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유리알

[당신의 유리알] 신부님의 마지막 음악수업

이주연
입력일 2025-06-25 08:32:38 수정일 2025-06-25 08:32:38 발행일 2025-06-29 제 344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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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율 가슴에 안고 기도했던 사제…그 영성 하느님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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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운데)와 동생 알로이시아 수녀와 함께 한 차인현 신부. 박홍철 신부 제공 

명동성당에서 친구 비오 신부를 만나기로 했다. 그는 얼마 전 나와 함께 차인현 알로이시오 신부님을 방문했었다. 지하성당 입구에 도착하자, 젊고 뚝심 있는 차 신부님의 장례 상본사진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차 신부님을 기억하는 이들은 대부분 대신학교 성음악 수업시간이라든가, 「가톨릭 성가」를 편찬하신 인물 정도로 알고 있었다. 또 피아노와 첼로를 즐겨하시며, 신학교 출강 때는 가끔 차에 키우던 개를 데리고 오셨다고 기억했다. 가난했던 로마 유학 시절, ‘동료 사제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 성지까지 태워 줬다’ 하여 생긴 별명이 ‘의리의 차돌쇠.’ 

보통 교구 사제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 기간 성당에 마련된 냉장 유리관에 모시게 된다. 미사 전, 고인과 함께했던 교우들은 슬픔을 노래하는 연도로 성당을 채우고…. 

“(사제 차 알로이시오)를 위하여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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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서울대교구 성직자묘지의 차인현 신부 묘. 박홍철 신부 제공

무심코 나온 가사 빈칸에 신부님 이름 대신 내 이름을 슬쩍 넣어본다. 어쩌면 연도 음이 틀린 걸 아시고, 신부님이 “다시 불러봅시다!” 하시며, 일어나시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해봤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이들의 헛된 바람일 뿐.

신학생들은 금요일 오후 5시가 되면, 대성당에 모여 그레고리안 성가를 배웠다. 대성당 중앙 복도를 통해 신부님이 오시면 정적 속에 ‘딱! 딱! 딱!’ 구둣발 소리만 들렸다. 차 신부님은 무거운 서류 가방을 제단 앞에 내려놓고, 수업 전 잠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수업 중 ‘키리에’의 선율을 타지 못하는 제자들에게는 직접 노래를 불러 주셨는데, 나는 성음악보다 신부님이 해주시는 옛날이야기가 더 좋았다. 내 기억으로 ‘신부님의 마지막 수업’에는 이런 말씀이 있었다. 

“너희가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이제 함께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애틋하게 평생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 하물며 그럴진대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더 사랑하시겠냐.”  

‘우웅~’하고 차 신부님을 품고 있던 냉장 유리관의 모터가 다시 답하듯 으르렁댄다. 바람과 달리 누워 계신 신부님은 표정도 미동도 없으셨다. 나는 유리관 곁에서 노 사제의 구두와 상복을 살폈다. 사제들은 자신의 장례식 때 서품식에서 입었던 제의를 상복으로 흔히 입었다.

다시 3주 전 찾아뵐 때 기억이 나를 붙든다. 죽음을 앞둔 스승에게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방 안을 채우는 침묵과 거친 숨소리가 이어진다. 동생 차 알로이시아 수녀는 “조금 더 빨리 오셨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재차 아쉬움을 표했다. 두 제자를 보셨을 때, “아주 많이 아프다”며 미풍보다 작은 기운으로 맞아 주셨다. 

제자가 물었다. “차 신부님. 늦게 뵈어서 죄송합니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셨습니까?” 흔한 질문이었다. 고통 앞에서 질문은 이미 힘을 잃었고…. 

“우연히 가게 된 거야. 성당에 가다 보니까 신학생들을 자주 보게 되었고, 우연히 가다 보니까 신학생들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성당 활동을 하다가, 사제가 되고 싶으니까 신학생처럼 행동하고 그랬던 거지.” 

그러나 동생 수녀님의 말씀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저희는 원래 다섯 남매인데 둘은 유산되었고, 한 명은 천연두로 죽었어요. 둘만 남았지요. 어머니는 그냥 자녀들이 살아있어서 좋다고 하셨어요. ‘숙제 잘하고 나가 놀아라’ 그뿐이었지요. 전쟁 이후 아이들은 갈 데가 없었어요. 집들은 모두 무너졌고요. 그런데 용산성당 시약소 수녀님이, ‘얘들아, 저녁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 테니 오너라’ 하셨어요. 거기서 「요리강령」을 들으면서 우리는 교리를 배웠고. 신부님은 성당 복사를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했지요. 수녀님들이 성소를 키워 주신 거예요.” 

새벽부터 내리는 명동의 비는, 퇴장성가와 함께 마무리되어 갔다. 나는 고인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음이 틀릴까 성가 가사만 붙잡고 있었다. 처음보다 유리관 속 신부님은 편안해 보이셨다. 

차인현 알로이시오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전, 나는 단 한 가지 질문만 드리려고 했다. ‘살아오시면서 어려울 때, 어떤 성가 곡이 위로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러나 말씀이 없으셨다. 그 차분한 침묵은, 어쩌면 당신이 공부한 성음악이 단지 개인의 재능 발휘가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을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동생 차 알로이시아 수녀가 말했다. “차 신부님은 라틴어 공부를 참 열심히 하셨어요. 천체, 과학 공부를 좋아하셨고요. 또 화석을 좋아하셨어요. 이 생선 화석 좀 보세요. 무엇보다 오빠 신부님은 평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치지 않으셨어요. 그 많은 고통 앞에서 어떻게 조용히 참으셨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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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차인현 신부님. 박홍철 신부 제공

단단한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무너지는 자신을 기도와 자비의 손길에 의탁해야 했던 한 영혼은, 평소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유언처럼 남기셨다.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 그저 후배들이 세상 물을 좀 덜 먹고, (누워 계시면서도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수줍게 웃으셨다)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 나갔으면… 그게 선배 신부들의 바람이겠지… 싸우지나 말고 잘 지내. 작은 거 가지고 싸우지 말라고. 양보도 좀 하고.” 

마지막 질문은 “신부님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였다. 이 질문에 말문이 막혀 하셨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말하려니까 확 막히네. 우선 그보다도,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느님은 계셔! 그걸 느껴야지 그 다음이 되지. 하느님은 계셔. 이렇게 확실하게 느껴야지만 되는데… 그렇게 못 느낄 수도 있거든.” 

모든 존재는 마지막 숨결을 하느님께 향하며 사라진다. 순간 사랑도 미움도 그리움이 되고. 한 제자가 신학교 때 ‘차 신부님의 행복’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신부님을 따로 뵙고 ‘행복한 순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제관 거실에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들으며, 긴 소파에 누워 계실 때 신부님은 가장 행복하셨다는 말씀을.”

그랬다. 그분은 하느님 곁에서 베토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갖고 계시리라. 언젠가 차 신부님의 새 수업을 듣게 될 날이 다시 올까. ‘하느님은 계시고 우리가 잘 느낄 수만 있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글 _ 박홍철 다니엘 신부(서울대교구 삼각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