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 참사가 난 직후 몇 차례의 전화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어쩌면 그렇게 정확히 예측을 했는가 놀라워하면서『직업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물론 반쯤은 농이 섞인 말들이었지만 이들은 불과 한 달여 전 내가 무심코 한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한 달여 전 내가 했다는 말은 다름 아닌『서울의 한강 다리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무너져 대형참사가 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점쟁이도, 예언자도(?) 아닌 내가 어떻게 그 같은 일을 예견할 수가 있었는가 하고 그들은 의문을 가졌으나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가까운 지기들과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와 병폐들을 함께 거론하다가 나온 그 말은 나는 물론이려니와 그 누구라도 내릴 수 있는「예고된 진단」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에 사는 사람 치고 자기가 건너고 있는 한강의 다리들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이미 한강 다리 물 밑 교각들이 심하게 부식된 상태도 보았고 구멍 난 다리 상판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시퍼런 강물을 소름까지 돋아가며 보았으며 출렁거리며 흔들리는 다리 위를 달리면서 이러다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자주 가져 보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실한 한강의 다리가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걱정들을 하고 있었는데 반해 관계 당국이나 관련부처만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했다는 얘기가 성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성수대교의 참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루 1백여만 명의 목숨을 이어주고 있는 한강 다리, 그에 대한 위험적 요소들을 무시한 관계자 모두에게『쥐구멍으로 가라』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미 모든 매스컴이 다리와 관련 총체적 문제점들을 낱낱이 지적했고 그 모든 지적은 확실한 설득력이 있다지만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아무리 우리의 속이 썩고 또 썩었다 하기로서니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한강 다리가 그렇듯 속절없이 무너질 줄은 차마 짐작이나 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건설에 참여한 다리, 국가공인기관이 감수하고 관리하는 다리를 믿고 목숨을 내어맡긴 우리의 죄없는 시민들은 사건이 터진 상황에도 늑장 출동한 관계부처의 무심함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더 잃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말로 하는 행정, 전시 과시행정에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내어맡기고 있어야 하는가.
줄줄이 터지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의 감추어진 문제가 정말 엄청나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손질을 해야 하는지 조차 잘 모를 정도니까 말이다.
성수대교의 참사가 클라이 맥스를 이루기는 했지만 현재 우리는 썩은 쇠고기가 수입고기로 둔갑, 비싸게 팔려나가고 유난히 라면을 좋아하는 우리의 아이들이 은가루가 함유된 스프에 밥을 말아 먹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유통기일이 지난 생선, 과일, 야채, 훈제류가 매일 아침 새로운 포장으로 화장을 해도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팔아도 우리의 고객들은 백화점으로 백화점으로 거짓말로 포장된 식품들을 사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그 뿐인가. 살인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면서 겁 먹었던 백화점 출입도 잠시 주춤했을 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결국 백화점들은 앞장 서 국민을 속이고 대기업들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인체실험을 하고 있는 격이다. 게다가 관리 감독의 책임을 진 관계 기관들은 두 손 들어 이들을 보호하기에 급급해왔다. 그게 바로 오늘 우리 대한민국, 이 땅의 참 얼굴이다.
그동안 우리 현실은 대형사건 사고가 터지면 온 나라가 난리 치고 몇 명이 문책 당하고 하는 선에서 대부분 마무리되어왔다. 관계 당국이나 정부는 어김없이 대대적인 대책을 마련, 이를 마치 선전포고나 하는 자세로 대 국민을 향해 발표하기를 일삼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니 기다리고 있기나 한 듯 또 다른 대형사고가 뒤를 이으면서 앞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잊혀지는 식으로 고비를 넘겨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파리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나라에서「시한부 생명」처럼 살 것인가. 더 이상 온 국민이 실험용 모르모트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우습게 보아온 후진국에서조차 유래를 찾을 수가 없는「원시적 사건」이 반복되는 나라에서 부끄러운 국민으로 살아가기를 강력히 거부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기초공사를 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우리의 정책, 우리의 모든 활동을 기초에서부터 점검해야만 한다. 국가와 국민 전체에 걸쳐 종합검진이 필요하다. 너와 나 아무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을 반석 위에 새롭게 짓는 일과도 같다.
그것만이 성수대교 참사로 무고하게 귀한 생명을 잃은 희생자 모두의 영혼을 위로하는 길이 될 것이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참담한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또 더이상 또 다른 귀한 목숨이 땅 저 밑바닥까지 내동댕이쳐지는 비극적 참사의 재발을 막는 오직 한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