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5일 남인순 의원은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살펴봐야 한다. 여러 쟁점이 있지만, 가장 중대한 것은 국가의 생명존중 책임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우리 헌법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명시해 왔다. 태아는 여성이 출산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 생명이기에 존엄하다.
만일 여성의 출산 결정이 태아 존엄의 근거가 된다면, 생의 말기 생명도 누군가 돌봐주기로 ‘결정’했을 때만 존엄하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는 생명의 시작을 보호하지 않는 사회가 결국 생명의 마지막도 보호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선택적 약자 정의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그것은 법적·정치적 위선에 불과하다. 생명의 존엄을 외치면서도 가장 연약한 생명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 이 위선은 그대로 드러난다.
비록 헌법불합치 결정은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 결정은 결국 법 테두리 안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해 낙태가 허용된다고 보는 논리를 열어놓았다. 그 출발점은 ‘태아 살해가 정당하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어떤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 권리가 정당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권리는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이는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사회적 압력을 행사하게 된다. 낙태의 경우, 그 사회적 압력은 제도적으로 건강보험과 의료진에게 전가되어, 낙태 수행을 위한 제반 조건을 뒷받침하라는 요구로 작용하게 된다.
이 논리 안에서 태아의 생명권은 이미 배제됐고, 여성의 자기결정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와 권리의 남용은 예고되어 있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2020년 법무부 산하 양성평등 정책 위원회가 제출한 권고안이다. 이 권고안은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라고 주장했고, 이는 출산 직전까지도 낙태를 허용하라는 요구였다. 이 권고안이 말하는 법은, 어떤 상황에서도 태아를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사회 전체에 걸친 생명경시 인식에도 분명한 영향울 끼쳤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 2024년, 한 20대 여성이 임신 36주 차에 낙태한 뒤 유튜브에 그 과정을 공개한 일이다.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죄책감조차 없는 태도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낙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며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36주 태아가 몸 안에서 움직일 때 아무 감각도 없었던 것인가?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 정말 몰랐던 것일까? 그러나 이미 2020년 권고안은 이러한 일이 법에 따른 제재 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사회는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방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발의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은 임신 주수와 무관하게 낙태할 권리뿐만 아니라, 태아의 생명을 종결하는 시술과 약물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까지 한다. 이는 공적 자금의 윤리적 배분 기준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건강보험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제도이지, 생명을 제거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방심하는 사이, 태아의 생명뿐 아니라 의료인의 양심권도 침해될 수 있다. “깨어 있어라”(마태 24,42)는 말씀이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들리는 오늘이다.
인간 생명은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우선적 가치라는 점에는 모두 이의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7월 25일, 이번에는 이수진 의원이 무제한 낙태 허용을 위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겉으로는 ‘약자 보호’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의 이해만을 반영한 편향적 입법이다. 이는 법과 정책이 보편적 정의가 아닌 정치적 입장과 선택적 가치에 따라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의의 기준이 자의적으로 설정될 때, 그 결과는 사회적 혼란과 도덕적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