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누가 더 거룩한 사람일까 / 김수복

김수복(요셉·출판사 일과놀이 대표)
입력일 2003-01-01 10:53:00 수정일 2003-01-01 10:53:00 발행일 2003-01-01 제 2329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사귀고 있는 선배 한 분이 있다.

지방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2년 전 명예퇴직을 한 분이다. 너무 좋은 사람이다. 주위 사람들한테 인기 만점이다. 술 담배 일체 하지 않고 건실하기 짝이 없다. 착실하고 친절하고 시간 잘 지키고 일도 야무지게 처리할 줄 안다.

신심이 두터워서 성당 사목회장도 두 차례나 지냈다. 아들 둘이 의사고 사위도 의사다. 의사 가족이 된 셈이다. 선배는 그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을 늘어놓는다.

엊그제는 성당 모임에서 야유회를 갔다 와 헤어지기 전 저녁식사를 하는데 선배가 또 며칠 전에 아들들과 사위를 데리고 골프를 치러 가서 하루에 90만원을 썼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는 골프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값싼 외국 원정 골프 나가는 사람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을 화목하고 원만하게 꾸려가고 사회생활도 빈틈없이 해 나가는 선배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살만하다.

그리고 내 어머니 사촌 되는 이모님이 한 분 계신다.

이모님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폐지를 주워서 근근이 살아가신다. 평생을 알콜 중독에 걸린 남편에게 시달리면서 살아오셨다. 아들 딸들도 지지리 못나고 몸과 머리가 아프고 번번이 사고 치고 감옥에 들락거린다.

몇 년 전 이모부가 돌아가셔서 출상할 때 가보니 다른 친척 한 명 오지 않고 나와 내 동생만 참석해 있었다.

이모님은 성서를 읽으려고 글자는 깨우치셨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 종일 성서를 묵상하고 기도를 하거나 병자들을 찾아가 돌보아 주신다. 이모님은 소설가 뺨치게 묘사력이 있어서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잔잔한 감동이 인다. 나는 참 좋으신 이모님을 두었다.

김수복(요셉·출판사 일과놀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