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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주일 기획] 군인들이 민간본당 미사에 참례하는 이유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8-10-01 수정일 2018-10-02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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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의 작은 관심이 일손 부족한 군복음화에 큰 힘
민간성당 주일미사 참례자 전국 77개 성당서 1650여 명
군 본당·군종사제 부족 탓
인솔 간부나 차량 문제로 그마저 어려운 곳도 있어
‘군인자모회’ 중심으로 성당 찾는 병사들 보살피는 서울 공항동본당 활동 사례
군종교구-민간교구-군부대 성공적 협력 모델로 ‘눈길’

9월 23일 주일 오전 8시30분 무렵 한 무리의 군인들이 서울 공항동성당으로 줄을 맞춰 걸어 들어왔다. 8시50분경에도 또 한 무리의 군인들이 성당을 찾았다. 이들은 공항동성당에서 오전 9시 주일미사를 드리려는 성당 인근 육군 3765부대 병사들이다.

성당 마당에 나와 있던 공항동본당(주임 윤정한 신부) 신자들은 군인들이 익숙한 듯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본당 게시판에는 ‘군인들에게 복음을, 군복음화 변함없는 열정으로’라는 문구가 적힌 올해 제51회 군인주일(10월 7일)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군사목에 대한 본당의 높은 관심이 엿보였다.

■ 군인 신자들이 주일미사 봉헌하는 민간성당

공항동성당에서 매주 주일미사를 드리는 병사들처럼 군인임에도 부대 내 성당이 아닌 민간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례가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군종교구 제공 자료에 의하면 2017년 12월 기준으로 전국 민간교구 77개 성당에서 매주 평균 1655명의 군인들이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군인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봉헌하는 민간성당 가운데 군종교구에서 확인한 곳만을 근거로 산출한 것이어서 실제 수치는 더 클 가능성이 높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매년 연말에 군인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도록 돕는 민간본당 사목자들에게 편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보내 군복음화에 협력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군종교구 사제단에게는 군종교구 본당 관할 부대 병사들이 미사를 봉헌하는 민간성당을 파악해 교구에 알려줄 것을 당부하고 있기도 하다.

■ 군종신부 발길 닿지 않는 부대 상당수 존재

전국의 모든 육·해·공군과 해병대 장병들, 군무원, 군 가족을 사목 대상으로 하는 군종교구 소속 본당은 현재 97개다. 국방부 직속 6개, 육군 직속 14개, 육군 42개, 해군(해병대 포함) 16개, 공군 19개 등이다. 군종사제단은 매년 전역자와 임관자 수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100명 선이다. 100명 정도 군종사제단이 전국의 모든 부대 사목을 담당하다 보니 손발이 닿지 않는 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천주교 군본당의 경우 장성급 지휘관이 지휘하는 부대를 기준으로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많은 본당 수를 차지하는 육군에는 보통 사단 단위로 본당이 배치돼 있고 사단 이하 연대급 부대에는 군종신부가 공소를 방문해 주일미사를 봉헌한다. 천주교에 비해 군종장교(군종목사, 군종법사) 수가 많은 개신교와 불교는 대부분 연대급 부대마다 교회와 법당이 있어 군인 신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신앙생활의 기회를 부여한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올해 군인주일 담화에서 “군종신부 자신이 담당하는 군부대 지역이 매우 광범위하기에 시간을 많이 소모해야 한다”며 “따라서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데에 어려움이 있고 이런 상황은 군종신부들을 바쁘게 또 피곤하게 만들어 주지만 군종신부들은 신자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일에 기쁘게 정성을 다해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군종신부들은 주일미사를 평균 4~5대씩 봉헌하고 부대 위문을 위해 1주일에 수백㎞를 이동하는 일이 예사다.

9월 23일 오전 9시 서울 공항동본당 미사에 참례한 서울 강서구 소재 육군 부대 병사들.

서울 공항동본당 미사에 참례해 영성체를 하는 인근 육군 부대 병사.

서울 공항동본당 ‘군인자모회’ 회원들이 주일미사에 참례한 병사들에게 피자와 음료수를 간식으로 나눠주고 있다.

■ 군종교구와 민간교구, 군부대 협력 강화해야

군종신부가 아무리 바쁘게 움직여도 전후방 모두, 특히 한 개 군본당이 관할하는 지역이 전방에 비해 훨씬 넓은 후방일수록 군종신부가 찾아가 미사를 드릴 수 없는 부대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대전·세종·충남 전역을 부대 관할로 하는 육군 제32보병사단 한밭본당 백인기(요한 사도·73) 선교사는 “육군 후방 사단은 크게 해안 대대와 내륙 대대로 부대가 구성되는데 군종신부는 사단 사령부 성당과 인근 연대급 부대 공소에서는 미사를 봉헌할 수 있지만 지역 대대급 부대까지는 물리적으로 찾아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항동성당을 찾는 병사들은 부대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다 매주 인솔 간부가 배정돼 미사 봉헌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백 선교사는 “민간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많은 부대들은 주일에 군용차량 배차를 꺼리거나 인솔간부 배정도 원활하지 않아 성당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병사들이 있어 안타깝다”며 “군종교구 차원에서 민간교구 및 군부대와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 차량 배차와 인솔간부 부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항동본당은 1980년대부터 ‘군인자모회’를 조직해 주일미사에 참례한 병사들에게 미사 후 간식을 매주 제공하고 병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비신자 교리반도 최근까지 운영하면서 꾸준히 군인 영세자를 배출했다. 민간본당으로서 군복음화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공항동본당 사례는 군종교구와 민간교구, 군부대 간의 성공적 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

윤종헌(다윗) 일병은 9월 23일 공항동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한 뒤 “입대 전 성당에 잘 나가지 않다가 훈련병 기간 중 신앙을 되찾고 자대배치를 받은 후로는 매 주일 빠지지 않고 공항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얻는 마음의 평화가 군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서울 공항동본당 군인자모회 송정현 회장

“엄마처럼 병사들 챙기면서 천주교에 대한 호감 전하죠”

서울 공항동본당(주임 윤정한 신부) ‘군인자모회’ 송정현(헬레나) 회장은 “공항동성당에 매주 주일미사를 드리러 오는 군인들이 군복무 중 세례를 받지 않더라도 전역 후에 천주교에 대한 호감을 간직하고 세례를 받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9월 23일, 공항동본당 주일 오전 9시 미사를 드리러 온 서울 강서구 소재 육군 3765부대 소속 병사들은 모두 27명이었다. 이 가운데 이날 미사에서 영성체를 한 병사는 2명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지만 천주교를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있어 자발적으로 공항동성당을 찾은 병사들이다.

송정현 회장은 “언젠가 택시를 타고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 전 군복무 시절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성당을 찾았다가 천주교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남아 전역 후 세례를 받았다는 사연을 들었다”며 “매 주일 공항동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병사들에게 간식을 준비하면서 군복음화를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밝혔다.

공항동본당 군인자모회는 30여 년 전인 1980년대 만들어져 매 주일 미사는 물론 성모 승천 대축일 등 의무 대축일에 성당을 찾는 병사들에게 본당 공동체 모두의 정성이 담긴 간식을 준비하고 있다. 간식 봉사는 물론 병사들의 주일 미사 참례 현황을 매주 파악해 분기별로 참례율이 높은 병사들에게 선물도 챙겨주면서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

송 회장은 “25세 딸과 18세 아들을 두고 있어 아직 군대에 다녀온 자녀는 없지만 공항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간식을 먹는 군인들을 볼 때마다 내 자식 같아서 뿌듯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어 “군부대에 성당이 없어 민간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병사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군종교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매주 손이 많이 가더라도 빠지지 않고 군인자모회 회원들과 떡볶이, 튀김, 만두, 김말이 같은 병사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직접 만들 때가 많다”며 “공항동성당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전역을 앞둔 병사가 감사 편지를 건네거나 전역 후에도 성당에 들러 일손을 돕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