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손길을 펼쳐온 인천 해성보육원이 설립 1백 주년을 맞았다.
1894년 8월 18일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인천분원의 시료소에서 처음 시작된 해성보육원은 올해까지 1백 년간 1만2천여 명의 버려진 아이들을 보호, 국내외 입양, 연고자 양도, 또는 사회에 진출시킴으로써 우리나라 아동복지사업의 산 증인으로 이어져왔다.
가난과 질병, 무지로 인해 버려지는 어린이들이 많았던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들을 돌보는 일은 매우 시급한 문제였다. 이를 위해 1888년 7월 20일 처음 한국에 수녀들을 파견한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는 1888년 서울의 종현고아원을 인수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인천, 대구, 부산 등지에서 고아 구제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1893년 12월 한국에 도착한 프랑스인 마리 클레망스 수녀와 엠마누엘 수녀는 1894년 8월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버려진 5명의 아이들을 모아 보살피기 시작했고 이것이 오늘날 해성보육원의 시초가 되었다.
1896년 원사 신축과 함께 인천본당 소속으로 운영되기 시작해 인천본당 주임 드뇌 신부의 배려로 재정 기반을 마련한 보육원은 1926년 조선총독부 구호령에 의한 보육원 시설 인가를 받으면서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인천수녀원에서 직접 관리하게 됐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1966년 7월 18세 이하 청소년의 수용을 위해 육아원 시설 인가를 받음으로써 보육원은 0세부터 5세까지 영아를 수용하는 영아원과 육아원으로 복합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육아원은 1980년 수용 아동의 감소로 폐업됐고 1983년 현대식 시설과 건물을 신축,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해성보육원에 생활하고 있는 아동들은 고아나 기아가 대부분이던 과거와는 달리 부모의 이혼 등 가정 결손으로 일시적으로 수용되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들 중 40% 정도가 1년 내지 2년 안에 연고자에 의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고 40%는 국내외로 입양된다. 한편 올해 8월로 1백 주년을 맞은 해성보육원은 10월 31일 이를 기념하는 미사를 비롯, 사진전 등 기념 행사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