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수도원스테이 - 우세민 기자 체험기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20-08-11 수정일 2020-08-11 발행일 2020-08-16 제 320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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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과 단순함 속에서 오직 하느님께 집중하다
32년간 농약 안 친 자연환경 숲에서 조용히 차와 산책 즐겨
그레고리오 성가로 기도하며 하느님 찬미하는 기쁨 누려
주님께 의탁하는 삶의 행복 깨닫게 되는 은총의 시간

8월 8~9일 열린 ‘수도원스테이’ 첫 일정 참가자들이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성당에서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간절히 하느님을 찾던 날이 언제였나. 매주 성당을 갔지만, 마음과 생각은 일터에 그대로 둔 상태였다. 무시무시한 감염병의 창궐에 하느님보다는 나와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 내 안에도 하느님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8월 8~9일, 장맛비를 뚫고 경남 고성의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대수도원장 유덕현 아빠스)을 찾았다. 가톨릭신문사(사장 김문상 신부)와 수도원이 공동 진행하는 ‘수도원스테이’가 이날 첫 일정에 돌입한다. 기자도 일정에 함께하며 24명의 참가자들과 침묵과 기도, 단순한 생활에 동참하기로 했다. 거짓말처럼 1박2일 동안 비도 잦아들었다. 하느님을 찾고, 그분과 화해하라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 만남

시골길을 따라갔더니 수도원 현판이 보였다. 입구로 들어서자 고깔 달린 하얀 통옷의 수도복을 입은 수사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숲 사이로 유럽식 성당이 보인다. 지상에서 만날 수 있는 성(聖)스러운 공간에 다다랐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도원스테이 첫 일정은 대수도원장 유덕현 아빠스와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수도원 카페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창원, 부산, 대구에서 온 이들부터 서울, 인천, 광주 등 멀리서 온 이들까지, 참가자들은 저마다 기대에 들뜬 표정이었다. 유 아빠스는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고요함 가운데 편히 쉬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침묵 가운데 걷고 싶으면 걷고, 가만히 앉아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자신을 들여다보는 만큼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나는 만큼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도원스테이는 지친 현대인들이 숲속의 수도원에서 고요하고 편안한 시간을 누리고,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유산인 수도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고성수도원은 11만 평 대지에 성당과 경당, 피정시설, 농장, 십자가의 길, 운동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넓은 자연환경 안에서 산림욕하며 산책하고 묵상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참가자들은 수도자들과 함께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에 맞춰 미사와 시간전례에 참례할 수 있다. 또 주어진 시간 동안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강의, 산책, 차 한 잔의 시간, 휴식 등에 선택 참여할 수 있다. 원하는 신자들은 주일미사 전 고해성사와 면담성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 강의

“렉시오 디비나의 해석을 ‘거룩한 독서’로 아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라고 해보면 어떨까요? 렉시오 디비나는 성령과 함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예수님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렉시오 디비나에 빠져 보십시오.”

저녁기도 전까지 강의와 산책, 휴식 등 선택 활동이 주어졌다. 유 아빠스가 진행하는 렉시오 디비나 강의에 참여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지만, 수도승의 삶의 이정표 역시 ‘성경’이다.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하루 중 전례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노동과 렉시오 디비나에 집중한다. 그 중에서도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 안에 담긴 성령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핵심이다.

2시간가량 이어진 강의 동안 유 아빠스는 참가자들과 허를 찌르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이름부터 어려운 렉시오 디비나. 막연히 어렵게만 여겨 시도조차 망설였지만, 눈높이에 맞춘 쉬운 강의를 들으며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유덕현 아빠스가 렉시오 디비나 강의를 하고 있다.

수도원 산책로에서 만난 십자가의 길 제2처.

참가자들과 함께 시간전례에 참여하고 있는 우세민 기자.

수도원스테이 첫 일정이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참가자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제공

수도원스테이 참가자들이 산책 가운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정 중 참가자들은 주어진 시간 동안 강의나 산책, 휴식 등에 선택 참여할 수 있다.

■ 화해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는 일상의 리듬을 기도로 시작해 기도로 이어가고 기도로 마무리짓는다. 수도승들은 가장 중요한 전례인 성찬례를 위해 하루 한 번, ‘시간전례’라고 불리는 기도를 위해 하루 일곱 번 성당에 모인다. 특히 베네딕도회는 수도승들의 오랜 전통인 그레고리오 성가를 전례 안에 적극 받아들이고 활용한다.

수도원스테이에서는 비신자들도 참가대상인 점을 고려해 이틀 동안 미사를 포함해 네 번의 전례에 참례하도록 일정을 구성했다.

“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주소서. 제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

성당에서 시간전례에 참여했다. 그레고리오 성가로 기도하는 수사들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은은한 현악기 ‘치터’(zither)와 어우러져 천상의 화음을 낸다. 수사들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청하기만 했지, 은총에 감사하고 주님을 찬미한 적이 몇 번이나 됐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숙소 옆 경당에 잠깐 들렀다. 어두움과 고요함 속에 조용히 하느님께 집중했다. 대화를 시작했다.

“주님, 가장 사랑받으셔야 할 당신을 제 삶의 첫 자리에 두지 못해 죄송합니다.”

■ 깨달음

다음 날 아침, 새와 매미 소리가 잠을 깨운다. 창문을 열어보니 구름 사이로 햇빛이 땅에 내려앉는다. 밤새 폭우가 쏟아지나 싶더니, 아침기도에 맞춰 비가 멈췄다.

미끄러운 진흙 길을 걸어 조심조심 성당으로 걸어갔다. 가정과 사회에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창조주에게 내 몸과 마음을 맡긴다. 지저귀는 새 소리와 불어오는 바람 사이에 나를 둔다.

1988년 경남 고성에 둥지를 튼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도회는 지난 32년 동안 농사나 자연환경을 돌보면서 단 한 번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다. 각종 산짐승과 벌레, 꽃 등 하느님의 피조물은 모두 이곳 수도자들과 친구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그냥 마셔도 된다. 수돗물이 아니라 120m 지하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다.

수도원스테이는 주일미사와 점심식사로 마무리됐다. 어제보다 화사한 표정으로 참가자들이 성당에 들어섰다. 유 아빠스는 미사 강론을 통해 첫 수도원스테이로 인연을 맺은 참가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함을 느낍니다. 사도들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으로 물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는 갑자기 엄습해온 두려움에 그만 물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도 살면서 늘 그런 경험을 합니다.”

똑같은 옷을 입고 기도와 일을 반복하는 수도승들의 단순한 삶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좇던 것들에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은총인가.

수도원스테이는 고요함 속에서 나를 보고, 나를 바라본 만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행복하게 살려면 그저 주님께 의탁하면 된다는, 단순하지만 가장 힘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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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