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겸손하고 정 넘쳤던 주교님의 영원한 안식을”…고(故) 유수일 주교 빈소 현장

이형준
입력일 2025-05-29 16:25:12 수정일 2025-05-30 15: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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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성당…프란치스코 가족 수도회·재속회원, 신자 조문 줄이어
장례 미사, 30일 오전 10시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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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성당에 마련된 유수일 주교의 빈소. 이형준 기자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성당에 마련된 고(故)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의 빈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제대 앞에 수도복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누워 있는 유 주교를 위해 기도하며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조문 둘째날인 29일 오후1시30분 서울대교구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염 추기경은 조용히 잠들어 있는 유 주교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잠시 자리에 앉아 묵상했다.

프란치스코 가족 수도회 사제·수도자들과 재속회원들도 29일 오전부터 빈소를 찾아 유 주교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유 주교를 ‘겸손하고 소박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빈소를 찾은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 수녀회 유정순(스콜라스티카) 수녀는 “관구장이시던 때 우리 수녀회가 수원교구 인준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동행하시며 큰 도움을 주셨다”며 “마치 동네 오빠, 형제처럼 수도회 가족들을 대하셨고 권위를 좋아하지 않던 겸손한 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다.

빈소에서 위령 미사를 주례한 호명환(가롤로) 신부는 강론에서 “유 주교님은 소박하시면서 정이 많으셨다”며 “주교로 임명되시고 새벽에 전화를 거시더니 ‘난 그래도 끝까지 작은형제회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빈소는 유수일 주교 선종 당일인 28일 오후 6시부터 조문객을 맞이했다. 작은형제회는 빈소에서 매시 정각에 위령 미사를 봉헌하고, 매시 40분에는 연도를 바치고 있다. 마지막 미사는 29일 오후 8시, 마지막 연도는 오후 8시40분이다.

유 주교의 장례 미사는 5월 30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군종교구장 서상범(티토) 주교 주례로 봉헌된다.

유수일 주교는 1945년 3월 23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태어났다. 196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1980년 사제품을 받은 유 주교는 수원교구 세류동본당, 마산교구 칠암동본당 등에서 사목했다. 1982년부터 1985년까지는 작은형제회 한국 준관구장이자 명도원 원장으로 소임하기도 했다.

미국 유학을 거친 유 주교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을,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로마 본부 총평의원을 지냈다.

2010년 제3대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된 유 주교는 같은 해 10월부터 주교회의 보건사목 담당과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을 겸했다. 2021년 2월 교구장 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유 주교는 10년 6개월 간의 재임 기간 일관되게 성경 말씀을 중심에 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삼위일체 신앙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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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이 5월 29일 서울 정동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1층 성당에 마련된 유수일 주교의 빈소에서 조문하고 있다. 이형준 기자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