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경북 하양 무학고교 시골 명문학교로 부상

입력일 2020-04-20 14:43:53 수정일 2025-03-07 13:38:32 발행일 1989-03-05 제 1645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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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특성 살려 진학 지도 

서울대 7명 비롯、명문대학 대거 합격
시골 명문학교로 부상한 무학고등학교 전경.

「농촌복음화」에 한평생을 바쳐온 사제(司祭)의 특이한 농촌선교방법이 서서히 결실을 거두고 있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서울과 지방 명문대학에 대거 합격、지방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읍 소재 무학중고등학교의 설립자 겸 교장 이임춘 신부(64세). 농촌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신념으로 교육사업에 투신、이 신부가 설립한 무학고등학교가 읍단위 농촌 지역의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꾸준히 대학 진학에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무학고등학교는 올해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에 7명을 합격시키는 등 서울과 지방 명문대학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함으로써 농촌에서는 드물게 일약 명문고로 부상、주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제12회 졸업생을 배출한 무학고는 지난 82년 5회 졸업생부터 서울대 등 전국 명문대학에 합격자를 배출해왔는데 89학년도 대입에 서울대 7명(재수생 1명 포함)을 비롯、고려대ㆍ과학기술대ㆍ서강대 등 서울 지역에 23명을 합격시켰고 경북대33명、영남대 57명、호성여대 12명 등 지방대에 1백88명을 합격시켜 합격률 60%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 지원자는 인기학과에 전원 합격을 했고 대구 교대 수석합격을 포함「반면」이상 장학생만 21명이나 차지한 무학고는 지난 84년 학력고사에서 경상북도 인문계 수석을 차지했으며 87학년도 육군사관학교 수석합격을 낸 바 있다.

무학고교의 이 같은 성과는 농촌문제 해결 방법을 교육에서 찾으려한 교장 이임춘 신부의 헌신적 노력과 의지로 비롯됐다.

6ㆍ25 직후인 1955년 어려운 농촌 지역인 대구대교구 하양본당 주임신부로 첫 발령받은 이 신부는 직면한 농촌문제 해결에 발벗고나서 임야(무학산)개간、축산단지도성、의료사업과 취로사업을 거쳐 농촌선교의 장기포석으로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쪼들리는 형편임에도 굳이 자녀들을 대도시로 유학시키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한편 간접 선교 차원에서 도시학교 못지않은 좋은 학교 건립에 나선 이 신부는 당시 영천본당 주임 강찬형 신부로 부터 자금을 빌고 손수 삽과 괭이를 들고 무학산 기슭을 일구며 65년 무학중학교、74년 무학고등학교를 각각 설립했다.

『졸업생들의 영세율이 무척 높다』고 밝히는 이 신부는 농촌 지역의 뿌리 깊은 유림사상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한 종교 냄새를 배제해왔다. 그러나 학교 숙직실에서 침식을 해오며 교사들과 합심、성실한 학생지도로 지역사회의 높은 신뢰를 받으면서 학교의 발전과 더불어 자녀교육을 위한 이농현상도 줄어들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성격과 집안까지 소상히 알 수 있는 농촌지역의 특성을 살려 면밀한 진학지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클럽활동을 통해 전인교육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는 무학고는 21개 학급 총 1천1백명 전교생을 수용할 수 있는 9백60석의 대형 도서관의 효율적 운용이 학생들의 학력 신장의 열쇠가 되고 있다.

2학년 야영훈련ㆍ등반수련훈련ㆍ간부학생 하계야영훈련ㆍ종교반 피정ㆍ클럽 활동 부서별 야외수련회를 연중 실시하는 등 3년 동안 교사와 학생들의 일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 무학고는 40명의 교사 전원이 매일 2명씩 순번제로 학생들의 도서관 자율학습을 지도하는 등 교사와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돼 학습 의욕을 높이고 있다.

교감선생은 새벽 6시30분 등교、밤 11시에 퇴근하는 무학고교는 그동안 남녀공학(각 학년 7학급 중 여학생은 2학급)이었는데 올해 12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여학생 없이 남자고등학교로 전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