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들이 엮는 광장] 전 미카엘 신부님 부디 영면하소서

조경숙 · 인천 연안동본당
입력일 2021-01-08 14:49:32 수정일 2021-01-08 14:49:32 발행일 1989-12-10 제 1683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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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신부님! 방금 전 신부님의 유해와 영정을 모셨던 상청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영면한 모습조차 너무나 평온하기에, 그 미소 띠우신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장난스럽게 말 건네실 것 같아 당신의 육체를 옥죄고 있는 검은 관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온전히 깨어있지 못함을 항상 안타까워하셨던 신부님. 어른들이 어린이들처럼 순수하지 못함을 질책하시던 신부님은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어린이들을 사랑하셨지요. 성당 안에서 의자 위를 넘어 다니시면서 유치부 꼬마들과 장난을 하셨고, 항상 유머스러운 문제를 내셨지요. 장난꾸러기들을 한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던 신부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미사시작 전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던 그 특이한 휘파람소리, 악보를 보고도 매번 틀리게 하시던「신앙의 신비여」, 성당 안을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어린이들과 함께 손잡고 힘차게 흔들며 부르시던 「주의 기도」. 이렇게 미사의 모든 부분에 당신의 흔적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어 문득문득 복받치는 눈물을 참을 길이 없습니다.

예비자 어린이들의 성격을 일일이 기억하셔서 그 아이에게 꼭 맞는 세례명을 지어 주셨지요. 첫 고백 땐 어린이의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들어주시고 그 크신 당신의 품에 꼬옥 안아주셨으니 우리본당 어린이들은 무척 행복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일일이 자신의 세례명을 부르며 성체를 나눠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신부님이 하늘나라 좋은 곳에서 누님과 함께 계실 것을 믿지만, 너무나 훌륭한 삶을 사셨기에 당신에게는 죽음조차도 축복인 것을 알지만, 참으로 좋은 분을 우리 곁에서 잃었다는 인간적인 아쉬움에 몹시 슬퍼집니다. 우리의 이런 눈물도 질색을 하며 싫어하실 것을 알기에 이제는 눈물을 거두고 당신이 모든 이에게 뿌리신, 특히 어린이들에게 뿌리신 사랑과 복음의 씨가 더욱 풍성히 열매 맺도록 가꾸겠습니다. 신부님, 편히 잠드소서.

조경숙 · 인천 연안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