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어린이를 위한 성탄 꽁트] 그해의 성탄 선물

황정륜
입력일 2020-09-07 16:44:16 수정일 2020-09-07 16:44:16 발행일 1972-12-25 제 84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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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트리」아래 편지가…
이웃 찾아 기쁨을 선사해야
지난해의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굴뚝이 있는 어느 집집에도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진달래꽃 빛깔이랄까요.

오랑캐꽃 빛깔이랄까. 되게도 마음이 설레이고 가슴이 울렁울렁 하는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 기다림의 대상이란 꼭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아빠나 엄마는, 또는 누나나 언니나 할머니 외삼촌은 집집마다의 어린이들에 따라 다 다르지만 그날 밤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들이, 아니 이 세계의 수천만 어린이들이 기다리는 이는 똑같은 사람, 얼굴도 이름도 똑같은 그 사람이었습니다.

산타클로스! 털이 달린 새빨간 옷을 입고 새빨간 구두를 신고 오는 그사람! 말만 들어도 벙긋 웃음이 터져나오는 너무 너무 행복한 그 할아버지!아니 남을 행복하게 해주므로 자기가 행복할지도 모르는 그 할아버지!

우리나라의 서울,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별마을, 그 별마을의 맨 한가운데 자리잡은 꽃다지네 집에서는 이날 밤 초저녁부터 엄마와 아빠와 아이들 사이에 승강이질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와 아빠가 한 편이었고 꽃다지와 잎다지가, 그리고 그 동생 열매가 또 한 편이었습니다.

『엄마 엄마 아빠 아빠 어서 연탄불을 꺼요. 네!? 산타할아버지가 중독을 일으키시면 어쩔려구요. 네!? 엄마!』

『산타할아버지는 작년에도 괜찮으셨잖니? 산타할아버지는 말이지 시시하게 연탄가스 중독을 일으키실 분이 아니란다. 늘 건강하신 걸 뭐』

『그렇지만 엄마, 할아버지는 해마다 더 늙어 가시잖아요. 우리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지시자 감기 같은 것에 잘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그렇담 산타할아버지도 심장이 자꾸만 약해지실 게 아녜요. 심장이 약할수록 연탄가스에 잘 걸린다고 우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요』

『맞았어요. 사실은 그래 우린 올해부터 몹시 걱정이 된단 말예요』꽃다지의 두 동생들의 맞장구였습니다. 그러자 아빤 또 다음처럼 엄마 편을 드시었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진 올해는 아마 마스크를 하고 오실 걸. 작년에 엄마가 인삼차를 대접하신 다음 감기에 조심하라면서 마스크를 선물하였으니까 말이다』

『아빤 나빠요. 엄마도 나빠요. 우리들이 얼마나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지 너무 잘 아시면서. 사실은 그 때문에 한밤 중 미사에도 가질 않고 기다렸는데…그런데도 왜 그때 깨워 주지 않았나 말예요. 더구나 카드의 글씨가 아빠를 닮은 그 산타할아버지를 꼭 만나고 싶었는데, 할 말이 많았는데, 전할 편지도 있었는데…』

꽃다지의 말이었습니다.

『정말이예요. 아빠, 산타할아버지는 아무리 해도 좀 장난꾸러기인가 봐요. 심술장이신가 봐요. 무척 무척 착한 분이시긴 하지만. 안 그렇고는 어떻게 꼭 우리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해 깜빡 잠이 든 사이에만 왔다 가시냔 말예요. 해마다 말이지요.』

잎다지의 말이었습니다.

『누나야 난 언제 왔다 가시든 그런 건 문제가 없어. 다만 굴뚝의 연탄가스 냄새 때문에 못 오실까 봐 그게 걱정이야』열매의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다음처럼 대답하였습니다.

『얘들아 연탄은 말이지 막 갈아 넣은 때와 꺼질려고 할 때가 제일 위험한데 엄마가 방마다 연탄을 모두 낮에 갈아 넣었으니 산타할아버지가 오셔도 괜찮을 거야. 어서 드릴 선물이나 주려느냐? 엄마가 곱게 꾸며서 드리게…』

그래 이들 코흘리개 세 남매가 마지못해 내놓은 건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꽃다지는 귤 일곱 개와 장갑, 잎다지는 감 일곱 개와 양말 그리고 열매는 지팡이와 저금통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아이들에 대한 이집 아빠와 엄마의 가르침은 엄격하였습니다.

『아무리 산타할아버지이시지만 보답이 없이 자꾸만 받는 건 실례이며 미안한 일이니 너희들도 정성어린 선물들을 만들려무나 이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해마다 주기만 하고 한 번도 선물을 못 받는다면 산타할아버지께서 너무 쓸쓸하실 게 아냐』

라고 말이지요. 그래 이들 세 남매는 해마다 어떤 선물을 마련해야 하느냐가 조금 골치거리이기도 했습니다.

『얘 잎다지야, 할아버진 이빨이 나쁘실 테니 우리 물렁물렁한 걸 준비하자꾸나 나 올핸 귤로 할 테야. 잎사귀째 달린 싱싱한 걸로 잘 골라야만 할 텐데 내가 뭘 알아야지 잎다지야 그리고 이 장갑 끝에도 털을 좀 달았으면 더 좋겠지? 어떡한다아? 내 목도리를 자를까? 그래 그러자 아니 내가 좀 줄 테니 네가 짜는 양말에도 달렴! 응!』

『참말로 언니다운 생각이야 늘 희생심이 많은 우리 꽃다지 언니지만 말이지 그런데 언니가 귤을 사면 난 사과? 아니 아냐 그건 딱딱해서 안 되고 그래 그래 남 감을 살게 귤과 감에는 꼭 같이 비타민씨가 많다니까 할아버진 감기도 잘 안 들리실 거고 연탄가스 중독에도 좋으실 게 아냐』『그래 그러려무나 그렇담 열매야 넌 무엇 할래? 』

『나 말이지 난 지팡이하고 저금통』

『지팡이는 알겠는데 저금통은 왜』

『학교에서 울 선생님이 뭐라고 하신지 알아? 부자일수록 저금을 많이 한 사람이란 게야 난 아무리 해도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저금을 하실 것 같아 아마 설날 아침부터 다음 크리스마스 때까지 말이야 누나들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하면서 보통 때도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열매가 어디론가로 가서 가져 와서 보여 준 건 아주 양옥집 모양에 알록달록 색칠도 곱게 해진「집」 저금통이었습니다. 집에 비해 굴뚝이 되게 큰…. 그러구러 막상 그날 밤 크리스마스가 되자 이들 세 남매는 그 선물을 예쁘게 꾸몄습니다. 꽃다지는 쬐끄만 바구니에 귤 일곱 개를 담고 군데군데 새빨간 열매가 달린 ①「홀리」 의 푸르싱싱한 잎사귀를 꽂았습니다. 잎다지는 감 접시를 드넓은 ②「포인세티아」 의 꽃잎 새로 장식하였습니다. 열매는 집 모양의 저금통 굴뚝에다 엄마가 리본으로 만든「포인세티아」 를….

이왕이면 새하얗고 사랑스럽디 사랑스런 ③「크리스마스 로즈」 로 하였으면 했지만 웬일인지 별로 없는 것이 없는 아빠와 엄마의 온실에도 올해는 아직「크리스마스 로즈」가 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선물을 꾸미는 데 엄마가 도와주셨습니다.

『저 같은 찬물이라도 말이지. 그냥 바가지에다 떠 주는 것과 은그릇에 담아 주는 건 그 차이가 굉장히 다를 테니』 하시면서. 아아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요.

올해도 산타할아버진 좀 장난꾸러기이셨고 개구장이셨어요. 꽃다지네 세 남매가 서로 꼬집으면서 잠을 자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새 왔다 가셨는지.

아니 산타할아버지도 흐르는 세월을 따라 변하고 계셨습니다. 점점 깍쟁이가 돼 가셨습니다. 글쎄 선물이라는 게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털외투랑 스케이트랑 구두가 아닌 모두 모두 어떤 것들을 만들 재료였기 때문입니다.

꽃다지에게 주신 건 꽃을 만들 리본이었습니다. 봄 하늘 밑에 곱게 핀 연보라 라일락꽃 빛깔, 꼬투리째 달린 햇콩 빛깔, 여름 숲 속의 패랭이꽃 빛깔 등등이었습니다.

잎다지에게 주신 건 레스를 짤 수 있는 역시 갖가지 빛깔의 레스실과 바늘이었습니다. 그리고 꽃다지처럼 썰매를 타고 달려오는 산타할아버지의 그림이 무늬 놓아진 반짝반짝한, 금종이에 싸여졌으며 초록빛 리본까지 예쁘게 묶어졌습니다.

그리고 열매에게 주신 선물은 제 손으로 공작을 만들 수 있도록 채 꽃이 재료, 곧 나무와 톱 망치 등등이었습니다.

아니 가뜩이나 약이 올라 죽겠는데 아빠가 껄걸 웃으시면서 다음처럼 말씀하시질 않겠어요.

『과연 산타할아버지로군 여긴 새마을 운동의 정신이 충분히 나타나 있지 않나 말야. 우리나라 국민소득을 올려 주려는 마음이 말이다. 핫하하! 아니 그런데 너희들 왜 그렇게 울상이지?』

『이제 보니 할아버진 좀쌀쟁이 꼼꼼쟁이 깍쟁이신가 봐! 누가 그런 것까지 생각해 달랬나요? 아이 시시해라! 시시해라』

『누가 아니래? 대통령 할아버지와 짝짝꿍인가 봐 내가 크면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투표를 해 주나 봐라. 절대로 절대로 안 할 테야 아니 언니야 저기 우리들이 드린 선물이 그대로 놓여 있잖아?』

정말로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쪽 난로 옆 크리스마스 트리 아랜 이들 세 남매에게 주시는 할아버지의 편지마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또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의 글씨와 말투를 많이 흉내 내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가들에게

…너희들 아마 불평 불만이 많을 줄로 안다. 이번엔 나 산타할아버지가 너희들에게 하루를 쉬시기 전에 먼저 엿새를 일하신 하느님의 창조의 기쁨을 맛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너희들이 만든 꽃과 레스들을 가지고 너희의 메마른 이웃 (고아원 무료 병원) 을 찾아 갔다 올 때의 그 신선한 기쁨들을 선물하고 싶었단다.

그리고 너희들이 준 선물들, 참으로 고맙지만 받은 것보다 열 갑절 더 감사한 마음으로 모두 사양한다. 귤과 감은 제주도와 경상도에서 많이 먹었고 양말과 장갑도 아직 튼튼하다. 지팡이도 그렇다.

아니 그보다 먼저 너희들의 주위에 너희들의 이웃에 정말로 이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느냐? 혹시 무료 병원의 가엾은 노인을 알고 있느냐?

날마다 거리에서 만나는 늙으신 거지가 없는냐? 오 분 십 분 십오 분을 생각해 보려무나 그래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얼른 그리로 달려가서나 산타할아버지를 그분 속에서 만나 주려느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부터

※주 (註)

①흘리-크리스마스 카드 같은데 많이 그려진 톱날처럼 생긴 늘 푸른 잎사귀. 꽃말은 신성. 원산지는 남유럽 서아시아 중국.

②포인세티아-온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크리스마스의 꽃. 타는 듯이 붉은 꽃빛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뜻한다. 꽃말은 희생, 축복한다. 원산지는 멕시코.

③크리스마스 로즈-찔래꽃 같이 생긴 홑겹의 새하얀 꽃. 보통 크리스마스 때 깨끗한 모습으로 꽃핀다. 꽃말은 걱정을 잊는다. 원산지는 유럽

황정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