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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제주교구, 묵묵히 봉사해 온 레지오 70년에 감사

제주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11월 8일 제주시 한림읍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열렸다. 치명자의 모후 레지아(단장 이애선 모니카, 담당 김태정 베드로 신부)가 주관한 가운데 “다시, 일어나 가자”(요한 14,31 참조)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과 교구 신자 등 2000명이 참석했다. 레지오 마리애 70년 발자취를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된 1부 기념식에서는 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의 축사, 김태정(베드로) 담당 사제의 대회사, 최종훈(토마스) 광주 세나뚜스 담당 신부의 영상 축사 등이 이어졌다. 이어 레지아 직속 꾸리아와 3개 꼬미시움, 청년·청소년 단원 등 9개 팀의 체험 발표와 공연으로 70주년의 의미를 함께 되새겼다. 2부 기념미사 강론에서 문창우 주교는 “70이라는 숫자에서 보듯, 지난 세월 동안 교구 안에서 묵묵히 기도와 봉헌, 겸손과 순명으로 성모님과 함께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헌신이 오늘의 교구를 일구어 왔다”며 “사제 중심이 아니라 사제·수도자·평신도가 함께 소통하며 참된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단원들이 희망과 사랑의 등불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사 후 이애선 단장은 ▲비신자 입교 2068명 ▲냉담 회두자 4399명 ▲단원 입단 1421명 ▲묵주기도 1606만 9054단 봉헌 등 70년간 이어진 교구 레지아의 ‘특별 접촉 활동’ 결실을 보고했다. 기념 행사에서는 허영범(프란치스코) 전 레지아 단장이 교구장 주교 축복장, 특별 접촉 활동 우수 12개 쁘레시디움과 장기근속 단원(40년 65명, 50년 5명, 60년 2명)들은 공로상을 받았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3면

「과르디니와 함께 고백록 읽기」…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고백’의 과정 성찰

20세기 가톨릭 신학의 거장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가 그리스도교 영성 문학의 고전,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을 깊이 있게 풀어낸 책이다. ‘아우구스티노의 회심 여정’이라는 부제처럼, 성인이 고백을 통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신학적·철학적으로 살펴본다. 많은 사람이 「고백록」을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이야기로만 이해하지만, 과르디니 신부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고백(Confessio)의 본질은 이렇다. “고백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우구스티노가 자신의 욕망과 교만, 방황과 실패를 솔직히 드러낸 이유는 과거를 폭로하려는 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였다. 과르디니 신부는 심리 치유와 신앙적 회심을 분명히 구분한다. 심리 치유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지만, 회심은 나를 하느님께 맡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고백은 숨고 싶고 변명하고 싶은 마음의 벽을 깨고, 하느님 앞에서 내 깊은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다. 바로 이 과정에서 인간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의 특별한 점은 과르디니 신부가 평생 연구한 ‘마음’과 ‘인격’ 개념이 아우구스티노의 실제 삶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2부로 나뉘는 책은 1부 ‘해석의 토대’에서 ‘고백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2부 ‘여정과 결단’에서는 아우구스티노의 실제 삶에서 회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따라간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은 내면의 갈등, 자아의 저항, 진리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은총의 순간들이 모두 담긴 생생한 기록이다. 과르디니 신부는 이것이 혼자만의 은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 공동체 앞에서 하느님을 증언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또한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은 머리로만 생각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 같은 실제 삶의 관계 속에서 일어났다. 과르디니 신부는 이런 구체적인 삶의 순간들이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에게 다가오는 통로였다고 말한다. 회심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처럼 내려오는 게 아니라 시간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결단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2024년 선종한 고(故) 김형수 신부(베드로·부산교구)가 생전 번역한 작품으로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진리를 찾으며 쉬지 않고 회심의 길을 걸었던 김 신부의 삶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와 깊이 닿아 있다. 「로마노 과르디니 시리즈」의 첫 권으로 출간된 이유이기도 하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15면

「마태오, ‘두려워하지 마라’의 복음」 당당히 복음 선포하는 자세 일깨우는 말씀

불확실한 미래, 관계의 어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현대인의 삶은 크고 작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시대에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마태오복음을 새롭게 조명한 책이 출간돼 시선을 모으고 있다. 마태오복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표현이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한다. 예수님의 탄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파스카 사건으로 완성되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함께하는 이 표현은 사실상 마태오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 이민영 신부(예레미야·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두려워하지 마라’를 핵심어로 삼아 마태오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이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살핀다. 복음에 총 여덟 번 등장하는 이 말은, 주님의 천사를 통해 두 번(1,20; 28,5), 예수님을 통해 여섯 번(10,26.28.31; 14,27; 17,7; 28,10) 선포됐다. 이 신부는 “주님의 천사는 하느님의 대리자이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보여 주시는 아드님”이라며, “따라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라고 전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대상은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과 제자들 그리고 여인들이다. 이들은 ‘하느님의 협력자’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하느님의 제자’이므로, 결국 이 말씀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여러 장면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안심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를 향한 부르심이다. 부활 아침, 마태오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두려웠지만, ‘크게 기뻐하며’(28,8) 급히 부활 소식을 전하러 간다. 여기서, ‘두려움’에도 여인들을 서둘러 움직이게 한 큰 기쁨의 원천은 ‘큰 기쁨’이었다. “부활 이야기에서 되풀이되는 ‘두려워하지 마라’(5,10)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메시지를 분명히 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은 모든 이의 두려움을 없애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인간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죽음을 물리치고 두려움을 이겼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202쪽) 저자는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메시지가 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제자로 살아가는 데 있어, 이 말씀은 복음을 당당하게 선포해야 하는 합당한 자세를 일깨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 속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 됨의 길에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월간 「빛」에 1년간 연재한 글과 교황청립 성서대학 박사학위 논문 「마태오 복음서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표현의 기능에 관한 연구」의 일부를 엮은 것이다. 마태오복음의 구조에서부터 차근차근 내용을 풀어가는 저자는 편안하고 친근한 문체로 ‘두려워하지 마라’의 복음을 설명한다. 덕분에 네 복음 중 분량이 가장 길면서 수많은 가르침과 설교, 비유와 이야기로 구성돼 자칫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마태오복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15면

천주교·개신교 신자들,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이하 신앙과직제)는 서로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을 가진 신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배우고 교류하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아카데미 제3기 심화 과정’을 11월 7일부터 1박2일 간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에서 개최했다. ‘날마다 출애굽’을 주제로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 4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번 행사는 강의와 성무일도·떼제기도 등 기도 체험, 토크 콘서트, 그룹 대화, 현장 탐방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됐다. 특히 행사가 열린 강화도는 1890년대 성공회와 감리교가 한국 최초로 선교 활동을 시작한 역사적 현장이자, 인천가톨릭대학교 등 천주교 신학 양성기관이 자리한 곳이어서 개신교와 천주교 전통의 자취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의미가 컸다. 참가자들은 송용민 신부(요한 사도·신앙과직제 공동신학위원장·인천교구 논현동본당 주임)의 ‘시대의 표징을 복음의 빛으로 읽기’, 양현혜 목사(공동신학위원장)의 ‘정교분리를 통해 바라본 한국 개신교 역사’ 주제 강의를 통해, 각기 다른 교회 전통의 시각에서 한국 그리스도교의 현실을 성찰하며 일치의 의미를 깊이 나누었다. 아울러 강화 성공회성당, 인천교구 강화성당, 인천가톨릭대학교, 강화 온수리 감리교회, 동검도 채플 갤러리 성당 등 강화도 일대 그리스도교 역사 현장도 방문했다. 송용민 신부는 “처음 시도된 1박2일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이 가까워지고 함께 대화하고 공부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서로의 전통을 배웠다”며 “그리스도인이라는 공통 의식이 문화와 예술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독특하게도 천주교와 개신교가 마치 다른 종교처럼 의식화된 현실이 안타깝다”며 “형제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화하며 오해를 넘어설 수 있는 폭넓은 사고를 갖는다면 그것이 곧 한국 사회의 평화를 이루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5년 시작된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아카데미는 천주교·정교회·개신교 신자들이 함께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교리, 영성과 생태 등을 배우며 상호 이해를 넓히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열리는 기본과정은 현재까지 500여 명이 수료했으며, 심화 과정은 2~3년마다 기본과정 이수자를 대상으로 열린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6면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은?…“사도좌와 전 세계 교회 일치 기념”

11월 9일, 교회는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기념한다. 로마 4대 바실리카 중 하나인 이 성전은 로마 최초의 바실리카 대성당으로, 성 요한 대성당(S. Giovanni in Laterano)으로도 불린다. 신자들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축일은 성전의 봉헌을 기념할 뿐 아니라, 우리 신앙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의미 있는 날이다. 313년 밀라노 칙령 이전, 초대교회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지하 묘역과 가정집에 숨어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멜키아데스 교황에게 라테란 궁전을 기증했고, 로마 한복판에 성당을 함께 세웠다. 이곳이 바로 라테라노 대성전이다. 하느님을 고백하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제국의 중심에서 두려움 없이 함께 모여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은밀한 장소에서 제국 중심의 공개 장소로 나온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324년 실베스테르 1세 교황은 이 성전을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봉헌했다. 그 후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간 1309년까지 천 년 동안, 모든 교황이 대관식과 착좌식을 이곳에서 거행했고 이곳에 묻혔다. 또한 제1~5차 라테란 공의회가 열리는 등 교회의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졌다. 대성전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지금도 성전 입구에 새겨진 ‘로마와 온 세상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으뜸(Omnium urbis et orbis ecclesiarum mater et caput)’이라는 문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라테라노 대성전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898년 지진으로 붕괴됐고, 1308년과 1361년 두 차례 대화재로 거의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교회는 매번 성전을 다시 세우며, 당시 직면한 여러 위기 속에서 기본을 다시 세우고 점검하는 쇄신의 기회로 삼았다. 특히 1308년 화재 때는 소성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사라졌는데, 아비뇽에 있던 교황청에서도 재건을 위해 자금을 보냈다. 이러한 대성전의 내력에 대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5년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강론에서 “라테라노 대성전은 교회가 역사 속에서 계속하여 자신을 쇄신하는 표지”라고 했다. 미국판 가톨릭대사전은 “반복된 화재와 재건은 로마 교회의 시련과 그 후의 회복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고 명시했다. 현재의 건물은 식스토 5세 교황과 후임 교황들이 도미니코 폰타나, 프란치스코 보로미니 등의 건축가들에게 위탁해 건립한 것이다. 폰타나가 외관을 정비하고 보로미니가 내부를 단장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후에 지상과 천국의 일치를 상징하는 모자이크로 후방을 정비했다. 중앙 대제단에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의 머리 유해 및 카타콤바에서 옮겨 온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는 라테라노 대성전이 사도적 권위와 교황좌의 상징임을 드러낸다. 또한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됐다고 전해지는 삼나무 탁자도 보존돼 있다. 20세기에도 라테라노 대성전은 역사의 현장이었다. 1929년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청이 맺은 라테란 조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어, 바티칸 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교황청의 국제법적 지위를 확립했다. 11월 9일 축일은 12세기부터 로마에서 기념되다가, 사도좌에 대한 사랑과 일치의 표지로 모든 교회에 확대됐다. 이처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은 전 세계 교회의 일치와 사도좌와의 연결을 새롭게 되새기며 교회의 시작과 기초, 사도 전승의 중심을 기억하도록 한다.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3면

[인터뷰] 멜키체덱 사본 주제로 박사 논문 발표한 임장혁 신부

1947년부터 1956년까지 이스라엘 사해 서안 유다 광야에서 발견된 고대 문서들은 성경과 초기 그리스도교 연구의 핵심 자료다. 특히 쿰란 지역 11개 동굴에서 출토된 850여 편의 문서는 예수 시대 유다 지역의 신앙과 사상을 이해하는 필수 사료로 평가받는다. ‘멜키체덱 사본(11Q13)’은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문헌이다. 이 문서는 마지막 때에 하느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의로운 이들을 구원하시며 악의 세력을 심판하신다는 종말 신앙을 담고 있다. 학계는 이 문서를 통해 유다교 내에 존재했던 다양한 메시아 이해와 종말 사상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신약성경의 구원과 심판 메시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임장혁 신부(실바노·대전가톨릭대 교수)가 최근 이 멜키체덱 사본을 주제로 예루살렘 ‘에콜 비블릭(École Biblique et Archéologique Française de Jérusalem)’에서 박사논문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에콜 비블릭은 1890년 도미니코회가 설립한 성서학 기관으로, 쿰란 사본 연구와 성서고고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곳이다. 「멜키체덱 사본에 등장하는 멜키체덱의 정체성」 제목의 논문은 독창적인 접근법으로 더욱 관심을 끈다. 그는 ‘페쉐르’라 불리는 쿰란 공동체 특유의 성서 해석 방식을 분석해, 멜키체덱을 하느님이나 인간 메시아가 아닌 천사,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천사 미카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멜키체덱은 종말에 쿰란 공동체를 구원하고 악의 세력인 벨리알을 심판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성경과 쿰란 문헌 전반에서 벨리알과 대적해 승리를 거두는 존재는 미카엘 천사입니다. 따라서 멜키체덱을 미카엘 대천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존 연구와 달리 이번 논문은 멜키체덱 사본이 인물의 정체를 직접 규정하기보다, ‘진리의 사람들’, ‘빛의 자녀들’, ‘벨리알’ 같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임 신부는 “마치 소설에서 주변 인물이 주인공의 성격과 사명을 드러내듯, 쿰란 문헌에서도 멜키체덱의 정체성과 역할이 공동체 및 적대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훼손된 사본들의 판독 작업과 긴 시간의 인내였다. 원문이 잘 보이지 않아 특수 촬영된 사진 자료를 확보하고 복원과 비교 작업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필사자들의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감동했고, 이런 감정이 쿰란 문헌 공부를 계속하도록 이끄는 동기가 됐다”고 임 신부는 밝혔다. 임 신부는 쿰란 문헌 연구가 초기 교회와 예수 시대의 신앙 환경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동시대를 살았던 쿰란 공동체 구성원들은 이런 문헌들을 읽으며 종말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며, “쿰란 문헌은 신약 시대의 사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고 소개했다. 앞으로 임 신부는 쿰란 사본 연구와 고문서학을 계속 공부하며, 신학적으로는 메시아즘과 연결된 역사적 예수를 주제로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쿰란을 공부하면 할수록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이 더욱 깊이를 더 해 갑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아직 미개척 분야인 쿰란 문헌을 좀 더 많이 알리고 싶습니다.”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21면

‘천상 행복’ 누리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은?…「하느님의 현존 연습」

“프라이팬에서 달걀을 뒤집을 때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서 한다.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그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파리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원에는 ‘부활의 로랑’이라는 수도명의 수사가 있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겉보기에 특별한 것 없는 매우 평범한 수도자였고, 부엌일과 신발 수선, 포도주 배달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 연습’을 실천한 인물로,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이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하느님의 현존 연습」은 부활의 로랑 수사가 직접 남긴 금언과 편지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요셉 드 보포르 신부가 정리한 것이다. 2007년 초판 이후 14년 만에 개정된 이번 판은 가죽 양장본으로 새로이 편집되어, ‘평범함 속의 신앙’을 차분히 음미하도록 초대한다. 그의 영성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며, 가장 쉽고도 강력한 영성 수련법으로 전해진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가장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매 순간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머물고 그분만을 생각하는 것. 그것만으로 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생애 내내, 죽는 순간까지 몸소 증명했다. 책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부활의 로랑 수사는 요리사이자 신발 수선공으로서 스트레스와 고된 일, 단조로운 일과와 끝없는 일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제안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일하는 동안 잠깐씩 중단하고, 때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몰래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 경배드리라’고 조언한다. ‘식사할 때, 대화할 때, 일할 때 자주 마음으로 그분을 우러러보는 것’,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온갖 연습을 통해 그 목표에 이르고자 한다. 수많은 방법을 써가며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려고 무척 고생을 한다. 그보다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한다는 것이 더 빠르고 곧은 길이 아니겠는가.”(226쪽) 성당에 가야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세속을 살아가며 하느님과 가까워지기 어렵다고 느끼는 신앙인들에게, 부활의 로랑 수사는 ‘오늘, 여기서 시작하는 영성’을 말한다. 책 제목에서처럼, 하느님을 추구하는 일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마치 살기 위해 숨 쉬는 것과 같다. 그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가 하느님과 대화하라고 당부한다. 또한 하루에 여러 번,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순간마다 그분께 마음을 드리는 버릇을 들일 것을 강조한다. 낮 동안 ‘무심코 흘려보내는 순간’을 이용하라는 권고는 우리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일하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서도 하느님의 현존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덧붙여 이런 ‘연습’이 자연스러워지려면,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돌아가 하루 동안에도 여러 번 짧은 내적 흠숭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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