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돔 중심으로 ‘그릭 크로스’ 형태 취한 중앙집중형 평면 120년 대공사 초석 다진 브라만테…판테온 영향으로 반구형 돔 배치
1506년 4월 18일 드디어 새로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초석이 놓임으로써 120년이 넘는 역사적인 공사의 대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날을 기념하여 메달을 발행하였는데, 오늘날의 기념주화와도 같은 이 메달은 브라만테가 설계한 원안을 보여주는 증거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메달에 의하면 대성당은 거대한 반구형 돔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브라만테가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중앙의 돔은 네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고 대각선 방향에 있는 네 개의 작은 돔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또한 성당의 네 귀퉁이에는 종탑이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브라만테의 설계 원안은 선형 평면보다는 중앙집중형 평면일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브라만테는 대성당을 계획하면서, 그가 로마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계한 성 베드로의 순교 터에 세워진 몬토리오의 산 피에트로 템피에토를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성당은 라틴 크로스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었고, 그릭 크로스의 중앙집중형은 이교도의 신전에 사용되는 것이 통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릭 크로스의 중앙집중형 평면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순교자 기념 성당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할 때, 교구의 주교좌성당과 같은 대성당이 아니라, 로마에서 순교한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지어질 순교자 기념 성당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바실리카형의 라틴 크로스가 아니라 중앙집중형의 그릭 크로스 형태를 대성당의 평면으로 취했던 것입니다. 그의 상상 속에는 산 피에트로 템피에토가 바티칸 언덕의 기슭으로 자리를 옮겨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서 있었을 것입니다.
브라만테가 설계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집중형 평면은 우피치 미술관에 보관된 브라만테의 서명이 있는 평면도에 나타나 있습니다. 현재까지 브라만테의 원안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평면도는 크로싱에 강한 중심성이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문을 맡았던 파비아 대성당(Duomo di Pavia)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성당은 라틴 크로스의 평면을 가지고 있지만 양쪽의 아일 뒤편에 경당을 둠으로써 선형성을 줄였고, 크로싱의 팔각형 돔을 받치는 두꺼운 기둥으로 크로싱의 중심성을 강조하여 크로싱으로부터 트란셉트, 아일, 앱스 등이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또한 이 평면은 산 비탈레 성당과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평면과도 유사점이 있는데, 브라만테가 밀라노에 머문 시기에 동로마 제국의 중앙집중형 성당에서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관련한 브라만테의 도면들은 대체로 그의 로마 공방에서 후계자인 발다사레 페루치(Baldassarre Peruzzi, 1481~1536)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브라만테가 목재 모형을 제작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16세기의 스케치가 메니칸토니오 데 키아렐리스(Menicantonio de Chiarellis)의 도록에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도면들 역시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중앙집중형 평면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브라만테의 설계가 라틴 크로스 평면을 유지하면서 네이브 부분을 증축하려는 계획이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실로 브라만테의 사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맡은 라파엘로가 그린 평면은 라틴 크로스로 되어 있습니다. 브라만테보다 스무 살 정도 젊은 동시대의 건축가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 1475-1554)는 로마 공방 출신인 페루치로부터 도면을 전해 받았는데, 세를리오는 그의 「건축론」(전 7권)에서 페루치에 대한 언급에서는 중앙집중형 평면을 실었고, 라파엘로를 언급할 때는 라틴 크로스 평면을 실었습니다. 이는 브라만테가 여러 형태의 평면을 구상하였지만, 결국은 그릭 크로스 평면을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브라만테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할 당시에 지어진 그의 설계 흔적이 남아 있는 성당들을 통해서도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산티 첼소 에 줄리아노 성당(Chiesa dei Santi Celso e Giuliano)은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집중형 평면과 매우 유사합니다. 산텔리조 델리 오레피치 성당(Chiesa di Sant'Eligio degli Orefici)은 브라만테가 라파엘로와 함께 설계하고 페루치가 완공한 성당으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성당과 유사하며, 전반적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집중형 평면과 돔이 같은 유형입니다.
몬테풀치아노의 산 비아조 성당(Chiesa di San Biagio)은 안토니오 다 상갈로 일 베키오(Antonio da Sangallo il Vecchio, 1453~1534)의 작품입니다. 이 성당은 브라만테의 영향을 받은 순교자 기념 성당입니다. 중앙집중형으로 구성된 그릭 크로스 평면에서 동쪽에 앱스가 추가되었고, 서쪽 파사드에는 종탑이 있습니다.
이 성당은 1506년 성 베드로 대성당 착공 기념 메달에 나오는 대성당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토디의 산타 마리아 델라 콘솔라치오네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la Consolazione)은 콜라 다 카프라롤라가 로마 공방의 페루치 영향을 받아 중앙집중형의 그릭 크로스 평면으로 설계하였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밀라노에서 그린 도면과 매우 유사합니다. 따라서 이 성당 역시 브라만테의 성 베드로 대성당 평면 형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브라만테는 1514년 만 70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늦은 나이에 로마에 도착하여 15년간 많은 성당을 설계하고 건축 공방을 운영하면서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구가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돋보이는 업적은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고 그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후대에까지 이어지지 못했는데, 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의 후원자인 율리오 2세 교황이 그보다 한 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후 라파엘로와 페루치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건축 총감독을 승계하여 새로운 평면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로마 약탈로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오랫동안 톱질과 망치질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글 _ 강한수 가롤로 신부(의정부교구 건축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