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골짜기에 수줍은 듯 볼을 붉힌 철쭉꽃들도 꽃잎을 떨구고, 이제는 산계곡을 감돌아 흐르는 강구비에 은어떼들이 뛰놀고 있다. 은어, 그 투명하고 신선한 물고기의 은빛 지느러미가 삶의 경이로움을 일깨워주고 있다.
주님의 한없는 은총이 충만한 대자연의 혜택 앞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계절. 어느 시인은 은어떼를 「가파른 폭포를 간신히 뛰어올라/마침내 도달한 산골의 막다른/물 웅덩이/수면에 어리는 흰구름을/은어떼 몇마리 또고 있다」고 노래했다. 가파른 폭포, 그 도도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안식의 물 웅덩이를 도달하는 은어떼들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목표를 향해 거리낌없이 돌진하고 마침내 의연하게 목적지에 이르는 은어떼는 우리 인간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쥐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몸짓은 어떠한가? 은어떼들의 그 신선한 몸짓에 비해 너무나 더럽고 왜소하고 천박하지 않는가? 이 땅의 지도층이요, 고위층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기는 커녕, 절망과 분노의 상처만을 안겨주고 있으니 …. 성현의 말씀에 「집안이 가난해지면 현모양처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지러워지면 훌륭한 재상이 아쉬워진다」고 했는데 어지러운 나라를 추스릴 재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이 정직한 땀을 흘리며 평상심을 되찾고 있는데, 정작 이 나라의 재상과 재상의 지위에 버금하는 인사들이 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서민들의 평상심마저 뒤흔들고 있지 않는가! 프랑스의 격언 「노블레스 오블리쥐」(Nobless Oblige)라는 말을 풀면 「고위층 인사들은 더 많은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공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무는 팽개치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일신의 안일과 재물의 치부에만 탐닉하고 있다면 말이 되는가!
요즘의 옷로비 의혹사건, 노조파업유도 의혹사건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의혹만 있고 실체는 없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한마디로 질서는 찾아볼 수 없는 뒤죽박죽의 난장판 게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을 듣고 있는 기분이다.
거짓말은 한두번으로 족하다. 속인수는 한두번은 통해도 재미로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왔다고 거짓으로 소리치던 양치기 소년은 정작 늑대가 왔는데도 늑대가 왔다고 소리치질 못한다. 소리쳐도 누구도 믿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와도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다.
지금은 위기의 시대. 열흘이 넘게 북한 경비정들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와 무력시위를 벌리지 않았는가? 경계선 침범으로 모자라 어뢰정을 동원하고 미사일 발사준비까지 하고 있는데, 우리 군이 육해공군의 전력 대응으로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번 북한 경비정 침범사건은 우리의 안일한 상황인식과 국가적 방위태세에 일대 경종을 올려준 것이다.
우리 정치가 불미스러운 추태 때문에 들끓고 있는 사이 우리 경제는 또다시 새로운 거품 현상과 소비폭발을 일으키고 있다. 연평도 근해의 맛좋은 꽃게가 분단의 아픔 그 틈바구니에 끼어 우리 어민들과 더불어 비명을 지르고 있듯이, 정치권의 싸움과 검찰의 내분 사이에 끼어 국민들만 골탕을 먹고 있는 꼴이 되고 있다. 참으로 국민노릇 해먹기 힘든 나라다.
『의혹이 있으면 가리고, 책임있는 사람은 책임을 물리면 된다』고 당당하게 말했으나 지금 그 당당함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언제나 드랫듯이 정국 주도권의 줄다리기에만 매달려 있으니 그저 딱할 지경이다.
진정 뜨거운 여름은 오는가
정치권도 여의도에만 집착하지 말고 휴전선에 눈길을 보내보라. 진정한 민심과 민의를 읽어야 한다.
의혹은 의혹을 낳고, 마침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가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곳엔 반드시 정답은 있는 것이다. 진실이란 정답, 실체적 진실이란 정답찾기에 여도 야도 「당당하고 의연하게」대처하는 것밖에 또 다른 길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국민과 노동계의 치솟는 분노와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이 정도일진데, 뜨거운 여름철의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우산을 준비하라.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정도(正道)를 갈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