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여성칼럼] 빛과 그늘 / 김관숙

김관숙ㆍ서울 잠실본당ㆍ크리스티나
입력일 2017-04-20 11:18:56 수정일 2017-04-20 11:18:56 발행일 1992-03-15 제 179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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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잉-데에엥-어디선가 징소리가 긴 여운을 달고 들려온다. 꽹과리 북소리도 섞이는 걸로 미루어 아파트 단지안의 연례행사인 대보름 척사대회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근자에 들어 겪은 일련의 슬프고 우울한 사건들로 저조한 기분인 내게 그 풍물소리는 경이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출길에 급한 용무에도 불구하고 나는 놀이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쩌면 비애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늘마저 축축하고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짐작대로 상가 앞의 공지에는 차일이 쳐지고 남녀노소 주민들이 끼리 끼리 이마를 맞대고 윷놀이에 열중해 있었다. 차일 아래 책상에는 우승팀에게 돌아갈 상품이 쌓여있고 막걸리며 안주 음료수도 푸짐하다. 상가의 낯익은 업주들이 풍물을 잡고 신명을 내며 분위기의 흥을 돋구는 모습도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그래 산다는 건 이렇게 좋은일인데…놀이터 주변을 기웃거리며 나는 어쩔수 없이 한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한부를 선고받은 지인과 지금이순간에도 생사의 길림길에서 신음하고 있을 수많은 환자들을.

며칠 전, 가까운 어른의 상을 치루었다. 혈손이 없어 임종 다음 날 출상을 하고 한 웅큼의 재가 골짜기에 뿌려지기 까지의 의식은 불과 24시간 남짓으로 족했다. 그 분의 시신을 삼킨 화구 앞에서, 순간의 불길에 정리되어 사라지는 칠십 사년의 인간 생애가 너무나도 허무하고 한날 물질로 변한 육신의 보잘것없음과 오랜 투병으로 고생하시던 생전의 모습이 가엾고 슬퍼서 뜨겁게 울었었다.

태어남과 죽음, 소멸과 생성이 끊임없이 윤회되는 자연의 조화 그 오묘한 신의 섭리, 삶과 죽음이 빛과 그늘처럼 밀접한 세상살이에서 하느님께서 부어주신 당신의 숨결을 거두시자 단박에 부패되는 이 하잖은 육신으로 우리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뚜렷한 명제가 놀이마당에서 발길을 돌리는 나의 가슴을 쳤다. 고귀한 영혼과 정신을 소유하도록 허락받은 그 순간까지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살되 』(전도서2, 24) 단순히 먹고 마시며 즐기기에 앞서 땀흘려 수고하고 나누며 열심히 사랑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함을 재인식하며 다시 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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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숙ㆍ서울 잠실본당ㆍ크리스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