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사람으로 치유받는 마음의 상처

이승훈
입력일 2025-06-04 09:29:12 수정일 2025-06-04 09:29:12 발행일 2025-06-08 제 344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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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람에게 치유 받아요.”

2021년 12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오은영 박사의 말입니다. 오 박사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가 갖는 중요성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치유의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은 정말 사람으로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사별가족 돌봄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옵니다. 배우자, 조카, 자녀, 친구 등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입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유의미한 사별의 기억입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그 기억들이 사랑으로만 채워져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망과 그리움, 미안함 등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떠나보낸 이를 마음속으로 이미 정리했다고 여겼던 이들도, 모임을 통해 기억 하나하나를 꺼내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복잡한 감정과 아픈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 참가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고통과 슬픔을 홀로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모임 속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마리아와 요한이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새롭게 묶인 것처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친교가 생겨나고, 그것이 서로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렇게 첫 모임에서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앉아 있던 참가자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일상을 나누고 삼삼오오 모여 함께 집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우리는 함께’라는 공동체를 통해 고통 앞에서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슬픔 속에서도 누군가가 내 곁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 받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고, 때로는 깊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에게서 위로를 받으며, 다시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아문 마음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단단한 옹이가 되어줍니다.

지금 여러분은 고통과 슬픔 앞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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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허규진 메르쿠리오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복음화3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