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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교회 미술 산책] (19) 루도비코 카라치의 ‘성 베드로의 울음’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8-11-02 수정일 200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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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울자 말씀이 생각나 슬피 울었다’

허공에 내민 손가락·간절한 눈빛으로 베드로 후회 묘사

아래 쪽 투박한 발 옆에는 천국의 열쇠가 어렴풋이 보여

성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가장 먼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으며,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서 사도 중의 으뜸이며,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받았고, 교회를 세우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제 1대 교황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성경에서 열두 사도들을 언급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며, 예수님은 변모의 기적을 행할 때나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늘 베드로를 동반하셨다. 그러니 베드로는 얼마나 축복받은 제자이며,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역사상 많은 화가들이 베드로를 주제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 그 대표적인 주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천국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성경의 이 부분은 베드로의 정체성과 그의 역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일 것 같다. 예수님은 그를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라 불렀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그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다. 그에게 주님의 지상 대리인의 역할을 맡기신 것이다. 베드로가 열두 제자 중의 으뜸이자 제 1대 교황이 된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베드로

그런 베드로도 평생 후회할 만큼 큰 잘못을 한 번 저질렀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예수님이 잡혀가신 후 하녀 하나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베드로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이다. 그는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말이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한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며 세 번째 부인하자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베드로를 그린 그림 중에 ‘베드로의 후회’ 혹은 ‘베드로의 울음’이라는 제목으로 된 작품들이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그 치명적 과실로 인해 평생을 눈물로써 참회하였으며, 이로 인해 눈가가 패어있었다고 전해진 내용을 그린 것이다.

루도비코 카라치(Ludovico Carracci, 1555~1619)가 그린 ‘베드로의 울음’은 닭이 옆에 그려져서 지금 막 그가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슬피 우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허공에 내민 손가락과 간절한 눈빛에서 그가 온몸으로 후회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화면 아래 쪽 투박한 어부의 발 옆에는 베드로를 상징하는 천국의 열쇠가 어렴풋이 보인다. 화가는 화면의 시선을 베드로에게만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은 아예 새까맣게 처리해버렸다.

루도비코 카라치는 볼로냐의 그 유명한 카라치 가문이 배출한 3명의 걸출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은 트렌트 공의회 이후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가톨릭의 새로 정립된 교리와 이념을 그림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가톨릭 개혁 화가들에 속한다. 자칫 이념을 대변하는 작가의 그림들이 설득력에 치중하다 보면 예술성에서 뒤질 수도 있지만 루도비코의 이 작품은 성 베드로의 본질을 참으로 인간적이고, 절실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베드로의 후회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일 것이다.

예수님을 그토록 따르고 사랑하던 애제자 베드로도 예수님이 가장 어려움에 처한 순간에 모른다고 부인하는 잘못을 저질렀는데 세상의 그 누가 인간적 실수 혹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제는 죄를 지은 이후의 태도가 아닐까.

다른 한편으로 베드로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토록 절실하게 눈물을 흘리며 평생을 참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니, 인간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주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염치없게도 불쑥 들었다.

고종희(마리아·한양여대 조형일러스트레이션과 교수)

Tip

이번 호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 경향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반종교 개혁 운동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지나가자.

반종교 개혁은 프로테스탄트에 의한 종교 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즉 가톨릭 교회가 영향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교회의 쇄신을 목표로 일어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주로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이미 받아들인 특정 지역의 한정된 분야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펼쳐졌다.

바로크 미술(예술)이 발전하는 데는 반종교 개혁도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르네상스의 영광이 매너리즘에 밀려난 시기,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 등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세력 확산을 막기 위해 고심했고 구체적인 노력의 하나로 미술을 통해 신앙을 격려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을 적극 권고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술 작품이 감동적이면서도 신자들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맹인 경우도 많았던 일반 신자들은 보다 사실적인 미술 표현을 통해 교회의 가르침을 보다 쉽게 이해하곤 했다.

루도비코 카라치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 사이의 과도기에서 활동한 가톨릭 개혁 예술가로 불린다. 가톨릭 개혁 예술가들은 평신도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고 또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예술을 장려했고, 결과적으로 바로크 미술도 성장했다.

특히 카라치 집안은 볼로냐 출신의 대표적인 화가들을 배출하며 바로크 미술 확립에 크게 공헌한 바 있다. 또 루도비코 카라치는 사촌동생인 아니발레 카라치 등과 함께 미술아카데미를 설립해 바로크 미술의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림설명

루도비코 카라치의 '베드로의 울음', 캔버스에 유채, 1613~15, 153×112cm, 프린스턴, 바르바라 존슨 컬렉션.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