까지 국회로 모이기 시작했고,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위한 투표에 참여해 190명 참석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계엄이 무효화 된 것인데, 이때가 12월 4일 오전 1시 1분이었다. 국회의원들이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계엄군에게 연락해서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도록, 안 되면 전기라도 끊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 지시를 받은 이상헌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오히려 부대원들에게 물러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표결이 완료돼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참석자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된 것이다. 윤 대통령은 4일 오후 국민의힘 대표와 중진의원들을 만났을 때, 자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헌법과 법률에 맞춰 권한 내에서 한 것으로 잘못된 것이 없고, 더불어민주당의 폭거 때문에 이를 경고하기 위해 선포하게 됐다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식 속에서 그는 장관급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에 박선영 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을 임명해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지속해 갔다. 그러다가 계엄이 해제된 지 만 사흘이 지난 7일 오전 10시경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 표결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군을 동원해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의원들을 체포하려는 일련의 조치들을 실행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찬성할 시민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전국의 시민들은 그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더 빨리, 더 단단하게 뭉쳐야 한다”고 말하며 그의 퇴진을 위한 집회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그가 비상계엄으로 실추시킨 국격, 국가와 시민들이 겪게 만든 사회적 혼란과 상처를 회복시키고, 오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사회적 사랑’(「찬미받으소서」 231항)의 선물이 될 것이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독자마당]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엄마

2022년 12월 1일, 사랑하는 엄마께서 99번째 생신날 새벽 3시30분경에 하늘나라를 향해 떠나셨다. 평생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었던 분, 자신을 위한 삶이라고는 한순간도 없으셨던, 친인척들로부터 천사라 불리셨던 분, 비록 글은 모르셨지만 참으로 지혜로우셨던 성모님을 참 많이도 닮으셨던 나의 엄마는 그렇게 떠나가셨다. 돌아가시기 8개월 전부터 산소호흡기를 하면서 엄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지면서, 너무너무 궁금한 것 하나가 생겼다. ‘사람이 죽으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어찌나 간절히 궁금했는지 저절로 나오는 신음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장례식장에는 엄마가 정말로 안 계셨다. ‘엄마는 지금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계신 것일까? 혼자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발인날이 되었다. 상실감을 넘어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도 만져 볼 수도 없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도 없는 아득한 이별이라는 생각은 너무 슬펐다. 장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첫눈을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눈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계시지 않은 지금의 엄마한테 열심히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엄마와의 여행이 되고 있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깃털처럼 가볍고 아주 평온한 이 마음은 뭐지?’ 하는 순간, 반짝반짝 해같이 빛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 너~무 이쁘다!” 하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남편 바오로가 나를 툭 치면서 “무슨 소리야? 엄마가 이쁘다니?” 하는 바람에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폰으로 라도 찍어둘걸’ 싶었는데 나중에 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가 폰으로 찍을 수 있었으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을 거야. 그건 엄마한테만 보인 것이고, 천국 가신 할머니를 보여 주신 거야” 한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 뒤로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고 가장 행복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계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슬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치고 가슴이 벅차올라 감사할 뿐이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내게 보여 주셨다.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간절함으로 구했던 나의 목마름에 그분께서는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이런 곳이란다” 하시며 은밀히 보여주셨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처절하게 무너진 이를 이렇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위로를 넘어 기쁨과 환희가 가득 차도록 바꿔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있다! 그분은 바로 나의 하느님, 나와 늘 함께 계시는 나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나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으신다. 그 애틋한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온 세상이 내 품 안에 있는 듯하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가신 엄마를 품에 안아 주신 그분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인간의 품에 비할 수 없는 한없이 좋은 그분의 품 안에 계시니 이보다 더 안심되는 일이 있을까? 늘 가여웠던 엄마에 대한 가슴 시림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큰 위로가 되고 평안함이 되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 흐르게 한다. 나는 이제 영원한 삶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이곳에서의 여정을 다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가게 되는 날 ‘해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엄마와 천사들의 마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이길남 파우스티나(인천교구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본당)

2024-12-15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나는 89학번이다. 무개념 무의식.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 문턱을 넘었다. 그때 그 시절,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왜 시끄러운지 나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게스 멜빵 바지를 입고 톰보이 가방을 메고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테를 쓰고는 만화책에 나오는 얼빵하고 순진한 아이처럼 나풀나풀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찮게 가투(가두 투쟁)현장에 휩쓸려 아주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최루탄이 터지고 길가에 깨진 보도블록이 나뒹굴고 있었으며 숨도 못 쉴 만큼 지옥 같은 그곳에서 백골단이 학생들을 질질 끌고 가고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아 두들겨 패고 있는 걸 봤다. 그 순간 나는, 이유가 있든 없든 무조건 도망쳐야 했다. 나는 미친 듯이 도망가다 좁은 골목길에 숨었고 골목 입구에는 주인 잃은 신발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흐느껴 울면서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어야 했다. 그런데 그날, 여학생 한 명이 죽었다. 이름은 김귀정, 성균관대 학생이었다.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과잉 진압 작전에 떠밀려 압사당했다고 했다. 그때 내가 본 수많은 주인 잃은 신발 중에 그녀의 신발도 나뒹굴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실 나는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 두들겨 맞지도, 어디로 끌려가 보지도 않았다. 안전한 금밖에 서서 구경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의식이 있는 척 흉내라도 내보려 했으나 그건 말 그대로 가식일 뿐이었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분노를 삼켜본 적도 없다. 며칠 전에 벌어진 ‘계엄 해프닝’으로 우리 가족 모두 밤잠을 설쳤다. 서울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하지만 밤새 잠을 설쳐서인지 몇 번이나 깨웠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다. 알람 소리가 5분 간격으로 시끄럽게 울려대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어떻게 해야 눈을 번쩍 뜨게 할까, 고민하다 아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해 주었다. "내일이 월급날이야. 힘내자!“ 그제야 아들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으러 들어갔다. 아무리 일하는 게 힘들고 고달프다 해도 월급날 내 통장에 들어오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다시 한 달을 버티며 살아낸다. 아침마다 고단한 몸을 일으켜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뭐 대단한 걸 바랄까. 자식들이, 가족이, 별 탈 없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애쓰며 사는 국민들이 무슨 죄가 있나. 거리 곳곳에 폐업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일을 해도 내 손에 돈이 안 들어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거리엔 주인 잃은 신발이 나뒹굴지도, 지랄탄이 터지지도, 백골단이 토끼몰이하며 학생들을 두들겨 패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온 것 같지도 않다. 살아있다면 쉰 후반의 나이가 되어 나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언니.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스물네 살 꽃띠다. 그 시절, 전투경찰들이 쏜 지랄탄에 눈물 콧물 흘려가며 부당한 세상에 맞섰던 젊은이들은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훌쩍 넘어버렸다.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살아남았지만, 아직도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글 _ 김양미 비비안나(소설가)

2024-12-15

다시 촛불이다

12월 3일 깊은 밤, 우리는 45년만에 다시 비상계엄을 만났다. 그로부터 2시간 30분 후 국회가 계엄 해제를 결의했고, 6시간이 지나서 해제 발표가 이뤄졌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무장한 계엄군을 막아선 것은 국회를 에워싼 시민들이었다. 그날 이후 국회의사당 앞과 여의도 일대는 윤석열 정권의 이른바 ‘친위 쿠데타’에 항의하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리고 그 ‘촛불’은 전국으로 번져갔다. ‘내란죄’로 다뤄질 이 군사 쿠데타를 획책한 이들의 위험천만한 시도는 이미 오랫동안 계획된 것이었다. 한밤의 평화로운 일상을 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엄청난 참극이 이어졌던 1979년과 1980년 신군부 세력의 계엄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시민들은 즉각 여의도로 모여 계엄군을 몸으로 막았다. 그에 힘입어 국회의원들은 신속하게, 하지만 위태롭게 계엄 해제를 결의, 쿠데타를 막을 헌법적 명분을 성립시켰다. 이후 시민들은 쿠데타 주범에 대한 탄핵 소추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즉각적인 참여를 촉구하며 거리를 메웠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촛불에만 의지할 수 없다. 촛불은 엄혹한 시대의 참담한 역사를 건너오며 스스로 장착한, 성숙한 시민의식의 발로지만 또 다시 촛불을 켜야 하는 시간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엄은 이미 수개월 이전에 기미가 포착됐고, 시대착오적 망상으로 치부됐지만 실현됐다. 어리석은 대통령의 어설픈 시도로 빚어진 소극(笑劇)이나 소동 정도로 규정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다. 시민들의 적극적 개입, 군 지휘 체계상의 혼란과 항명과 ‘태업’, 야당 중심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대처와 다양한 우연 등으로 비극적 사태를 가까스로 면했을 뿐이다. 주교회의가 4일 입장문을 통해 밝혔듯이,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즉각 사퇴, 혹은 탄핵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이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을 방해하는 행위는 반역이다. 천주교 사제 1466명은 비상계엄 선포를 예견하기라도 했듯 11월 28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한국 천주교 사제 4명 중 1명이 서명한 선언문이 탄식하며 이르듯이, “어둔 데서 꾸민 천만 가지 일들”이 속속 밝혀지고, 그래서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지경”이었다. 형식상의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우리는 이전의 독재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방심했다. 하지만 이번의 사태처럼, 그 위험천만한 시대로의 복귀가 불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마다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촛불의 힘을 믿는다. 여기에는 우리 신앙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교회의를 비롯해 전국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남녀 수도자들, 가톨릭농민회와 천주교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교회내 단체들이 연이어 입장문과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국미사를 봉헌하며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종종 교회가 ‘순수성’을 지키고 교회와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야 한다는 자체검열적 소신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교회 안의 해묵은 정교분리의 의식은 우리가 참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신앙인의 소명은, 세상을 비추라는 것이지 자신 안에 머물라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일과 함께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고 우리 사회의 인권과 공동선을 철저하게 실현해가기 위한 일상의 노력에 더 철저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퇴행과 독재의 여지를 온전히 봉쇄하는, 성숙한 민주적 시민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이번 비상계엄을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2024-12-15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나눔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미풍 같은 사랑이 강풍 같은 힘보다 강하다는 걸 느낀다.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생필품 공급매장 ‘희망을 여는 가게’ 부평점을 찾은 12월 5일. 시설장 김정(미카엘라) 수녀와 봉사자들이 실천하는 사랑은 15평 남짓한 반지하 빌라 공간을 넘어 150명도 넘는 지원 대상자들의 고장에 두루 미쳤다. 절망했던 마음들이 희망하도록 변화시키는 기적이었다. 한 대상자는 매달 수녀와 봉사자들이 배달을 올 때마다 장문의 감사 편지를 써서 안겨주고 있다.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에도 그는 수녀와 봉사자들에게 “힘이 됐으면 좋겠다”며 약과와 요구르트까지 편지와 함께 쥐여줬다. “하느님의 사랑을 나도 이웃에게 나누고 싶다”며 신앙까지 되찾았다. 대상자들은 수녀와 봉사자들의 ‘어떤 물건이 필요할지 우리가 많이 생각했어요’ 하는 묵묵한 진심에 변화했다. 희망이 가슴에 와닿은 적 없었을 사람조차 스스로 희망하게 하는 힘은 이렇듯 사랑에서 나왔다. 그러니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 건 하느님(사랑)보다 힘(혐오)을 숭상하는 사람들뿐이 아닐까. 권력에 집착하는 내면은 가뭄보다도 메말라 붙지 않았을까. 12월 3일 밤 온 국민을 기습한 내란의 시발점이 된 비상계엄령의 해제를 도운 건 무장한 군인을 껴안듯 제지한 시민들, ‘나도 시민’이라는 공감으로 움직인 군인들 등 사랑의 힘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미풍 같은 사랑이 사실 얼마나 강한지 서막을 목격했다. 결국 콩쥐가 팥쥐를 이기듯 사랑이 이긴다는 믿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겨울을 무찌르는 봄의 훈풍은 원치 않아도 나부끼게 마련이듯 말이다.

2024-12-15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서울 대학동 고시촌에 있는 독거 중장년을 위한 쉼터 ‘참 소중한...’의 센터장인 이영우(토마스) 신부의 사제관은 작은 고시원이다. 교구는 고시촌에서 떨어져 있는 편안한 사제관을 제안했으나 이 신부는 가난한 사람들 곁에 살길 택했다. 이 신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우리는 줄곧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소외된 이들을 후원하며 나의 것을 나누기도 한다. 성당 안에서는 적극적으로, 기꺼이 소외된 이들을 위해 했던 일들이 성당 밖을 나오면 어려워지곤 한다.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는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앙생활과 무관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상의 일에 목소리를 내는 사제들에게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낸다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한다. 신앙생활과 삶은 떨어뜨려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 「간추린 사회교리」는 “정의, 자유, 발전, 민족들의 관계, 평화에 관한 문제들이나 상황처럼 인간 공동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복음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복음과 인간의 구체적인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이 서로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복음화는 완성될 수 없다. … 만일 정의와 평화로 참된 인간 발전을 증진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랑의 새 계명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66항)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사회교리는 지킬 교리, 즉 생활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그릇된 정치로 가난한 이들의 가난이 심화되고, 한 형제였던 이들이 분열되고 다투고 있는 현장에서 예수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을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질 것이다.

2024-12-08

동등한 존엄성 지닌 인간 권리 수호에 앞장서야

교회는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낸다. 전례력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인권(人權)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수호하고, 공정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사명이 신앙인에게 있음을 상기시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창세 1,27 참조) 모든 인간은 누구나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 즉 인권이 모든 이에게 보장돼야 함은 변함없이 이어져 온 교회의 가르침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올해 인권 주일과 사회 교리 주간 담화에서 특별히 이주 노동자의 인권 수호를 강조했다. 18명의 이주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아리셀 공장 참사를 언급하며, 주님 안에서 ‘서로 다른 지체이지만 한 몸’을 이루는, 그럼에도 여전히 ‘소모품’처럼 외면받는 우리 사회 이주 노동자들을 기억하자고 청했다. 이주 노동자들 또한 우리 사회를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이자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인권 주일을 맞이하며 인재(人災)의 위험에 노출된 채 홀대받는 이주 노동자의 현실을 한 번쯤 새겨 성찰해야 한다. 이주 노동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과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소외된 노인과 아동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이 많다. 그들 또한 주님의 형제들이자 우리의 형제들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 참조)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한 채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힘쓰며 인간 존중에 바탕을 둔 인권 수호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2024-12-08

카티 씨와 리사

세상을 선물로 받고 세상에 선물로 와준 리사(가명)와 엄마 카티(가명) 씨를 만났다. 카티 씨는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에게 와준 소중한 생명을 지켜 낳은 딸 리사에게 세상을 선물로 준 강직한 엄마다. 이제 3살이 된 리사의 눈망울 안에 가득 들어있는 사랑스런 귀여움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리사는 어떤 꾸밈도 없는 그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누구보다도 신나게 살고 있다. 카티 씨는 완벽한 엄마로서의 준비는 부족했지만 아이의 생명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채워주는 리사를 보며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마음의 준비로 건강하고 밝은 미래의 삶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몇 년 전 E6 비자를 발급받아 우리나라에서 일 해온 외국인 노동자 카티 씨는 일터에서 한국인 남성을 만났고 얼마 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한국인 아이 아빠는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오히려 낙태할 것을 종용하며 지금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는 상태다. 몹시 두려웠고, 무서웠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상태로 홀로 이 낯선 나라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마주해야 할 여러 문제가 너무 무서웠다. 그사이 아이 아빠는 자취를 감췄다. 가톨릭 신자인 카티 씨는 배는 불러오고 갈 곳도 없고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소중한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생명문제는 강자에 의해 약자의 생명이 유린당하는 것이며, 낙태, 안락사, 폭력, 전쟁 등을 통해서 위협받는 생명들은 힘센 자들의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약자들이다.”(박정우 신부, 가톨릭신문 2007년 5월 20일자 칼럼 중에서) 그렇다, 강자에 의해 생명이 생겼지만 그 강자에 의해 다시 생명은 위협을 받는다. 그리고 그 생명을 지켜내려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약자들이다. 그 약자들은 여성이며 엄마다.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었나이다.”(시편 119, 37) 하느님의 길을 걸어 얻은 생명은 그분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존엄성을 갖추기에 그 누구도 타인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가질 수 없고 또 가져서도 안 된다. 리사는 아직 아빠를 만나지 못했다. 카티 씨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리사와 함께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지청구 소송, DNA 검사를 통해 가족관계 확인을 해야만 엄마와 함께 안전하게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외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카티 씨에게 그는 이를 계속 거부하며 아이의 존재를 회피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리사는 아빠의 존재를 묻기 시작하고 있다. 카티 씨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과 아빠를 찾는 리사를 보며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다. 아이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카티 씨는 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떠나야 한다. 꼭꼭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아빠의 행동은 안타깝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 또다시 가족관계 확인을 위한 인지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이런 소송 없이도 아이가 살아가야 할 미래를 위해 어딘가로 자취를 감춘 아빠들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법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18세까지 양육비를 주도록 돼있는 법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는 나쁜 아빠들에겐 강제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외줄타기를 마다하지 않고 아이를 지키려 하는 많은 카티 씨 같은 약자들의 삶에 희망이 피어나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 있는 동안 책임을 다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한 리사와의 삶을 살고 싶은 나라에서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생명은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12-08

평신도 신학운동 30년을 지지한다

평신도들의 우리신학 연구를 표방한 우리신학연구소의 30년에 대해 치하하고 지지한다.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11월 30일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신학 연구를 하기에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평신도들이 신앙을 바탕으로 평생의 소명으로 함께 일군 우신연의 30년 여정에 대해 우리는 높이 평가하고 격려하고자 한다. 우신연의 설립 취지는 먼저 평신도 신학운동이었다. 그 소명의 바탕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현대 세계와 교회의 나아갈 바에 대한 가르침이었고, 이는 지난 10월 막을 내린 세계주교시노드에서 논의한 시노달리타스 정신과 다르지 않다. 비록 저변이 충분하게 확장되지 못했다는 자체적인 성찰이 있지만, 우신연은 시대를 앞서 평신도의 정체성을 밝히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또한 명칭이 분명하게 드러내듯이, ‘우리신학’을 표방한다. 역사와 전통은 중요하지만, 전통에 대한 존중이 경직된 사고와 구태의 답습, 혹은 창의성과 현실성의 상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구 신학의 풍요한 자산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과 문화, 작금의 사회 현실 안에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은 본질적인 과제다. 때마침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가 끝나고 이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고 초대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됐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촉구한 시노드적인 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 시작한 그 여정에서 평신도들의 소명과 역할은 더욱 강조될 것이고, 여기에서 우신연이 기여할 바는 무궁할 것이다.

2024-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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