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두 사람

최용택
입력일 2025-06-18 08:47:52 수정일 2025-06-18 11:48:06 발행일 2025-06-22 제 3447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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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폰 튀빙엔 <십자가형>

1896년 10월, 인천의 교도소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고종 황제. 당시 그 교도소에서는 일본군에 살해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격투를 벌이다 일본인을 살해한 청년 김창수의 사형이 임박해 있었다. 죄수의 심문서를 보고받던 고종이 김창수의 ‘국모보수’(國母報讐: 국모의 원수를 갚다)라는 죄목을 발견하고, 교도소에 전화를 걸어 사형을 일단 멈추도록 명했다.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설치된 것은 사형일로부터 불과 사흘 전으로, 역사엔 가정이 없지만 며칠 늦었으면 김창수는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김창수는 젊을 시절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의 이름이다.

김구 선생은 가장 상징적인 독립운동가다. 1919년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될 때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끝까지 임시정부를 운영해 대한민국의 적통성을 지켜냈다. 김구 선생은 8·15 광복 후 귀국해 한반도 분단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면서 남북통일론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1949년 경교장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에 의해 암살됐다.

생전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김구 선생은 언제든지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피격 당시 박병래  성모병원장(요셉, 1903~1974)은 경교장에서 그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대세를 줬고, 간호 수녀들이 그의 시신을 염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을 때 사형수 두 명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중 한 명이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라며 조롱했다. 인간의 이런 심리는 무엇일까? 다른 쪽의 사형수는 그에게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며 예수님을 옹호했다.

그리고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자,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다”라고 화답했다. 어떤 학자는 이를 성경에 있는 가장 극적인 회개의 장면이라고 했다.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은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기회를 주신다. 회개의 진정한 의미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고 했다. 두 사형수의 태도는 죽음을 맞이하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골고타 언덕의 두 사형수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매 순간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큰 은총이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의 비문에는 감동적인 글이 적혀있다. “나는 바오로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베드로의 능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 하느님, 나는 회개하는 강도에게 주셨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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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