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성당 순례

[수원교구 성당 순례] 남양성모성지 성당

박효주
입력일 2025-04-29 11:14:11 수정일 2025-04-29 11:14:11 발행일 2025-05-04 제 344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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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예술로 빚어 낸 곳…따스히 감싸주는 풍경에 걸음마다 기도가 머무르다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전담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이하 성지)의 성당과 티 채플 등이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페터 춤토르, 조각가이자 화가 줄리아노 반지(1931~2024) 등 거장들과 함께 예술로 빚어지며 신자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다. 2월 가톨릭 미술상을 수상한 성지 성당에는 순례 당일에도 신자들뿐 아니라 대학교 건축과 학생들과 건축사무소 직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바실리카 인준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는 성지 성당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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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천장의 ‘나무 물결’에 압도됐다. “성당 안 어느 위치에 앉든 자연광으로 신자들을 따스히 감싸주고 싶다”던 마리오 보타의 바람이 엿보였다. 박효주 기자

파도치는 나뭇결의 방주

“아베, 아베, 아베마리아~”

분명 가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매시간 울리는 종소리는 익숙한 노랫소리로 와닿았다. 성지에 들어서자마자 반긴 종소리와 함께 이중 원형 기둥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한만원(안드레아) 씨가 설계한 성당의 외관은 색감과 둥근 모양에서 드는 온화한 느낌에 더해 하얀 가로선과 기둥 수직선의 만남에서는 세련된 멋까지 났다.

2층에 있는 성당으로 오르는 어두운 돌계단 양쪽으로 은은한 조명을 두어 잠시나마 침묵 속에서 성찰에 잠기는 시간을 선물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나무 물결’에 압도됐다. 가늘고 얇은 살을 수직으로 설치해 빛을 조절한 나무 루버가 천장에 빼곡했다. 루버로 이루어진 수평 물결 사이사이마다 자연 빛이 들어오는 창들을 통해 파란 하늘이 비쳤다. “성당 안 어느 위치에 앉든 자연광으로 신자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다”던 보타의 바람이 엿보였다.

우리나라 성당으로는 드물게 양 기둥 옆으로 여덟 개의 기도 공간인 채플을 마련했다. 이곳에는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정들의 화합을 상징하는 전 세계 성모상을 모시고 있다. 특히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은 이수경 작가가 우리나라 반가사유상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또한 그 기둥마다 고(故) 안선호(베다) 신부가 기증한 나자렛 성모 영보 동굴, 겟세마니 동산, 베들레헴 동굴, 골고타 등 이스라엘 여러 성지를 수리할 때 나온 돌들을 액자에 넣어 비치해 묵상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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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상에서 눈을 부릅뜬 채 살아계신 예수님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듯했고, 유리 성화 <성모님의 생애>(왼쪽)와 <최후의 만찬>은 허공에 정지돼 있었다.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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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개의 기도 공간에 모신 전 세계 성모상 중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은 이수경 작가가 우리나라 반가사유상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박효주 기자

무중력 속 고요함, 제단

제대 위 십자가상은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눈을 부릅뜬 채 살아계신 예수님은 제단 위 수직의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받으며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줄리아노 반지 작가는 못 박혀 있는, 십자가가 일으켜 세워지는, 고통스러운 순간의 그분이 어디서든 ‘나’를 바라보도록 표현했다. 아울러 십자가의 못은 철로 만든 구속이 아닌, 부활을 상징하는 빛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반지 작가 작업한 유리 성화는 모래 아트가 생각나는 짙은 나무색의 부드럽고 따뜻한 작품이다. 이 또한 허공에 거짓말처럼 정지돼 있었다. 뒷면은 인물들의 뒷모습이 그려진 양면화이다. 왼편에는 ‘수태고지’와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이 담긴 <성모님의 생애>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최후의 만찬>이 묘사돼 있다. <최후의 만찬>은 유다가 부끄러워 얼굴을 숨기는 장면인데 작가가 “모든 세상을 넣고 싶다”며 나타낸 아시아인의 얼굴도 제자들 중 찾아볼 수 있다.

제단 위 원형 기둥에는 높다랗게 천창이 나 있다. 하지 즈음 성당의 방위와 태양 고도가 정확히 일치하는 시간이 되면, 천창의 빛과 그림자가 천사 날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제단이 여타 성당보다 넓은 것은 심포니 연주가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의도에 의해서다. 문화의 시대에 맞춰 지역 주민과 함께 미사와 음악 둘 다 만족시키는 곳으로 탄생시켰다.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제대와 감실, 강론대, 해설대, 세례대, 성수대, 파이프오르간도 모두 직접 디자인했다. 내부 조화까지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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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당의 파랗고 검은 벽, 예스러운 고상과 하얀 남양성모자상은 색상의 조화와 단순함의 극치를 이룬다. 박효주 기자

‘조화’라는 균형의 추

1층으로 내려와 소성당으로 들어서자 파랗고 검은 벽, 예스러운 고상과 하얀 남양성모자상이 보인다. 색상의 조화와 단순함의 극치에서 오는 충격은, 그 검푸른 벽에 ‘쾅’하고 세게 부닥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벽면은 유태근 작가가 문경 한지 454장을 옻칠과 밀랍 작업으로 완성한 세계 최대 크기의 한지 벽화다. 남양성모자상은 강론대 자리에 모셔져 있어 사제가 성모님 옆에 서서 강론하는 구도이다. 고상은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1696~1787) 당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제작했다.

이외에도 성지 내 경당으로 의뢰됐던 티 채플은 페터 춤토르의 의견에 따라 찻집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영적인 여정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환대, 친절함, 위로, 따뜻함 속에서 이룰 수 있는 곳이다. 성지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길 바라는 기대 속에 형성되고 있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모 성지로, 1866년부터 6년간 8000명을 처형한 병인박해 시 남양도호부에서 희생된 무명의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해 1991년 조성됐다. 오늘날 전 세계 예술가들이 한국 전통과 남양 성모님을 만나 세운 성당은 성지의 과거와 현대, 동양과 서양의 조화 그 정점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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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에 들어서자마자 이중 원형 기둥의 붉은 벽돌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박효주 기자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