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십자가 아래에서 깨달은 사랑과 용서

박효주
입력일 2025-06-04 09:29:10 수정일 2025-06-04 09:29:10 발행일 2025-06-08 제 344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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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가족이 없는 독방에서 힘겹게 수형 생활을 하는 무기수들을 돌봐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봉사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신앙을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더욱 깊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 장기수 바오로 형제와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22년간 수형 생활을 했는데, 가석방을 앞두고 갈 곳이 없었다. 내 아내는 주저 없이 우리 집을 열어주었고, 그는 새로운 삶을 꿈꾸며 성당 건축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술에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동료들과 갈등을 빚으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를 타일렀지만 결국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음을 알리고 떠나보냈다. 그 후 그는 우리 가족을 협박하며 분노를 쏟아냈고, 결국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죄인도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탄원서를 써주었다. 그러나 석방된 후에도 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고 협박은 계속되었다. 나는 십자가 아래에서 가족을 지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죽음을 알리는 연락을 받았다. 술로 병든 몸을 이끌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에 나는 깊은 침묵 속에서 기도하며 그를 위해 용서를 구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두려웠지만 하느님의 사랑은 교도소의 차가운 벽 안에서도 존재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희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교도소로 향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형제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했다.

교도소 봉사를 하며 많은 새 신자가 탄생했다. 지금까지 수용자 등 400여 명이 세례를 받았고, 그중 50여 명이 나의 대자가 되었다. 수용자들은 출소 후에도 신앙을 이어가며 내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꿈나눔재단의 후원자가 되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시작된 작은 믿음이 사회로 나아가 선한 영향력을 펼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 교도소의 차가운 벽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내가 돌봐온 형제들이 신앙을 통해 변화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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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신원건(대건 안드레아) 사단법인 꿈나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