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은 미국 정부를 거대한 괴물로 변모시켰다. 이 괴물은 잔인하고, 때로는 비도덕적이며 불법적인 수단으로 권력을 강화한다. 그 존재 목적은 트럼프와 소수의 부유층을 보호하고 그들의 부를 더 많이 늘리는 데 있다.
수많은 빈곤층 미국인을 위한 핵심 보건 프로그램들은 위협받고 있으며, 질병과 기후변화 등 주요 위기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해고당했다. 산불, 폭풍, 홍수에 대한 재난 대응도 예산과 인력의 대폭 감축으로 오히려 재난이 되고 말았다. 세계 빈곤 지역에 대한 원조는 아무런 경고나 설명, 대안 없이 중단되었다.
세계 무역 질서는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으로 혼란에 빠졌고, 국제 협력과 동맹 관계도 트럼프의 불안정한 외교 정책 그리고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에 대한 제국주의적 발언으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 정부 부처는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만이 유일한 자격인 인물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충성’이 정의와 능력, 상식을 대신하는 풍토는 공화당 전체를 타락시켰다.
이 정권의 악의적이고 무능한 본질은 불법 이민자를 다루는 어설프고 인종차별적인 방식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유럽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폭력, 빈곤, 자연재해로부터 도망치는 이민자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민자의 유입국들이 협력해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오히려 이민자와 난민이 ‘악마’ 취급을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나치나 공산국가의 비밀경찰을 연상케 할 정도의 방식으로 이들을 체포하고 있으며, 인종이 체포와 구금, 추방의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주로 라틴아메리카계가 표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는 미국 입국 당시 이민법을 위반했었다.
미국에는 6200만 명이 넘는 신자가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트럼프주의를 지지했다. 심지어 일부 주교들까지도 이 체제를 묵시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지지했다. 이제 그들은 태도를 바꾸고, 미국의 수많은 신자를 동원해 이 비인간적인 체제를 끝낼 수 있을까?
사실, 몇몇 주교들과 미국 주교회의는 파시즘이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닐 만큼 한 개인을 숭배하는 잔인한 이 체제로 희생된 개인, 가족, 단체를 위해 변호사를 고용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왜 그들은 소송을 선택했을까? 왜 신자들을 직접 동원하지 않았는가? 왜 독재에 동조한 신자들에게, 과거 낙태 문제와 관련된 정치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성체성사를 금지하거나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는가? 왜 낙태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던 주교들은 지금 침묵하고 있는가? 왜 미국 주교회의는 항의한 소수 주교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가?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당혹감’일 것이다. 과거 트럼프에게 아부했던 일부 주교들과 한 추기경은 지금 침묵하고 있으며,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가장 슬픈 진실은, 미국 주교들이 더 이상 신자들의 지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들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그들을 따르지도 않는다.
미국 신자들과 주교들이 멀어진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아동 성추문이다. 주교들은 가해 사제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며 피해 아동과 약자들의 안전을 외면했다. 여러 ‘보호 조치’들이 도입되었지만, 주교들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도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시노달리타스, 창조질서 보전, 가정과 성 문제에 대해 사목적으로 접근하는 동안, 미국 주교들은 여전히 ‘골반 신학’에 집착하고 있다. 낙태, 성, 성적 지향 문제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들의 태도는 교회의 더 넓은 가르침을 외면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수많은 신자를 교회에서 멀어지게 했다.
미국 주교들은 시노달리타스와 성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반대했고, 이민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를 무시했다. 이제 와서 자신들의 정치화에서 비롯된 악취를 지우기 위해 허둥대고 있지만, 이미 신뢰와 지도력을 잃은 그들에게 남은 수단은 소송과 성명 발표뿐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것을 듣거나 읽을까?
그들은 수년간의 무책임함을 이제 와서 바로잡으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미국교회가 다시 예언자적 존재로 거듭나려면 미국 주교단 전체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평신도들이 스스로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일본 속담에 “방귀 뀐 후에 엉덩이를 오므린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미국 주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냄새를 막기 위한 가스 마스크일지도 모른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사제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의 편집주간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의 발행인으로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