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장차관 인사를 둘러싸고 흥미있는 단어를 보았다.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국정원을 <4대 권력기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을까? 신조어는 아닌 것 같은데, 왠지 어색하다.
경찰청과 검찰청은 범죄자를 체포하고 기소하는 곳, 국세청은 국세를 징수하는 곳, 국정원은 국가정보를 수집하는 곳이다. 공적기관으로서 당연히 ‘임무’가 있지만, 굳이 <권력기관>이라 할 만큼 특별한 것은 부여되어 있지 않다. 다른 부처들과 다름이 없다. 그런데 왜 <4대 권력기관>일까?
법적으로 보면 이 기관들의 계급(?)은 그렇게 안 높다. 경찰청은 행정안전부장관의 소속기관이다. 경찰청장은 ‘차관급’에 불과(?)하다. 검찰청은 특별히 사법기능을 수행한다고 하여 검찰총장도 장관급이지만, 어디까지나 법무부장관 소속기관이다. 국세청도 기획재정부장관의 소속이다. 대통령 직속인 국정원을 제외하고는, 위로 모두 장관이 있다.
그런데 상부기관은 권력기관이 아닌데 산하기관이 권력기관이다. 행정안전부는 권력기관이 아닌데 경찰청은 권력기관이다. 법무부를 권력기관으로 안 부르는데 검찰청은 권력기관이다. 대통령의 측근 실세라 하던 강만수 전 장관의 기획재정부는 권력기관이 아닌데, 국세청은 권력기관이다. 도대체 무슨 <권력>이 있는 걸까?
외국에서는 <권력기관>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4대 권력기관>이라는 말은 아예 들어본 적도 없다.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국정원을 <4대 권력기관>이라고 소개하면 놀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다보니 기관장들의 인사도 주목을 못 받는다.
일본의 경우, 경찰청장은 전임자가 후임자를 추천하고, 검찰총장도 실력과 신망을 갖춘 인물이 차기로 이미 물망에 올랐다가 나중에 임명된다. 국세청장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관례이다. 국정원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은 격이 많이 떨어져서 아예 관심 밖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 갔다가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임명 기사를 본 기억을 떠올려 말을 걸었더니 깜짝 놀란다. 미국 사람인 자신들도 모르는데, 외국인이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무슨 관계가 있냐고 캐묻는다.
따지고 보면 <4대 권력기관>은 모두 범법자와 관계되는 곳이다. 이 기관들이 권력기관인 것은 범죄자를 단속하고 처벌하는 공권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범죄와 무관한 절대 다수의 일반국민에게는 관계가 없을 텐데, 왜 <권력기관>으로 받아들여질까?
요즘 부쩍 대통령이 법질서와 법치를 강조한다. 지당한 지적이지만, 왠지 어색하다. 일반국민들은 강조를 안 해도 법질서를 준수한다. 굳이 강조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범죄자들이 맞다. 교도소에 가면 ‘법질서의 확립’이라는 표어가 크게 붙어있다.
그런데 왜 벌금도 내본 적 없는 선량한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자꾸만 법질서를 강조하는 걸까? ‘국민=범법자’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건 아닐까?
법치주의도 절대적인 이념이 아니다. 법치주의의 원어는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다. 법을 수단으로 해서 통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치주의는 이중의 칼날을 갖고 있다. 올바른 법치주의는 좋지만, 잘못된 법치주의는 <칼자루 법치>로 전락할 수 있다.
독재시대도 아닌 오늘날에도 경찰청, 검찰청, 국세청, 국정원이 <4대 권력기관>으로 인정받는 것은, 법을 정의롭고 평등하게 집행하여 올바른 법치주의를 실천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4대 권력기관>은 위만 쳐다보고 국민과는 어긋난다. 국민과 대립하고 충돌한다. 자꾸만 신뢰를 잃어간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이고 권력도 국민에게 있다고 확실히 선언하고 있다. 국민과 괴리되고 국민의 신뢰를 못 받는 기관은 권력기관이라 할 수 없다.
<4대 권력기관>은 <4대 국민신뢰기관>이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국민을 섬기겠다는 정권 초기의 캐치프레이즈가 퇴색한 현수막처럼 희미해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