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성체 성혈 대축일 특집]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와 성체 신심

이승훈
입력일 2025-06-18 08:48:41 수정일 2025-06-18 13:40:18 발행일 2025-06-22 제 344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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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는 하늘나라로 가는 고속도로”라고 밝혀…매일 미사 참례하며 성체조배

우리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소년, 카를로 아쿠티스는 성체성사를 “하늘나라로 가는 고속도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처럼 실제로 ‘하늘나라에 이른 이’가 되어, 곧 성인 반열에 오를 예정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6월 22일)을 앞두고, 성체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복자가 되었고 9월 7일 시성을 앞두고 있는 카를로 아쿠티스의 삶과 성체 신심을 살펴본다.

성체 사랑한 평범한 소년,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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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카를로 아쿠티스. CNS 자료사진

‘성인’이나 ‘복자’라고 하면 흔히 특별한 성덕이나 위대한 업적을 지닌 인물을 떠올리지만, 1991년생인 카를로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소년이었다. 2006년, 15세의 나이에 급성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피카츄’를 좋아하고 컴퓨터와 게임, 축구를 즐겼으며, 고양이와 강아지를 아끼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교회가 공식적으로 덕행을 인정하고, 두 건의 기적을 통해 시성이 확정된 인물이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 이 소년은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생전의 말과 삶은 그 이유를 가늠케 한다.

“태양 앞에 머물면 우리는 햇볕에 그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 성체 앞에 머물면 우리는 성인이 됩니다.”

카를로는 7살 때 첫영성체를 하면서 “내 삶의 계획은 언제나 예수님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후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 조배를 했으며 성체를 모실 때마다 “예수님, 편히 오세요. 여기가 당신 집이에요”라며 예수님과 대화했다. 또래 친구들과 첫영성체·견진성사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성체의 중요성을 자주 전했다.

카를로는 성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참 독특한 분이세요. 빵 한 조각에 숨어 계시거든요. 오로지 하느님만 이런 놀라운 일을 하실 수 있어요!”

이렇게 신앙에 열심이었던 카를로도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지순례는 마다했다. 성체에 대한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성지순례를 제안했을 때 카를로는 이를 거절하고, 도리어 “여기 성당들에도 감실이 있고, 어느 때나 예수님을 만나러 갈 수 있다”면서 “성당 감실에 갈 때도 성지순례와 같은 마음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되물었다. 

카를로에게 성체성사란 “예수님 시대에 사도들이 예루살렘 거리를 걷고 계시는 살과 뼈를 지니신 예수님을 직접 봤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참으로 세상에 현존하시는 것”이었다.

전 세계에 ‘성체 기적’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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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3일 미국 미네소타주 포렌스턴 세인트 루이스 교구 세인트 앤 성당 성체조배실에 설치된 카를로 아쿠티스 스테인드글라스. OSV 자료사진

카를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성체는 바로 예수님의 심장(예수 성심)”이라고 즐겨 말했다. 그러면서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을 소개했다.

2002년 이탈리아의 대규모 가톨릭 행사인 ‘리미니 미팅’에 참석한 카를로는 성체 기적을 더 잘 알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후 2년 6개월에 걸쳐 교회가 인정한 136건의 성체 기적을 가족과 함께 조사했고, 각 기적의 사진과 내용을 정리해 전시물을 제작했다. 60×80cm 크기의 전시 패널 166개를 완성했고, 컴퓨터에 능숙한 카를로는 이 전시물들을 온라인 공간에 담았다.

10대 소년이 기획한 작은 일이었지만, 이 온라인 전시는 상상도 못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카를로의 성체 기적 전시회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전시로, 카를로의 모국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필리핀, 아르헨티나, 베트남 등 여러 나라 주교회의에서 전시를 공식 후원했다. 중국, 인도네시아 등 비가톨릭국가 뿐 아니라 과달루페 성지, 파티마 성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와 성당에서도 전시가 열렸다. 특히 미국에서의 호응이 컸다. 미국에서만 100개 이상의 대학교, 거의 1만 곳의 성당에서 카를로의 전시회가 열렸다.

비록 카를로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뜻은 ‘카를로 아쿠티스의 친구들 협회’(Associazione Amici di Carlo Acutis)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협회가 운영하는 웹사이트(www.miracolieucaristici.org)에서는 전시 내용을 세계 여러 언어로 접할 수 있다.

이 전시는 책으로도 엮여 더 널리 퍼졌다. 바티칸 시국 교황 대리인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의 머리말과 함께 출간된 이 책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됐으며, 우리나라에도 「하늘나라로 가는 비단길 – 성체 기적의 발자취를 따라서 1·2」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