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은 6·25전쟁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가슴 아픈 전쟁! 때로는 형제가, 그리고 부모 자식이 적이 되어 총부리를 맞댄 동족상쟁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는 그야말로 칼을 주러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형제가 적이 되어 싸움을 시작한 날로부터 75년이 되었다. 6·25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란 중에서 가장 처참한 전쟁 손해를 끼친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발표하는 곳에 따라 많은 오차가 있어서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국군을 비롯한 모든 군 사망자는 총 80만 명, 부상자 90만 명, 실종과 포로는 20만 명에 이른다. 사망, 부상, 납치 등 250만 명의 민간인 피해자가 한반도에서 발생하였다. 천만에 달하는 이산가족의 아픔은 오늘날까지도 개인과 지역, 그리고 한반도와 온 누리에 널린 비극의 뿌리가 되어, 또 다른 슬픔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비참을 가져온 전쟁은 잠시 멈추는 휴전을 하게 되는데, 다가오는 27일은 정전일 즉 3년간의 전쟁을 잠시 멈춘 날이다.
그로부터도 7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종전이 아닌 휴전,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실전은 이념 전쟁으로, 또 생활 전쟁으로까지 번졌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1년 사이에 진영이 서너 번씩 바뀐 지역의 주민들은 그때마다 멈추지 않는 보복과 처벌로 두려운 밤낮을 보내야 했고, 전쟁이 멈춘 후에도 학살은 계속되어 전 국민이 외상후증후군을 앓는 끔찍한 일이 계속 이어졌다.
민간인 피해자 중에서도 학살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 그중 절반이라는 기록은, 단순한 피해를 넘어 극대화된 원한과 분노로 인간 본성까지 흔들어 놓는 처참함을 만들어냈다. 월북과 납북, 귀순과 월남이라는 기괴한 언어들이 남아있는 가족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며 삶의 자리를 흔들어 놓았다.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얼마나 많이 침해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이어지는 분단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의 원인이 되어 얼어붙게 하는 빙점이 되었다. 국방부 장관 후보의 청문회에서는 어떻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장할 것인가를 묻는 것보다 먼저 하는 질문이 있다. ‘북한이 주적인가, 아닌가’에 대한 장관 후보 마음속 생각을 캐어 묻는다.
통일부 장관 후보의 청문회에도 ‘통일을 위해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를 묻기에 앞서 하는 질문은, 북한을 얼마나 증오하는지에 대한 확인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위하여 논쟁을 벌일 때도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생각들은 늘 여러 번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평화를 위해 쏟는 노력은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북한을 이롭게 하는 적대행위로 취급받았다.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를 수출하는 자랑스러운 K-방산에 대해 불편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눈치를 보아야 한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고, 우리 편의 적은 적이 되는 기괴한 논리가 아직도 당연한 불편한 우리 처지이다.
이러한 차에 267대 교종이 되신 레오 14세의 첫 말씀이 ‘평화’인 것이 무척이나 반갑고 힘이 된다. 로마와 전 세계에 보내는 첫 강복에서 그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 무기를 내려놓은 평화, 무기를 내려놓게 하는 평화, 겸손하고 인내하는 평화, 하느님에게서 오는 평화”를 모두와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즉위 미사에서는 ‘평화를 이루는 희망의 누룩이 되자’고 교회와 온 세계에 호소하였다. 그 고마운 호소에 힘입어 해방과 함께 분단을 맞은 지 80년이 되는 해에, 이제 정전이나 휴전이라는 이름이 종전과 평화 원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는 올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