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형의 클래식순례]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 <입타>

이승환
입력일 2025-05-14 09:22:13 수정일 2025-05-14 09:22:13 발행일 2025-05-18 제 344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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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은 성 필립보 네리 사제(1515~1595)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은 로마에서 활동하며 신자들의 영성을 지도했고, 재속 사제들의 공동체인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했습니다. 

더불어 성인은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음악 장르인 ‘오라토리오’라는 이름이 바로 오라토리오회에서 연유했기 때문입니다. 오라토리오회에서는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묵상과 설교를 행했는데, 성인은 성경과 성인전, 일상생활을 소재로 친근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설교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로마 사람들이 산 지롤라모 델라 카리타 성당, 산타 마리아 인 발리첼라 성당에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설교와 묵상 사이에 찬가(Lauda)를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주일이나 중요한 축일의 저녁기도에서 전문 음악가들의 음악 작품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1부에서 설교를 듣고 2부에서는 음악을 듣는 형태가 되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음악 작품을 1부와 2부로 나누고 중간에 사제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라토리오회를 중심으로 음악 형식이 발전하면서 그 이름은 오라토리오가 되었고, 결국은 독립적인 음악 장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17세기 오라토리오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는 자코모 카리시미(Giacomo Carissimi, 1605~1674)였습니다. 그는 평생 로마에서만 활동하면서 방대한 작품을 썼는데, 그중 열다섯 곡의 ‘히스토리아’는 오라토리오 형식의 완성을 알린 걸작으로서 음악사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작품들은 사순 시기에 로마의 오라토리오 델 산티시모 크로치피소 성당에서 연주하려고 만들어졌습니다. 카리시미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 요한 카스파르 케를 등 외국인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오라토리오를 쓰면서 오라토리오 형식이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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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시미가 오라토리오를 연주했던 오라토리오 델 산티시모 크로치피소

카리시미 오라토리오 중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서 당대부터 유명했던 <입타(Jephte)>는 1648년 무렵 만들어진 작품으로, 구약성경 판관기 11장에 나오는 입타의 일화를 음악으로 꾸몄습니다. 입타는 전쟁에서 암몬 사람들을 물리치게 해주시면 돌아가서 자신을 맞으러 처음 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는데, 그의 딸이 맞으러 나오지요. 

카리시미는 같은 시기에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초기 오페라의 여러 기법과 형식을 받아들여 강렬한 극적 표현을 시도했는데, 팽팽한 긴장감과 신랄한 반음계, 깊은 감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주님 앞에서 한 맹세 때문에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된 입타의 한탄, 이를 받아들이는 딸이 노래하는 라멘트(멀리서 들리는 ‘메아리’ 효과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합창에는 여전히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