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면에 쏟아진 사건 모두가 너무 엄청나 정신을 차릴수 없다. 1백 15명의 고귀한 인명을 한순간에 앗아간 대한항공 858편 폭파범, 김현희 사건으로부터 유괴범에 의해 초롱한 눈망울을 영원히 감고만 원혜준양 사건, 경찰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직은 어린 16살의 명군사건, 그리고 참으로 이해할수 없는 박군 고문살해 은폐조작사건의 연속극 등등….
신문지면을 다루어 장식한 일련의 사건들로 신문마다 판매부수는 늘었는지 몰라도 우리의 가슴은 더이상 가라앉을 곳 없이 내려앉았고 더 이상 조각을 여지없이 찢겨져 버린 새해 벽두였다.
『백번죽어 마땅하다』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빼앗아버린 KAL기 폭파사건의 하수인 김현희가 기자회견중 토로한 이 말속엔 분명 회한의 뜻이 담겨져 있다. 그 회한의 폭이 아무리 깊고 넓다 한들 희생자 가족 가슴마다 휘저어놓은 상처와 만무하다. 그녀가 털어놓은 사건의 전말을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분노와 함께 연민의 감정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을 뉘우치는 한 여인의 모습에 대한 인간적인 동정인 동시에 철저히 폐쇄된 사회, 북녘땅 그 어두움에 대한 안타까움의 발로일 것이다.
조각난 땅일 망정 분명 조국과 민족은 하나련만 서로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다시금 생각해도 서글프기 짝이 없다. KAL기의 비극을 보는 세계의 시각들은 존엄해야할 인간생명을 무참하게 짓밟고만 테러와 그 잔인성에 같은 분노로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짓밟한 인간생명에 대한 분노 속에서 그들의 쉽게 느끼곤하는 의구심은 언제나 같다. 『도대체 한국사람들은, 그 민족성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일까』우리가 아무리「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를 외쳐도, 북쪽이 아무리「북조선」을 부르짖어도 확실한 것은 이(異)민족이 보는 코리아는「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테러로 인해 번번이 희생제물이 되는 우리의 현실, 그 현실에 동정과 격려의 눈길을 보내는 세계 각국 사람들 앞에 우리가 진한 슬픔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낄수 밖에 없음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의 다짐은 더이상 비인간적인 만행이 재연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 일치하고있다. 그 속엔 어느 누구도 흉악한 테러행위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다짐도 포함돼있다.
한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으로서 부끄럽게 짝이없는 노릇이지만 KAL기 비극의 재연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다각적인 대책과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명백한 범죄집단이 하나의 국가단위로 국제여론의 환기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이번 사건의 진상에 경악한 여러 나라에서 북한에 대한 적절한 제재ㆍ응징조치를 강구하고 있고 이같은 움직임은 계속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들과「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소련, 중공, 그밖의 동구권 국가들이 북괴의 만행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우리의 외교적 시야를 다원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겠다. 범죄와 테러를 일삼는 범죄집단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국제적인 문제아로 고립시키는 가운데서도 우리가 꿈에도 잊지말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하루 빨리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일이다. 그들 집단의 잘못을 엄중히 단죄하는 일면, 이 작은 한반도가 하나의 국가로, 민족으로 일치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정치발전과 민주화,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성숙 역시 그길을 여는 지름길이다. 우리의 정치적ㆍ사회적ㆍ경제적안정은 북괴의 치졸하고 파렴치한 폭력행위를 더이상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무기가될 수 있음도 인지해야한다.
KAL기의 비극과 더불어 오늘 우리는 故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또 다른 얼굴 앞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완벽히 마무리됐다던 박군 사건의 꼬리는 그가 희생당한지 1년을 넘긴 지금까지 이어져 국민들을 의혹 속에 몰아넣고 있다. 고문이라는 비인간적 행위 끝에 살인으로 몰고간 경찰과 관계기관의 진실은폐의 반복은 과연 어떤 죄목으로 국민의 단죄를 받아야 마땅할까.
박군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 앞에 던져진 제2의 박군사건은 차라리 할 말을 잃게 한다. 경찰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던 16살의 명군은 박군 사건 이후 민주경찰을 외치던 바로 그들의 폭력으로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우리 국민의 인내심, 그 한계성을 시험하는듯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존엄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수 없다.
경찰의 공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중한 책무에 속한 그 공권력이 폭력이라는 형태로 국민에게 되돌아온다면 우리는 어디서 우리의 생존권ㆍ생명유지권을 보장받아야 한단말인가.
어떤 범죄의 형태는 인간의 죄를 단죄하는 과정과 방법은 않는 적법절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살인적인 고문ㆍ폭력이 난무하는 수사방법이 판을 치는 이 사회에서 흉악한 범죄가 횡행함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날로 흉포화하는 폭력과 범죄의 수렁속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길은 상실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에서 비롯된어야 한다. 어떤 모습의 인간이라도 어떤 형태의 사람이라도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 존엄함을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는다면, 그래서 이 사회가 모든 인간의 생명을 참으로 귀중하게 여기게된다면 우린 더 이상 혜준이의 비극을 체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슴저리는 아픔을 국민 모두의 가슴속에 남기고간 故 원혜중양, 그 가족의 비극은 재연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뿐만아니라 제2의 박군, 제2의 명군도 탄생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더 나아가 백번죽어 마땅하다는 제2의 마유미를 만나지 않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1백 15명의 대한 항공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빌면서 아울러 박군과 혜준양의 명복을 빌고자한다. 그리고 명군의 소생과 빠른 쾌유를 위해 우리 모두의 기도를 청하고자 한다.
<취재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