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걸림돌]

입력일 2018-12-21 14:01:59 수정일 2018-12-21 14:01:59 발행일 1991-01-20 제 1738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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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마른듯한 얼굴, 매서운 눈매, 벗겨진 이마, 그리고 콧수염. 제대로 묘사가 됐는지 미지수지만 대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레닌의 모습이다. 물론, 동상이나 흉상·초상화 및 기록영화 등이 남기고 있는 흔적들이다. 소련을 비롯 소련연방 어느나라에서나 그의 초상은 가장 좋은 위치에서 인민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싹을 틔우고 러시아를 전세계 사회주의 국가들의 종주국의 위치에 올려 놓은 장본인, 레닌은 그 이념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소련의 영웅으로 자리하고 있다. 스탈린·후르시초프 등의 초상들이 불속에 내던져질 때에도 그는 변함없이 높다란 위치에서 인민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어느나라나 크게 다를바없지만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의 초상, 동상에 대한 집념은 유별난것 같다. 중국의 모택동, 소련의 레닌은 그중의 대표격이다. 계급사회를 타파하고 모든 인민들이 똑같이 살 수 있는 낙원을 이 세상에서 이룩한다는 그들의 이론에서 살펴본다면 앞과 뒤가 맞지 않는다. 그들의 이론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선 천안문이나 붉은 광장에는 위대한 노동자의 초상이 걸려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최근 거지들의 왕국(?) 꽃동네에는 묘한 모습의 동상이 세워져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약간 구부정한 모습의 이 동상은 털벙거지를 머리에 쓰고 깡통을 찬,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 그것이다. 그가 바로 최귀동 할아버지다. 오늘의 꽃동네를 있게한 장본인, ‘거지대장’ 최귀동 할아버지의 동상이 꽃동네에 세워진 것이다. ▼거지모습의 동상은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거지가 동상의 주인공이 됐다는 소식은 진정 오랜만에 듣는 유쾌한 소식이다. 거지의 신세가 분명했지만 최귀동 할아버지는 남은 생 전부를 남을 위해 썼다. 거지들의 생존을 위해 송두리째 바친 그의 삶은 동상으로 새겨 남기기에 부족한지도 모른다. 그는 어떤 삶이 동상으로 남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