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83) 정보와 보배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04-05-02 06:05:00 수정일 2004-05-02 06:05:00 발행일 2004-05-02 제 239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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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성인들에 의해 발전하고 풍부하게 된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지식과 정보의 구슬들을 잘 꿰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약 5천년 정도 지속되어 온 문명시대에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과 기술의 양과 품질은 대단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농경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다 겪은 70대 중반의 어느 한 농부 할아버지께 그동안 살아온 삶의 형태 중 어느 삶이 가장 좋으냐고 여쭈어 보니 단연코 지금 살고 있는 삶이라고 대답하셨다. 환경보호를 부르짖는 일을 좋아하는 나도 3, 40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서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한편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들을 배워 익혀야 하는 초.중.고등 그리고 대학의 학생들을 보면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수고가 날로 커지고 있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나는 다섯 살부터 할아버지에 의해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쉰 살이 된 이 날까지 책과 배우기를 멀리하지 않는 데에도 늘어만 가는 지식의 양에 언제나 휘둘린다. 배워 익힐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쏟아져 나오는 지식들에 짓눌리고 있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정보 때문에 웬만한 정보들은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지 못하고 이내 잊혀지고 만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너무나 많고, 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여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생존에 지장이 많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줄 여유가 점점 줄어들어,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도, 유지하기도 힘들어진다. 심지어 한 가정 안에서조차 가족 구성원들간에 대화할 시간을 가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새로운 정보를 찾고 익히느라 모두 바쁘다.

이제 우리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살아내고 다가오는 문제들을 해결해낼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중하게 떠오르는 말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이다. 넘쳐나는 지식과 정보를 삶과 직업에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만 현명하게 골라서 잘 꿰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 사물과 사건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통찰력, 골고루 관찰하고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감각과 판단력, 더 좋은 것은 붙잡고 덜 좋은 것은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열리고 비운 마음, 그 외 여러 가지 덕목들이 요청된다. 이러한 것을 어느 정도 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

오늘날 우리들 마음의 환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 그리고 풍부한 물질은 아직 꿰어지지 않은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삶의 양과 질을 높이면서 구원을 가져오는 도구가 되느냐, 몸과 정신을 지치게 하고 삶의 시간을 온통 잠식하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꿰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출발하여 2천년 교회 역사 안에 있었던 수많은 성인.성녀들의 삶과 가르침에 의해 발전하고 풍부하게 된 그리스도교의 영성이 지식과 정보의 구슬들을 잘 꿰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필자는 자연환경을 위한 글과 더불어 마음의 환경을 위한 글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그것을 위해 필요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교회 안의 풍부한 영성의 샘에서 맑고 신선한 물을 길어 올릴 것이다.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