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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을사추조적발사건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개최

박지순
입력일 2025-05-27 17:51:33 수정일 2025-05-27 17:51:33 발행일 2025-06-01 제 344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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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 하느님의 종 김범우 생애와 순교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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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 주관으로 5월 24일 충북 단양군 올누림센터 강당에서 열린 을사추조적발사건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박지순 기자

원주교구 문화영성연구소(소장 신우식 토마스 신부)는 5월 24일 충북 단양 올누림센터 강당에서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24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연구소는 을사추조적발사건의 주요 인물인 하느님의 종 김범우(토마스)의 귀양처인 단양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로도 일컬어지는 김범우의 생애와 순교에 대해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했다.

을사추조적발사건은 1785년 3월, 김범우가 현재 서울 명동인 명례방 자신의 집에서 천주교 집회를 열던 중 발생했다. 추조(秋曹) 곧 형조(刑曹)가 수상한 모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김범우의 집에 들이닥쳐 성물과 서적을 압수하고 신자들을 모두 체포해 형조로 압송한 사건이다.

방상근(석문 가롤로) 박사는 제1주제 발표 ‘을사추조적발과 김범우의 역할’에서 “을사추조적발사건은 한국천주교회가 설립된 후 신자들이 체포된 첫 번째 사건이고 순교자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된다”며 “기존 연구자료에 잘못되거나 보완할 부분,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방 박사는 을사추조적발사건 당시 중인 출신 역관인 김범우의 교회 내 역할에 주목할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1784년 말에서 1785년 3월까지 명례방에 있던 김범우의 집이 교회의 거점 구실을 했다는 면에서 이승훈(베드로), 이벽(요한 세례자),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에 못지않게 김범우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제2주제 발표 ‘김범우 유배지 논란’을 맡아 김범우의 유배지인 단양 외에 경상도 단장(丹場)이라는 기록도 있다는 점을 살폈다. 

정 교수는 김범우의 유배지가 단장이라는 주장들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하면서 “김범우의 손자 김동엽이 단장으로 이사한 것은 1870년이었기 때문에 단장은 김범우와는 관련 있는 장소가 아니고 천주교 성지가 될 수도 없다”고 논증했다. 이어 “학문적 비판 없이 잘못 받아들여진 오류들을 덮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은 바로잡고 왜곡된 것은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교구 단양본당 주임 여진천(폰시아노) 신부는 제3주제 발표 ‘단양 지역과 순교자들’에서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김범우가 1786년 단양에서 순교했다고 언급하고 단양지역과 연관된 순교자들을 설명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