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탄 르뽀] 전방군인

허남 기자
입력일 2021-01-19 10:45:00 수정일 2021-01-19 10:45:00 발행일 1989-12-24 제 168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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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 탄생에 어려움 잊어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대림절 일일피정으로 준비해와 
내무반에 성탄트리 장식돼 흐뭇   
남북을 끊어놓고 있는 철책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아름다운 산으로 뒤덮여 있어 신비스러운 분위기마저 느끼게 해주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육군 제7162부대.

중동부 전선 최전방 부대들이 그러하듯 이 부대도 험난한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바로 코앞에 북녘 땅을 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대 주변에 있는 군사시설물들은 긴장감을 더해주면서 분단의 아픔을 물씬 풍겨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경과는 달리 눈 덮인 산야、 혹한의 바람이 불고 있는 이곳에서도 성탄절을 맞는 장병들의 마음은 푸근하기만 하다.

김현태 일병은『성탄절이 다가오니까 왠지 모르게 고향생각과 함께 따스한 마음이 생긴다』면서『고향의 식구들이 더욱 푸근한 마음으로 이웃과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성탄절을 맞는 기분을 말했다.

현재 이곳 부대에서는 성탄절 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부대와 내무반 내에는 성탄트리가 장식되고 있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와 함께 오시는 주님을 영접키 위해 마음의 준비까지 곁들이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백두산 군인본당 (주임ㆍ박창균 신부) 은 다른 그 어느 곳보다도 성탄절 준비에 바쁘기만 하다.

피정ㆍ판공성사ㆍ영세교육 등등 일반사회 본당에서는 쉬운 사목프로그램들이 군에서는 하기 힘듦에도 불구、 백두산본당은 성탄맞이 준비로 모든 것을 착실히 실행해 나가고 있다.

백두산본당은 성탄준비의 일환으로 부대 내 모든 신자사병들과 장교 및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일일피정을 실시、 큰 결실을 얻기도 했다.

12월 12일부터 16일까지 실시된 이 성탄준비「대림 일일피정」이 성공리에 끝마친 것은 군 사정을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획기적인 결실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전방부대에서 이곳저곳에 산재해있는 모든 예하부대내의 신자 사병들을 부대밖에 있는 성당에 모아 피정을 한다는 자체가 군내부의 여러 문제로 인해 이뤄지기 힘든 일일뿐만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그램이었기 때문.

이 같은 이유때문인지 이「대림일일피정」에 참여한 2백50여명의 신자 사병들은 예전에 받은 그 어느 피정보다도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입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피정에 참여한 황제국 병장은『군 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피정은 처음이었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체험하게 돼 기쁘게 성탄절을 맞을 수 있어서 좋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또 예비자로서 피정에 참여했던 이성근 하사도『바쁘게 돌아가는 군 생활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을 묵상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번 피정이 이런 기회를 제공해 주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 피정을 통해 신자 사병들은 군 생활에서 신앙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와 부대로 복귀해 동료들과 함께 성탄절을 뜻있게 맞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피정에 참석한 사병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에 무척이나 친절하다.

또 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주고 있는 장교가족들도 정겨운 표정이 얼굴가득 담겨져 있다.

아마도 이 같은 피정은 모든 이를 하나의 고리로 연결시켜 주는 듯 했다.

박창균 신부는『이런 피정이 실제로 이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여러 부대장들의 협조로 성사됐다』며『피정이 부대원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기에 매년 성탄절 때마다 실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백두산 본당은 성탄준비의 일환으로 이 피정 이외에도 12월21일부터 25일까지 이번에 세례를 받는 20여명의 신자사병들을 성당에 모아「집중영세교육」을 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더욱이 이번에 영세 받을 대상자들은 군복무중인 신학생들이 통신교리와 사사를 통해 교리교육을 받은 사병들이어서 더욱 뜻깊은 영세식일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부대에는 백두산본당 이호봉 신학생 (대구가톨릭대학) 을 비롯、 4개 신학대출신 13명이 있다.

이들 신학생들은 군복무의 의무를 다하면서 동시에 군종신부와 함께 군사목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신학생들은 부활절과 성탄절 때 백두산성당에 모여 자신들의 군 생활을 반성할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이들 군인 신학생들은 군종신부가 부대를 방문할 시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신자사병들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기도 하고 교리를 개인적으로 가르치기도 하는 등 각자 맡고 있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사병들은 전해준다.

한적한 곳에 개신교회와 맞보며 서있는 백두산성당은 이번 성당준비를 위해 수녀 2명을 초빙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파견된 금정희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회) 는『평소 군사목에 대한 이해가 없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군사목이 대단히 필요하다는 것과 이를 위한 여러 지원이 무척 부족함을 알게 됐다』며『소외 받고 낮은 자에게 오시는 아기예수님의 성탄절을 기점으로 군사목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며 짧은 경험담을 말해준다.

우리 모두를 위해 혹한에도 불구、 국토방위에 힘쓰고 있는 국군장병들、 외부와 단절된 전방에서 내무반에 장식된 성탄트리를 보며 생각에 잠겨드는 이들 군인들、 또 이안에서 외롭게 선교에 전념하는 군종신부와 군인신자들. 이들에게 성탄의 기쁨이 함께하길 기도하는 신자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허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