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변치 않을 분 홀로 천주뿐이외다

이주연
입력일 2025-06-25 08:32:03 수정일 2025-06-25 08:32:03 발행일 2025-06-29 제 3448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초등학교·중학교 학창 시절, 성당 인근에 있던 수도원 덕분에 신문물을 조금 빨리 접할 수 있었다. 멕시코에서 온 수사님들이 선보이는 슬라이드는 그야말로 신천지를 보여주었다. 5원 내면 빌려주는 만화경을 손에 넣고, 이 막대를 내려 몇 컷 안 되는 만화 장면들을 신기하게 보고 또 보기만 했던 기억이 새롭다. 5원짜리 만화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예수님 이야기를 성경 줄거리에 따라 철커덩 철커덩 기계 소리와 함께 빛나는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기계의 신기함에 더 마음이 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서 영화 상영을 한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둥근 휠이 짜르르 소리를 내며 돌아가면서 빛 속의 활동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포터블 영사기는 마음에 콕하고 들어왔다. 미아리에 있는 바오로딸 수녀원에 가서 필름을 빌려오는 심부름을 도맡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후 어느 순간 빔프로젝러라는 것이 등장하고, 이제는 안경 같은 것을 눈에 쓰면 영상이 펼쳐지는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이라는 것도 그다지 신기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교내 백일장이 되면 원고지 몇 장을 준비해야 했다. 200자 원고지에 칸을 채우기 위해 골머리를 싸맸는데, 신학교에 오니 학교 마크가 찍힌 리포트지에 과제를 써서 제출하게 되었다. 이도 잠시, A4용지를 끼워 넣고 손가락이 아프게 찍어 대던 마라톤 타자기가 활약을 했다. 신학원 복도에 울려 퍼지는 ‘타닥 탁탁’ 소리는 리포트 제출 마감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신학교 때 일찌감치 타자기를 손에 익힌 덕분에 군대에 가서는 행정병이라는 꽃보직도 맡을 수 있었다. 먹지를 세 장이나 끼워 타자를 하다보면 손가락 끝에 감각이 없어지곤 했었다. 

막상 제대하고 돌아온 신학교에서는 타자기는 사라지고 감광지에 사진처럼 찍혀 나오는 워드프로세서가 활약하고 있었다. 서품을 받고 첫 보좌 신부 때는 도트(Dot) 프린터가 강론을 뱉어냈고, 곧이어 새로운 컴퓨터와 프린터로 계속 업그레이드됐다. 뒤로 갈수록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타자기에서 워드 프로세서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이 7~8년이라면, 스마트폰에서 태블릿으로의 발전은 불과 1~2년 사이였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문물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 익히던 것들이 이제는 점점 부담이 되어가는 것은, 세월이 빨리 덤비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따라가기가 너무 힘이 든다. 카페며 식당에서 주문하려고 문 앞에 서 있고, 식탁마다 매달려 있는 무인 주문 시스템의 기세에 눌린 어르신들을 보노라면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래서 포기한 것들도 꽤 된다. 쓰고 그리고 구성하는 다양한 앱을 사용하는 것도 포기해야만 하고, 다들 잘한다는 PPT(피피티)도, 동영상을 편집하는 것도, 어린이도 한다는 유튜브 방송도 먼 산 너머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한편 ‘이제 포기해야지’ 하는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자본의 세상은 내 주머니 속의 작은 알갱이라도 빼먹기 위해서 조금 더 사용하기 쉬운 문명의 이기들을 내놓는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 쫓아가야지 하다가도 시대에 뒤처지는 것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을 이용하지 못 하는 것도 있어서 “그래, 여기까지만!”이라며 또 한 걸음 가기도 한다. 

따라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어정쩡함을 동년배끼리 서로 나누며 허탈함을 물리기도 하지만 ‘낀 세대’가 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을 ‘변치 않을 분 홀로 천주뿐이외다’로 뽑았는데, 위안으로 삼기에는 어째 어색하기만 하다. 그 수많은 변화를 겪는 인간들의 호소에 하느님께서는 어떤 방주를 통하여 구원하실까?

Second alt text

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