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을 막 넘겼을 때 마음에 새긴 내 삶의 모토는 ‘인생은 음미체!’였다. 음악, 미술, 체육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벗이자 동반자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40대 때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다. 집안과 직장과 사회에서 내게 주어지는 일들과 스트레스로 인해 마음도 몸도 몹시 힘들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아서라는 걸 깨닫고 삶의 태도를 바꿨다. 일을 줄이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늘렸다. 그렇게 친구가 되어 준 ‘음미체’가 나를 지켜 주었다.
돌아보면 어렸을 적부터 ‘음미체’와 함께 살아왔다. 주일 아침은 아버지께서 틀어 주신 가곡이나 영화 음악을 들으며 잠에서 깼고, 덕분에 음악과 친해졌다. 중학생 때 형이 치는 기타를 어깨너머로 배운 덕에 지금도 아들과 함께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른다. 동네 만화가게에서 살다시피 한 덕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중학교 땐 미술부 활동도 했다. 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갔고, 축구와 탁구, 테니스까지 ‘운동권’으로 살았다. 우연한 기회로 배우기 시작한 트럼펫 덕분에 교무처장 보직을 맡았던 2년을 잘 건너왔다. 출근 전 한 시간 트럼펫 연습 시간이 숨 쉴 공간이 되어 주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제자와 후배들에게도 음미체를 권한다. 출근 전 한 시간쯤 음미체에 몰입한 뒤 일과를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전 직장 후배는 내 권유로 아침 수영을 시작한 뒤 검도까지 이어져 지금은 건강한 60대를 산다며 고마워한다.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 쉬고 또 즐기며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음미체로 함축되는 ‘문화, 예술, 체육’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 준다. 새 정부의 할 일이 많겠지만 ‘음미체의 생활화, 문화 예술의 일상화’도 중요한 국정 과제로 삼아 주길 바란다. 선진국이지만 국민은 정작 행복하지 않은 대한민국을 더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에도 음미체가 단단히 한몫할 것이다.
교무처장으로서 꿈꾼 일 중 하나는 신입생 교양 교육을 인문학과 음미체로 바꾸는 것이었다. 긴 세월 입시 지옥을 건너 대학에 온 새내기들이 1년 만이라도 다른 공부는 다 내려놓고 인문학과 음악, 미술, 체육을 배우며 산다면 문화 예술로 샤워를 한 것처럼 상큼하고 개운한 젊은이로 거듭날 것이다. 악기를 배우고 협주와 합창을 해 본다면, 그림을 그리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본다면, 몸을 움직여 춤추고 달리고 날아오르게 한다면 그만큼 좋은 교양 교육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이루지 못한 꿈이 못내 아쉽다.
음미체의 생활화는 어디서든 가능하다. 재작년에 우리 대학 성악 동호회에 가입해 귀한 선물을 받았다. 음악 전공 지도 교수와 대학원생들 덕분에 성악에 낯선 교직원들이 매주 성악 공부를 하고 학기 말에는 공연도 한다. 무대에 올라 노래하는 게 떨리는 일이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감사하고 성취감을 느낀다. 좀 더 갈고닦아 졸업생과 신입생들 앞에서 공연도 하고, 학교를 위해 궂은일로 애쓰시는 분들을 위한 뜻깊은 공연도 해 보고 싶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이다.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1989년 8월에 세 나라 국민 200만 명이 620킬로미터 인간 띠를 이었고 한목소리로 ‘일어나라 발트야’ 노래를 불러 2년 뒤 독립을 쟁취했다. 4~5년마다 온 국민이 참여하는 ‘노래와 춤 축제’도 열리는데 수만 명이 함께하는 군무와 합창은 2008년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더욱 빛이 난다.
학교, 직장, 교회, 마을에 그리고 도시와 지역과 온 나라에 음미체가 일상이 되고 생활이 되면 좋겠다. 경쟁하고 이기기 위해서가 아닌, 함께 어울려 배우고 익혀 풍요롭게 나누는 음미체로 ‘문화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자. 인생은 음미체! 국가도 음미체! 행복에 이르는 길, 음미체!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