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용인에「성심원」축성

입력일 2011-06-30 14:27:00 수정일 2011-06-30 14:27:00 발행일 1984-11-18 제 1431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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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고아들 새보금자리
故 이우철 신부의 일생바친 결실
한 노사제의 꿈과 집념、소년의 마을(Boys Town)이 그가 떠난지 8개월만에 실현됐다. 고아들의 아버지 故 李宇哲 신부가 생애를 통해 염원해 온 소년의 마을- 성심원은 온갖 역경과 고난속에서도 밝은 내일이 있음을 확신하는 소년들의 기도속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 산13번지、넓은 대지위에 소박하게 자리잡은 성심원(원장ㆍ김의경 수녀)새보금자리는 소년의 마을 건립을 향해 자신의 전부를 불태우다 지난 3월 선종한 故 이우철 원장신부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 새 집이 완공되던 날 60여명의 원아들은 故「신부아버지」의 각별했던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그사랑을 밑거름으로 훌륭히 자라날 것을 굳게 다짐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성심원 축성식및 축성미사는 11월 8일 오전 10시 30분 용인 현장에서 베풀어졌다.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를 비롯 수원교구 성직자및 곽성민 신부(동성중고교 지도)등 10여명의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축성미사로 시작된 이날 축성식에는 성심원을 지원해 온 각계 은인들이 참석、불우한 현실을 딛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고자 발돋움하는 성심원이 더욱 풍요로운 사랑의 집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원했다.

이날 김남수 주교는 축성미사 중 강론을 통해『성심원의 축성은 故 이우철 신부의 꿈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 피어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이 사랑의 집 소년들이 미래사회역군으로 자라나도록 끊임없는 사랑과 정성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1946년에 싹튼 성심원의 역사는 올해로 38년에 이르고있다. 해방후 가난과 질병이 휩쓸던 당시、중림동 보좌이던 이우철 신부가 서울역을 배회하던 5명의 고아들을 보호하면서 이루어진 사랑의 집、47년 강남구 잠원동에 농지와 가옥을 인수하면서 성심원으로 개원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자 결심했던 이 신부의 투신으로 이듬해 60여명 고아들의 보금자리로 성장한 성심원은 비운의 6ㆍ25로 고난의 길에 들어섰다.

이때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로는 1ㆍ4후퇴 등을 겪으면서 1백20명으로 불어난 대가족이 피난지에서 뿔뿔이 헤어지는등 끊임없이 이어졌으나 총알이 빗발치는 난리통에도 원아들은 모두 무사한 기적(?)은 맛보았다.

52년、잿더미 위에서 재건의 삽을 잡은 성심원은 각계의 도움으로 삶의 터전을 확장해 왔으며 원아들의 장래를 위해 전문학교 인수 기술학교 설립등으로 쉴사이 없이 뛴 이 신부의 정성은 성심원 성장의 밑거름을 이루었다. 70년대 말 강남지역 일대가 아파트 단지로 조성되면서 있을 곳이 불안해진 성심원은 봉촌동 마천동으로 이어지는 이전계획이 여건상 모두 좌절돼 결국 용인 현부지로 안주하게 된것.

40여년간 1천 2백명의 자식을 길러내는 동안 패기의 젊은 사제는 백발의 노사제로 변모했으나 원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노사제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이전 문제로 겹치는 난관을 이겨낸 이 신부는 새부지에서 부푼 희망속에 기공의 첫 삽을 든 이튿날 그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소년들을 남겨놓고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