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야당 총재일행의 유럽순방 17일을 결산 보도한 어느 주간지 보도내용이 허위ㆍ과장됐다고 해서 당과 신문사간 마찰이 거세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로서는 어느 쪽을 편들거나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당과 신문사간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 쌍방간에 해결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티깐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를 알현한 자리에서 어느 국회의원이 교황성하를 부를 때『헤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대목이다.
교황성하께「헤이」라고 하는 말을 옆에서 들은 기자들이 어처구니가 없어 나중에 그 사실을 지적하자 그 의원은『당황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며 발뺌을 했다고 한다.
잘은 몰라도 우리가 배웠고 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영어의「헤이(Hey)」는 스스럼없는 친구간이나 자기보다 연령이나 직위가 낮은 사람을 부르거나 서로 얘기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보다 더욱 흔하게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울 때「헤이 택시」란 말을 보통 사용한다.
이렇게「헤이」란 낱말이 사용되는 범위와 한계를 놓고보면 어느 의원이 교황성하께「헤이」라고 내뱉은 배경을 한번쯤은 분석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간단한 실수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에다 우리교회 최고장상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또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한다는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의원 말대로 난생 처음으로 교황성하를 배알하다보니 정신차릴 겨를도 없었고 당황한 나머지 그런 망언을 토했다고 치자. 그러면 왜 하필「헤이」란 단어밖에 머릿속에 들어있는 말이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수준은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는가? 이번 순방길에 교황성하이외도 스웨덴ㆍ이태리ㆍ네덜란드ㆍ헝가리 등의 국가원수를 면담한 것으로 아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불렀는지 궁금하다.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교황성하를 만나는데 왜 그토록 국회의원이 당황하지 않으면 안되었는지 모르겠다. 외국말을 전혀 말할 줄 몰라서라면 애초부터 교황을 만나지 않았으면 될 일 아닌가. 통역자를 시켜서도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그래서야 무슨 일을 옳게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는가하는 걱정이다. 국회의원이 한나라의 국가원수를 대면하는데 당황한 나머지 실언(失言)을 하고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을 취했다면 소위 서구인들이 말하는「퍼스터 인프레이션(첫인상)」이 어떻게 비쳤을까? 개인 대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 대 국가에 있어서도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관계도 첫 인간관계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럽다.
만일 교황성하를 어떻게 부르는지 처음부터 몰랐다면「무식한 의원」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여ㆍ야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서 외국의 원수를 예방한다면 사전에 최소한 필요한 것이라도 익혔어야 마땅하다. 「헤이」라고 불러도 뒷탈이 없겠건지、아니면 어떻게 불러야 옳은건지 왜 사전지식도 없이 무턱대고 덤볐는가하는 점이다. 그토록 흔하게 쓰이는「파파」란 말도 몰랐는지、기억이 안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교황성하와 나란히 사진 찍히기 위해서라면 구태여「헤이」란 영어도 필요없었을 것이다. 아무 말없이 몸짓으로 해도 무방했을 것이고、외국말이 안되면 우리말로도 그 정도는 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성하는 1984년 5월 한국을 방문하시기 전 수개월간 한국인 신부를 교황청으로 초치、한국말을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올해로 70세이지만 5년 전 65세란 적지 않은 연세에도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그토록 어렵다는 한국어를 손수 공부하셨던 분이다. 이에 비하면 외국나들이를 비교적 자주하는 편인 우리의 선량들이 사전에 얼마나 공부하고 준비해서 외국을 방문하는지 한번쯤은 자성이 있어야할 것이다. 국민이 낸 세비나 기업들이 낸 기부금이라 하더라도 막대한 돈을 써가면서 결코 휴양이나 단순한 관광만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외국나들이를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번에 말썽을 빚은 어 느의원의 실언은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분노와 흥분을 유발시킨 것도 사실이다.
우리 교회로서는 교황성하의 위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이 세상교회의「볼 수 있는 으뜸」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또 바티깐시국의 국가원수이며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도덕과 정신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곧 한나라의 국가원수이며 전세계 9억 가톨릭신자의 실질적인 통치권자인 교황은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사람이 들어 높히건、깎아내리건 하등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평가받는 분이다. 2천년 교회사를 통해 264대째 내려오는 지상대리자이다.
그런 분을 친구쯤으로 생각한 것인지、아니면 자기와 대등한 관계라도 되는 듯 착각한지는 몰라도 아무튼「바위에 계란 부딪힌 꼴」로밖에는 달리 더 표현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교황을 성하(聖下)로 부르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영어의 존칭을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어식 표현으로는 교황성하를 호칭할때「Your Holiness」를、추기경에게는「Your Eminence」、대주교 주교 몬시뇰등에게는「Your Excellency」란 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로 풀어보면 교황은「성하」또는「폐하」에 해당되고 추기경은「전하」그리고 주교 등은「각하」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교황이나 추기경、주교 등에게 붙이는 각각의 존칭들은 당사자들이 그렇게 불러주도록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국제관례상 그렇게 불려온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가톨릭교회 고위성직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존칭을 사전에 깨우치지 못했다면 무식을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이번「헤이」사건을 계기로 국회의원이 또다시 국제적으로 망신당하는 일이 없도록 의원들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일을 서둘러야 하겠다.
박태봉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