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6·25전쟁이 남긴 상처를 돌아보고 분단된 남북한이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남과 북이 서로 대결과 적대, 심지어 전쟁 위협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의 한반도는 오히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더욱 간절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전쟁의 포화 한가운데 있었으면서도 북한군과 국군, 미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온전히 성당 건물이 보존됐던 대구대교구 가실성당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남북한이 추구해야 하는 민족화해의 정신을 찾아본다. ■ ‘아름다운 집’ 가실본당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가실1길 1에 자리한 가실성당은 ‘가실’(佳室)이라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집’이다. 가실성당에 찾아오는 이들은 “성당과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거나 “마음이 평안해져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2004년에는 권상우와 하지원이 주연한 영화 ‘신부수업’이 이곳에서 촬영돼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가실성당은 1895년 6월 11일 대구대교구 지역에서는 주교좌계산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됐다. 설립 초기에는 기와집 모양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24년 9월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현재 성당을 봉헌했다. 올해는 현 성당 봉헌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성당 설계는 건축가로 유명했던 파리 외방 전교회 박도행(Poisnel) 신부가 맡았고, 본당 주임은 같은 수도회 여동선(Tourneux) 신부였는데 여동선 신부는 망치로 일일이 벽돌을 두드리면서 가장 좋은 것만을 골라 성당을 짓고, 다음 좋은 벽돌로는 사제관을 지었다. 성당과 사제관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가실성당을 건축할 때 특별히 기억될 일이 있었다. 주보성인인 안나상을 프랑스에서 들여와 제대 오른쪽 옆에 설치했다.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예수님의 외할머니인 안나가 딸에게 인자로운 모습으로 책을 읽게 하는 듯한 안나상은 가실성당의 상징이 됐다. ■ 치유의 장소가 된 가실성당 성당 건물은 물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이 ‘평화’를 연상케 하는 가실성당이 6·25전쟁 중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가실성당이 위치한 경북 칠곡군은 6·25전쟁 중 임시수도였던 대구와 불과 20여 km 떨어져 있어 북한군과 국군, 미군이 전쟁의 향방을 놓고 사활을 걸고 싸운 곳이다. 1950년 8월과 9월 55일간 이어진 경북 칠곡 ‘다부동전투’ 결과 북한군 2만4000여 명,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가실성당 건물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가실성당 100년사」를 보면, 6·25전쟁 당시 본당 주임이던 김영제(요한) 신부는 가실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슬픈 마음으로 대구 주교관으로 피신한 뒤 다부동전투가 끝난 시점인 1950년 9월 피난길에서 돌아와 보니 성당 주변 거의 모든 집들이 파괴됐고, 본당의 옛 성당도 불탔지만 새로 지은 성당만은 온전히 서 있었다. 가실성당은 북한군과 미군, 국군이 서로 공방을 벌이던 장소였지만,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는 북한군 부상병을 위한 야전병원이 됐고, 미군과 국군이 점령했을 때는 역시 미군과 국군 부상병을 위한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면서 포화를 피할 수 있었다. 가실성당 벽돌에 새겨 있는 ‘KELLEY’라는 이름은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던 시절 치료받던 한 미군이 남겨 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지, 본당 주보성인인 안나상 왼쪽 가슴이 총상을 입어 구멍이 뚫렸지만 그 후 충실하게 보수해 지금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안나 성녀의 가슴 뚫린 희생의 전구로 가실성당은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고 서술하는 「가실성당 100년사」의 한 대목이 치유의 공간인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던 본당 역사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 “남북한도 상처 서로 치유해 주자” 가실성당 봉헌 100주년을 맞이하는 본당 주임 박진형 신부(비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는 “만약 ‘아름다운 집’이라 불리는 가실성당이 군인들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지 않았더라면 이미 성당은 폐허가 됐을 것”이라며 “전쟁이라는 극한 대립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장소가 필요했고, 어느 한 구석에는 평화를 갈망하는 장소가 있어야 했기에 가실성당은 그대로 보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그동안 가톨릭교회가 기울여 온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 빛을 못 보고 수포로 돌아간 듯한 현재의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상대를 자극하는 맞대응 조치를 펴야만 나라의 자긍심을 보여 주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면서 “극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남북한이 서로 대립이 아닌 평화를 갈망해야 하고, 그래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가실성당 역사에 담겨 있는 치유와 사랑의 의미를 상기시킨 뒤 “지금의 남북 관계에서 극한 대결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사람으로서 사익과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심에 있다”면서 “상대를 포용하고 인정할 줄 아는 너그러움이 있을 때 하느님의 자비가 머무는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의 말은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세태에서 성 요한 23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63년 4월 11일 성 목요일에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머리말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의 완전한 질서를 거스르는 개인들과 국가들 간의 불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계 개선은 무력의 사용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6·25전쟁 때 사람을 살리는 야전병원이었던 가실성당은 조선 말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모여든 신앙선조들이 오고 가던 길에 조성된 ‘한티가는길’ 1구간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가실성당 입구에 ‘순교자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은 이곳에 순교자의 발자취와 정신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200년 전 순교자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염원했던 것 역시 인간 존중과 사랑 그리고 화해와 평화였다.

“저는 이제 가톨릭교회의 믿음 속에서 가톨릭교회의 믿음을 위하여 죽습니다. 국왕 폐하의 신실한 종복임을 자처하지만, 그 이전에 순명하는 주님의 종인 까닭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가장 위대한 영국의 인문주의자, 「유토피아」의 작가이자 정치가였던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 성인이 1535년 7월 6일 단두대에서 남긴 말이다. 영국교회 수장인 왕의 권위를 부인했다는 명목으로 런던탑에 감금돼 처형된 그는 출중한 법률가, 한 나라의 대법관으로서 권력과 부를 모두 지녔어도 그 어느 것도 하느님 위에 두지 않았다. 정의를 위해 권력을 굽히지 않으며 불의 앞에서 신앙인이 취해야 할 자세를 삶으로 보인 인물이었다. 1935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된 토마스 모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정치인과 정치가의 주보 성인’으로 선언됐다. 6월 22일 토마스 모어 축일을 맞아 신념과 정의를 위해 금력이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던 성인의 신앙과 인품을 살펴본다. 법률가 가문에서 출생 토마스 모어는 1477년 영국 런던의 한 법률가 가정에서 태어나 당시 최고 명문인 세인트 앤소니 고등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1500년 22세의 나이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던 그는 문학 수업도 게을리하지 않아 고전작가들을 열심히 연구했다. 한때는 사제직에도 관심을 갖고 카르투시오 수도회에서 4년 동안 지내며 수도 생활을 체험하기도 했다. 특별히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에 매료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자신에게 성소가 없다고 판단했고 평신도의 길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수도원에서 익힌 기도와 단식 참회의 생활을 잊지 않으며 평생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 새벽 2시에 기상해 7시까지 공부하고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1501년 제인 콜트와 결혼한 그는 런던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상법 전문가로 명성을 얻는다. 런던시 전속 법률가로 공정함과 빈곤 계층을 위한 헌신적 노력을 펼쳤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양로원을 세우며 시민들을 변호했다. 이런 모습은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네 자녀를 두었으나 출산 후유증으로 제인이 사망하자 미들턴과 재혼해서 새롭게 가정을 꾸렸던 성인은 부인과 자녀들에게 음악과 언어를 가르치는 등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몫도 충실히 했다. 첼시에 있던 그의 저택은 당대 지성인들의 중심이 되었고 에라스무스, 콜렛, 그로우신 등 유명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헨리 8세와 정치 이력 1509년 헨리 8세가 즉위하면서 토마스 모어의 정치 및 외교 경력이 빛을 발한다. 런던 부시장을 거쳐 플랑드르(현 벨기에) 외교 사절로 파견됐으며 1520년 궁중에 들어가서는 유능한 업무 처리로 왕의 신임을 받아 비서이자 조언자 역할을 했다. 「유토피아」는 이 무렵 저술됐다. 그는 루터에 맞서 헨리 8세가 ‘7성사 옹호론’을 제시할 때 초안을 쓰기도 했는데, 헨리 8세는 이 글로 레오 10세 교황으로부터 ‘신앙의 수호자’ 호칭을 받았다. 이후 1521년 재무차관으로 임명되고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외국 사신 접대뿐만 아니라 조약 초안을 작성하고 왕의 이름으로 서신 답장을 쓰기도 했다. 1523년 하원의장으로 선출되어서는 진정한 언론의 자유에 관해 연설했다. 1525년 북잉글랜드 행정과 사법을 감독하는 직책에 올랐고 1529년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이처럼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정치적 조언자 및 협력자, 복잡한 외교 문제의 해결사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대화 상대로도 헨리 8세의 곁을 함께했다. 권력의 탄탄대로를 걷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소송이 벌어지며 다른 길을 마주하게 된다. 국왕의 이혼과 재혼에 대한 소용돌이 와중에 대법관에 임명됐지만,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일자 반대 목소리를 내며 점차 국왕과 멀어지게 됐다. 1530년 교황청에 보낼 헨리 8세의 혼인무효 요청 편지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1531년 영국교회가 ‘국교회’라는 이름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 선언을 하자 대법관직을 사임했다. 1533년 헨리 8세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을 왕비로 책봉하자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아 왕의 분노를 샀고, 마침내 1534년 모반 대역죄로 기소 감금돼 이듬해 7월 6일 참수됐다. 그의 머리는 런던 다리에 한 달간 매달려 있었다. 세상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간 청백리(淸白吏) 토마스 모어가 런던탑에 갇혀 왕의 회유와 압박을 받을 때 일화가 있다. 딸과 부인이 찾아와서 마음을 돌릴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토마스 모어는 “내가 양심을 어겨 국왕의 비행에 동의하고, 그 대가로 형벌을 면한다고 합시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 동안 더 재미있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겠소?”라고 말했다. 부인이 “한 20년쯤…”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20년쯤? 그래 그것 더 살려고 죽어서 영원한 지옥 불을 당해도 좋단 말이오? 그건 너무나 미련한 짓이요”라고 말했다. 그가 성인인 이유에 대해 박재만 신부(타대오·대전교구 원로사목자)는 한 글에서 “무엇보다 일상에서 은총에 협력하면서 언제나 하느님을 향해 살았고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용의로 근본적 결단을 내리며 살았기 때문”이라고 의견을 냈다. ‘군주의 분노는 곧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토마스 모어의 태도는 모든 것의 중심은 주님이신 하느님께 향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뛰어난 인문학자, 법률가, 한 나라의 대법관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세상 속에 깊숙이 관여한 토마스 모어의 삶은 세상 안에서 세상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은총 안에서 성화된 자유로움은 가정과 재물, 국가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았다. 세상 안에서 완덕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평신도 영성을 모범적으로 살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성인이다. 법률가,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그는 정당들이 주는 선물을 받지 않았고, 몰염치한 부자들을 부끄럽게 했고 가난하고 억울한 이들에게 법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판결했다고 한다. 사위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념이 잘 드러난다. “이 점 하나만은 자네에게 사나이의 일언으로 밝혀두고 싶네. 가령 어느 소송에서 옳은 판결을 바라고 법정에 온 사람 중 한편은 나의 부친이고 다른 한편은 악마라고 할 때 악마 측이 옳다면 악마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겠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다양한 길을 통해 완덕에 이를 수 있음이 언급됐다.( 「교회헌장 」 5장 참조) 이미 토마스 모어 성인은 평신도들이 가정과 직업과 사회생활 안에서 언제나 하느님 뜻에 따라 맡은 자리의 소명을 다하며 성화 되어야 함을 드러냈다.

‘혼자’가 일상이 돼버린 시대, 1인 가구 청년들은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그마저도 거르기 일쑤다. “귀찮아서”라는 괜찮은 척과 달리 곧 “세 끼 모두 잘 챙겨 먹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라고 말해 온다. 치솟는 물가에 기성세대가 한숨을 내쉴 때 사회초년생,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생활자, 구직자인 청년 세대는 체념을 내쉰다. 건강에 나쁜 줄 아는데 별수 없이 즉석식품으로 손을 뻗으며 “집밥을 먹고 싶어도 혼자 먹자고 한 끼 차리는 데 드는 품과 비용이 얼마나 큰지” 이해를 바랄 뿐이다. 평신도 공동체 한국 CLC(Christian Life Community)를 중심으로 한마음인 사람들이 세운 사회복지법인 ‘사랑의힘’(이사장 김연경 마리안나)은 주말일수록 부실하게 식사하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자 지난해 6월 청년 주말 식당 ‘청년공간 모락모락’(공간지기 신광식 알로이시오, 이하 청년공간)을 열었다. 8일 청년공간 첫 생일을 맞아, 청년들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는 무료 식사 나눔 현장을 찾아갔다. ■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환대 서울 곳곳에 시도 때도 없이 소나기가 내리던 8일 정오 무렵. 초여름 불청객 비가 말리는 주말 외출이지만 청년공간은 점심을 먹으러 온 청년들로 가득 찼다. 설거지, 반찬 채워넣기, 테이블 닦기로 여념이 없는 봉사자들은 “1시간도 채 안 돼 벌써 60명 넘게 다녀갔어요”라며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만면엔 미소가 넘쳤다. “늘 맛난 집밥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풍성하고 맛있었어요!” 메뉴는 언제나처럼 김치찌개 백반이지만 이날은 청년공간의 생일인 만큼 정성 담긴 반찬들이 곁들여졌다. 청년들은 김치찌개의 단짝 계란말이, 잔치날 빠질 수 없는 잡채, 열무, 오이, 무, 양파가 골고루 들어간 비타민 가득한 장아찌를 담아 가며 연신 “맛있어요”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봉사자들은 “많이 준비했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라며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후식으로 마련된 한입 크기 수박은 청년들이 여름을 반갑게 맞게 해주는 세심한 배려가 깃들었다. 봉사자들이 직접 구운 바나나 초콜릿 머핀도 잊지 않고 하나씩 챙겨줬다. 이렇듯 청년공간은 그 이름대로 환대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자리다. 따스하고 든든한 밥으로 사랑이 피어나는 즐거운 자리, 청년들 마음 안에 일어나는 좋은 생각들이 세상으로 ‘모락모락’ 퍼지길 바라는 진심이 가득 담겼다. 한국 CLC 회원들과 ‘사랑의힘’이 청년들과 동반하고자 3000원 김치찌개 식당을 연 것은 늘어나는 1인 가구 청년들이 마주한 식사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해서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끼니 당 평균 8537.1원, 독립 가구의 경우 9238원을 지출했다. 올해 적용 최저임금(9860원)을 고려하면 하루 3끼를 제대로 갖춰 먹기 위해 매일 3시간치 급여를 소모하는 셈이기에,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봉사자들은 “청년들이 밥을 굶는 일은 없더라도 다양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같은 조사에서는 음식의 양과 질에서 충분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청년들이 50.3%를 차지했다. 물가 상승 때문에 식비 지출을 줄이고자 저렴한 구내식당, 편의점 간편식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가격이 몇백 원씩 올랐다. 주말은 특히 구내식당이 문을 닫을뿐더러 청년들이 함께 식사할 동료가 없어 더더욱 식사를 거르게 된다. 봉사자들은 이렇듯 절박한 식사 문제에서 청년들이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길 바라며 토요일과 주일 점심•저녁 4끼 ‘환대’의 문을 열고 있다. 신광식 공간지기는 “식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위로의 힘이 있다”며 “청년들이 마음 편히 와서 따뜻한 밥을 통해 위로받고 어려운 조건들을 이겨갈 힘이 돼주고 싶다”고 전했다. ■ 교류할 수 있는 공간 청년공간의 취지는 단순한 주말 밥집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관계망을 맺는 거점이 되는 것이다. 1인 가구 청년들이 고시원, 원룸 등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 사람의 온기를 나눌 수 있도록 청년프로그램 ‘집밥클래쓰’, 자원 재순환 코너 ‘당근코너’를 열고 있다. 집밥클래쓰는 청년들이 직접 요리에 참여하고 함께 대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문강사의 시연 후 청년들은 3인 1조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며 대화를 나눈다. 돼지고기 토마토스튜와 두부 카프레제(카프리풍 샐러드), 가지덮밥과 가지새싹말이처럼 건강하면서 일상적이고 세련되기까지 한 요리를 가르쳐 준다. 청년들은 ‘나는 이렇듯 존중하고 대접할 만한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고 생활에서 쉽게 영양 균형을 챙기면서 동시에 소통하고 나누게 된다. 집밥클래쓰 1기에 참가했던 정정은(34)씨는 “건강하고 정성 담긴 요리를 배우는 것도 즐겁지만, 얼굴만 알던 단골 청년들과 말꼬를 트니 ‘혼자’를 수월히 극복해 낸 기분”이라며 “무기력하게 보내기 쉽던 주말이 즐거움으로 가득해졌다”며 웃어 보였다. 평신도 공동체 주축으로 뜻모아 고물가에 식비 부담 덜어주고자 인근 구내식당 문닫는 주말에 운영 요리 함께 배우며 소통하는 시간도 청년들만의 공유공간으로도 활용 당근코너는 청년들이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와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해 가는 코너다. 치약, 비누 등 생활용품, 햇반과 통조림 등 식재료처럼 여러 개로 묶어서만 팔아 1인 가구 입장에서는 곤란한 물품을 서로 나누면서 청년들은 “‘혼자’인 줄만 알았던 자신들이 얼마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였는지” 눈뜨게 된다. 김진희(베로니카) 총괄 매니저는 “주말에 진행되는 청년 프로그램은 적고 식사 관련 프로그램은 더욱 없다”며 “주말마다 상시 운영하는 청년공간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 청년공간 모락모락은 서울 시흥동에 있는 청년 주말 식당 및 공유공간 ‘청년공간 모락모락’은 여느 청년식당처럼 고기,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개 단품 메뉴를 재료 값에 준하는 최소 비용 3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콩나물무침과 계절 반찬으로 이뤄진 밑반찬 2개가 곁들여지고 공기밥은 무한 리필이다. 토·일요일 점심(오전 11시~오후 2시30분)과 저녁(오후 5시~8시30분) 총 네 끼를 제공한다.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청년들은 카페 등 공유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청년공간은 청년들의 욕구 파악에 중점을 두고 ‘테마가 있는 식사’와 밑반찬 만들기 강좌, 도시 텃밭 가꾸기 등 청년들이 관심을 갖는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을 계획 중이다. 또 생태가 청년에게 갖는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고 그들이 지역학교, 지자체, 복지기관 등에 강사로 파견될 수도 있는 ‘청년 생태환경 강사 양성과정’ 등 다양한 생태 청년 관련 양성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후원 계좌 국민 752601-04-336102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사랑의힘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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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해미순교자국제성지, 디지털역사체험관 개관

해미순교자국제성지(전담 한광석 마리아 요셉 신부)는 6월 11일 성지 본관 건물 옥상에 설치된 디지털역사체험관 개관식을 개최했다. 디지털 기술로 내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구현한 디지털역사체험관에서는 바닥과 벽면, 천장 등 네 면을 가득 채운 입체적 스크린에 천주교와 관련된 해미국제성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체험관에서는 내포 지역 소개 영상을 비롯해 내포 신자들의 모습을 디지털로 만날 수 있다. 또한 ‘사제 화가’인 조광호(시몬) 신부가 빛의 세계를 표현한 작품도 전시됐으며 앞으로 교회와 지역 작가들의 전시 기회도 넓혀갈 계획이다. 개관식에는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를 비롯해 이완섭 서산시장, 성일종 국회의원을 비롯한 기관장들과 지역민들이 참석한다. 내포 지역은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특히 해미읍성은 천주교 신자들을 문초하고 형벌이 이뤄진 장소였다. 병인박해(1866-1868) 때에는 수많은 신자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미순교자국제성지는 체험관을 통해 지식과 감성, 예술과 과학이 어우러진 콘텐츠를 소개, 현대인에게 울림을 전해주는 장소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이날 오후 7시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해미순교자국제성지 방문 10주년을 기념해 서산시와 함께 ‘KBS 열린 음악회’도 개최했다. 한광석 신부는 “체험관이 내포 지역에서 피어난 새로운 세상, 평등과 자유의 꽃을 피운 역사와 더불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월례미사로 청년 빈첸시안 저변 넓힌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이사회(회장 김인태 야고보)는 6월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소성당에서 제1회 청년 월례미사를 봉헌하고, 빈첸시안 청년 사도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미사에는 기존 빈첸시안 청년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 한국이사회 임원 등 30여 명이 함께했다. 미사를 주례한 빈첸시오회 청소년·청년 담당 이원석(베드로) 신부는 강론에서 “빈첸시안 영성은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삶을 살며 생활과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데 있다”며 “빈첸시오 성인이 여러분 마음속에 잘 스며들어 이 세상에서 좋은 청년으로서 나눔 활동을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열린 미사’로 봉헌됐다. 빈첸시오회에 따르면 청년 월례미사는 빈첸시안 청년뿐 아니라 모든 청년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돕기 위해서 기획됐다. 이를 토대로 청년들이 복음과 교회의 요구를 잇는 사도직 활동으로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다른 이들과 나누게 하기 위해서다. 또 장기적으로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빈첸시안 청년 사도직을 활성화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김인태 회장은 “바쁜 와중에도 토요일 오후 늦게 열린 미사에 함께해 줘서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 한국이사회 청년위원회가 다양한 프로그램도 하나씩 마련할 예정이니 편한 마음으로 월례미사에 함께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빈첸시오회는 지난 5월 18일 청년 포럼을 개최해 빈첸시안 청년활동 활성화 방안에 대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바 있다. 빈첸시오회는 회원의 고령화와 청년활동 위축의 원인과 개선점을 짚고, 2027년 세계청년대회에 빈첸시안 청년들이 대회를 활발하게 즐기고 참여할 방안을 고민했다. 이번 미사는 그 후속 결실로, 빈첸시오회는 매달 청년 월례미사를 봉헌할 예정이다. 다음 청년 월례미사는 7월 20일이고, 8월은 방학으로 쉰다. 미사 일정은 매달 첫째 주 서울대교구 주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2024 한반도 평화음악제’

남북관계가 갈수록 경색되고 있는 시점에 한반도평화를 염원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소장 강주석 베드로 신부)는 6월 15일 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2024 한반도 평화음악제를 개최했다. 음악제에는 전 의정부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를 비롯한 각 교구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참석해 다 함께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다. 특히 이번 평화음악제는 이기헌 주교의 저서 「평화를 주소서」의 내용을 담아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해 의미를 더했다. 「평화를 주소서」는 이 주교가 6·25전쟁을 겪은 가족의 경험에 영향받아 남북 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몸 바쳐 온 사목활동 여정과 영성을 담은 책이다. 음악제에는 수아비스 합창단, 서울 정릉4동본당 이냐시오 성가대, 가톨릭시니어합창단, 살루떼콰이어 합창단, 마니피캇 어린이합창단, 가톨릭국악합창단이 참가해 각 합창단만의 음악적 특색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했다. 또 평균 연령대가 가장 높았던 가톨릭시니어합창단부터 이번 음악제 최연소 출연자들로 이뤄진 마니피캇 어린이합창단까지 각양각색의 공연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각 합창단은 노래가 하나 끝날 때마다 「평화를 주소서」에서 알맞은 구절을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천천히 읊으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이 주교의 가치관과 영성을 관객에게 전했다. 이 주교는 음악제에서 “남북 갈등은 오늘 불린 노래 가사 중 하나인 ‘시대의 아픔’이기도 하다”면서 “남북 갈등뿐 아니라 남남갈등도 팽배해지는 요즘, 우리 모두 한 형제로서 대화를 나누고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교회 안에서부터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주석 신부도 인사말에서 “지금 사회에 평화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 많다 보니 오히려 평화가 정말 간절해졌다”면서 “많은 신자가 평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음악제를 준비했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원주교구 ‘최양업 신부님 시복 기원 순례 대축제’ 개최

원주교구는 6월 15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전구 기도의 날’을 맞아 ‘최양업 신부님 시복 기원 순례 대축제’를 개최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며’를 주제로 최양업 신부 선종 163주기에 열린 이날 행사에는 전국 각 교구 신자 14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기도하며 원주교구 백운성당에서 최양업 신부 묘소가 있는 배론성지까지 8.5km 구간을 도보순례한 뒤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기념 대성당에서 교구장 조규만(바실리오) 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 앞서 최양업 신부 시복을 기원하는 음악회도 열렸다. 전국 각 교구에서 새벽 이른 시간 백운성당에 집결한 신자들은 오전 7시30분 순례를 시작해 오후 1시경 배론성지에 도착했다. 신자들은 순례 중 조별 모임을 갖고 원주교구가 배포한 「최양업 신부님 시복 기원 순례 대축제」 책자를 읽으며 최양업 신부 생애를 공부하고, ‘최양업 신부님 따라 살기 결심 봉헌문’을 작성했다. 최양업 신부 시복 기원 음악회는 본래 배론성지 양업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날씨 관계로 최양업 신부 기념 대성당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됐다. 연주를 맡은 ‘제천 심포니 오케스트라’(단장 엄혜인 소피아, 지휘 최용석)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시복 기원의 취지를 살려 ‘주여 임하소서’,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등의 성가와 ‘자애로운 예수’(Pie Jesu), ‘가브리엘의 오보에’ 등을 연주해 감동을 선사했다. 조규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 가톨릭교회에는 보물들이 많지만, 성지순례도 보물 중의 하나”라며 “최양업 신부님의 묘소가 있는 배론성지는 많은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는 보물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양업 신부님 생각을 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신부님께서 활동 당시에 유일한 한국인 신부로서 하루에 50리, 100리 길을 매일 걸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찾아 다니셨다”면서 “우리가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것은 이미 하늘에 계신 최양업 신부님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자신이 더 부지런히 살자는 결심을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미사 중 ‘최양업 신부님 따라 살기 결심 봉헌문’을 봉헌했고,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원 ‘희망의 순례’ 목적지 30곳을 완주한 신자들에게 조 주교가 축복장과 기념품을 수여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해 축복장을 받은 순례자는 서울대교구 12명, 대전교구 10명, 수원교구 9명, 원주교구 16명 등 10개 교구 70명이다. 수원교구 순례단을 인솔해 ‘최양업 신부님 시복 기원 순례 대축제’에 참석한 ‘103위 성지순례단’ 서동수(마르코·72) 단장은 “최양업 신부님을 본받고 싶어 오늘 행사에 단원들과 함께 참석했다”며 “전국의 더 많은 신자들이 ‘희망의 순례’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구 간에 협력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합

“초막 짓고 하느님께 감사기도 드려요”

6월 15~16일 1박2일간 대구 주교좌범어대성당(주임 최환욱 베다 신부) 광장에 40여 개의 텐트가 설치됐다. 본당 주일학교 유치부부터 초등부 2학년까지 학생들과 그 부모가 참여한 ‘초막절 캠프’ 야영 행사를 위해서였다. 행사에 참여한 30가정과 봉사자들은 15일 오후 4시 어린이 미사를 봉헌한 뒤 다음날 오전 9시까지 기도하고 즐기며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날들에 감사드렸다. 초막절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축제에서 유래한다. 구약시대에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서 초막을 지어 살았던 유다인들은 지금도 하느님의 도우심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초막절을 지내고 있다. 이번 초막절 캠프 역시 성가정이 모여 매 순간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초막의 의미로 텐트를 대신 세워 진행된 야영 행사에서 참여 가정들은 함께 기도하고 친교를 나눴다. 가족들은 그동안 부족했던 대화를 나누며 정을 키워갔다. 15일 저녁시간 동안 성당 내 공연장 ‘드망즈홀’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영화가 상영됐다. 성당 내 친교 공간 ‘꿈자리’와 소광장에서는 부모들을 위한 바비큐 파티가 마련됐다. 행사를 준비한 황태훈(빅토리아노) 청소년위원장은 “여름 신앙학교에 함께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어린이들에게 성당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며 “교구가 ‘친교의 해’를 보내는 이 시기에, 가정이 함께 친교를 나누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목 어때요] ‘희망의 순례’ 앞장서는 서울 창4동본당

서울 창4동본당(주임 도창환 스테파노 신부)이 본당 차원에서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희망의 순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창4동본당은 최양업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2016년 4월 가경자(可敬者)로 선포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복자품에 오르지 못하고 있어 본당 핵심 사업의 하나로 희망의 순례 참여를 시행하고 있다. 본당 주임 도창환 신부의 독려, 사목회(회장 김창화 플로렌시오)의 치밀한 준비,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어우러지면서 창4동본당 안에는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향한 열기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본당은 지난 5월 16일 최양업 신부 탄생지인 대전교구 청양 다락골성지 새터, 최양업 신부가 1850년 국내에서 첫 편지를 쓴 부여 도앙골성지 그리고 황석두(루카) 성인의 안장지였던 삽티성지를 1차로 순례했다. 순례에는 도 신부와 베드로지역(청솔·쌍용·현대 구역) 구역장, 반장, 단체장 등 40명이 참여했다. 본당은 1차 순례를 앞두고 희망의 순례 안내 책자인 「희망의 순례자」를 구입해 신자들에게 나눠 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기도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한 전구기도 안내서’ 등도 신자들에게 배포했다. 또한 최양업 신부에게 전구 기도를 해야 하는 사유와 희망의 순례 준비 사항을 안내한 ‘희망의 순례자 성지순례 준비’ 인쇄물을 본당 자체적으로 제작했다. 김창화 사목회장은 “최양업 신부님 시복을 위해 필요한 기적 심사가 교황청에서 통과되지 못해 새로운 기적이 필요하고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신자들이 전구 기도를 바쳐야 한다”며 “신자들이 희망의 순례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전구 기도의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4동본당 1차 희망의 순례에 참여한 구역장과 반장, 단체장 등은 순례 경험을 토대로 구역과 단체, 가족, 지인 단위로 희망의 순례 목적지인 최양업 신부 관련 성지와 교우촌 30곳을 지속적으로 순례하고 있다. 본당은 순교자 성월인 9월에는 바오로지역(17·18·19구역, 동아구역) 구역장·반장, 단체장 40명과 함께 2차 희망의 순례를 계획하고 있으며, 내년 9월까지 본당 차원 희망의 순례를 지속할 예정이다. 특히, 내년 9월에는 본당 전 신자가 최양업 신부 묘소가 있는 원주교구 배론성지로 희망의 순례를 떠나 순례지 30곳을 완주한 신자들은 그날 완주 축복장을 받게 된다. 김 회장은 “최양업 신부님 시복은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라며 “다른 본당들도 희망의 순례에 적극 참여하고 전구 기도에 힘씀으로써 서울에서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리는 2027년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는 기회에 최양업 신부님 시복도 이뤄진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