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평양교구 신우회, 분단·전쟁 아픔 간직하며 ‘남북 화해’ 기도

박지순
입력일 2025-06-18 08:48:44 수정일 2025-06-18 08:48:44 발행일 2025-06-22 제 344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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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특집] 끊임없이 기도하며 평양교구 신심 지키는 사람들
1949년, 남북 북단 이후 서울로 내려온 평양교구 신자들이 결성
일상서 ‘평양교구 봉헌문’ 바치며 2027년 교구 설정 100주년 준비 

한국천주교회는 매년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1945년 해방과 함께 시작된 분단의 현실과 6·25전쟁의 아픔을 기억한다. 이 날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분단의 상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성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평양교구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가장 깊이 간직한 교구다. 교구의 존재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평양교구는 지금도 살아 있는 교구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그 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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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신자들이 1949년 11월 6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평양교구 신우회’를 설립한 뒤 기념촬영한 모습. 평양교구 제공

교구 역사 이어가는 ‘평양교구 신우회’

평양교구의 역사를 보존하고 이어가려는 신자들이 있다. ‘평양교구 신우회’ 회원들이다. 현재 서울대교구 장긍선(예로니모) 신부가 지도신부를 맡고 있다.

평양교구 신우회는 1949년 11월 6일, 남북 분단 이후 서울로 내려온 평양교구 출신 신자들이 명동대성당에서 결성했다. 초대 지도신부는 평양교구 중화본당 주임을 지낸 고(故) 강현홍(요한 사도) 신부였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으로 월남한 신자들도 많아지면서 ‘평양교구 신우회 부산지부’도 설립됐다.

설립 당시부터 평양교구 신우회 회원들은 명동대성당에서 정기 미사를 봉헌했고, 지금도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1시 명동대성당 문화관 소성당에 모여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설립 76년이 흐르며 평양교구 신우회는 외형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6·25전쟁 이전에도 명동대성당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신자들이 정기 미사에 참여했고, 전쟁 이후에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남하한 평양교구 출신 신자들이 더해지면서 신우회는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1세대 신자 대부분이 선종했고, 생존해 있는 소수 역시 고령으로 외부 활동이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는 그 자녀 세대를 중심으로 매월 약 10여 명이 정기 미사에 모이며 교구의 신앙과 전통을 조용히 이어가고 있다.

82년간 이어진 ‘평양교구 봉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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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신우회 회원들은 제6대 평양교구장 홍용호 주교가 1943년 5월 1일 반포한 ‘평양교구 봉헌문’을 지금도 바치고 있다. 평양교구 제공

비록 단체의 규모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평양교구 신우회의 상징과도 같은 신심 활동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정기 미사 후 바치는 ‘평양교구 봉헌문’이다. 회원들은 미사 후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이 봉헌문을 자주 바치며, 여전히 살아 있는 평양교구의 역사와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평양교구는 1927년 3월 17일 서울대목구로부터 분리돼 평양지목구가 설정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943년 3월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이 추진되고 있는 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가 제6대 교구장으로 부임했다. 

홍 주교는 같은 해 5월 1일 ‘평양교구 봉헌문’을 반포했다. 당시 그는 교구 내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공식 예식과 매일 미사 후 그리고 가정에서도 이 봉헌문을 바치도록 독려했다. 이는 일제에 의해 교구장을 비롯한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 전원이 구금, 추방되는 어려운 시기에 신자들이 기도로 결속해 신앙을 지켜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해방 이후 공산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평양교구 신자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교구 주보인 예수성심께 ‘평양교구 봉헌문’을 바쳤다.

평양교구 신우회 회원들은 현대어로 일부 문구를 다듬은 봉헌문을 현재까지도 계속 바치고 있으며, 이는 2027년 교구 설정 100주년을 앞두고 그 신앙의 맥을 지금까지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7년 교구 설정 100주년 향해

장긍선 신부는 “2027년 평양교구 설정 100주년을 앞두고, 2026년에는 「평양교구 100주년사」 발간과 함께 홍용호 주교가 생전에 남긴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편찬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100주년을 계기로 평양교구 신우회의 활동 역사 또한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장 신부는 특히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교황님의 북한 방문 가능성이나 북한 청년들을 서울에 초청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희망을 잃지 않고 남북 화해와 일치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느님의 뜻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일이 실현될 수 있다”며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평양교구 신우회 전구호(막시미노·71) 총무는 “1세대 회원들은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90대가 되어 정기 미사에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표하고 “그분들의 자녀 세대가 일상 속에서 신우회 활동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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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교구 신우회 회원들이 2007년 3월 18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평양교구 설정 80주년 미사를 봉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양교구 제공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