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은 6월 15일 오후 3시부터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가톨릭과 동학」이란 주제로 제17차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고려대학교 노길명 교수와 조광 교수가「동학의 천주사상」과「동학과 천주교의 상호관계」에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천도교 상주 선도사 표영삼씨와 호남천주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 신부가 토론자로 나서 동학과 천주교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본지는 이번 심포지엄 발표문 중 노길명 교수의「동학의 천주사상」을 요약 개재한다.
1, 서론
그동안 학계와 가톨릭교회의 일각에서는 동학이 서학에 대응하여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학의 사상체계나 종교의례 속에는 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도 적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동학의 신 관념인 천주사상이 창교자인 수운으로부터 해월 (海月), 의암 (義菴) 등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되고 체계화 되었는가를 검토해 보고, 이러한 검토를 통해 동학의 천주사상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사상과의 유사성 여부를 밝혀 과연 종학의 천주사상이 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의 여부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2, 수운의「시천주(侍天主)」사상
수운의 종교사상은 동학의 경전인「동경대전」과 포교가사 (布敎歌辭)의 모음집인 「용담유사」(龍潭遺詞)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수운의 신관은「천주」(天主:한울님) 이며, 신앙적 핵심은「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수운에 있어서「천주」는 인간에 외재하면서 인간을 구속하는 초월적 절대자가 아니라, 인간의 심성 속에 존재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언행을 하도록 가르쳐 주는 친근한 존재다. 따라서 천주를 모시고 천주께 돌아가는 인간은 성인이나 군자가 될 수 있고 놀라운 힘을 낼 수 있으며 인간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운은 동학의 신앙 대상을 서학에서와 마찬가지로「천주」로 표현했지만 그 의미는 그리스도교에서 뜻하는「Deus」와는 전혀 다르다. 동학의 천주는 하늘에다 존칭 (主)를 붙인 것일 뿐 서학의 천주개념을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수운이 말하는「천주」는 우주 만물을 무위이화 하는 보편적인 신인 것이다. 또 수운의 신관 속에는 한국인의 여러 전통적 신관이 포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3, 해월의「양천주」(養天主) 사상
수운의 시천주 사상은 동학의 2대 교주 해월(海月, 최시형의 호)에 이르러 상당한 변화를 나타난다. 그는 시천주 신앙을 철저히 세속화시켜, 만물에「천」이 내재하며 만물이 곧「천」이라는 범신론적 범천론(汎天論)을 제시했다.
해월은 수운의「시천주」개념을 양천주로 발전시켰다. 그는 온갖 탐욕을 물리치고 도덕적 인격을 닦는 것은 자신의 몸에 모신「천주」즉「한울님」을 양(養)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즉 그는 모든 욕망을 자제하고 마음을 정하면 그것이 「양천주」 가 되고 또한「양천주」로「한울님」을 모시는 단계에서 그「한울님」을 키우는 단계로 보다 승화시켰던 것이다.
4, 의암과 천도교의「인내천」사상
해월의「사인여천」「인즉천」사상은 동학의 3대 교주이며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한 의암(義唵)에 이르러서는「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의무화된다. 「인내천」이란 수운이나 해월의 가르침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용어이다.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은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성(性)속에 신을 모시고 있으며, 이 신을 스스로 발견하고 깨치면 자기 자신이 신이 된다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사상은 수운의「시천주」신앙과 해월의「인즉천」사상 및「양천주」사상이 새롭게 체계화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결론
동학의「천주」사상은 서학의「천주」사상을 차용하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 관념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수운의 강령 체험이나 그가 받은 계시도 그리스도적 체험이나 계시와는 다르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강령 체험이나 계시는 그리스도교에서만 언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학의「천주」 사상은 수운의 독특한 종교적 경험에서 연유된 것이며, 그 후 민주의 실존적 삶과 종교적 욕구가 결합되면서 체계화 된 동학의 고유한 신 관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神)이란 개념적으로 인식되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에 참여함으로써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은 주어진 역사적 사회적 삶 안에서 체험되고 또한 발전되는 존재이다. 천도교에서「한울님」이란 개념화 할 수 없는 것으로서 사람으로서 부모와 같이 모시고 섬겨야 할 거룩한 님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신 관념의 이러한 특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나 점에서 동학의「천주」사상과 그리스도의「하느님」사상과의 만남은 그 용어의 동일성이나 개념상의 공통성 보다는 하느님(한울님)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할 때 보다 수월할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