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만드는 변화

이승훈
입력일 2025-06-10 16:57:57 수정일 2025-06-10 16:57:57 발행일 2025-06-15 제 344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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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적힌 플랜카드,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은은하게 들어간 찻잔과 접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도록 준비된 과자와 떡,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예쁜 꽃,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봉사자들. 

교구 사별가족 돌봄모임 ‘치유의 샘’에 오면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값비싼 것들로 꾸며져 있지는 않지만 모두 봉사자들이 하나하나 고심하며 정성껏 고른 것들입니다.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오직 이 모임만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이세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6.7)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돌보고 있으니 두려움 없이 말씀대로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멀리 떠나보내고 상실의 고통을 겪는 참여자들은 종종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부정하곤 합니다.

‘치유의 샘’에 참여하신 한 선생님은 아내를 병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아내는 입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었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던 존재를 잃은 선생님은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만 같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례식을 치른 뒤에도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셨던 선생님은 정신과 상담을 받았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던 선생님이 모임 5주차가 되어서야 간식을 조금씩 드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를 귀하게 여기시지만, 사별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은 자신이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삽니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낸 이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 고마움 등 복잡한 감정과 기억에 파묻혀 자신을 돌보는 일을 뒷전으로 미룹니다.

그래서 ‘치유의 샘’ 봉사자들은 작지만 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준비합니다. 참여자들이 떠나보낸 이를 소중히 여겼듯이, 남아 있는 자신도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일상을 다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도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가득히 받는 소중한 자녀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 자신이나 이웃형제의 존귀함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거나 관계 속에서 갈등을 겪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닮은 우리 모두를 서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모여 세상이 더욱 인간답게 변화되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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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규진 메르쿠리오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3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