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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전진상 공동체의 ‘유쾌한 언니들’

1970년대 시흥. 지금의 서울 금천구 시흥동·독산동 일대는 판잣집과 무허가 주택이 겹겹이 이어진 도시의 변두리였다. 장마철이면 골목마다 물이 차올랐고, 겨울이면 작은 불씨 하나에 온 동네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 등 가난한 이들과 실향민이 모여들었지만, 국가도, 제도도, 교회도 이들의 삶을 쉽게 품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산동네에, 1975년 2월 1일 사과 궤짝 몇 개와 이불 보따리를 들고 세 명의 젊은 여성이 들어섰다. 책상 대신 궤짝을 놓고, 삶의 현장 한복판에 그대로 몸을 던진 이들. 그들이 걸어 들어간 그 골목 ‘전진상’의 시작이었다. 무작정 산동네에 발을 들인 ‘고운 처자’들은 국제가톨릭형제회(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e, 이하 아피) 회원인 최소희(데레사) 약사, 유송자(데레사) 사회복지사, 벨기에 출신 배현정(마리 헬렌 브라쇠르) 간호사.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Becoming Being)’라는 아피의 가르침과,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해 6월 7일 전진상 약국이, 10월 25일에는 전진상 복지센터가 문을 열었다. 3년 뒤 김영자(루치아) 간호사가 합류하면서 네 명이 된 이들은 가파른 산동네 골목을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돌보고 약을 나누고 아이를 업고 뛰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씨앗은 이후 전진상 의원과 복지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지역아동센터로 자라났다. 50년이 흐른 지금, 이들은 8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최소희 약사는 약국 원장, 유송자 사회복지사는 복지관 관장, 김영자 간호사는 의원과 복지관의 재정 담당, 의대에 진학해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배현정 의사는 의원 원장을 맡고 있다. 네 명이 시흥벌에서 펼쳐온 50년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의 살아 있는 증언이기도 하다.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라” 1974년 1월 초, 아피 공동체의 새해미사를 집전한 김수환 추기경은 뜻밖의 제안을 건넸다.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갔으면 한다”며, “특히 평신도인 아피 회원들이 그곳에서 함께 살며 활동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소희 원장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마치 마음에 ‘빛’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그 정신을 삶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당시 유송자, 배현정 회원 역시 그 말을 듣고 깊은 울림을 느꼈고,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뜻을 모았다. 김 추기경은 “약사, 사회복지사, 간호사가 함께 있으니 약국을 열고 의료·사회복지 활동을 하면 된다”며 독려했고, 빈민촌 후보지 목록을 건네주었다. 하나하나 지역을 직접 돌아보던 이들은 시흥동에 이르러 말을 잇지 못했다. 배현정 원장은 “그 자체로 정말 충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등록 주민을 포함해 약 4만 명이 산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약국과 동네 의원 한 곳이 전부였어요. 아무리 가난해도 이렇게까지 가난할 수 있을까 싶었죠.” 어떤 이는 물조차 없는 판잣집에 살았고, 어떤 이들은 생선 나무 궤짝을 엮어 만든 공간에서 가족과 버텼다. 세 사람의 마음은 ‘여기에 들어와야 한다’로 자연스럽게 모였다. 김 추기경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가톨릭부인회 지원을 받아 현재 전진상 약국 자리의 2층 집을 구했고, 그곳에서 전진상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진·상의 정신 그대로 살아 낸 50년 전진상의 초창기는 시흥의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낸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폐결핵에 걸려 도움을 청한 집, 연탄가스에 중독된 가족, 폐에 고름이 가득 차 심장이 오른쪽으로 밀릴 만큼 위급했던 학생, 가마니에 덮여 하수구에 놓여 있던 어린아이의 시신까지…. 기억을 꺼내면 하룻밤을 지새울 만큼 많은 사연이 이어졌다. 젊은 여성들이 빈민가에서 살며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알코올중독자의 난동과 칼부림, 심지어 조현병 환자가 약국으로 뛰어드는 일도 있었다. 현금이 있는 약국은 가난한 동네에서 언제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김 추기경은 사정을 알고 매우 안타까워했다. ‘고운 처자들이 제복도 보호막도 없이 험난한 생활을 어찌 해 나갈까’ 걱정하면서도, 성직자와 수도자가 하기 힘든 일을 평신도인 아피 회원들이 맡아 준 것에 깊이 감사했다고 한다. 이러저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심란했을 순간이 많을 법도 하다. 접고 싶을 때는 없었을까. “온전한 자아봉헌, 참다운 사랑, 끊임없는 기쁨인, 아피의 전.진.상(全眞常) 영성에 따른 우리의 소명이자 사명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최소희 원장의 말에 유송자 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어요. 정말 그리스도의 사업에 동참한다는 마음이었죠. 인간적으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일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죠.” 김영자 간호사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 모든 게 더 어렵게 느껴진 적도 있었지만, 공동체가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눈 것, 그것이 전진상” 전진상 공동체 50년의 의미에 대해 언니들은 한목소리로 “이웃과 함께 살며 아픔과 삶을 나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각자 상처와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닮은 이웃, 소외되고 병든 이웃과 함께 살며 그 아픔을 함께한 시간이 뜻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전진상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나 형제였고, 모두가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며 “또 이곳에 오는 사람들도 ‘내 집’, ‘내 형제’를 만난 마음으로 거쳐 갈 수 있기를 여전히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전진상이 자신들에게 어떤 곳이었는지를 묻자, ‘인생’, ‘영적·정신적으로 성장시켜 주고 큰 가족을 만들어 준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50년을 꾸준히 같은 뜻을 가지고 열심히 살 수 있는 이들을 만났다는 게 감사해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진상을 떠올릴 때 ‘그들은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이들의 손길이 닿은 전진상 복지관과 산하 5개 기관은 지금도 지역 사회 안에서 전인적인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말기 암 환자가 가정에서 편안히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돌봄도 한다. 의료 상담뿐 아니라 가족 문제에 대한 종합 상담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결손가정 아동과 비행 청소년을 예방하는 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저소득층 아동에게는 전인 교육과 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장학금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을 응원하고 있다. 교사와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함께하며 계층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 돌보는 공동체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진상의 뜻을 이어갈 사람들 요즘 이들의 마음속에 가장 큰 고민은 전진상의 뜻을 함께 이어갈 사람들이다. 언니들 가운데 막내인 80세의 배현정 원장은 전진상의원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갈 의사를 찾고 있다. “전진상 의원은 일반 병원의 외래 진료보다 훨씬 어려워요. 환자를 전체적으로, 포괄적으로 바라봐야 하거든요. 가정의학과 진료는 물론이고, 40년 넘게 이어져 온 방문 재택 진료도 함께해야 하죠. 최근 기대했던 의사 선생님도 ‘왕진’이 부담스럽다며 결국 오지 않으셨어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인터뷰 현장. 8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네 명의 언니들은 힘차고 밝았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든든한 언니들이다. 이들은 전진상을 아끼고 함께해 준 의료 봉사자와 후원자, 자원봉사자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전진상이 ‘그 시대의 사람이 되어라’는 정신 안에서 앞으로도 따뜻한 사람이 사는 곳, 누구나 편히 머물 수 있는 곳,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공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흥동에서의 반세기를 넘어선 지금, ‘못 말리는 유쾌한 언니들’이라 불리는 네 사람은 여전히 사람들 곁에서 웃음으로 문을 연다. 그 웃음 안에는 기도와 눈물, 그리고 흔들림 없는 선택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상담 및 문의 02-802-9313 전진상 의원·복지관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2면

나주 윤 율리아 ‘거짓 홍보’ 심각…WYD 미끼 선동도

주교회의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확산되고 있는 나주 윤 율리아 관련 영상에 관해 각 교구에 주의를 요청했다. 주교회의는 사무총장 이철수(스테파노) 신부 명의의 1월 12일자 공문에서 “윤 율리아 씨와 그의 추종자들은 여전히 교회의 가르침과 교도권을 거부하며, 교황청과 고위 성직자들의 이름을 거론해 ‘나주 성모 기적’의 교회 공식 승인을 주장하는 거짓 홍보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많은 신자가 혼란에 빠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윤 율리아와 추종자들은 2025년이 윤 씨의 집에 있는 성모상이 눈물을 흘린 지 40주년이 되는 해라고 홍보하며, 이를 기회로 인스타그램·유튜브·페이스북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활발한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주교회의는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여러 지역에 지부를 결성해 더 많은 사람이 나주를 방문하도록 선동하고 있다”며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들이 주최하는 기도 모임에 동남아시아 성직자들이 참여하고 있고, 해외 청년들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윤 율리아와 관련된 정보를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교회의는 각 교구 주교에게 나주 윤 율리아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고, 신자들이 온라인 매체를 통해 나주 윤 율리아와 관련된 거짓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또한 나주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대한 참여를 금지할 것도 당부했다. 주교회의의 이번 주의 요청 공문은 국내외에서 나주 관련 온라인 홍보가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며 문제가 되는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대전교구는 2025년 9월 26일자 공문을 통해, 교구 내 일부 본당에서 나주 윤 율리아 관련 전교 활동이 이뤄진다는 보고가 접수된 것을 알리고, 나주 윤 율리아의 활동을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교구장 허락 없이 임의로 경당과 성모 동산에서 행하는 성사 및 준성사 의식은 금지되며 참여자는 교회법상 제재 대상이 된다”고 명시했다. 해외교회에서도 나주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 쿠칭대교구 사이먼 포 대주교는 2025년 11월 교구 기관지 「Today’s Catholic」을 통해 “나주를 방문하거나 활동에 참여할 경우 교회법상 자동 파문이 적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싱가포르대교구 또한 공식 웹사이트에 “나주 단체 활동은 교회의 일치를 해치는 행위”라며 참여 금지를 명시했다. 온라인에서는 나주 홍보 영상이 영어·필리핀어 등 다국어로 제작돼 유튜브 등으로 해외에 확산되고 있고, 다수 추종자가 개인 활동을 가장해 단체 홍보를 하는 실정이다. 국내용과 해외용 채널로 이원화해 운영하면서, 보편교회가 자신들을 공식 지지한 것처럼 보이는 콘텐츠도 제작하고 있다. 젊은 층이 핵심 이용자인 ‘틱톡’ 플랫폼 경우, 계정 운영자가 댓글을 통해 청년들과 적극 소통하고 있다. 한편 광주대교구는 윤 율리아와 그의 추종자들이 전개하는 활동에 대해 교황청 신앙교리부와의 충분한 논의 후, 윤 율리아와 관련된 미사와 전례, 성사 등 사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행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공지했다. 교구는 윤 씨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한 모든 홍보물의 발행과 유포를 금지한 바 있으며, 이와 관련된 공지 사항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차례 발표된 바 있다.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2면

전례 흐름 따라 걸어가는 신앙 여정…「죽음에서 생명으로」

사순 시기가 다가오면 많은 신자가 사순과 부활 시기를 성찰하는 묵상집을 찾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은 하루 묵상에 초점을 두어, 재의 수요일에서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교회가 가장 강렬한 신앙의 시간을 걸어가는 90일의 여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은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 주간,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 부활 팔일 축제와 부활 시기, 그리고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이어지는 전례의 흐름 전체를 하나의 통합된 ‘영적 여정’으로 제시한다. 각 장은 소주제로 세분되어 전례 안에 담긴 신학과 영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성유 축성 미사, 파스카 성삼일, 부활 팔일 축제 등 주요 전례의 의미를 해설하면서, 신자들이 ‘하루의 묵상’이 아니라 ‘사순과 부활 시기 전체의 묵상’을 살도록 돕는다. 특히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전례의 메시지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겪은 유혹과 예수님의 광야 유혹, 바벨탑 사건과 성령 강림 사건을 대비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신구약 성경이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책은 또한 각 글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해, 독자가 그 장면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저자 쿠르트 코흐 추기경은 사순 시기를 ‘십자가를 통하여 빛에 이르는 길(per crucem ad lucem)’로 규정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하나의 길이며, 초대 교회 신자들이 ‘새 길을 따르는 이들’로 불렸듯 오늘의 신자도 이 길 위를 걷는 존재라는 것이다. 재의 수요일 전례에서 사용하는 '재'의 의미도 새롭게 풀어낸다. 재는 단순히 인간의 덧없음만을 말하는 표지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표지이며,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사랑의 행위로 변화시켜 부활의 길을 여셨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성주간에 관해서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길을 전례 안에서 실제로 따라 걸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길에 동행하신다는 믿음을 굳건히 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전례를 일상의 영성으로 확장하는 시선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찬례를 거행하셨듯, 우리의 삶 또한 매 순간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108쪽)고 제시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장 낮추시고 바닥까지 내려간 그곳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자신을 낮출 수 있고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겸손한 이에게만 위로 올라가는 가벼움이 선사되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위로가 된다.”(208쪽)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5면

좌절도 희망으로 만드는 행복의 조건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새해를 맞은 한국 사회의 공기는 여전히 무겁다. 경제 지표는 양호하지만, 청년들이 체감하는 미래는 불투명하고, 직장인들의 삶은 팍팍하다. 불안과 우울, 외로움이 일상을 잠식하는 현실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사치처럼 느껴진다. 통계는 냉정하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임에도 2025년 한국의 세계 행복지수 순위는 57위에 그쳤다. 이런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은 우리가 잊어버린 물음을 앞에 놓는다. “진정한 행복은 정말 어디에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이 질문 앞에서 한결같았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책은 8개 장에 걸쳐 프란치스코 교황의 설교, 연설, 묵상을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엮은 묵상집이다. 여기서 행복은 성취의 결과나 물질적 만족이 아니다. 그는 행복을 하느님의 선물이자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기쁨, 좌절 후 다시 일어서는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예수님을 ‘우리보다 먼저 그 길을 걸으신 분’으로 소개하며, 실패와 좌절마저 새로운 길이 되게 하는 하느님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용기, 스스로를 웃게 만드는 여유, 타인을 지배하지 않고 공간을 내어주는 온유함. 교황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특별한 곳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있다.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문화, 경쟁의 문화, 낭비의 문화에서 자신을 스스로 구하길 원합니까? 그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항상 앉아 있지 말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손을 뻗어 보십시오. 그리고 손을 더럽히십시오. 여러분은 행복해질 것입니다.”(117쪽) “여러분의 행복은 값을 매길 수 없으며 거래될 수 없습니다. 행복은 핸드폰에서 내려받는 ‘앱(app)’이 아닙니다. 그것이 가장 최신 버전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이 사랑하기 위한 자유와 존엄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219쪽) 프란치스코 교황 특유의 서술 방식도 책의 강점이다. 교황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반지의 제왕」 같은 문학 작품과 〈바베트의 만찬〉, 〈길〉 같은 영화를 자연스럽게 인용하며 행복을 추상적 관념이 아닌 구체적 삶의 순간으로 포착해 낸다. 〈바베트의 만찬〉을 통해서는 공동체 안에서, 혹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것의 의미를 들려준다. 또 「반지의 제왕」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인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기꺼이 우리 그리스도교 공동체 밖으로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마티아·수원교구장)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교황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며 남기신 마지막 위로”라고 했다. 그의 선종 이후 한국 신자들이 느끼는 공백 속에서 이 책은 단순한 묵상집을 넘어 프란치스코 교황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 통로가 된다. 번역을 맡은 김의태 신부(베네딕토·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옮긴이의 말을 통해 교황이 남긴 15개의 짧은 조언을 소개한다. “위대한 꿈을 꾸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보십시오”, “어둠 너머를 바라보십시오” 같은 메시지들이다. 그는 “독자들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교황님의 ‘행복’ 메시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15면

[인터뷰] 제주교구 노인사목협의회 담당 이시우 신부

제주교구가 최근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는 새로운 사목 전환점으로 노인사목협의회(이하 ‘노사목’)를 공식 출범시켰다. 국내 어느 지역보다 초고령화 시대의 여파가 선명한 지역 상황에서, 전문적인 노인사목을 위해 2025년 1월 이시우(안드레아) 신부를 노인사목 담당 사제로 임명하고 실질적인 준비에 나선 결과다. 이 신부는 지난 1년간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사례를 검토하고 지역 현실에 맞는 모델을 모색했다. 그리고 2025년 12월 21일, 교구 내 7개 노인대학과 31개 본당 노인 관련 단체의 활동을 토대로 노사목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 신부는 “노사목 창립은 노년을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영적 도약의 기회로 바라보는 선언”이라며 “노인 혹은 노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노인은 결코 사회 뒤편으로 물러나거나 소외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정중앙에 자랑스럽게 자리해야 할 빛나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우리가 서서히 발견해 나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노사목은 노인을 단순한 보호나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교회의 능동적인 사목 주체로 세우는 데 초점을 둔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노인이 주도하는 구조’다. 임원 25명 가운데 70세 이상이 16명, 80세 이상도 4명에 이른다. 이 신부는 “노인이 노인을 가장 잘 안다”며 “대부분 ‘나도 교회에서 할 일이 생겨 기쁘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노사목 운영은 교구 내 4개 지구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각 지구에 지구장을 두고 자율적 운영권을 부여해 접근성과 참여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각 본당에 신설된 노인분과는 기존 노인 신심단체·노인학교와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그는 “아직은 시작 단계이기에, 노사목 회장단이 각 지구 회합에 적극 동참하며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걸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노사목이 가장 주력할 활동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노인들의 편안한 여정을 정성껏 돕는 일이다. 구체적으로는 요양원 입소 노인, 재가 노인, 주일미사 참례 노인, 다문화·장애·냉담으로 인한 사각지대 노인 등 네 부류를 중심으로 사목 활동을 펼친다. 이를 위해 각 지구와 본당 노인분과를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단계별 실천 방안을 마련한다. 이 신부는 특히 세대 간 통합사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청년사목과 노인사목이 분절된 현실을 넘어, 전 세대가 함께 신앙을 살아가는 구조가 절실하다”며 “다가오는 세계청년대회(WYD) 준비 과정에도 각 교구 노인 담당 사제들이 함께 참여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사목 창립은 교구 전체에 노인사목이 멈출 수 없는 사명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한 이 신부는 “노인은 교회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심에 있어야 할 하느님의 선물이며, 노인 한 분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만큼 노인을 공동체의 보석으로 바라봐 달라”고 당부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결코 늙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현재의 노인이거나 미래의 노인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노사목의 여정에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교회에서 활동하는 노인사목 담당사제들의 협의체 구성도 희망합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1면

세계 청년들 질문에 사제가 답하다…「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모든 이주민을 환영할 수 없지 않나요?”, “여성은 왜 사제가 될 수 없나요?”, “노예제도로 만든 제품을 쓰면 나도 죄인인가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청년에게 교회는 무엇이라 답할까.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문들이야말로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저자 미헬 레메리 신부는 ‘하느님과 트윗을’ 시리즈로 디지털 세대와 소통해 온 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소속 사제다. SNS에서 140자로 신앙을 나누던 그가 이번엔 청년들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 섰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 청년들과도 직접 대화를 나눈 그는, 전 세계 청년들이 던진 진짜 질문들을 모았다. 가난, 이주민, 노동, 전쟁, AI, 기후 위기. 청년들이 매일 뉴스에서 접하고 SNS에서 논쟁하는 이 주제들에 대해, 교회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레메리 신부는 성경과 교황 문헌을 인용하되, 설교조의 답변은 피한다. 대신 “그런데 정작 일부는 그러한 입장에 동조하면서 후한 대가를 받기도 합니다”(35쪽)처럼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93쪽)처럼 솔직하게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 책의 특징은 사회교리를 완성된 답처럼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노예제도로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67쪽)라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독자에게 그 답을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 책은 그 대화를 미리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각 장마다 토론 질문과 추천 자료가 담겨 있어, 청년 모임이나 소그룹에서 함께 읽고 나누기 좋다.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불완전한 이 세상을 가능한 한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11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완벽한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을 함께 견디며 조금씩 바꿔 가는 사회교리의 핵심 의미를 청년의 언어와 현실로 풀어낸다. 정의와 평화, 연대와 공동선.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 단어들이 우리 삶의 구체적인 선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26개의 질문과 답변 속에 녹아있다. 질문마다 ‘더 알기’, ‘더 읽어보기’, ‘실천하기’ 등을 통해 교리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끈다. ‘요약’에서는 주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짧고 명료하게 담아 답변의 핵심을 잘 파악하도록 돕는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5면

[일치 주간 담화] “형식적 만남 넘어 영적 일치와 우정 쌓자”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이하 신앙과직제)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월 18~25일)을 맞아,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4) 제목의 공동담화문을 발표했다. 신앙과직제는 담화문에서 “올해 전 세계 교회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영성과 만난다”며 “301년 세계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수많은 외침과 집단 학살이라는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십자가의 신앙’을 부활의 증거로 삼아온 그들의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고 밝혔다. 이어 종교에 관한 무관심과 물질만능주의, 양극화로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이 정체기를 맞았다는 우려를 전한 신앙과직제는 “진정한 일치의 동력은 외적 제도보다 시련 속에서 단련된 영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형식적인 만남을 넘어 삶의 고통과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영적 우정을 쌓고, 교파의 울타리를 넘어 영적 일치와 우정의 에큐메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앙과직제는 “그리스도인의 일치가 ‘세상이 믿게 하려는’(요한 17,21) 선교적 과제이며 분열된 세상을 치유하기 위한 도구”라며 “혐오와 배제가 있는 곳에 환대와 사랑의 식탁을 차리고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하며, 기후 위기 앞에서 생태적 회심을 통해 녹색 순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단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행동할 것”도 당부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면

“성직자 아닌 신자?…평신도 의미 조명” 「평신도 혹은 그리스도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60년, 평신도는 여전히 ‘성직자가 아닌 그 외의 신자들’로 정의되고 있다. 공의회는 평신도를 ‘하느님 백성’으로 명시하며 그 품위를 강조했지만,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감이 존재한다. 「평신도 혹은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현실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평신도 신학은 정말 완성되었는가? 책은 신약성경 시대부터 현대까지 평신도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교부 시대와 중세를 거치며 교계와 평신도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굳어졌다. 중세에 평신도는 왕과 귀족으로 대표되는 권력자 평신도와 그 외의 백성으로 분할되었고, 대다수 신자는 교계 아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았다. 전환점은 종교개혁과 함께 찾아왔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평신도는 교회의 교황 중심주의에 반발했고, 믿는 이들의 공통된 품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근대에 들어 평신도는 사회와 교회에 동시에 속하며 자신의 직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교계는 평신도에게 사도직에 협력할 것을 요청하며 평신도의 사명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평신도의 정체성과 자율성에 관한 논의는 부족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러한 성찰들을 종합해 평신도 신학을 재정립했다. 공의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신분 분할 대신 ‘하느님 백성’이라는 공통 정의를 강조했다. 평신도의 세속적 성격이 인정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명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의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영향은 새 「교회 법전」과 1987년 시노드,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교회의 역사를 따라가며 평신도를 이해하는 일이 곧 교회를 이해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 흐름에 들어가다 보면 평신도의 자각 과정은 곧 교회론의 전개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평신도라는 주제는 교회론 총론, 교회와 사회의 관계, 사제 직무의 개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주제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책은 결국 “평신도는 그리스도인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는 여러 논의, 평신도의 현세성이나 교계 구조를 둘러싼 구분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형성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중심에는 언제나 공통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평신도는 성품성사를 받지 않았더라도 일상의 자리에서 교회의 사명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교회의 사명은 입문성사에서 시작되며, 각각이 지닌 은사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교계 구조에 참여하는 여부가 평신도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으며, 조직적 구조는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역할을 할 뿐이다. 특히 저자는 ‘종말’의 관점에서 평신도의 사명을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조건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함’을 의미하며, 이는 교회의 신분 구조에 제한되지 않는다. 개인이 받은 은사나 직무를 통해 특화된 사명은 교회 밖에서도 드러나며, 평신도는 세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여정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맡는다. 바로 여기에서 평신도에 대한 성찰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설명하기 위한 역사적·조직적 자료’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책은 평신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한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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