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너른 평야를 지난 것이 불과 10여 분 전인데 어느새 깊은 산 속에 들었다. 일대 가장 깊은 산골짜기라 하더니 자동차로 오르는데도 만만치 않다. 가파른 오르막을 서너 차례 힘겹게 지나 고개 정상에 올랐다. 경기도 안성과 충북 진천을 잇는, 돌배나무가 많던 이 고개를 예로부터 배나무 고개, ‘배티’(이치, 梨峙)라 불렀다. 도로가 나기 전에는 첩첩산중이었던 고개 바로 아래 청주교구 배티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배티성지는 박해시기 교우촌이자 복자 오반지(바오로) 등 유명‧무명 순교자들의 묘를 모신 순례지다. 무엇보다 배티성지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한국교회가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다. 1849년 사제품을 받은 후 조선에 돌아온 최 신부는 1853년부터 3년간 이곳을 사목 중심지이자 본당으로 삼아 교우촌 순방에 나섰다. “제가 담당하는 조선 5도에는 매우 험준한 조선의 알프스 산맥이 도처에 있습니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마다 조금씩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사나흘 기를 쓰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 봐야 고작 40명이나 50명쯤 되는 신자들을 만날 뿐입니다.”(1851년, 최양업 신부의 여덟 번째 서한) 성지 입구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 기념성당’을 곁에 두고 언덕을 오른다. 갓과 지팡이, 짚신에 괴나리봇짐. 먼 길 나서는 양반 차림새의 최양업 신부 동상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차림 그대로 그는 ‘길에서 살았고 길에서 하느님을 만난’ 목자였다. 무려 12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 교우촌을 찾았다. 관할 교우촌만 127곳, 해마다 7000리(2800km)를 걸었다. 밀고자의 눈을 피해 한겨울 신자 집에서 쫓겨나 맨발로 산야를 헤매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몸소 따른,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순교의 삶이었다. 가경자를 ‘땀의 순교자’, ‘길의 순교자’라 부르는 이유다. 언덕을 다시 내려와 ‘순교현양’ 글귀 새겨진 커다란 비석을 끼고 양업교를 건너면 ‘최양업신부박물관’이다. 외관은 신학생 최양업이 동료 김대건(안드레아), 최방제(프란치스코)와 함께 유학했던 마카오 파리 외방 전교회 극동 대표부 건물과 인근 성 안토니오 성당을 재현해 놓았다. 전시실을 따라 한국교회 박해사,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사목활동, 저서와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박물관 곳곳에 놓인 둥글둥글한 모양의 백색 의자는 최양업 신부의 땀을 상징한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봇짐 짊어지고 양 떼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나서는 최양업 신부의 전신 초상화에 눈길이 멈췄다. 사목 여정 후 교우촌 앞에 이르러 늘 십자성호를 긋고 큰절을 올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복음화를 위해 온 몸을 던진 목자의 깊은 신심과 희생을 마음에 새긴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에게 시복 시성의 은혜를 허락하시어 그에게 주셨던 굳건한 믿음과 온전한 헌신의 정신을 본받아 오늘 저희도 한마음으로 복음을 살고 전하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 기도문)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고,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죽고 함께 묻히는 것이 소망입니다.”(1846년, 최양업 신부의 세 번째 서한) ◆ 순례 길잡이 배티성지(www.baeti.org,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배티로 663-13)에서 313번 지방도를 따라 경기도 안성 쪽으로 향하다 보면 도로 우측으로 최양업 신부 옛 성당이 복원돼 있고, 고개를 더 오르면 복자 오반지 묘, 무명 순교자 6인묘·14인묘를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성지에는 최양업 신부 탄생 기념 성당에서 출발해 산상 제대, 복자 오반지 묘와 무명순교자묘, 옛 성당 등을 걷는 총 3.8km 코스의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걷는 순례길’을 비롯해 4개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한국교회는 올해부터 최양업 신부의 선종일인 6월 15일을 가경자의 시복 시성을 기원하는 ‘전구 기도의 날’로 지낸다. 특별히 위중한 질병을 앓고 있는 본인, 가족, 친구, 지인 등의 기적적 치유를 위해 기도해 주도록 최양업 신부께 전구를 청하면 된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배티성지 등 가경자 관련 성지에서 구체적인 사람의 치유를 지향으로 주모경, 묵주기도 등과 함께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 기도문’을 바치는 것이 좋다. ※ 성지 미사 : (월요일 제외) 매일 오전 11시 ※ 순례 문의 : 043-533-5710

“건청인들과 소통이 어려운 농인들에게 소통의 중재자뿐 아니라 웃음을 전파하는 ‘해피바이러스’가 되어주는 것이 꿈이죠.” 농(聾)통역사 정원철(레오·45·서울 개봉동본당)씨는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 레크리에이션 지도사로 20년째 활동하고 있다. 건청인들과 아무 차이 없이 수강하고 시험을 치러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1급 자격을 따낸 정씨는 지난 2일 한국가톨릭 농아인의 날 행사에서처럼, 교회 안팎으로 전국 농인 관련 행사와 모임에서 농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농인을 위한 전문 레크리에이션 지도사가 없었기 때문”에 정씨는 꿈을 꾸게 됐다. 실제 농인이면서 자격증을 지닌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건청인 지도사들이 펼치는 레크리에이션은 농인들과의 웃음 코드에 맞지 않아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시각적 언어인 수어를 모어로 해 눈에 보이는 정보에 크게 의존하는 농인들의 특성을 건청인들은 충분히 헤아리기 어렵다. 정씨는 “이처럼 웃을 기회에서 소외된 농인들이 진정으로 공감하고 웃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고 밝혔다. “문맹이거나 표준 수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등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농인들의 말을 알아듣고 표준 수어로 바꿔 수어통역사에게 전달하는 농통역사의 ‘중개자’ 역할과 상통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한 진심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레크리에이션 관련 자료는 건청인 중심으로 마련돼 있었고, 한국어를 제2언어로 하는 농인의 높지 않은 문해력은 학습에 발목을 잡았다. “농인에 맞는 콘텐츠와 게임을 연구할 때도 혼자서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씨의 회상대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성격과 재능을 다른 농인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극복의 힘이 됐다. “원래 위트를 즐기고 유머러스한 성격이에요. 그러한 탈렌트도 봉헌하고 농인들만의 문화와 방식에 맞게 나름대로 연구한 걸 바탕으로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니까 다들 ‘너무 속 시원하고 좋다’고 반응해 주시더라고요. 하느님께서 저를 이렇게 쓰시려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빚으셨나 싶어요.” 고령이 무색하게 앞으로 뛰어나와 즐겁게 참여하던 어르신들, 지적장애까지 있음에도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라와 주던 젊은 친구들…. “우울했던 분위기가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자 신나게 흔드는 몸동작과 환호로 밝아지는 걸 보면 나도 생명의 기운을 함께 느끼고 힘을 얻는다”고 정씨는 고백했다. 이렇듯 충만한 보람이 주어지기에 그만의 노하우도 쌓였다. 관중이 프로그램을 건조하게 느끼지 않도록 제스처와 표정에 익살을 싣는 법,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쉽게 흥미를 끌 수 있는지 등 건청인 지도사는 알 수 없는 독자적 요령이 자연스레 터득됐다. “레크리에이션은 성당에서 하느님, 교우들과 대화하며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신앙생활과도 같다”는 정씨. 그는 “레크리에이션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가 함께 웃음으로써 한 공동체에 있음을 느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와 교회도 레크리에이션처럼 다름과 차별을 딛고 함께 웃으며 연결감을 느끼는 터전이 되길” 희망했다. “비장애인 중에도 여러 형태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차별 없이 서로 어울리며 함께 ‘하하’하고 웃는 공동체를 이뤄 살았으면 좋겠어요.”

6월 15일은 한국교회가 시복 시성을 추진하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토마스·1821~1861년)의 선종 163주년 기념일이다.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올해 3월 열린 춘계 정기총회에서 최양업 신부의 선종일을 신부님의 시복 시성을 기원하는 ‘전구 기도의 날’로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시복 시성을 꾸준히 추진해 왔으나 가경자의 신앙과 영성을 오롯이 따르며 살지 못했다는 반성 그리고 시복을 위한 전구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성찰에 따른 것이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는 전구 기도의 날을 맞아 발표한 담화를 통해, “전구 기도를 바치는 오늘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고자 온 힘과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온 삶을 길 위에 쏟아부으신 최양업 신부님의 숭고한 신앙을 깊이 생각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최양업 신부 선종 163주년 기념 담화 바로가기) 주교회의가 발행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 시성을 위한 전구 기도 안내서」를 바탕으로 ‘길 위의 목자’이자 ‘땀의 순교자’였던 최양업 신부의 생애와 시복 절차, 전구 기도 방법, 최양업 신부 관련 성지를 소개한다. ■ 최양업 신부의 생애 최양업 신부는 1821년 3월 충남 청양 다락골의 새터 교우촌에서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과 이성례(마리아) 복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 때인 1836년 김대건(안드레아), 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조선 교회 첫 신학생으로 선발돼 그해 12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났고, 1844년 12월 김대건 신학생과 함께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다. 먼저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지 1년 만인 1846년 병오박해로 순교하자, 최양업 부제는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이후 최양업 부제도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같은 해 12월 고국 땅을 밟았다. 최양업 신부는 귀국하자마자 흩어지고 길 잃은 양들을 찾아 전국 120여 개의 교우촌 순방을 시작했다. 12년 동안 해마다 7천 리(2,800km)가 넘는 길을 쉼 없이 걸으며 사목했고, 휴식 기간에는 한문 교리서와 기도서를 한글로 옮기고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수집했다. 최양업 신부는 1861년 여느 때처럼 사목 방문을 다 마친 다음 서울에 있는 베르뇌 주교에게 성무 집행 결과를 보고하고자 길을 나섰다. 그러나 계속된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쳐 1861년 6월 15일 40세의 나이로 선종했고, 그해 11월 제천 배론에 안장됐다. ■ 최양업 신부의 시복 절차는 지금 어느 단계인가 최양업 신부의 시복 안건은 2001년 시작돼 2016년 교황청 시성부의 성덕 심사를 마쳤다. 2016년 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양업 신부를 가경자(可敬者, Venerable, 복자 전 단계)로 선포했다. 현재는 기적 심사 단계에 있다. 순교자의 경우에는 성덕 심사를 통과하면 복자로 선포되지만, 최양업 신부처럼 증거자인 경우에는 성덕 심사 이후에 기적 심사를 거쳐야 한다. ■ 기적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최양업 신부에게 전구(轉求, Intercession)를 청해 얻은 다양한 은총 체험 중 특히 기적적으로 치유된 사례를 수집하고 입증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적 치유라는 사실의 입증을 위해서는 질병의 심각성과 치료 이력에 대한 의학 자료가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초자연적인 치유라는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 전구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전구 기도’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행위이며 ‘모든 성인의 통공’을 표현하는 탁월한 기도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35항 참조). 우리가 바라는 바를 성모님과 성인, 복자 등을 통해 하느님께 전달하는 전구 기도는 ‘중재 기도’라고도 한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구 기도는 성모님께 청하는 기도(“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다. 전구 기도는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승이며 선물이다. 전구 기도를 통해 지상의 순례자인 우리, 죄의 용서와 정화가 필요한 죽은 이들, 하늘에 있는 복된 분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돼 하나의 교회를 이루면서 자신의 선행과 공로를 나누고 기도 안에서 영적 도움을 주고 받게 된다. 교회를 ‘친교와 일치의 공동체’로 이해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공동체의 기도로 전구 기도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회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전구 기도를 바치고 다른 이를 위해 청원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2020년 12월 16일, 수요 일반 알현 말씀 참조). ■ 최양업 신부에게 청하는 전구 기도는 어떻게 바치나 특별히 위중한 질병을 앓고 있는 본인, 가족, 친구, 지인 등의 기적적 치유를 위해 기도해 주시도록 최양업 신부께 전구를 청하면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는 항구한 기도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도 가능하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신부님 관련 성지에서, 구체적인 사람의 치유를 지향으로 주모경, 묵주기도 등과 함께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 기도문’을 바치는 것이 좋다.(▷‘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시성 기도문’ 바로가기) ■ 최양업 신부의 전구로 인한 치유의 은총 체험이 있다면 관련 성지 담당 신부나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02-460-7665·7669)로 연락하면 된다. < 최양업 신부 관련 성지는 > ※ 각 성지를 클릭하면 성지 홈페이지 또는 소개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대전교구 다락골성지 ▷ 안동교구 진안리성지 ▷ 원주교구 배론성지 ▷ 청주교구 배티성지 ▷ 청주교구 멍에목성지 ▷ 최양업 신부 관련 수원교구 성지 안내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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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소에너지 계획에 ‘핵’ 포함? “약자 희생으로 얻는 전기는 그만!”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3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했다. 향후 15년(2024~2038년)의 전력 수요 전망과 발전소 건설 계획 등을 담고 있는 실무안은 2038년 최대 전력수요를 129.3GW로 전망하면서 설비를 157.8GW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 안에는 대형 원전 3기·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등 4기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실무안이 발표된 뒤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사회교리실천네트워크 등이 포함된 223개 시민·환경단체는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을 맞아 지난 6월 8일 ‘다시 타는 밀양희망버스’를 출발시켰다. 행사에 모인 1500명의 시민들은 ‘신규핵발전소 건설,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석탄화력발전소 등 초고압 송전탑을 확대하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폐기’를 촉구했다. 전기를 전달하기 위한 송전탑 건설로 희생된 밀양주민들을 아픔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 무탄소에너지 70% 달성의 이면 전기본은 2038년 최대 전력수요를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 전기화 수요 등의 증가 요인을 반영해 129.3GW로 산정하고 있다. 설비는 157.8GW까지 늘리겠다는 게 실무안의 요지인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2038년 추산되는 확정설비 147.2GW에 10.6GW가 추가로 필요하다. 전기본 실무안에는 “첨단산업, 데이터센터 등 전력수요 변화요인을 체계적으로 반영하고 검증 가능한 수요관리 수단을 도입함으로써 미래 수요를 최대한 과학적으로 전망했다”며 “공급에 있어서는 무탄소전원의 큰 축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 있는 확대를 도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늘린다고 밝힌 가운데, 구체적으로 태양광은 2022년 21.1GW에서 2038년 74.8GW로, 풍력은 1.9GW에서 40.7GW로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석탄 발전량은 2030년 111.9TWh(17.4%)에서 2038년 72TWh(10.3%)로 줄어든다. 전기본은 “2038년에는 신규원전이 진입하고 수소발전이 보다 확대되는 한편,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발전도 대폭 증가하면서 23년 40%에 못 미쳤던 무탄소에너지(CFE)의 비중이 70%에 달하여 본격적인 무탄소에너지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정부, 전력수급기본계획 발표 석탄 줄이고 재생에너지 늘려 무탄소에너지 70% 약속했지만 핵발전소 확대도 포함돼 논란 무탄소에너지가 확대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에 핵발전소가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에 환경시민단체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핵발전은 이미 건설계획이 확정된 4기(새울 3·4호기, 신한울 3·4호기) 외에 SMR 실증 원전(0.7GW) 1기와 최대 3기(4.2GW)의 대형 핵발전소 건설이 제시됐다. 계획대로라면 핵발전 비중은 2030년 31.8%에서 2038년 35.6%로 상승한다. 이밖에 2038년에는 신재생 32.9%, LNG 11.1%, 석탄 10.3%, 수소·암모니아 4.4% 등의 전력믹스를 예상하고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총괄위원장인 정동욱 중앙대 교수 “재생에너지를 제외한 무탄소 전원 중 가장 경제적이라고 평가되는 대형 핵발전으로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개된 실무안을 바탕으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포함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안을 마련하고, 전기사업법에 따른 공청회, 국회상임위원회 보고 등을 진행한 후 전력정책심의회의 심의를 통해 제11차 전기본을 확정할 계획이다. ■ 누군가의 눈물로 만들어진 전기 제11차 전기본을 규탄하는 밀양희망버스는 송전탑이 줄지어 있는 밀양과 청도 일대를 달렸다. 이들은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 없이 핵발전소와 초고압 송전선로 인근 주민들의 희생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전력수급 시스템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며 “에너지 생산, 수송, 소비에 걸친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핵발전소 확대로 무탄소에너지 70%를 달성한다는 계획의 이면에는 과연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일까? 주교회의가 발간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핵기술이 생명권과 환경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특히 핵연료 냉각을 위한 온배수 다량 방출, 남는 전기 발생으로 인한 에너지 과소비와 낭비, 대형 송전탑 세우는 과정에서의 환경훼손,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환경유해물질 등이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킨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핵발전소를 세우고 전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구조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다. 핵기술, 생명권과 환경권 침해 핵연료 처리 과정서 공해 발생 외곽서 도심으로 전기 옮기며 가난한 이들 오롯이 피해 입어 “핵발전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 풍요로움이 자본과 결합한 일부 사람들의 권리를 실현시켜 줄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인류와 더 나아가 미래의 세대는 그 풍요로움에서 배제돼 있다.”(120항) “핵산업과 관련된 법률은 발전 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시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독점 사업에 가까우며 사법 체계는 이익과 공통의 공정한 분배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죄의 구조로 전환될 위험성이 높다”(141항) 월성핵발전소 제한구역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주민 황분희씨는 “피해를 주는 사람도 피해를 주는 회사도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지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며 “다른 지역에서 쓸 전기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황망할 따름이다”라고 밝혔다.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 암투병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 이어가는 다섯 식구

20여 년 전, 부산에 살았던 이선화(세라피나·50)씨는 주보에서 음성 꽃동네 봉사자 모집 소식을 보고 그 길로 음성으로 향했다. 매주 부산에서 음성까지 오가며 봉사하는 마음씨 고운 처녀에게 꽃동네 직원이었던 민영기(요한 보스코·50)씨는 마음을 빼앗겼다. 꽃동네 봉사자와 직원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2007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열심한 신앙생활은 이들의 가정을 풍요롭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늘 기도하며 하느님과 함께한 부모의 모범은 자녀들에게 전해졌고, 17살, 15살, 12살 세 아이는 청주교구 덕산본당(주임 김광현 이냐시오 신부)에서 복사단장과 부단장, 단원으로 활동하며 본당 신자들에게 귀감이 됐다. 세 아이를 키우며 민씨 가정에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련에 부딪칠 때마다 민씨는 “주님께서 내게 이런 일을 주신 뜻이 있지 않을까”라며 열심히 살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21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설상가상 민씨의 수술이 끝나고 한시름 덜어낸 순간, 부인 이선화씨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남편이 암 진단을 받은 지 3년 만이다.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가장 역할을 했던 이씨는 아파트 청소일을 하는 와중에도 주일이면 제대봉사와 성가대, 레지오 활동을 쉬지 않았다.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민씨의 가정을 잘 알고 있는 신자들은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을 모았다. 항암치료를 받는 1년 동안 민씨의 몸무게는 10kg이상 줄었다. 면역력이 약해져 예전과 같은 체력이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부인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지난달부터 아픈 몸을 이끌고 꽃동네에서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지는 월급은 130여 만 원에 불과하다. 아끼고 아껴 다섯 식구가 쓰는 한 달 생활비는 250만 원 정도. 운동신경이 좋아 체대를 가고 싶어하는 첫째가 생전 처음 “학원에서 영어와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지만 “EBS를 보며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찢어졌다. 지난 2월 항암치료에 들어간 이씨는 아직 여러 차례 더 치료받아야 한다. 임대아파트 대출금도 600여 만 원이 남아있는 상황에 민씨의 아르바이트 수입만으로 다섯 가족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민씨의 가족은 절망보다는 하느님이 베풀어 준 은총에 대한 감사함을 기억했다. 민씨는 “나와 집사람이 아프고 나서 작은 것이라도 나눠주려고 애써 주시는 본당 신자분들의 따듯한 마음에 큰 위로를 얻었다“라며 “이렇게 가톨릭신문에서도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보내 주신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부부가 건강해져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널리 퍼뜨리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성금계좌 - 예금주 (재)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 우리은행 1005-302-975334 국민은행 612901-04-233394 농협 301-0192-4295-51 ◇ 모금기간: 2024년 6월 12일(수) ~ 7월 2일(화) ◇ 기부금 영수증 문의 080-900-8090 가톨릭신문사(기부금 영수증은 입금자명으로 발행됩니다.)

정일우 신부 선종 10주기,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물렀던 영성 그리며

‘빈민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예수회의 고(故) 정일우 신부(John Vincent Daly·1935~2014)의 선종 10주기를 기리며 빈민사목의 역사와 현재를 되짚는 자리가 마련됐다.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소장 박상훈 알렉산데르 신부)는 6월 8일 서울 마포구 예수회센터 이냐시오 카페에서 정 신부 10주기 추모행사 ‘정일우의 시간, 정일우의 자리’를 열었다. 행사 초대손님으로는 정 신부의 동료였던 고(故) 제정구(바오로) 의원의 부인 신명자(베로니카) 복음자리 이사장, 서강대 명예교수 조현철(프란치스코) 신부, 예수회 재무담당 전주희(바오로) 수사가 함께했다. 행사 진행은 센터 소장 박상훈 신부가 맡았다. 또 예수회 박문수 (프란치스코) 신부를 비롯한 성직자·수도자와 평신도들이 정 신부가 빈민들과 함께한 시간을 되새기기 위해 함께했다. 추모행사는 다큐멘터리 영화 ‘정일우의 시간, 정일우의 자리’를 상영하고, 정 신부와 특별한 인연을 맺은 이들이 정 신부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신명자 이사장은 나눔에서 “정 신부님은 어떤 사람이든지 사랑으로 대하셨다”면서 “신부님의 영성은 빈민들과 ‘함께’하시며 빈민의 삶에 직접 녹아 들어가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 빈민사목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오갔다. 조현철 신부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현 자본·개발 중심의 사회 구조 자체가 바뀌는 건 불가능하다”며 “정일우 신부님이 그랬듯 빈민이 공동체를 만들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연대해 빈민 문제를 세상에 알리며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일우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1960년 한국에 입국, 서강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1973년 청계천 판자촌을 시작으로 서울 양평동, 상계동 등 판자촌에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단순한 사목을 넘어 빈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국가와 지자체의 개발 중심 도시운영에 대항해 왔다. 특히 쫓겨날 처지에 놓인 빈민들의 이주를 주도해 복음자리마을, 목화마을 등을 건립했다. 정일우 신부는 2014년 6월 2일 선종했다.

예수 수도회 한국관구, 한국 진출 60주년 기념 미사

예수 수도회 한국관구(관구장 장영선 힐데가르트 수녀)가 한국 진출 60주년을 기념하며 6월 6일 대전 예수 수도회 교육센터에서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대전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와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함제도(제라르도) 신부를 비롯해 30여 명의 사제들이 공동 집전했으며 예수 수도회 회원과 수도회 은인, 예수수도회 협력회‧벗회 회원 등 450여 명이 함께했다. 미사 전, ‘여성 교육의 선구자이자 예수수도회 창립자인 가경자 메리 워드’의 동상 제막식도 대전 성모여자고등학교 정원에서 진행했다. 미사를 주례한 김종수 주교는 “하느님 아버지 나라의 구현과 각 수도회의 카리스마의 실현은 수녀님들이 만나는 이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며 “우리가 카리스마를 충실하게 잘 살면 우리의 연약함을 채워주시고 성소자의 부족함도 하느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맞갖은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격려했다. 한편 로마 총원에서 베로니카 푸만 총원장 수녀와 강진희 참사 수녀가 참석했으며 60년 전 한국 땅에 수도회가 정착하도록 도운 독일 중유럽 관구 수녀들과 호주인 로레토 수녀도 한국 진출 6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총원장 베로니카 수녀는 “한국 수녀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이제는 한국 관구가 전체 예수 수도회 중 두 번째로 크게 성장했다”면서 “오늘의 이런 기쁨과 감사가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주고 이에 따라 하느님의 도우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 전적인 투신과 사도적 열정으로 우리의 미래를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예수 수도회는 1609년 영국인 가경자 메리 워드가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라 창립한 최초의 여성 활동수도회로 성 이냐시오가 설립한 예수회 행동양식과 영성에서 수도회 비전의 영감을 받았다. 예수 수도회 한국진출은 예수회 고(故) 박고영(토마스) 신부가 1955년 독일 수녀들의 교육사업을 보고 돌아와 교량 역할을 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대교구장 고(故) 노기남(바오로) 대주교의 공식적인 초대로 한국에 진출한 예수 수도회는 1966년 가톨릭 학교가 없었던 대전 지역에 성모초등학교와 성모여자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사도직으로 활동 문을 열었다. 1969년에는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해 지역사회 여성 교육에 주력했다. 예수 수도회 한국관구는 교육과 선교, 의료복지, 영성에 집중해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해외 교포사목을 비롯해서 중국, 몽골, 필리핀, 미얀마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종합

대구 내당본당, 공의회 정신 담긴 옛 성당 복원

성당 한가운데에 낮게 위치한 제대, 천창(天窓)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제대를 비추면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구 내당본당(주임 박장근 베드로 신부)의 옛 성당 모습이 다시 복원됐다. 내당본당은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 주례로 사제단과 신자들의 축복 속에 6월 8일 오전 10시 복원성당 봉헌미사를 거행했다. 1966년 처음 세워졌던 내당성당은 신자들이 정사각 형태로 제대를 둘러서서 미사를 드리는 구조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독창적으로 표현했던 옛 성당은 부득이하게 1988년 신자들이 제대를 바라보고 미사에 참례하는 일반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옛 성당에 대한 공동체의 그리움으로, 2022년 박장근 신부가 조환길 대주교에게 청원하고 교구가 승인하면서 건립 58년, 리모델링 36년 만인 올해 성당을 복원할 수 있었다. 복원성당 봉헌예식은 머릿돌 축복과 성당 열쇠 전달 및 개문(開門)으로 시작됐다. 문이 열리며 복원성당으로 들어간 사제단과 신자들은 성찬 전례 전까지는 불이 꺼진 채 예식에 참례했다. 천창으로 내려오는 빛 아래 조환길 대주교는 본당 주보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유해를 안치했다. 이어 제대와 성전 벽, 기둥에 성수를 뿌리고 도유와 분향을 했다. 축성된 제대 위에 제대포를 깔고 제구와 초 등을 놓으면서 성당에도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조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1코린 3,16)라는 바오로 사도의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이 성당에서 늘 기도드리고,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빈다”고 말했다. 조 대주교는 이어 “본당 주보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중재에 따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내당성당을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인의 정신으로 살 수 있도록 다짐하자”고 당부했다. 1962년 준본당으로 시작한 내당공동체는 당시 주임을 맡았던 오스트리아 출신 서기호 신부(루디·Rudolf Karanewitter)의 모금 노력으로 1966년 본당 설립 후 새 성당을 완공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와 잘츠부르크대교구의 후원으로 지어진 내당성당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오토카 울(Ottokar Uhl·1931~2011)의 설계로도 국내외 건축학자들에게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6·25전쟁 직후 가난에 허덕였고, 한센인들이 밀집해 있었던 당시 지역 상황을 고려한다면 1966년 내당성당 건축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내당성당은 불편한 냉난방 시설과 조명, 늘어난 신자들 수용 문제로 1988년 리모델링하게 됐다. 이후에도 노후화로 대대적인 공사가 불가피했던 공동체는 본래 성당 모습으로의 복원을 숙원사업으로 정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이번에 복원성당을 봉헌할 수 있었다.

서울 여의도동본당, 카메룬교회와 ‘나눔’으로 50주년 기념

서울 여의도동본당(주임 주경수 세바스티아노 신부)은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아 6월 9일 성당에서 카메룬 바피아교구장 에마뉘엘 다시 유팡(Emmanuel Dassi Youfang) 주교와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욥) 주교 초청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는 구 주교의 초대로 방한한 유팡 주교에게 본당 신자들이 모은 후원금을 전하는 자리로 열렸다. 본당은 도움이 필요한 세계교회를 위한 사랑나눔으로 50주년을 뜻깊게 축하하고자 유팡 주교가 추진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목센터(Le Centre Pastoral Saint Andrea Kim) 건립 후원금을 올해 4월부터 모았다. 인구 40%가 가톨릭신자이지만 열악한 경제로 선교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카메룬교회, 사제관도 없이 매일 10개 넘는 공소를 오토바이를 타며 돌보는 바피아교구의 사제·수도자들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미사 중 거행된 환영식에서 유팡 주교에게 전달된 후원금은 8만 유로(한화 1억2114만8000원가량)다. 본당은 또한 바피아교구 신자들을 위해 쓰지 않고 남는 묵주를 모으거나 손수 묵주를 만들어 선물하는 ‘사랑의 묵주 나누기’도 펼쳤다. 이웃 본당 신자들도 동참해 모인 2458개 묵주는 이날 유팡 주교에게 후원금과 함께 전달됐다. 유팡 주교는 환영식에서 “50주년 생일 축하의 뜻을 지구 반대편 교회를 위한 더 큰 사랑으로 나눠주신 본당 신자들의 열정이 크나큰 도움이 됐다”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감사를 표했다. 구 주교는 “이날 미사로 피부색과 언어를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소중한 인연”이라며 “오히려 본당 신자들이 선물을 받은 기분일 것”이라고 화답했다.

대전 삽교본당, 앙드레 부통 신부 제단화 복원

대전교구 삽교본당(주임 최일현 루카 신부)이 예술 선교에 매진했던 앙드레 부통 신부의 제단화에 복원 작업을 6월 10일 시작했다. 삽교본당 제단화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앙드레 부통(Andre Bouton·1914~1980) 신부가 1968년경 그린 것으로 희귀성과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삽교본당은 지난해 9월 성당 벽면 페인트 작업을 위해 도색을 제거하던 중 성화를 발견했다. 이에 내포교회사연구소와 인천가톨릭대학교 정수경(가타리나) 교수에게 조언을 받아 복원 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복원 비용은 예산군이 지원하며 복원이 완료된 후 제단화를 보존하기 위한 절차를 추진할 예정이다. 앙드레 부통 신부는 1960년대부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화가로 활동했던 프랑스인 사제다. 1970년대 중반 한국을 떠날 때까지 10여 년간 전국 각지의 성당에 벽화를 제작했으며 판화, 도자기 작품도 남겼다. 특히 한국인과 한국의 풍습 등을 담은 그의 작품을 통해 선교지에 대한 애정과 한국 고유의 색채를 담아내고자 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앙드레 부통 신부의 작품은 전국에 20여 점이 남아있으며 2020년 5월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은 성당 안에 있는 부통 신부 벽화 8점을 복원해 총 10점을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