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꽃을 파는 사람-류봉순씨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05-04-25 16:48:00 수정일 2005-04-25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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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꽃도매상가를 운영해온 류봉순씨는 꽃들이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송이 한송이 다루는데도 정성을 다한다.
"꽃한송이에 그리스도 향기 퍼져"

20년째 서울 강남터미널서 도매장 운영

신앙인으로서 신뢰강조하며 좋은 꽃 전해

새벽 2시, 어둠이 한껏 짙어진 서울 도심 속 고속버스터미널 꽃도매 상가에서는 유난히 밝은 빛과 봄꽃 향기가 새어나온다. 도심에서 봄꽃 향기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꽃시장 중 하나다.

형형색색 꽃들은 순식간에 수백송이씩 포장되고 전국 각지로 이동한다. 봄이면 가장 큰 인기를 누리는 프리지어, 큰 얼굴을 환히 펼친 거베라, 노오란 수선화, 보랏빛 리시안 등 각색의 꽃들은 봄소식을 전할 마음에 설레는 시간을 보낸다. 요즘엔 온실 덕분에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봄꽃들이 그득한 꽃시장의 새봄맞이와는 비길 바가 아니다.

류봉순(요셉피나.48)씨는 이곳 꽃상가에서 20여년째 꽃과 함께 살아왔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간 꽃송이와 사람들은 물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매일보는 꽃들이지만 매순간 다른 얼굴로 반겨주는 꽃들은 늘 새로운 생명력으로 기운을 북돋아준다고.

새벽 4시가 가까운 시간, 전국에서 올라온 도매상들이 한물 지나가자 류씨도 잠시 숨을 돌린다.

『기쁜 날엔 꽃이 있어 기쁨이 더하고 슬픈 날에 꽃이 있어 슬픔이 덜해지지요. 집이든 사무실이든 한송이 꽃만 있어도 오가는 이들에게 여유로움과 평안함을 안겨준답니다』

꽃송이송이들이 누구 손에 전해질지 모르지만 어딜가서든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길 바라는 마음에 한송이 한송이 다루는데도 정성을 다한다.

특히 그는 신앙인으로서 「신뢰」를 강조하며 가장 좋은 꽃들을 가장 기쁘게 전하고자 노력한다. 20년째 새벽이면 일터에 매여있고 한낮에 잠을 자는 일상이라 남들처럼 봉사활동에 못나서는 것이 늘 아쉽다. 그래서 주위에 환자가 생기거나 어려운 이웃들의 대소사에 꽃을 보내는 일 만큼은 꼭 챙긴다.

5여년 전부터는 꽃매장을 운영하는 다른 신자들과 일주일에 세 번 영적기도시간을 갖고 있다. 손님들이 뜸한 새벽 4시경이면 2시간여 동안 기도를 이어간다.

수많은 꽃더미 한켠에 단정하게 유리병에 꽂힌 꽃다발이 눈에 띄였다. 류씨는 옮기다가 꺽이거나 흐트러진 꽃송이들을 모아 만든 다발이라고 한다. 오가는 이들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늘 몇다발씩 만들어 그 자리에 놔둔다고.

잠시 눈붙일 짬도 없이 피곤한 일상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려니까 더 알아야할 것들이 많더라』며 자투리 시간마다 성서를 읽는 류씨, 작은 꽃한송이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소중히 엮어 남과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득히 묻어난다. 그의 손을 거친 수많은 봄의 전령사들이 더욱 멀리 멀리 그 향기 전하기를 기대해본다.

기사입력일 : 2005-04-17

주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