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발전에 봉사하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문명의 화두가 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류는 과거 수천년 동안 이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급격한 변화를 불과 수십 년 동안 이뤄냈다. 그리고 이제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고 인공지능 체계는 얼마 전 정보화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를 능가하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이미 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능력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인간 삶의 편리에 도움이 되는 한편 그 유례없는 잠재력이 오용될 때 오히려 인류에 큰 해악이 될 것이다. 교회 역시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명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기대와 위험성을 동시에 제기하는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 지적하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류의 형제애와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홍보 주일 담화에서는 인공지능이 새로운 형태의 착취와 불평등을 야기하지 않고, 모든 이들의 더 큰 평등과 자유의 증진에 기여하기를 기대했다. 새로운 문명과 기술이 발명되고 발전할 때, 교회는 항상 그것들을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여긴다. 어떤 기술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사용하는 인류의 선한 뜻, 하느님의 선물을 선용하려는 확고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교회의 깊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신학자와 평신도 연구자들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이 놀라운 기술이 가져올 영향을 깊이 성찰하고 선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교회는 고민해야 한다.

브뤼기에르 주교를 생각하며

서울대교구가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중국에 남긴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를 동행 취재했다. 4월 16일 이른 아침 김포공항에서부터 21일 늦은 저녁 인천공항에 돌아오기까지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 순례 기간 동안 중국 내에서 버스로 이동한 거리가 20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가 설정될 때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자신의 사목지인 조선에 들어가려 광활한 중국 대륙을 걸어서 이동하다 끝내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마가자(馬架子, 마지아쯔)에서 1835년 10월 20일 선종했다. 과로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브뤼기에르 주교는 교회법적으로는 ‘순교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그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이유는 박해시기 조선 땅에 들어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초대 조선교구장 직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중국 곳곳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흔적을 취재하고 3주에 걸쳐 순례기를 연재하면서 190년의 시간 차이가 나는 과거와 현재, 중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연상하곤 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천주교 역사가 먼저 시작된 곳이다. 한국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도 중국을 통해서다. 현재는 어떤가? 중국에서 취재하면서 지금의 중국 천주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었고, 사진 한 장 편하게 찍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중국의 종교 현실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박해시기에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조선에 들어오려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걸음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의 모범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2024-05-12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 착좌를 축하하며

손희송 주교가 5월 2일 제3대 의정부교구장으로 착좌했다. 의정부교구를 더욱 풍성하게 일구어 가게 될 손 주교에게 모든 한국교회 구성원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아울러 2010년부터 지금까지 의정부교구를 이끌어온 이기헌 주교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손 주교는 뛰어난 학식을 지닌 신학자로 명석한 판단력과 분별력, 따뜻한 품성까지 고루 갖춘 ‘준비된 교구장’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동안 손 주교가 사제로서, 주교로서 여러 사목 분야를 두루 맡아 풍부한 경험까지 쌓아온 만큼 앞으로 의정부교구가 더욱 발전하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3월 의정부교구장 임명 당시 손 주교가 밝혔던 것처럼 ‘주님 포도밭의 일꾼’으로서 포도밭을 비옥하게 잘 일구어 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러한 기대는 곧 확신으로 이어진다. 손 주교는 착좌미사 강론에서 “교구장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나는 그분의 일꾼이자 관리인”이라며 교구 공동체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맞게 성실히 일하며 하나로 일치된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는 손 주교가 평소 지켜온 신념처럼 ‘기본에 충실한’ 신앙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설정 20주년이 된 ‘청년’ 의정부교구는 이제 새로운 교구장과 함께 더욱 힘차게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교구민 전체가 일치하고 화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닮은 착한 목자로 앞장서 가는 손 주교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뒤를 따르는 양 떼가 될 모든 교구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길 기대하며 기도를 보탠다.

2024-05-12

[독자마당] 선배 어르신의 봉사와 사랑 정신 잊지않겠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이신 어르신들은 오랜 시간 어떤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신앙을 이어오시고, 주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서 오늘의 가톨릭교회를 있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저희 대구 칠곡본당(주임 장희만 베드로 신부)은 그런 선배 신앙인들을 생각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5월 5일 교중미사 후 저희 본당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팔순의 축복에 감사드리며 7분의 원로인 류은하 스테파노, 배종찬 대건 안드레아, 윤학수 베드로, 이월근 대건 안드레아, 정병준 알베르토, 최동수 세바스티아노, 최정수 프란치스코 어르신을 모시고 본당 신자들과 함께 팔순잔치를 열었습니다. 팔순잔치는 먼저 장희만 주임신부님께서 팔순을 맞으신 어르신들에게 꽂다발과 꽃 목걸이를 드리는 예식으로 시작됐습니다. 이어 축하 떡케이크를 자르고 성가대의 축하곡이 선사됐습니다. 성당 마당에서 이어진 축하연은 푸짐한 음식과 어르신들을 축하하는 신자들의 마음이 하나 되어 그야말로 행복한 잔치였습니다. 선배 어르신들께서 지난날 베풀어주신 봉사와 사랑을 생각하며, 후배인 저희도 그 정신을 본받아 하느님 자녀로서의 길에 더욱 정진할 수 있도록 다짐한 하루였습니다. 글 _ 권용현 프란치스코(대구 칠곡본당)

2024-05-12

발달장애인에게 ‘스스로 결정’하는 삶 주려면

“선생님 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들, 누군가가 준비해 주고 또 누군가가 계획한 것을 따라서 해야 하는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길이 험하고 멀게만 보이는 이들. 바로 발달장애인들이다. 성인이 되면 일상의 매 순간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가 어떠하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발달장애 청소년들도 성인이 되면 당연히 자유롭게 자기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한다. 오히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에게는 자신이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자녀보다 하루만 더…”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고, 자녀에 대해 애틋함이 묻어있다. 장애인 복지를 위한 시설과 활동 보조 서비스가 있기는 하지만 부모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미약해서 눈을 감을 때까지 장애를 가진 자식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성인이 된 장애인들은 갈 곳이 별로 없기에 부모들은 자신들이 죽고 난 후에 자녀들이 어떻게 될까에 대한 걱정을 늘 안고 살아간다. 이미 사회적으로 이 이슈는 공론화됐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는 없다. 갈 곳은 없는데 가야 할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여전히 대기 중이다. 성인이 된 이들이 스스로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반복적 훈련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공간과 제공되는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비록 적은 인원이기는 하지만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복지관이 있다. 바로 성인 전환기 발달장애청소년 자기결정능력 향상을 위한 ‘혼자 다녀오겠습니다!’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이 프로그램의 목표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그래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하는데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 시작은 스스로 계획하는 것은 물론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 선택해 주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이제는 그것이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임을 느리지만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젠 혼자서도 버스를 타고, 은행도 다녀오고, 좋아하는 햄버거와 음료를 주문하고 결제도 한다. 지하철을 타고 가보고 싶은 곳을 다녀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를 위한 맛있는 과자도 산다. 친구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양보하는 것도 배웠다. 무엇을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며 조금씩 재미있는 삶의 맛을 느낀다. “선택할 필요 없이 다 알아서 해 준다는 것이 어찌 보면 매력적이고 편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결국 저희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쉽게 포기해 버리고 무기력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참지 못하면 지금까지 겪었던 그대로 변하지 않은 행동을 스스로 하게 됩니다.”(발달장애인 자기주장대회 구례군장애인복지관 류종호씨 발표 中) 이제 당사자들은 누군가가 선택해 주는 삶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한다. 다양성 안에서 삶의 형태를 선택하여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더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야겠다. 따라서 교회도 지역사회도 이들이 자기결정권의 경험치를 늘려 갈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부모님들의 이유 있는 외출을 허락하고 어울려서 아름다운 우리가 되는 다가오는 미래를 꿈꾼다.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05-12

적대와 증오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가 끝나고 몇 주가 흘렀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총선 결과에 분명히 나타났지만 현실 정치가 여기에 부응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서로를 적대시해 온 집권 세력과 거대 야당이 머리를 맞대고 산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가능할까? 많은 사람은 대화와 타협이 없고 일방적 소통과 대결만 있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한탄한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와 정치에 들어갈 여지도 점점 줄었다. 진영대결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적대감과 증오는 정치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이 배어있는 DNA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는 적대의 감정이 만연해 있다. 이제는 종교인들조차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총선 과정은 안타깝게도 일상화된 증오와 적대를 여과하거나 승화하지 못했다.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이런 적대감의 뿌리를 백년 전 일제 치하에서 시작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찾는다. “3.1 운동 이후 격화된 좌우 대립 속에서 적에게도 이성과 양심이 있으리라는 믿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영성 없는 진보」 온뜰 2024, 이하 모든 인용). 이 두 진영의 반목은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고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초기에 자행된 민간인학살은 우리가 한 공동체에 속한다는 믿음을 송두리째 없애 버렸다. 그 결과 “정치는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 동지와 적을 가르고, 그 적대적 대립 속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 목적이 되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진보 운동이 1980년대 이후 분노와 증오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말하면서 아프게 지적한다. “차이를 적대적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건설적 협동이 되게 하는 것은 전체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세속화된 진보 운동 속에서도 보수화된 신앙 속에서도 우리는 이제 더는 전체에 대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자기가 선이라 믿으면서 남을 악이라 단죄하고, 남과 싸워 이기는 일에만 골몰한다.” 그에 따르면 “모두 전체로부터 이탈하여 치우져 있기 때문에 (...) 우리는 보다 높은 하나를 이루지 못하고 차이 속에서 적대적으로 분열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분열상을 치유하려면 다름과 차이를 용인해야 한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도 전체 속에서 나의 일부라는 믿음이 우리 마음에 뿌리내릴 때 가능할 것이다.” (111쪽) 형식적 민주주의는 성취했지만 적대와 증오, 혐오와 배제가 고개를 드는 오늘날, 우리를 하나로 모아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 주목하는 것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다. 우리 시대의 예언자다움은 거짓과 불의를 단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 수사(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5-12

김대건 신부님, 바티칸에 우뚝서다

2023년은 작가 생활하는 내게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성 김대건 성인상을 설치했던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해였습니다. 바티칸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모셔지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고 성인상이 설치된 성 베드로 대성당 외부 벽감(壁龕,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은 600년 전부터 비어 있었던 아주 중요한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작업은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님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김대건 신부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며 시작됐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2020년 11월 29일~2021년 11월 27일)을 마무리하며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억하고자 유 추기경님이 성상 봉헌 의지를 밝히신 것입니다. 작가를 찾는 과정에서 당시 성 베드로 대성당 수석사제였던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님은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의 작품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 작가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던 유 추기경님은 한국의 성인은 한국인 작가가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하셨습니다. 그렇게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첫 한국 성인상 제작을 한국인 작가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티칸에서 한국인 작가를 찾기 시작했는데, 가톨릭신자이면서 이탈리아에서 작업이 가능한 돌 조각 작업 전문가를 원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는 작가를 찾는 것으로 결정이 됐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45년 동안 돌 조각을 했고 이탈리아 카라라서 유학한 저의 경력이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이 준비시킨 것으로 여겨집니다. 2021년 12월, 교황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티칸에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제작하려고 하니 제작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대전교구청에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제작한 적이 있었기에 저는 그때 만들었던 네 개의 모형과 완성한 사진을 보냈습니다. 얼마 뒤 교황청에서 심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2022년 7월 18일에 있었던 1차 심사에는 바티칸 예술 책임자 피에트로 잔데르를 비롯해 미술 담당자, 바티칸 건축가, 유흥식 추기경님이 참석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크기, 제작 방법, 작품이 의미하고 있는 것, 작품의 설치 방법까지 구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답변했습니다. 1차 심사가 끝난 뒤 작업실이 있는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로 돌아와 작품의 정확한 크기와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배경을 모형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김대건 신부님 성상 제작 작가로 최종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50년간 힘들고 어려운 돌조각을 포기하지 않고 작업해 왔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성상의 모습을 결정하는 과정이 남았습니다. 여러 개의 모형 중에 오른손에 십자가를 든 자세를 염두에 뒀으나 설치 장소가 외부인 점을 고려했을 때 눈과 비, 바람, 햇빛에 노출돼 색과 모양에 변형의 우려가 있기에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으로 최종 선정이 됐습니다. 그렇게 바티칸에 성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을 세우는 의미 있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글 _ 한진섭 요셉(조각가)

2024-05-12

역설의 길

지난 4월 16일, 무료병원 요셉의원을 설립한 고(故) 선우경식 원장(요셉·1945~2008)의 16주기 추모 미사 및 「의사 선우경식」 출판 기념회가 열렸던 날,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는 강론 중 몇 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멈췄다. 구 주교는 선우 원장 생전에 사목 현장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격려했던 인연이 있었다. 고인의 삶을 회고하면서 함께한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선우 원장은 젊은 시절,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환자들을 보며 마음 아픈 경험을 했다. 그것은 ‘돈을 잘 버는 의사보다 병원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도 치료해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구 주교는 ‘이를 평생 정말 성실히 실천해 나갔던’ 고인의 면모를 들려주면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성자의 모습’이라고 했다. 「의사 선우경식」을 펼쳐 읽으며 기자에게는 그의 ‘의사다운’ 삶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푸코 성인의 말처럼 예수님을 따라 ‘아무도 위로해 주거나 돌보지 않는 이들을 위로하고 돌보자’ 했던 애씀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초대받은 길은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인 내어줌으로써 얻는 역설의 길이고 바보의 길’이라는 한 사제의 말을 떠올렸다. 그처럼 고인이 걸었던 길은 무난하게 섬김과 부를 얻을 수 있는 세속의 길이 아니라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움을 얻는 길이었다. 1987년 무료병원 시작 때 그가 뿌린 겨자씨는 지금 연인원 600여 명의 봉사자와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진료받는 큰 나무가 됐다. 선우 원장의 일생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는 길은 어떠한가.

2024-05-05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자

한국교회는 매년 5월 첫 주일을 생명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가르치시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이 참된 진리를 깨닫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은총으로 내어주신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깨닫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도록 불리웠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연 생명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의문이다. 가장 무기력한 존재인 태아의 생명권이 침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관련 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어 관련 법이 논의되고 있기도 하다. 서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 사회적 현실 속에서 만연한 혼인과 출산 기피 현상은 우리 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못자리인 가정은 오늘날 그 보금자리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가운데 노인들에 대한 돌봄과 보살핌의 필요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보장 제도는 미미하다. 참담한 비극으로 기록된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경제적인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도외시하는 왜곡되고 비뚤어진 인식의 결과다. 이미 오랫 동안 교회는 우리 사회 안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크게 안타까워하면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그 뿌리를 되짚어 보면 결국 생명의 소중함을 소홀히 여긴 탓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는 일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가장 크고 긴급한 소명이다.

2024-05-05

통계 곳곳 ‘빨간불’, 근본적 사목 대안 고민할 때

「한국천주교회 통계 2023」는 팬데믹으로 타격을 받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엔데믹 선언과 함께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2022년 11.8%였던 주일 미사 참례율은 1.7% 포인트 오른 13.5%를 기록했고, 영세자도 전년보다 1만 명 가까이 늘었다. 견진·병자·고해 등 성사 건수도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팬데믹 이전으로의 온전한 회복은 더디다. 감염병 전후의 기준점으로 여겨지는 2019년 통계와 비교하면 주일미사 참례는 74.5% 수준. 견진·고해 등 여타 성사 활동도 60~80% 회복에 그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주일미사를 충실히 참례했던 신자 4명 중 아직 돌아오지 않은 1명을 성당 울타리 안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사목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65세 이상 비율이 26.1%라는 통계가 보여 주는 신자 고령화는 교회가 맞닥뜨린 또 다른 과제다. 향후 5년 내 65세 이상 연령대에 접어들 60~64세 신자가 58만여 명으로 전체 신자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면 고령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사목자들의 연령 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새 신부는 10년간 가장 적고 신학생 수는 줄어든 반면, 원로사목자 비중은 크게 늘고 있다. 사제 부족 현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가시화되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저출생 고령화는 교회에 더욱 빨리 찾아왔다. 사실 이 문제는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이 같은 현상이 예견됐다. 상황은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은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단순히 실버대학 몇 개 늘리고, 원로사목자 숙소를 짓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더 본격적이고 근본적인 사목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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