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 수도회 탐방] 살레시오회 (상) 창설과 역사

입력일 2009-04-11 14:47:11 수정일 2025-04-18 16:13:36 발행일 2001-08-05 제 226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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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보스코 신부 창설 
가난한 청소년들에 사랑·온유 실천
지난해 사제수품식 때 새 사제들이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이며 위대한 교육자인 요한 보스코.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교회 안에 뿌리내린 그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를 창설해 세계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교의 정신과 사랑을 심어줬다.

1815년 8월 15일 이탈리아 토리노 베키지역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요한 보스코는 아홉 살 때 꾼 꿈을 계기로 사제성소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도시로 나와 상점의 점원이나 공장의 직공 등의 일을 했지만 사제가 되고자하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남들보다 몇해 늦게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그는 마침내 1841년 토리노 교구의 사제가 됐다.

당시 공업화가 한창이던 이탈리아는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드는 청소년들이 많았고 도시에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쉽게 범죄를 저질렀고 교도소는 항상 넘쳐나고 있었다. 이 때 요한 보스코 신부는 바르톨로메오 가렐리라는 고아를 만나면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아 신앙의 안내자를 필요로 하던 젊은이들을 주일마다 성당으로 초대해 함께 놀면서 교리를 가르쳤다. 날이 갈수록 이같은 청소년들은 늘어났고 요한 보스코 신부는 「오라토리오」라는 기숙사를 세워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일자리를 얻는데 필요한 기술과 공부를 가르쳐줬다. 이때 오라토리오에서 함께 생활하던 600여명의 청소년들 모두 그의 각별한 사랑을 느낄 만큼 보스코 신부는 학생 하나 하나에게 애정을 쏟으며 사랑을 베풀었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라고 했던 보스코 신부는 오라토리오의 청소년들이 점차 늘자 이들을 더 잘 보살피기 위해 1864년 수도회를 창설했다. 당시 보살핌을 받고 있던 청소년들 가운데 성숙한 젊은이들이 함께 했던 살레시오회는 수도자가 되기보다 항구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보스코 신부와 함께 일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한평생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기숙사, 기술학교, 주일학교 등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했던 보스코 신부는 자신의 이상대로 젊은이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신학교시절부터 존경해왔던 살레시오 성인의 영성으로 살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라고 정했다.

살레시오 성인은 17세기 제네바의 주교로서 칼빈주의에 맞서 가톨릭의 진리를 선포하며 샤블레라는 지역에서 수많은 개신교도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세상 안에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완덕의 길을 제시하며 성화의 길로 이끈 살레시오 성인은 온유와 사랑의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869년 교황청의 정식 승인을 받은 살레시오회는 창설자 보스코 신부의 정신을 따라 끊임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끌어안으며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실천했다. 1868년 「살레시오 오라토리오 출신자회」를 탄생시킨 보스코 신부는 1872년 살레시오 수녀회를 창설하고 이어 평신도 단체인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창설해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도직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청소년들에게 다 내어준 보스코 신부는 1934년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성인으로 반포됐으며,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실천적인 사랑과 교육으로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2천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보스코 신부는 사회변혁의 순간에 교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호교론자로서 교회 안에서 큰 영성가로 남아있다.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 보스코 신부의 정신을 살고 있는 살레시오회는 학교, 기숙사, 성당, 기술학교 등을 갖춘 살레시오 공동체를 설립하면서 청소년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또한 살레시오회는 1954년 6·25의 아픔을 안고 살던 한국에 진출해 현재까지 살레시오 중·고등학교를 비롯해 많은 오라토리오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이 땅에서 요한 보스코 신부의 청소년 교육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서울 대림동에 있는 직업학교 목공소에서의 작업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