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밥과 간장 / 조수선

조수선,(수산나ㆍ조각가ㆍ제1대리구 용인본당),
입력일 2020-05-26 수정일 2020-05-26 발행일 2020-05-31 제 319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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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식구들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할 때의 일입니다. 작은어머님이 내게 “너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라며 저희 어머니가 처음 만났을 때 차려주셨던 음식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와 단 둘뿐인 형제이고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큰 집인 우리 집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결혼을 결심하고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왔는데, 작은어머니께서는 속상한 마음이 들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라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엄마가 내온 것은 갓 지은 흰밥에 반찬이라고는 간장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날 엄마가 내온 밥상은 최고의 밥상이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당시엔 집안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쌀도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던 걸 모르셨다는 겁니다. 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보니 그때 그 밥상이 생각난다하십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식사 준비 때의 엄마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닿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질 즈음 나는 작업실에 내려가며 이제 고1이 되는 딸아이에게 “생닭이 있는데 저녁 좀 준비해 줄 수 있냐”고 부탁했습니다.

저녁 준비 시간이 되었나 봅니다. 뭔가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그 소리로는 어떤 음식을 준비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야채를 자르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립니다. 천천히 조심조심…. 그 소리가 박자가 되어 나를 안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게 이런 감정인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준비할 때 과연 저렇게 예쁜 소리가 났었을까?’ 생각됐습니다.

아이가 준비한 요리는 북한 대표 보양식 닭온탕이었습니다. 맑은 국물에 살짝 볶은 채소들이 예쁜 색으로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아이가 저녁을 준비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채소를 썰 때마다 온 몸이 긴장되며 진땀이 났다고 합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를 뒤돌아봅니다.

코로나19로 두 달 만에 성체를 모셨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맞이한 예수님의 몸. 울컥해지는 마음을 달래며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했습니다.

예수님은 늘 조건 없이 나를 초대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는데 나는 늘 당연한 듯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나도 이제 예수님의 몸을 처음 영했던 그때 그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미사에 참례해야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차려주시는 정성 가득한 식사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을 때도 많았는데 이제 준비해 주시는 매일 식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모셔야겠습니다.

엄마가 내놓은 밥과 간장, 온몸에 긴장하며 준비한 아이의 한 끼, 당신의 몸과 피를 다 내어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저녁을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조수선,(수산나ㆍ조각가ㆍ제1대리구 용인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