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소리내 운다, 땅 끝까지 숨어야했던 절박함을 아는지…
순교자성월이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문턱이 마주한 요즈음, 땅의 끝자락과 바다가 마주하고 있는 거제도 ‘천주교순례길’을 찾았다. 산과 바다의 운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빼어난 절경과 함께 선조들이 목숨으로 증거한 신앙의 역사를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길이다. ‘천주교순례길’은 거제시가 조성 중인 ‘섬&섬길’ 코스 중 하나로, 예구마을 선착장에서 서이말등대를 들렀다 순교복자 윤봉문요셉성지를 거쳐 지세포성과 거제조선해양문화관까지 가는 13.7㎞(5시간40분) 순례길이다.
■ 순교복자 윤봉문요셉성지
보통은 예구마을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지에 먼저 들러 기도하며 순례길을 나서기로 했다. 경남 거제시 지세포3길 69-22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마산교구 순교복자 윤봉문요셉성지(담당 허철수 신부). 성지에 들어서니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순교자 복자 윤봉문요셉성지’ 글귀가 순례객을 반긴다. 좀 더 올라가면 나오는 성모자상을 지나 십자가의 길로 향했다. 한여름 폭염은 이미 한풀 꺾인 날씨지만 한낮의 볕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십자가의 길 입구에 들어서니 맹종죽(孟宗竹)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햇볕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대나무숲 사이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14처를 다 돌고 나면 남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 옆으로 복자 윤봉문의 묘소가 있다. 죄수들이 쓰던 칼을 형상화한 순교자탑 아래 마름모꼴로 된 관이 복자의 묘소다. 원래 가파른 산중 쪽박골(족박골)에 안장돼 있던 복자의 유해를 2013년 4월 이곳으로 옮겨 모시면서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복자 윤봉문 요셉(1848~1888)은 거제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윤사우(스타니슬라오)의 둘째 아들로, 양산 대청(현 부산시 기장면)에 숨어살다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거제도로 건너왔다. 이후 열심한 포교활동을 벌이다 1888년 체포돼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성지 담당 허철수 신부는 “이곳은 무엇보다 거제도라는 천혜의 풍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성지”라며 “순례길을 통해 신자들이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되새기며 기도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허 신부는 “순례객들을 위해 피정의 집과 대성당을 비롯한 각종 시설들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정정호 기자 pius@catimes.kr
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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