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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영성체

입력일 2017-06-07 18:35:41 수정일 2017-06-07 18:35:41 발행일 1992-06-07 제 180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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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성체성사로 인도하는 길
첫 영성체 교육의 첫 교실은 가정
“성사는 하느님의 선물” 가르쳐야
하느님이 삶을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느낄 수 있으려면 어린아이는 자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아봐야 한다. 이것이 선결조건이다. 이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어야 한다. 네가 잘 하면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해서는 안된다. 또 이 사랑은 안정과 아늑함을 주고 개발의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린아이는 하느님이 좋으신 분이고 선물도 주며 믿을 수 있고 용서해 주시고 용기도 주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비록 어떤 것들은, 예컨대 고통과 병같은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렇다.

성체와 교회공동체 안에서 성장하도록 인도하기 위해서, 집에서 공동으로 하는 식사도 좋은 가르침이 된다. 식사시간에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도 즐겁고 좋은 대화도 나누고, 말을 막지 말고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수 있고 또 경청하는 것이다.

귀한 손님이 와서 잔치의 분위기가 있을 때나 또는 평소의 식탁에서도 기도를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은혜와 음식을 준비한 사람들을 생각하도록 한다.

첫영성체를 준비할 때 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징적인 것을 사용 할 수 있다. 아버지가 결혼기념일에 어머니에게 꽃이나 선물을 갖고 와서 사랑의 표시를 한다든지 매년 돌아오는 명절이나 축일 즉 대림절 화환, 성탄절 초, 부활계란 등의 상징들을 준비하고 설명해 줄 수 있다.

■ 하느님에 대해서 얘기한다

항상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해 얘기해주고 하느님과 함께 얘기(기도) 하는 일이다. 어린이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어린이가 하느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므로 이런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하느님이 위대하고 권위있고 사랑스럽고 이해심 많은 하느님 인지 또는 편협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처벌하고 엄격한 하느님인지 부모의 모범이 여기서 가장 중요하다. 어린 아이가 어디서 이런 상상이나 비교를 할 수 있겠는가?

첫영성체할 어린이는 준비과정에서 집에서 최소한의 기도는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한다. 십자성호ㆍ주의 기도와 성모송 등이다. 이는 자주 반복해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로 하느님께 얘기하고, 감사하고, 무엇을 청할수 있어야 한다.

첫영성체 어린이의 부모는 이 성체성사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을 갖고 이를 자녀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할것이다. 성체성사에 대해서 다음의 몇가지를 설명해줘야 한다.

■ 성사들-하느님의 사랑의 표시(상징)이다

하느님의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사람이 되신것, 그분의 생애와 고통 그리고 부활은 하느님이 자기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염려해주신다는 표시이다.

예수가 세운 교회, 심령과 결합한 이 교회는 하느님이 항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 계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 교회는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 삶이 성공하도록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출생 성장, 다른 사람들과의 교우 잘못, 결혼생활, 공동체에 종사, 병과 죽음, 은혜 등에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을 성사라고 부른다. 성사는 우리가 우연이나 암흑의 세력에 넘겨진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하느님이 동반해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표시인것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신앙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누군가가 믿으면서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동시에 신앙을 더 굳게 할 수 있다.

인생의 중요한 일과 관련해서 교회는 지난 수세기 이래로 7가지의 성사를 규정해놓았다. 즉 세례ㆍ견진ㆍ성체ㆍ고백(참회)ㆍ결혼ㆍ신품ㆍ병자성사이다.

각 성사는 말씀과 볼 수 있는 표시 즉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세례-물과 기름바름, 성체-밀떡과 포도주, 결혼-서약과 반지) .

이들 두가지는 내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가리켜준다. 세례-그리스도신자의 시작이요 원천, 성체-그리스도와 일치, 고백-잘못의 용서와 화해 등이 그 예이다. 우리 사람들은 이해하기 위해서 이성이 필요하지만 또한 우리의 감각과 느낌도 필요하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일치해있는것과 같이 성사도 그렇게 되어있다.

그러나 성사를 한번만 받고서 의무를 다했다며 즉시 『벽에 걸어놓아버리는』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성사는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고, 항상 선을 위하며 악을 피하고, 화해를 모색하고, 결혼생활을 하느님께 열어보이고, 고통을 참아받고…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성사가 생명을 주는 힘이 될 수 있다.

■ 성체 성사

예수께서 이세상에 사셨을때 자신을 사람들에게 헌신했다. 자기의 시간을 내주고, 말씀을 해주고 도움과 힘을 주고 사랑과 그리고 최후에는 목숨까지도 내어주셨다.

그분은 한편으론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자신을 주셨고 또 한편으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며 밀떡과 포도주의 모양으로 자신을 주셨다. 이 두가지 모양으로 그분은 사람들이 자시를 볼수 있고 만질수 있도록 이 세상에 남아있으며 그들에게 먹도록 음식이 된 것이다.

밀떡과 포도주는 영양과 생명을 상징하고 또한 나누어줌, 식사 그리고 사랑과 공동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먹고 마시는 것보다, 『자기를 무엇과 한몸이 되게 하는 것』보다 더 진한 결합이 어디 있겠는가?

성체성사는 여러가지 차원이 있다. 비록 예수가 항상 현존하고 있다해도『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오 18,20)

그 분은 밀떡과 술의 형상안에-미사때, 감실안에, 성체강복때-특별히 더구나 볼수 있고 잡을수 있는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자들의 「한가운데」고서, 기도하는 곳이며 공동체 모임의 장소인 것이다.

예수가 밀떡과 술안에 현존하게 되는 것은 성체성사 즉 미사때 일어나는데 옳게 번역하면 신자공동체가 주님께 『감사』할때 일어나는 것이다.

최후의 만찬때 예수가 부탁한대로『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즉 자기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부탁으로 미사때 밀떡과 포도주가 (외형상으로는 변함이 없으나) 내적본질상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다.

어떻게 이것이 일어나는지는 정말 「신앙의 신비」일 뿐이다.

우리의 머리로는 알아들을수 없으나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 성찬에서 예수와 일치하고 성체를 받아먹으므로 예수와 온전히 일치하는 사람은 단순히 제병(밀떡)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스스로 변해서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틈새와 상처를 치료받게 되는 것이다.

성체를 받아모시고 예수와 일치하면 우리 사람들 사이에도 일치를 이루게 되고 더욱 강하게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해주는 표시가 된다.

■ 부모에게 몇가지 질문

- 아이들은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녀들과의 관계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 우리들의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명절(축일)이나 주일날에는?

- 우리에게 의미있는 상징이나 표시같은 것이 가정안에 있는가? 우리가 서로 함께 속해있다는 표시는 무엇인가? 중요하고, 거룩한 것에 대한 표시는 있는가?

- 자녀들과 하느님에 대해서 언제 이야기를 나누는가? 어떻게 대화하는가? 이때 어려운 점이 있는가?

- 기도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함께 하는 기도나 각자 개인적인 기도를 하고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